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7
줄리에타 발렌타인.
시칠리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녀를 시칠리아의 공주라 불렀다.
시칠리아에서 그녀만큼 아름답고 늠름한 여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녀를 말괄량이 공주라 불렀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말괄량이 같은 행동을 하는지, 발렌타인 패밀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불꽃놀이를 하고 싶다는 건가요?”
“마음에 들지 않는 새끼 집에 불을 지르고 오라는 소리가 아니라?”
“순! 수! 한! 불꽃놀이가 보고 싶어!”
줄리에타 발렌타인.
시칠리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녀를 발렌타인의 공주라 불렀다.
그녀는 시칠리아를 주름잡는 발렌타인 패밀리의 보스, 루케닉 발렌타인의 혈육이었다.
시칠리아에서 그녀를 맨 정신으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여나 그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발렌타인 패밀리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게 될 테니까.
“브루! 쟤가 아까 내 엉덩이 만졌어!”
“자, 잘못했습니다! 바, 발렌타인의 공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이게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이야! 시칠리아 사람들 중에서 아가씨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저, 정말입니다! 이번에 시칠리아로 놀러온 겁니다.”
“…이유 불문.”
그리고 브루노 발렌타인이 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시칠리아에는 구전으로만 전파되는 격언이 하나 있었다.
거시기가 멀쩡히 남아 있고 싶다면, 결단코 발렌타인의 공주만은 건드리지 말지어다.
발렌타인 패밀리가 시칠리아를 주름잡고 있음을, 발렌타인 패밀리가 줄리에타 발렌타인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주름잡는 패밀리는 발렌타인 패밀리만이 아니었다.
이후. 사양길에 접어들던 마피아는 몬스터의 출몰이라는 계기를 맞이하고, 다시금 도시를 지배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에서는 마피아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는 했다.
그리고 발렌타인 패밀리와 마이론 패밀리는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물론, 우위를 차지하는 패밀리는 발렌타인 패밀리였다.
발렌타인이 마이론을 굴복시키고, 시칠리아의 진정한 지배자로 거듭나는 일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발렌타인에는 줄리에타 발렌타인이 있었으니까.
“…또 싸움이야?”
“그 녀석들이 먼저 시비를 건 겁니다.”
“아가씨! 부탁드립니다! 억울해 죽겠습니다! 놈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알았어.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줄리에타 발렌타인의 기프트는 , 마나효율을 증폭시키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은 발렌타인 패밀리의 전력을 배로 증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은 결단코 희소한 기프트가 아니었다. 마나효율을 증폭시키는 기프트를 소유한 사람은 어디에든 있었다.
다만 그녀의 이 동일한 기프트를 소유한 사람들에 비해 뛰어났을 뿐.
그래서 사람들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발렌타인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변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왔지만.
“…빅 마마께서 마이론을 시칠리아의 지배자로 선택하셨다.”
어느 날, 루케닉 발렌타인은 패밀리원들을 불러놓고 암울한 소식을 전했다.
패밀리원들은 보스가 전하는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빅 마마가 마이론 패밀리를 시칠리아의 지배자로 선택했다는 말인가.
시칠리아의 지배자는 발렌타인 패밀리여야만 하는데.
발렌타인 패밀리는 시칠리아 패밀리보다 강하건만.
그럼에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마이론 패밀리는 빅 마마의 위상을 등에 업고 시칠리아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이것으로 마피아의 전쟁은 종결되는 것 같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칠리아의 지배자가 된 마이론 패밀리가 발렌타인 패밀리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식들이 마이론 따위에게 넘어가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랍니까! 그놈들은 대체 어디 출신 녀석들이랍니까!”
마이론 패밀리는 ‘시칠리아의 청소’라는 명목으로, 발렌타인 패밀리의 세력을 줄여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레타인의 세력은 점점 약해져갔다.
발렌타인 패밀리원들 중에는 마이론 패밀리로의 배신을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마이론 패밀리에서는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영입해 오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에타 발렌타인은 잔혹한 운명을 마주하고 말았다.
“…네?”
“…발렌타인은 마이론 패밀리와 합병하기로 했다.”
“아빠, 그건 합병이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보스! 이대로 마이론 자식들에게 굴복하겠다는 말입니까!”
“…발렌타인을 지키기 위함이다.”
루케닉 발렌타인은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줄리에타를 비롯한 간부들의 반발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묵묵히 이어나갔다.
“발렌타인은 굴복한 것이 아니다. 잠시 동안, 마이론과 손을 잡는 것뿐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합병이 된다는 말은 허울만 좋을 뿐이지, 결국 마이론 밑으로 들어간다는 뜻이 아닙니까!”
“…줄리에타와 빈센트 마이론은 혼약을 나눌 것이다.”
“…네?”
그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이론 패밀리 보스의 아들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난봉꾼 빈센트 마이론.
어째서 여자나 밝히고 다닐 줄 아는 망나니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가 해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루케닉과 오빠 알버트를 바라보았다.
알버트는 눈을 피했다.
루케닉은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마이론은 너와 빈센트가 부부가 된다면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일부 양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그건 딸을 갖다 바치라는 소리 아닙니까!”
“아니. 우리는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루케닉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솔직하게 인정하지. 우리는 졌다. 하지만 다음에는 이길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줄리에타 발렌타인, 바로 너다.”
“제가 뭘….”
“빈센트와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라.”
“…아빠….”
그 순간, 그녀는 루케닉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간부들 중에는 눈치가 빠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르지. 빈센트 마이론의 기프트는 마이론의 저력 중 하나니까.”
모든 사람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다. 단지 자신의 기프트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프트는 유전이 되는가.
국제마나관리기구는 기프트는 유전이 되지 않는 변수라고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신생아의 기프트는 부모로부터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아이가 간혹 부모의 기프트를 소유하는 일이 있어도, 우연에 불과한 결과라는 결론을 짓고 있었다.
또한 신생아의 체내 마나는 부모로부터 미미한 수준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체내 마나와 기프트는 불확정적인 요소라는 것이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국제마나관리기구는 일부 기프트는 부모로부터 유전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은 배우자의 기프트를 유전시키는 특성을 지닌 기프트였다.
‘보스, 줄리에타 아가씨에게서 2세를 얻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아이는 어떻습니까. 체내 마나는 미미하지만 기프트는 쓸 만합니다.’
‘몇몇 패밀리로부터 줄리에타 아가씨와 부부의 연을 맺고 싶다는 서신이 왔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간부들이 보스와 나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약을 논의하는 이야기를.
그때 그녀는 배신감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발렌타인의 이름을 잇는 한 사람으로서 발렌타인의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마이론에게 굴복한 채, 빈센트의 정부가 되는 미래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은 마나효율을 높이는 기프트다.
줄리에타가 빈센트 마이론의 아이를 잉태하면, 아이는 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
“보, 보스. 그럼 설마….”
“그래. 태어나는 아이는 빈센트 마이론의 기프트를 뛰어넘는 기프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빼돌린 뒤, 그 아이를 발렌타인을 재건할 인재로 만든다.”
간부들은 침묵했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그만큼 발렌타인 패밀리가 궁지에 몰려있음을 의미했다.
간부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어느 누구도,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아가씨. 발렌타인의 미래를 생각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가씨.”
“발렌타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주십시오.”
루케닉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줄리에타. 너도 발렌타인의 일원이라면, 빈센트 마이론의 정부가 되는 수모를 참아라.”
“하지만….”
“네가 지금까지 발렌타인이 누릴 것을 누렸다면, 발렌타인의 이름을 가진 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줄리에타는 루케닉을 설득해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알버트를 쳐다보았다.
알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네.”
누릴 것을 누렸다면, 의무를 다해라.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동안 얼마나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이제는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그랬는데─.
“─말해.”
“…않아. 이대로 결혼하고 싶지 않아!”
“줄리에타 발렌타인.”
간부들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경호하고 있던 그날 밤.
창을 타고 넘어온 브루노가 넋을 잃고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는, 덩치를 숙였다.
“세상을 적으로 돌려서라도, 너만은 지키겠다.”
줄리에타는 오열했다. 커다란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다음 날, 아무도 두 사람을 찾지 못했다.
☆
“Cazzo!”
젠코 마이론이 이탈리아어로 욕설을 지껄였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알버트는 한숨을 쉬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플레이어가 백미러로 젠코의 심기를 살폈다.
톰 마이론.
그는 이번 일정에서 젠코와 알버트의 비서를 맡고 있는 이였다.
대사가 아니었던 그는 접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게 있어.”
젠코는 답하지 않고 속으로 씨부렁거렸다.
그때, 그는 선녀에게 손가락 끝도 대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깨달았을 때에는 냉기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냉기는 지금도 몸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이 기억한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공포를.
“Cazzo….”
젠코는 자신에게 공포를 새겨놓은 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남궁성운.
그만한 냉기를 다룰 수 있는 자는 필시 대한민국 최강의 창이라 불리는 그밖에 없으리라.
“한국도, 플레이어 수준이 낮지는 않은가 보군.”
“십이좌를 얕보지 마라. 국제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자들이다. 내가 전에도 말했을 텐데?”
“그래, 인정. 트레디치에 준하는 녀석들이라 해두지.”
젠코는 흥 소리를 내며 차창을 노려보았다.
내가 너무 한국을 얕잡아보고 있었나 보군.
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호위사들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십이좌는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괜히 둘이서 선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됐고. 얼른 차나 몰아. 발렌타인의 공주님을 만나러 가야지.”
젠코는 입가를 다셨다.
그가 방한한 이유는 선녀와의 회담 때문이 아니었다.
원래 한국을 방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대사는 알버트 발렌타인 한 명.
직전에 마이론 패밀리가 회담에 참석하겠다고 개입한 것이다.
바로 줄리에타 발렌타인을 사로잡기 위해.
벌써 몇 년이나 흘렀어도, 그녀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유용한 아티펙트나 다름없었다.
그 동안 얼마나 그녀의 행방을 찾았던가.
설마 태평양과 북대서양을 건너야 당도할 수 있는 한국까지 도망쳤을 줄은 몰랐다.
“확실한 겁니까?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발렌타인 놈들에게도 보여줬다니까. 확실해. 줄리에타 발렌타인이었어.”
톰이 물었고, 젠코가 답했다.
젠코는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미국뉴스를 접하던 중, 우연히 한국에서 일어난 백화점 테러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줄리에타 발렌타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시칠리아의 공주라 불리던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때마침 패밀리원들이 조사했던 그녀의 도주경로와 방향이 한국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예쁜 년이었는데.
비록 보스 빈센트 마이론의 아내가 될 여자였지만, 그래봤자 첩에 불과했다.
빈센트가 거사를 치르고, 그녀가 그의 아이를 출산한 뒤에는 간부들이 맛을 볼 수 있도록 해줄 터였다.
흐흐, 기대되는데.
발렌타인 패밀리에서 줄리에타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면, 마이론 패밀리에서 줄리에타는 더럽히고 싶은 존재였다.
마이론 패밀리는 누구나 그녀가 침대 위에서 신음을 흘리며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녀가 마이론에게 정복당했다는 의미는 곧 발렌타인 패밀리를 완전히 정복하고, 능욕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알버트 녀석도 있잖아. 설마 자기 여동생을 몰라보겠어?
뭐, 정 때문에라도 알아보고 모른 척 할 수도 있겠지만.”
젠코가 건들거렸다.
알버트는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시선을 느꼈는지,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그럴 일은 없다. 약속은 지킨다. 줄리에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존재니까.”
“호오. 설마 마이론이 더럽히기 전에, 발렌타인에서 직접 더럽히겠다는 생각이야?
적당히 하는 게 좋을걸. 보스께서 별로 안 좋….”
“너야말로 적당히 하지. 내가 빈센트 마이론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나는 발렌타인 패밀리의 보스니까.”
젠코는 느닷없이 날아온 살기를 받고 경직했다.
알버트 발렌타인.
최근, 트레디치 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분하지만, 그는 알버트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쳇.”
“…저기, 도착했습니다.”
톰이 차를 세웠다.
젠코는 투덜거리며 내렸다.
“뭐야. 겨우 이런 데 살고 있던 거였어?”
4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발렌타인의 공주가 이런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젠코는 허탈해하며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머지않아 그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금발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 이게 누구야. 줄리에타 발렌타인이잖아?”
☆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나른했다.
그래도 일은 끝내야 했다.
그는 모니터를 노려보며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걸로 끝….”
마우스를 움직여 문서를 저장하려 했을 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
무슨 일이지?
조금 전에 전화를 한 뒤였다.
다시 전화를 걸다니 이상했다.
“줄리.”
이름을 불렀지만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스마트폰에 귀를 기울였다.
몇 번이고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브루. 나야.]곧 줄리에타가 말을 걸었다.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침울한 나머지, 목이 잠겼을 때의 소리였다.
[브루. 그 동안 고마웠어.]“무슨….”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줄리! 줄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그는 스마트폰이 우그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힘을 주었다.
회사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들의 눈길은 신경 쓰지 않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브, 브루노. 자네 지금 대체 뭘….”
“오늘은 그만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지금 하던 일도 마무리하지 않았는데…!”
“그럼 퇴사하겠습니다. 그 동안 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브루노! 이봐, 브루노! 어디 가는 거야!”
그는 부장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에휴….”
부장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그가 뛰쳐나간 복도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남자가 이러는 거면 하나밖에 없겠지! 꼭 쟁취해라!”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가만. 근데 브루노 대리는 아내가 있지 않던가.
아직도 금슬이 좋은가 보네.
어라? 금슬이 좋아서 회사를 뛰쳐나가나?
부장은 곧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머리가 뒤숭숭할 때에는 담배가 최고였다.
“저기, 부장님….”
“응? 왜?”
김 대리가 다가왔다.
부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물었다.
김 대리는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거렸다.
“여기 회사 안인데요.”
“아.”
부장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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