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71
단군클랜은 망해가고 있었다.
유망주라고 불리던 온태양은 그만 서울 재앙에서 사망하고 말았고.
십이좌 모라율마저 마나관리기구에 빼앗긴 마당이었다.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당장 단군클랜을 대표하는 사람이 곽우혁밖에 없었으며, 애초 곽우혁은 2세대 플레이어였다.
3세대 플레이어는 전멸이었다.
동대문의 대표로 군림하던 시절도 최근 2년 사이에 지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계속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살 길을 마련해야 해.
그러니 단군클랜에 적을 두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생각은 위와 같았다.
그들의 경우, 단군클랜을 탈퇴해 어떻게든 다른 클랜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새 판도라클랜이 핫하다던데….
거기는 경력이 있는 플레이어들도 많지 않으니, 도중에 들어가도 그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거야.
단군클랜의 서포터 성지혜.
그녀는 내년 계약 해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클랜과 계약하러,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제2차 의정부 탈환전에 참가한 것이다.
판도라클랜이 좋기는 하지.
지원도 빵빵하고, 아직까지도 꽤나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으니까.
그런 그녀가 제일 눈여겨보고 있는 클랜은 바로 판도라클랜이었다.
창설한 지 5년 만에 A+ 등급으로 승격해버린 클랜.
클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지만, 개개인이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여러 그룹으로부터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클랜.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러하리라.
단지 판도라클랜이 아직 경력 있는 플레이어들을 받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필시 베테랑 플레이어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오게 된다면 너도 나도 지원하게 되리라.
경쟁률이 높을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내 실력으로는 아리송할 거야. 판도라클랜에는 이미 나 , 라는 넘사벽 서포터들이 있을 정도니까.
나 같은 건 눈에 차지 않겠지.
그러니 사람을 공략해야 해.
바로 인맥이다.
판도라 클랜원들과 인연을 트어, 실력이 아닌 인맥으로 입단 허가를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판도라클랜의 입단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 사람과 친해져야 했다.
“─제3 공략소대 상황은 어때요?”
“아, 판도라 클랜로드.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는 것 같아. 부상자가 몇 명 있기는 해도, 경상에….”
그런데 그때 마침 판도라 클랜로드 노은하가 나타났다.
성지혜의 눈이 돌아갔다.
그녀는 그가 제니스 클랜로드하고 피해 현황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들어갈 타이밍을 쟀다.
판도라 클랜로드하고 친해진다면 클랜 입단은 따놓은 당상이지.
그리고…. 저 사람하고 친해져서 애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뭐니 뭐니 해도 미래가 보장돼 있는 사람의 애인인데.
성지혜는 다른 마음도 품었다.
노은하는 아내가 셋이 있을 정도로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이 있었다.
오죽하면 하렘왕이라고도 불릴까.
그러니 노은하를 유혹하는 일이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들여서 친해지는 것보다는 몸으로 친해지는 것이 더 빠르고.
그리고 노은하와 마음이 통한다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벌써 3번이나 결혼한 사람이 설마 4번은 결혼하지 못하겠어?
듣자하니 아내들을 모두 정실로서 대우하고 있다던데, 그렇다면 나도 잘만 하면 정실로 대우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계산이 섰다.
성지혜는 목표를 바꾸기로 했다.
우선 노은하의 애인이 된다.
그리고 판도라클랜에 입단한다.
그다음, 그의 4번째 아내가 된다.
이후로 편안한 인생을 보장받는다.
필시 자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선수를 취해야 한다.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지금이다!
판도라 클랜로드한테 한 번 말을 걸어보는 거야.
이윽고 노은하가 대화를 마치고는 제2 보급소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성지혜는 그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뛰어갔다.
“─판도라 클랜로드!”
“어?”
아무 속셈도 없다는 얼굴을 하고.
성지혜는 노은하에게 다가갔다.
노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성지혜는 사람 좋은 미소로 노은하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팔이 두껍고 단단했다.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여기, 다치신 것 같아서요. 이대로 그냥 방치했다가 잘못해서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어쩌려 그래요? 의정부에서 세균 감염까지 걸리면 많이 힘들어질 거예요.”
“네…. 그럼 돌아가서 저희 클랜 사람한테 치료를 받죠.”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이 제가 바로 치료할게요. 어디 좀…. 조용한 장소로 가는 게 낫겠네요. 여기서는 치료에 집중할 수 없겠어요.”
그녀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노은하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자 부드러운 말을 속삭이기도 했다.
“…네, 그럼 그러죠.”
“잘 생각하셨어요.”
사람은 호의에 약한 법이다.
자신이 이렇게 나오니, 노은하도 마냥 거절할 수 없었으리라.
걸려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어디 으슥한 장소로 데려가서 은근슬쩍 그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이리로 오세요. 제가 봐둔 장소가 하나 있어요. 거기서 하죠.”
“그냥 여기에서 하지…. 그럴 거면 그냥 갈게요.”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귀찮아하지 않아도 돼요.”
“하….”
그녀는 처음 신한대학교에 왔을 때 눈여겨본 장소로 그를 데려가고자 했다.
바로 그때─.
─어?
기분 탓일까.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억지로 노은하의 손을 잡아끌려던 성지혜는 걸음을 멈췄다.
“…….”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노은하가 짜증을 내는 얼굴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손, 떼시죠.”
“아….”
“저희 클랜로드한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클랜 차원에서 단군클랜에게 항의하겠습니다.” “어, 저기, 그게….”
류연화.
그녀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더군다나 그녀에게 붙잡힌 손목이 떨어져나갈 듯이 시렸다.
아니, 손목이 얼어붙고 있었다.
“가요, 클랜로드.”
“저기, 연화 누나? 손 잡지 않아도 내가 갈 수….”
“가요, 클랜로드.”
“어…, 그래.”
“…….”
노은하를 빼앗겼다.
류연화가 노은하의 손목을 낚아채 홱 돌아섰다.
하지만 성지혜는 노은하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이 자신에게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별꼴이야.
류연화와 눈이 마주쳤을 때.
성지혜는 그녀의 눈빛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자신이라는 인간이 꼭 한없이 추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누나, 그냥 내가 거절해도 됐는데 뭐하러….”
“저런 사람 조심해. 너한테 무슨 속셈이 있어서 접근하는 사람이야.”
“나도 알고 있어. 그래, 도와줘서 고마워.”
“…응. 나야말로 다른 사람 앞에서 멋대로 굴어서 미안해.”
☆
2년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건 류연화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황스럽다니까.
이 누나는 그냥 좋아만 하는 거고, 나랑 사귈 생각 같은 건 없다는데 나 보고 어떡하라고?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 보답받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은하와 평소와 같은 관계로 지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자니 은하도 그녀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하에게 류연화의 마음을 어찌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간혹 류연화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움찔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감정이 뚝뚝 떨어졌다.
‘에휴…. 너희끼리 알아서 해. 괜히 나까지 꼬이게 해서는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뭣하면 클랜에서 쫓아내든가.’
‘나는 은하 너를 믿어. 믿으니까…, 알지?’
‘세 번째인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 은하 네가 좋다면, 나는 괜찮아.’
이제는 클랜원들도 모두 알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지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에 노은아는 가슴을 탁탁 치다가 일에 관여하는 걸 포기했고.
한서현은 방관하기로 했고.
정하양은 정하양했으며.
이유정은 은하가 무엇을 하더라도 믿어주기로 했다.
“나도 이제 모르겠다. 연화 누나가 나를 좋아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매몰차게 대할 수도 없고….”
따라서 결론은 은하가 어떻게 하기 나름이었다.
그리고 은하는 길고 긴 고민 끝에 평소처럼 지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류연화의 마음을 돌리겠다며 괜히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또 그녀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기는 죽어도 싫었으며.
또 미래에 으로 거듭이 날 그녀를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이 현재의 관계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여하튼─.
“─서나야, 사람들 보고 이제 떠날 채비를 하라고 해. 10분 뒤에 바로 떠날 거라고.”
“알았어, 10분 뒤에 출발인 거지? 텔레파시 보내놓을게. 그런데 너는 어디에 가려구?”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올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날이 밝았다.
제2차 의정부 탈환대 두 번째 날.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은하는 이제 회룡역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은하는 서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어느 건물로 향했다.
의정부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더 말해놔야지.
머지않아 군인들이 보였다.
디지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곧장 은하를 향해 경례했다.
“필! 승! 근무 중 이상 무! 좋은 아침입니다, 판도라 클랜로드. 근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저는 군인도 아니니 경례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례입니다. 판도라 클랜로드는 제 롤모델이나 다름없어서 그렇습니다.”
경계총 자세를 취하고 있던 군인 한 명이 은하를 알아보았다.
그는 은하를 존경하고 있다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때마침 정문에서 나오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사령관님.”
“…판도라 클랜로드?”
네 개의 별.
경계를 선 군인들과 달리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각이 잡혀 있는 사령관.
은하가 군인들 너머로 말을 걸자, 선글라스를 쓴 사령관이 곧 은하를 알아보았다.
“판도라 클랜로드가 여기에는 대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사령관님한테 드릴 말씀이 하나 있어서요.”
사령관이 다가왔다.
말투가 분위기와 달리 친근했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오늘 처음 만난 것이 아니었다.
은하는 사전에 자신의 인맥을 통해 사령관과 접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번번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고는 했다.
“다름이 아니라, 만일의 경우에도 의정부에 포격은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또 그 소리입니까?”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말.
그럼에도 사령관은 짜증내지 않고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은하에게 몇 번이고 했을 답을 내주었다.
“몇 번이고 말하는 건데, 저희가 만에 하나라도 포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저희도 이번 탈환전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고, 의정부를 무사하게 탈환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입니다.”
“네, 그렇죠.”
“더군다나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의정부에다가 포격을 쏘란 명령을 내리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판도라 클랜로드가 군대라는 것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저희,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 아닙니다.”
사령관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히려 은하를 걱정해주면서 좋게 타일러주기까지 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은하는 그와 악수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의정부 탈환에 집중하세요. 저희도 얼른 이곳을 떠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러면 이만 가보세요. 지금부터 작전을 수행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그럼 저는 이대로 그만 가보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판도라 클랜로드.” “사령관님도 무운을 빌어요.”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군인이라고 속이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은하는 믿기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이전 삶에서 갑자기 의정부에 포격을 지시했으니 말이다.
미래가 바뀐 건가?
은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떤 이유로 나비효과가 발생하여, 사령관의 성격이 바뀐 것이라고.
“어쨌든 이렇게 거듭 말했으니까, 군대가 움직일 일은 없겠지.”
군인들이 있는 건물을 뒤로하며.
은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군대는 망월사역에 머무르며, 별일이 있지 않는 이상 망월사역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별일도 없으리라.
포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은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큰 피해 없이 의정부를 탈환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어쨌든 오늘, 의정부로 향한다.
☆
인간들에게 의정부를 탈환하는 게 염원이었듯이─.
─냐아 냐아
몬스터들에게도 염원이 있었다.
그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렇기에 장벽 너머에서 인간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의정부까지 퍼졌을 때.
몬스터들은 크게 환호했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냐아 냐아
몇 년 전이었을까.
괴시니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놈은 어느 날 인간 무리가 의정부에 숨어들었을 때, 그들이 곧 백면상을 죽였을 때.
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지난날에 그러했었듯이, 조만간 많은 인간들을 이끌고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때가 오게 되자.
놈은 환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니─.
─들어와라.
더 깊숙이, 들어와라.
괴시니, 이시미를 비롯해.
의정부, 경기 북부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오랜만에 힘을 합쳤다.
그때 먹지 못한 채로 무르익었을 먹이들을 수확할 때가 되었다.
다시는, 돌려보내지 않으리라.
놈들은 입맛을 다셨다.
냐아 냐아
인간들은 필시 자신들이 이기리라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뼈를 깎으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빠른 속도로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형세를 보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말이다, 인간들아─.
─칼은 너희만 갈았을까?
아직 얻지도 않은 승리에 취해.
인간들은 모르고 있으리라.
자신들이 의정부로 오는 게 아닌, 유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이란 그런 존재였다.
절망을 맛보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상황이 지금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알 수 없는, 바보같은 존재들.
그러니 오라, 인간들이여.
그리고 우리들의 먹이가 돼라.
리라이프 플레이어 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