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78
괴시니를 토벌한 다음날은 대기에 마나가 짙게 깔려 있었다.
도봉산 장벽을 넘으면서부터 곧잘 오작동을 일으키던 통신장비는 이날 완전히 먹통이 됐다.
“어때? 다른 부대하고 연락은 돼? 일단 화룡역하고 연락만 되더라도, 망월사나 도봉산, 자금동과 민락동 방면으로 연락할 수 있을 텐데.”
“아까부터 시도하고 있는 중인데, 작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어. 지금 플레이어 라이브러리도 마나가 너무 짙게 깔려 있어서 접속할 수 없고. 오늘 연락은 무리일 것 같아.”
통신장비의 이점은 쌍방향적이고, 일정 거리마다 기지국을 설치하면서 먼 거리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데다, 통신을 저장하고 기록하는 데 있다.
텔레파시로는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탈환대는 주요 연락을 통신장비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통신이 되지 않는 나머지 제5 통신소대까지 온 은하와 하양은 어두운 얼굴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거야, 원…. 지리도 잘 모르는 의정부에서 텔레파시스트만 연락이 가능하다니, 불안하네요. 잠시라도 텔레파시스트 곁에서 떨어져 있지 말아야겠네요.” “소대원들에게 그렇게 전파해서, 오늘 하루는 텔레파시스트의 곁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하세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그래도 저희들끼리는 텔레파시로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 다행이네요. 지금 문제가 되는 건 탈환대 본부와 다른 부대들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거잖아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게 아니죠. 북쪽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어요. 지금 우리는 예술의 전당 부근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이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그나마 괴시니를 통신이 가능할 때 토벌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만약 괴시니가 이런 때 나타났다면 크나큰 피해가 발생했을 터였다.
나아가─.
“─가 이시미를 토벌했다니 위에서 몬스터들이 내려올 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십이좌 이도진.
그가 단신으로 이시미를 죽였다는 연락이 어젯밤에 전해졌다.
제3 공략소대를 비롯해 이도진의 신위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를 이제 이라 부르고 있다는 연락도 함께 전해졌었다.
라면 그럴 줄 알았지.
그러니 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 소식을 접한 은하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해했다.
정작 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강현철은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은하가 알 바 아니었다.
여하튼 북쪽에는 이 있으니, 북쪽의 위험성을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이에 예술의 전당에 있는 탈환대는 불안해하는 선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조심은 해야 했다.
제7 통신소대를 지휘하는 구연수는 자리에 모인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오늘 너무 멀리 이동하지 말고,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쉬어주세요. 몬스터들을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니 경계도 게을리하지도 말고요. 다들 알겠지만, 몬스터는 이런 환경에서 더욱 강해지니까요.”
지휘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괴시니도 토벌했으니 이제 그들은 일대에서 파밍할 수 있는, 암묵적인 권한을 손에 넣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아쉬움이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이 우선이었다.
파밍할 수 있는 날은 많이 있었다.
소대를 지휘하는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는 소대장들은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제7 통신부대에서 회룡역, 가능역으로 텔레파시스트를 파견해 상황을 알아오도록 할 겁니다.”
한편 구연수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처하기로 했다.
텔레파시스트의 텔레파시 거리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었다.
역 하나 거리에 텔레파시를 보내는 텔레파시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텔레파시스트를 시켜, 그들이 중계하게 해야 했다.
필시 다른 부대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먼 거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텔레파시스트들의 중계 텔레파시로 제한적이나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나의 경우, 수신자 수가 늘어나면 거리에 따라서 선명함이 줄어들지. 아리엘은 서나보다 거리가 짧지만 다수를 상대로 선명함이 유지되고.
바보 형은…. 헌터 역할도 하니까 전위하고 중위를 잇는, 하이브리드 역할을 하는 셈이고 말이야.
여담으로 판도라클랜의 경우에는 진서나, 아리엘, 진파랑 순으로 통신 가능한 거리가 길었다.
진파랑도 지명도가 높았으나.
진서나나 아리엘은 텔레파시스트로 지명도가 무척 높았다.
다른 클랜의 플레이어들이 탐을 내 더 좋은 조건으로 두 사람을 영입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들의 자질은 특별했다.
“─그러니 통신이 연결될 때까지만 주의하도록 합시다. 파밍도 적당히 해먹고요.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구연수의 대처대로라면 오늘 중으로 통신이 이어질 것이다.
구연수는 손뼉을 쳐서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휘관들이 피식 웃었다.
은하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괴시니도 쓰러졌으니─.
“─너무 멀리까지 가지 못하겠지만 파밍이나 하러 가자고 말해야겠다. 소대원들도 우리 클랜 말을 따르며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을 테고.”
“그래도 텔레파시스트를 중심으로, 파티 단위로 돌아다니게 하자. 혹시 모를 일이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이제, 파밍의 시간이다.
은하는 구연수의 막사를 나오면서 입가를 끌어올렸다.
☆
파밍이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아티펙트나 영약을 발견해 그것을 취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정부의 경우, 오랜 세월에 걸쳐 마나가 물질에 녹아들면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아티펙트와 영약 등이 잠들어 있었다.
문제는 제1차 의정부 탈환전 이후, 탈환대가 퇴각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아티펙트가 소실되었다는 것.
“쳇, 여기는 개털이군. 어이! 거기 뭐 남는 거 없냐!?”
“이쪽에도 없어! 서랍을 뒤져봐도 귀금속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 참가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제1차 의정부 탈환대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아주 깊숙이까지 조사하고는 했다.
혹은 탈환대가 소실한 아티펙트를 찾아 나섰다.
찾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얻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머리는 있었나 보네요. 그런 곳에다 숨길 생각을 다하고.” “어이, 판도라 클랜로드. 너 나를 너무 무뇌아로 보는 거 아니냐? 어? 내가 겉보기에는 그래도 의외로 머리 굴릴 줄 아는 두뇌파….”
“하긴, 오징어가 똑똑하다는 말을 언뜻 들어보기는 했네요.”
“여기서 오징어가 왜 나오냐? 혹시 지금 나 욕하는 건 아니겠지?”
“머리가 좋다고 말한 거예요.”
“흠…. 어째 찜찜한데.”
“”””…….””””
판도라클랜과 블레이즈클랜.
은하는 강현철의 호의로 14년 전, 블레이즈클랜이 숨겨놓은 보물들을 나눠 갖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강현철의 호의하고 별개로, 미친 오징어는 미친 오징어였다.
은하는 강현철을 퉁명스레 대했고, 강현철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그가 톡톡거리는 것을 받아주었다.
두 사람을 뒤따라오는 클랜원들은 상대 클랜원들에게 서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격이란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조아라, 아리엘.”
“응? 왜?”
“아리엘 여기 있다!”
한편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필시 판도라클랜과 블레이즈클랜이 파밍하는 과정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하고 있을 플레이어들.
안타깝게도 은하는 그들의 존재를 용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클랜원들에게 명했다.
“너희 둘이 쫓아오는 놈들 모르게 환상마법이나 전개해줘. 저놈들이 우리 위치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알았어.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지. 더 해야 할 건 없는 거지?”
“그럼 나는 텔레파시로 저 사람들 홀리면 되는 거지? 내 전문이니까 맡겨만 두시라! 아, 근데 그러려면 기프트로 변신하는 게 낫겠네.”
“하양이 너는 도깨비 램프로 슬슬 주변에 결계를 쳐줘. 저 사람들이 행여나 우리 모르게 훔쳐가더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두게.”
클랜원들은 모두 의욕이 넘쳤다.
아티펙트를 손에 넣는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그러지 않겠는가.
그들은 은하의 명령을 듣고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널 데려오기를 잘했어. 우리 애들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잘하지 못하거든. 덕분에 방해받는 일 없이 찾을 수 있겠네.”
“그런데 찾는 것도 고생이겠어요. 건물이 이 모양이 되다니….”
정하양이 도깨비 램프를 발동하자 주위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은하와 강현철은 안개 속을 걸어, 블레이즈클랜이 아티펙트를 숨겨둔 고시텔 건물에 도착했다.
이내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고시텔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14년이나 흘렀으니 건물의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을 만도 했다.
“정말 저기에 있는 거 맞죠?” “당연하지! 우리가 그때 저 고시텔 세탁기며, 빨래바구니며, 침대 등등 갖은 곳에다 숨겨놨다니까?”
사람들은 모두 질색했다.
언뜻 이야기로 들었어도,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무너진 잔해를 일일이 들추어내서 아티펙트를 찾아야 했다.
그나마 일일이 제1차 의정부 탈환대의 손이 탄 건물을 뒤질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지.
이내 은하는 생각을 고쳤다.
이게 그나마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미래를 아는 은하로서는, 블레이즈클랜이 숨겨둔 아티펙트 중 꽤나 쓸만한 아티펙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서나야, 애들한테 저 안을 다 들춰 보라 전해줘. 그중 세탁기, 빨래바구니, 침대 같은 걸 집중적으로 수색해보라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리하여 수색이 시작되었다.
판도라, 블레이즈 클랜원들은 모두 건물 잔해를 정리하러 나섰다.
그러는 한편 은하는 강시형을 찾아 그에게 물었다.
“시형이 넌 어때? 드론들,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드론들로 저 안을 수색하면 좋을 텐데.”
“…마나가 너무 짙게 깔려 있어서 그게 힘들 것 같아. 작동도 안 하니 지금은 고철 덩어리지, 뭐.”
“그래, 어쩔 수 없네.”
강시형은 의정부 탈환전에 대비해 드론을 가져왔다.
강시형의 드론은 유용했다.
벽해수의 손을 탄 드론은 마나가 어느 정도로 깔려 있는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무리인 듯했다.
혹시나 해서 파밍을 하러 나올 때, 소형 드론들을 챙겨왔던 강시형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기에는 드론의 성능이 워낙에 좋지 않았다.
이에 은하는 김민지를 불렀다.
“민지 네가 쥐들을 다룰 수 있으니 걔네들한테 잔해더미 속을 찾아보게 해줬으면 해.”
“안 그래도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한 번 해볼게.”
“그래, 부탁할게.”
김민지는 의정부 탈환전에서 그리 활약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민지는 자신에게 기회가 오자 반색했다.
그녀가 한밤의 속삭임을 사용해, 반지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쥐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충무 등급 보물로 제작한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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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눈이 밝아지고, 숨겨진 트랩을 간파할 수 있는 아티펙트.
숙련도가 늘어날 경우, 쥐들이 트랩을 해제하게 할 수도 있었다.
김민지는 쥐들에게 힘을 부여해,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는 장소로 들여보냈다.
이윽고─.
“─아래에 빈 공간이 하나 있어. 거기에 제법 멀쩡하게 방치돼 있는 세탁기가 하나 있는데…. 세탁기에 마나가 깃든 것 같은데?”
“”””……!!””””
“그거다!”
김민지가 하나 발견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지고.
강현철이 크게 소리쳤다.
“잘했어, 쥐들이 찾은 좌표는 그럼 하양이한테 알려줘.”
“오케이. 나는 다른 데를 더 찾아볼게.”
거의 파밍에 특화된 능력.
사람들이 김민지의 곁으로 몰리며, 의심이 가는 구석을 찾게 했다.
그녀는 어느새 여우비에게 마나를 회복하는 마법을 받으면서, 쥐들을 조종해야 했다.
찍찍!
그러다 쥐 한 마리가 반지 하나를 가져왔다.
아티펙트였다.
사람들은 흥분하며 쥐들이 찾아낸 좌표를 네비게이터들에게 기록하라 닦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됐다! 줄 다 묶었어! 끌어올려!”
“와…. 이건 장난이 아닌데? 진짜 숙성 하나 제대로 됐네.”
플레이어들은 김민지가 처음 찾은 세탁기를 끄집어냈다.
꽤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밧줄에 묶어 지상으로 끄집어올린 세탁기는 환한 빛을 뿜고 있었다.
드럼통 안에 들어있던 아티펙트의 마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세탁기에 녹아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세탁기도 아티펙트가 되어버렸다.
☆
은하의 기억에 따르면.
세탁기는 거의 충무 등급에 맞먹는 가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 아티펙트로 제작한 용광로는, 재료 아티펙트들의 성질을 융화시켜 더 높은 차원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지.
이 나라에는 세 손가락에 꼽히는 마에스트로들이 있었다.
그들이 각기 소속돼 있는 클랜은 제니스, 신라, 블레이즈클랜이었다.
그런데 회귀 전에는 블레이즈클랜 전속 마에스트로가 가장 첫 번째로 손꼽혔었다.
세탁기로 만든 용광로 때문이었다.
재료 아티펙트에 깃들어 있는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건 물론이고, 마법이 부여된 아티펙트들을 녹여서 새로운 차원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용광로.
마에스트로라면 누구든지 탐을 낼 용광로였다.
오죽하면 신의 용광로라고 여겨져, 헤파이스토스(Hephaistus)의 용광로라 불렸을 정도였다.
아직,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것만 있으면…. 판도라클랜은 더 강해질 수 있게 될 거야.
플레이어들이 세탁기를 보고 눈이 멀었던 것도 잠시.
그들은 드럼통 안에 있던 보물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은하는 여전히 세탁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 세탁기는 은하가 제2차 의정부 탈환전에 참가한 목적들 중 하나였다.
“블레이즈 클랜로드.”
“어, 왜 그러냐?”
“저 세탁기는 제가 가져갈게요.”
“세탁기? 흠….”
그래서 은하는 강현철에게 말했다.
바닥에 아티펙트들을 늘여놓고서 눈을 반짝이고 있던 강현철은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겉으로 풍기는 기운으로만 봐도, 화랑 등급 이상은 될 것 같은데…. 저건 나중에 상의하는 게….”
“애초에 따지고 보면 저 세탁기는 블레이즈클랜이 발견한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고, 저희가 찾아낸 거잖아요? 그냥 주세요.”
“흠….”
이전 삶에서 강현철은 저 용광로로 구국의 성검과 의 겨우살이에 버금가는 검을 만들었었다.
어찌 보면 은하는 불닭이에 이어 강현철의 힘의 원천을 가져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우리 클랜에서 미친 오징어 검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세 명의 마에스트로들 같은 고인물들보다 우리 해수 형이 훨씬 더 좋은 검을 만들어주겠지.
강현철의 힘이 이전 삶에 비해서 약화됐다면 강화시켜주면 된다.
벽해수라면 할 수 있다.
.
은하는 이번 삶에서 무기가 아닌 별을 만드는 것 같은 실력을 지닌, 장래가 밝은 샛별이란 소리를 듣는 벽해수를 믿었다.
“그래, 판도라클랜 너 가져라. 저거 크기가 너무 커서 가지고 가는 것도 힘들 텐데, 저것 때문에 고생하기도 싫으니까.”
“감사합니다.”
“대신 이 검은 내가 가질 거다.”
다행히 강현철이 선뜻 양보했다.
그 대가로 강현철은 은하의 눈앞에 웬 검을 보여주었다.
세탁기 안에 있던 아티펙트들 중 가장 눈에 띄던 아티펙트였다.
“그래요, 그럼. 그 전에 저도 한 번 검을 봐도 될까요?”
“그래라, 뭐.”
은하는 검을 받았다.
이 검 역시 알고 있었다.
강현철이 후에 제작할 디바이스의 중요 재료가 되는 아티펙트였다.
탐이 나기는 했지만 용광로를 위해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마나가 많이 거치네요. 원념이 꽤 묻어 있는 것 같은데요?”
“의정부에서 발견되는 아티펙트 중 그런 게 많기는 하지. 그래도 꽤나 좋은 검이야. 설마 내가 저 검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원념이란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쉽게 이길 수 없는 거니까요.”
검에 원념이 묻어 있다.
사람을 광기로 만드는 마나.
은하는 칼집에서 검을 빼내들었다.
그러자 갇혀 있던 원념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터져 나왔다.
“”””…….””””
“이걸 이길 수 있겠어요?”
“그건 근성과 열정으로….”
“블레이즈 클랜로드 실력이면 분명 이기기야 하겠죠. 근데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일으킬 거고요.”
범상치 않은 기운.
아티펙트에 한 눈이 팔린 사람들이 은하에게 시선을 향했다.
강현철도 넋이 나갔다.
그만큼 기운이 강렬했다.
칼날은 붉게 물들어갔으며, 주위에 검은 마나가 아른거렸다.
곧 원념이 은하를 덮쳤다.
─기프트
다른 사람들이 경악했다.
하지만 은하는 원념을 그대로 맞아 제정신을 유지했다.
기프트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히이이이익!!
누군가 기겁하는 듯한 소리.
그런 소리가 들렸다.
은하의 체내에 침투하려던 원념은 곧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빠르게 빠져나왔다.
화아악!!
하지만 은하의 마나가 원념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마나가 원념을 붙잡았다.
그리고 원념을 다시 잡아당겼다.
“”””…….””””
원념이 그대로 소멸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은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검을 칼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강현철에게 넘겼다.
“자요.”
“너…. 너 판도라 클랜로드 맞지? 잡아먹힌 건 아니지?”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인간도 아닌 놈….”
“블레이즈 클랜로드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네요.”
강현철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얼떨결에 검을 받은 그가 은하를 몬스터 보듯 쳐다보았다.
그만큼 은하가 조금 전 보인 것이 놀랍기는 했다.
그가 그저 검을 손에 쥔 것만으로, 검에 깃들어 있던 원념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원한을 이기기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네. 회귀 전에는 저 검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었는데.
그러는 한편 은하는 안심했다.
회귀 전, 강현철은 저 검에 홀려 탈환대원들을 크게 상처 입혔었다.
탈환대는 괜한 힘을 써가며 그를 제압해야 했다.
하지만 검에게 홀린 강현철은 워낙 강해서 제압하기 힘들었었고.
끝내 상황은 강현철이 검의 원념을 이기고 나서야 종료되고 말았다.
은하는 사전에 강현철이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까 강현철의 방화를 미연에 방지한 대가로─.
─블레이즈클랜에게는 미안하지만, 알짜배기 아티펙트들을 가져가야지. 조금, 남겨주기는 하겠지만.
은하는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이후로도 아티펙트들을 발견하며, 판도라클랜과 블레이즈클랜은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서로 사이가 돈독해졌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77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