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8
“…너무 더워.”
“서나야 괜찮아?”
하양이 벽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인 서나의 안색을 살폈다.
땀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인이었다. 더위에 약한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초여름인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너무 더운 걸 어떡해.”
은하가 가볍게 핀잔을 주자, 서나가 입술을 삐죽였다.
이제 보니 붉은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 있었다. 눈물이 아니라 땀이었다.
옆에서 하양이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지만, 금색에 가까운 머리칼은 땀에 젖은 뺨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자를까?”
“그럼 나랑 같이 갈래? 나도 자를 생각이었거든.”
“아니야, 괜찮아. 교회에서 수녀님이 잘라주실 거야.”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나 혼자 가야 하나.”
“민지야, 나랑 같이 가자!”
서나는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손가락으로 꼬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 중으로 머리를 잘라달라고 수녀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때 앞서 걷던 은하가 무심한 목소리로 폭탄발언을 던졌다.
“그럼 꼬리도 잘라버리는 게 어때?”
“어, 어? 지금 뭐라고 했어?”
“꼬리도 잘라버리는 게….”
“잔인해.”
서나는 그와 거리를 벌리며 꼬리를 부둥켜안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그에게서 슬쩍 멀어지더니 옹기종기 달라붙었다.
하물며 은혁까지.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 꼬리가 아니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아. 털을 다듬으라고.”
“그럼 말을 똑바로 해야지 그게 뭐니? 이래서 노은하가 문제라니까.”
“시끄러, 먹민지.”
꼬리에서 손을 놓은 서나. 그녀는 꼬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빗질을 하고 있지만. 역시 너무 많고 지저분한가?
복슬복슬한 꼬리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어렸을 적에 꼬리를 잘못 다듬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일은 지금도 꿈에 나올 정도로 트라우마였다.
“자, 잔털만 잘라야겠다.”
“뭐 하러 잘라? 푹신해서 좋구만.”
“…저기, 만질 때는 말 좀 하고 만져줄래?”
“아, 미안.”
갑자기 만지면 깜짝 놀라잖아.
서나는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을 흘겼다.
꼬리를 주물거리고 있던 은혁이 해맑은 미소로 사과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아이스크림 사면 되는 거지?”
“얘들아! 은하가 아이스크림 쏜대!”
“와~!”
“역시 대장이야!”
손가락으로 V를 만들며 만족해하는 민지. 그 사이, 은하를 쪼고 있던 그녀가 그가 두 손을 들고 항복하게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서나는 그제야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놀래? 아빠 카페는 시원해.”
“나, 갈래.”
빠삐코를 물고 있던 서나가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하양이 내민 엄지손가락을 잡았다.
은하도 그랬다. 그는 해피니스에서 포션을 마실 생각이었다.
내가 꼭 키 크고 만다.
가뜩이나 정석훈의 포션이 알려지느라,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기도 힘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정하양이라는 친구 찬스를 쓰겠는가.
“아. 그럼 난 집에 가방 두고 올게. 먹민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도 같이 가. 너 또 은애랑 노느라 늦게 나오기만 해봐.”
내가 매일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은애가 귀여운 걸 어떡해.
얼마 전부터 은애는 그가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고는 했다. 작은 몸을 오리처럼 뒤뚱뒤뚱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그만 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릴 만큼.
그래서 민지와 약속을 어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았어. 노력해볼게.”
어디까지나 노력만.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오빠!”하며 반겨주는 여동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어? 줄리에타 언니네. 그런데 같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응?”
모퉁이를 돌아선 민지가 연립주택을 가리켰다.
연립주택 앞에는 선팅을 해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차량이 한 대 정차해 있는 중이었다.
줄리에타는 차량에서 나온 외국인 두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굳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잠깐. 트레디치잖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칙칙한 주황머리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는 외국인.
젠코 마이론.
그가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그가 한국에 퍼뜨린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젠코 마이론이 여기는 왜….”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한국과 이탈리아 회담이 있던 날이었던가.
은하는 회귀 전에 있었던 회담을 떠올렸다.
회귀 전, 한국은 이탈리아에 고립된 한국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이탈리아와 회담을 가졌다.
선녀 임가을은 이 기회를 적극 이용해 지중해의 마나합금을 거래했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막대한 돈을 들여 얼마 되지 않는 마나합금을 거래한 것을 비난하기도 했다.
선녀정부에서는 지중해의 마나합금은 소량만으로도 플레이어 디바이스의 질적 향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비난은 금세 수그러드는가 싶었지만, 한·이 회담의 주요내용이 문제였다.
한국은 이탈리아에 고립된 한국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북대서양에 서식하는 제2위계 오버랭크 레비아탄을 토벌하는데 협조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제2위계 오버랭크.
당시, 대한민국을 절망에 빠뜨렸던 몬스터는 제3위계 오버랭크였다.
현 시점까지 한국에서는 제2위계에 해당하는 몬스터가 출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제2위계 오버랭크 몬스터를 토벌하는데 협조해야 한다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한국인들을 귀국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한국인들을 귀국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은 십이좌를 3명이나 북대서양에 파견해야 했다.
결과는─.
“─잃은 게 많은 결과였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북대서양에 맞닿아 있던 아프리카, 마지막으로 한국이 가세한 대규모 연합작전.
레비아탄은 각 국에서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플레이어들의 연합작전으로 토벌되었다.
연합작전에 참가한 한국은 한국인들을 무사히 귀국시키는 결실을 이루지만, 그만큼 피해가 막심했다.
남궁성운은 레비아탄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대신, 왼팔을 잃고 말았다.
신명
환은 마나 폭주를 일으킨 후유증으로 마나 회복능력에 장애를 앓았다.
그리고 방연지는 작전 수행 도중 사망했다.
그때는 사망한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그것은 그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을 때였다.
‘그거 들었어?’
‘오늘 아침 뉴스 말하는 거지? 안 들었을 리가 없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이탈리아에서 방연지 플레이어를 감금하고 있었다니.’
‘야, 말이 감금이지, 실상은…. …어휴,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방연지는 작전 수행 도중 사망했던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감금당해 있었다.
감금당해 있던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묻혔을 진실이었다.
이 기상천외한 행위를 저지른 작자가 바로 젠코 마이론이었다.
대한민국의 여론은 폭발했다.
선녀정부며, 십이좌는 이탈리아에 강력히 항의했다.
여러 나라에서도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젠코 마이론을 생포, 빅 마마는 그를 광장 한복판에 세워놓고 공개처형을 감행했다.
그녀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들이 그가 죽을 때까지 칼로 찌르게 했다.
젠코 마이론은 41번에 이르는 칼에 찔려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빅 마마는 한국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한편, 젠코 마이론의 머리를 보내왔다.
이것이 한-이 회담의 결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젠코 마이론이라는 악한이 줄리에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지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절대로 나오지 마.”
“뭐? 너 지금 뭘 하려고!?”
“말했다.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민지에게 경고한 은하가 골목에서 뛰쳐나갔다. 기척을 죽이며 저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위치에서 몸을 숨겼다.
제길,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그들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Fanabla!”
줄리에타가 젠코의 손길을 뿌리쳤다. 체내 마나를 끌어들여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 젠코 마이론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실실 웃었다.
그는 그녀가 경계를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서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뭐지? 뭐라고 한 거야?
무엇을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체내 마나를 거두며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린 젠코가 그녀의 어깨를 톡 하고 쳤다.
“뭔지는 몰라도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젠코가 가리키는 승용차로 걸어가는 줄리에타.
처량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꼭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은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화를 듣지는 못했으나, 그녀는 무언가를 빌미로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녀를 구해야 했다.
다만 그로서는 트레디치에 일원인 젠코 마이론과 또 다른 이탈리아인을 상대할 힘이 없었다.
가장 이상적인 행동은 이들의 행선지를 파악하는 것.
행선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뒤는 브루노나 신서영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승용차가 출발하자마자 그 뒤를 쫓기 위해 뛰쳐나갔다.
체내 마나를 발현해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려던 중,
“…어?”
그는 코너를 나오자마자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탈리아인들을 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설마 눈치 채고 있을 줄은 몰랐다.
“Marmòcchio?”
포마드로 머리를 올린, 안경을 쓴 이탈리아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아까부터 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나 했더니…. 겨우 꼬마였어?”
젠코 마이론이 한국어로 투덜거렸다. 그는 뒤통수를 긁으며 은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꼬마야. 우리한테 볼일이라도 있니?”
경계심을 느낄 수 없는 태도.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지는 태도.
하지만 은하는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니나 다를까, 젠코 마이론이 손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큭…!”
“어라? 너 뭐하는 놈이야?”
마나로 머리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한편, 젠코 마이론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휘두른 손을 한 번 보더니, “이걸 막아?”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이 나라는 꼬마애도 마나를 잘 다루나 보지?”
“말이 되는 소리를. 저 아이가 이상한 거다.”
“그치? 나는 한국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나라인 줄 알았지 뭐야.
근데 쟤는 어쩌지? 이대로 두기도 좀 곤란한데.”
“아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역시 없애버리자.”
젠코 마이론이 잽을 날리는 것처럼 다리를 뻗었다.
이 새끼가…!
죽일 생각이다.
은하는 고개를 숙여 머리 위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냈다.
“어쭈? 대단한데?”
다리에 힘을 실어 뛰어오른 은하.
벽을 한 번 차고 방향을 바꿔서는, 젠코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젠코가 한 걸음 물러나며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그러고는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은하는 공중에서 최대한 방향을 틀었다. 그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일도 잊지 않았다.
손 안에는 마나를 우겨넣은 구체가.
젠코가 내미는 손길을 향해 마나를 쏘았다.
“Cazzo!”
뭐라고 지껄인 젠코가 반대쪽 손으로 날아드는 구체를 쳐냈다.
무슨 놈의 꼬마가….
그는 손등이 빨갛게 남은 자국을 보고는 침을 탁 하고 뱉었다.
마나로 손등을 보호했음에도, 데미지를 모두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마나효율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래봤자 꼬마였다.
젠코는 시야를 교란시키는 속도로 움직이며 틈을 노리던 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본심을 발휘하는 게 짜증나기는 했지만, 본심을 발휘하지 않았다가는 아이를 상대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을 터였다.
“크윽…!”
“어허. 어딜.”
은하는 젠코의 손을 떼어내려, 그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마나를 실었다.
젠코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 역시 손목을 마나로 보호해서는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컥…!”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젠코가 목을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공중에 매달린 은하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숨이 끊겨,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제기랄.
몸에서 힘이 축 빠지려던 그때였다.
“그 애를 놔줘.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차에서 내린 줄리에타가 신경질 어린 어조로 말한 것이다.
“아? 얘도 네 주변 사람들 중 하나였어? 하…, 그래도 안 되는데.”
“평범한 어린애야. 얼른 그 손 놔.”
“평범한 어린애는 아닌데 말이야. 내 경험으로 말하는데, 이런 놈은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고.”
“젠코.”
“하아. 발렌타인 이 씹새끼들. 알았다.”
젠코가 목을 조르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은하가 숨을 급하게 몰아쉬었다. 휘청거리던 세계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줄리에타는 숨을 고른 그의 앞에서 무릎을 굽혔다.
“은하, 도와줘서 고마워. 이 이상은 도와주지 않아도 돼.”
“…누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줄리에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 얼굴로 반지를 쥐어주었다.
“이거는 브루한테 가져다줄래?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그리고… 그 동안 행복했다고.”
“누나.”
줄리에타를 불렀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행복했어.”
그 동안 행복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별안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두 번째 삶을 살면서 행복해지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행복의 범주에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동안 행복했다고?
누구 맘대로?
어이가 없었다.
어째서 허락도 없이 행복했다는 소리를 지껄여서는, 이제 와서 불행해지겠다는 듯한 말을 꺼낸다는 말인가.
멋대로 빠져나가려 하지 마.
그녀 역시 그가 추구하는 행복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멋대로 불행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불행해져도 될 때는 그가 그녀를 행복의 범주에서 제외했을 때뿐이었다.
그는 차에 타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바로 그때.
“어허. 봐줄 때 얌전히 있으라고.”
젠코 마이론이 목덜미를 잡아 올려서는, 그를 집어던졌다.
은하는 발현한 마나를 다급히 조작해서는 충격을 완화시키고자 했다.
그래도 조금 늦었다.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는데 사용하려던 마나의 용도를 바꾸려니, 제때에 맞추지 못할 터였다.
어느 정도 충격은 각오해야 했다.
“…허, 참.”
다행히 그가 떨어진 곳은 쓰레기더미 속이었다. 쓰레기봉투에 파묻힌 덕에 충격 없이 착지할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열 받네.”
머리 위에 얹어진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바나나껍질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누구 맘대로 행복했다고 말해. 나는 아직 덜 행복한데.”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는 그가 멀어지는 차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노은하! 너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그가 경고했던 말을 잘 지키고 있던 민지였다.
그녀는 이탈리아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쓰레기봉투에 두 팔을 얹어놓고, 다리를 꼰 채 기대 있는 그에게 뛰어왔다.
“민지야. 나 오늘은 안 논다고 전해라. 이유는 애들한테 말하지 말고.”
“…알았어. 나도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겠는데…. 근데 너, 일단 샤워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민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쥐었다.
은하는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여전히 차량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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