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80
자신의 디바이스를 믿고 싸워왔던 플레이어의 죽음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리라고 믿던 디바이스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적의 공격을 허용한 셈이다.
“모라율 이 년이이이이이이─!!”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
이에 그는 자신들을 이런 상황에 빠뜨려버린 모라율을 욕했다.
모라율이 놈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놨더라면.
사람들이 이리 허무하게, 검 한 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죽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장봉전도 이성적으로 이것이 모라율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탓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상황에서 느끼는 참담함을 어떻게 풀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나는, 이 땅을 지키는 자.
버러지를 박멸한다.
머릿속에 울리는 사념을 듣고.
장봉전은 뒤를 돌아보았다.
군단장이 바로 뒤에 있었다.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싶더니, 뒤에 있던 사람들이 벌써 녀석에게 당해버린 듯했다.
어느새 장봉전과 단군클랜이 가장 후미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이이이아아아아아아악!!!”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답답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목줄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얼굴이 새빨갛게 번졌다.
그때 군단장이 검을 내리쳤다.
장봉전이 보호마법을 발동했다.
마법은 너무나 허무하게 부서졌다.
장봉전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서 놈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최후미를 달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그러했듯.
장봉전의 검은 군단장의 검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군단장의 검이 그의 검을 투과해, 거대한 날이 그의 눈앞에 떨어져─.
─콰직!
검사의 말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다.
붉은 갑주의 기사는 돼지를 잡듯 몽둥이를 내리쳤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장봉전과 단군클랜의 플레이어들이 곤죽이 되어 죽었다.
…피해가 막심해. 이대로 가다가는 소대가 전멸하고 만다.
단군 클랜로드가 사망했다.
텔레파시스트에게 이야기를 들은 지용현은 침음했다.
단군클랜은 지휘관들이 사라지면서 와해되고 말았다.
지용현은 옆에서 달리는 텔레파시스트에게 단군클랜의 지휘권을 임시로 계승하겠노라고 전했다.
혼란은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다가오는 재앙은 아직도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지용현의 지휘는 제3 공략소대의 몰락을 늦춘 것에 불과했다.
내가, 막아야 한다.
전열은 완전히 무너졌다.
공격이 통하지 않고, 몬스터들에게 이런 식으로 쫓기고 있는 이상.
전열은 이제 무의미했다.
지용현은 이제 인정해야 했다.
공략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전력을 최대한 온존해야 했다.
다음 공략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김철식.”
“네, 클랜로드.”
“이제부터 지휘는….”
이에 지용현은 자신의 오랜 전우, 김철식 서브로드에게 모든 지휘권을 맡기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이 크림슨 나이트를 상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더 빨리─.
─탁
앞서나가던 클랜원 두 명이 돌연 방향을 돌렸다.
“너희들…!!”
“─클랜로드가 저 녀석을 막으면, 저 녀석은 누가 쓰러뜨린답니까.”
“당신은 선녀를 지킬 거라며. 근데 여기에서 죽으면 되겠어?”
제니스클랜의 오검.
과 이 지용현을 지나쳤다.
지용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들이 몬스터들에게 뛰어갔다.
“먼저 가시죠, 클랜로드. 저놈들은 저희가 막고 있겠습니다.”
“오검 중에서 그나마 저놈들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야. 그러니 행여나 자책하지 말라고.”
놈들에게 검은 무의미했다.
두 사람은 과감히 검을 버렸다.
어차피 그들의 무기는 검이 아닌, 소리와 꽃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전력을 남긴 상태로 복귀해야 합니다. 이번 공략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다음 공략까지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 없잖습니까.”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우리는 다른 놈들처럼 무의미하게 죽지는 않을 테니까. 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 거다.”
“…부탁한다.”
재회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지용현은 두 사람의 희생에 깊이 감사를 표했다.
☆
그 시각, 제4 공략소대가 주도하는 코발트 나이트 공략도 계획과 달리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 땅을 지키는 자.
이 땅을 침범하는 자를 단죄한다.
푸른 갑주의 기사.
몇 번이고 마법 공격을 당하고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던 놈이 칼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놈을 중심으로 푸른빛의 파문이 넓게 퍼져나갔다.
파문이 퍼져나간 지역은 새파랗게 물들었고─.
“─마법이, 통하지 않아….”
푸르게 변한 땅 위에 선 사람들의 마법은 모조리 무효화됐다.
아니, 무효가 된 것은 아니었다.
발동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 위력도 주지 못했다.
위력을 주는 건 디바이스를 매개로 마법을 펼쳤을 때뿐이었다.
또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물리공격을 가했을 때뿐.
─크르르르!!
상황은 심각했다.
중위와 후위로부터 버프를 받으며 싸우고 있던 전위의 플레이어들이 그대로 직격을 당했다.
보호마법이 효과 자체가 없었기에, 보호마법에 의지하며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게다가─.
“─클랜로드. 마음은 이해하지만, 얼른 퇴각해야 합니다.”
“큭….”
황산군.
캐스터면서 근접전에서도 딜러처럼 전투가 가능했던 황산군은 가슴이 찢어지는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자신의 환수가 놈의 검에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패스가 끊어지는 고통과 함께.
어렸을 적부터 시간을 보낸 환수가 고기가 썰리듯이 죽어 나간 모습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죽하면 KK클랜의 네비게이터인 구혜민이 충격에 빠져 있는 그에게 다그쳤을 정도였다.
“─전원, 퇴각한다.”
결국 황산군은 자신의 경력에 필시 애로사항이 될 말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퇴각을 하지 않고,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놈과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지휘관이었다.
감정에 휩쓸려 소대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꺾을 수 없는 마음이 하나 있었다.
“구혜민 네비게이터.”
“네, 클랜로드.”
“칠대호들을 모두 이끌고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나는 물리공격에 특화된 플레이어들을 선별해, 놈을 막고 있을 테니까.”
“클랜로드, 그게 무슨…!!”
“놈에게 도망친다고 다가 아니야. 아까 보니 푸른 원은 놈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어. 무작정 도망쳐선 푸른 원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라는 소리야. 그러니 누군가 발을 붙잡고 있어야 해.”
“그렇다면 제가 남겠습니다. 저와 물리공격에 능한 칠대호들이 있다면 군단장을 붙잡아둘 수 있을 테죠.”
“아니, 그래서는 안 돼.”
노은하가 아카데미 학생이었을 때.
일전에 그에게 말한 게 떠올랐다.
오만방자하게 살지 말라 그랬던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방자했던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겠군.
황산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는 자신에게는 공을 세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발트 나이트를 공략하며 안이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놈이 공격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자 그만 플레이어들을 놈의 영역 안에 접근하게 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놈이 검을 뽑았을 때, 그들은 단 한 차례에 쓸려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 역시 자만했던 결과,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말았다.
그리고 환수가 제 몸을 희생하여, 그를 살려내고 말았다.
“─이건 지휘관의 책임이다. 또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딜러들과 가디언들만 보낼 수 없다. 캐스터와 서포터들이 몇 명 남아서 그들을 보조해줘야 한다.”
제 환수가 죽는 것을 보면서.
황산군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 속에 빠져 있던 것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공에 눈이 멀었는지 이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조급했었구나.
판도라 클랜로드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그만 초조해진 거였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노은하가 그토록 오만했던 이유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자신은 오만했던 데 비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결과가 소대원들의 죽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황산군은 숨을 가다듬었다.
크릉
환수가 다가왔다.
그의 환수가 꼬랑지를 쳤다.
황산군은 쓴웃음을 짓고, 환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를 이끄는 자질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에도 결국, 내 감정 때문에 남는 거니까.”
KK클랜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각이 가는 건, 자신의 환수를 죽인 군단장에 대한 분노였다.
KK클랜하고 제4 공략소대를 보낸 황산군은 놈을 노려보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을 반드시 죽여주겠다.”
KK 클랜로드로서.
아니, 십이좌로서.
아니, 로서.
황산군은 전투에 임했다.
☆
2년 전, 신도림을 제압한 은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중,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아직 자신이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나는 지금보다 몇 단계나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어.
다시 그 경지까지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하기에 따라 그 경지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의 의지가 이끌어준 경지.
그는 본능적으로 그 경지가 자신을 좀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경지가 보여준 세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2년 동안 갖은 방법으로 자신의 성장을 도모했다.
판도라클랜의 의식마법도 그러한 과정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부족해.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이카루스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서 지상으로 추락해버렸다.
부나방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며 불 속으로 뛰어들고는 했다.
은하의 행동은 어찌 보면 그것들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강해져야 했다.
아니─.
─더, 더, 더 강해지고 싶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강해지고 싶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다시금 깨버리고, 비상하고 싶었다.
군주라는 단어가, 그의 의식 속에 감춰져 있던 욕망을 자극했다.
후회와 소유욕과 행복이란 감정이 그의 갈망을 부추겼다.
은하가 제2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온태양의 환수를 얻으려 한 이유도 무관하지 않았다.
이 환수만 있으면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회귀 전 온태양의 환수였던 비룡.
마법에 바람 속성을 부여하는 힘은 불꽃과 무척 상성이 좋았다.
비룡의 바람이 있다면 작은 불씨로 세를 부풀리는 것은 쉬울 터였다.
판도라클랜의 의식마법인, 성화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이미 불닭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민호나 은혁이, 아니면 바보 형한테 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세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은하는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미 불닭이가 있는데도, 또 다른 환수와 계약하기로 했다.
“삐삐! 빠빠! 뿌뿌!”
“그래, 알았어. 동생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보채지 말고 기다려.”
이에 불닭이는 크게 환영했다.
은하는 동생이 생긴다며 기뻐하는 불닭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은하은하! 이것 봐봐! 글쎄, 내가 어쩌다가 목탁을 부쉈더니 안에 웬 방울이 들어 있었지 뭐야!? 나 진짜 횡재…응? 그건 뭐야?” “이거? 환수의 알.”
“…또? 그건 누구 줄 거야? 혹시 나 주는 거야? 정말? 진짜?” “내가 이걸 왜 너한테 줘. 당연히 찾은 사람이 임자지.” “와…. 너한테는 불닭이가 있잖아! 환수 없는 아리엘한테 양보해라!” “”””와….””””
그러는 사이에 카에데나 아리엘, 강시형 등이 관음사에 숨겨져 있던 아티펙트를 찾아왔다.
회귀 전에 의 상징이었던, 활을 만드는 재료가 된 목가좌상.
의 마이크 겸 삼지창의 역할을 수행했던 방울.
의 상징이라 할 수 있던, 시전자를 중심으로 세계선을 분리하는 구체를 만들어내는 법전 등등.
은하는 클랜원들이 파밍한 모습에 흡족해했다.
물론, 클랜원들은 그들이 파밍한 아티펙트보다 은하가 파밍한 알에 더 관심을 보였다.
─어쨌든 얼른 태어났으면 좋겠네.
그날, 은하는 잠이 들면서까지도 환수의 알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
통신장비가 작동하지 않은 그날.
탈환대의 통신은 텔레파시스트들을 여러 번 중계하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통신이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제3 공략소대에서 알려드립니다. 현재 시각으로 오후 6시 23분….] [제4 공략소대에서 알려드립니다. 현재 시각으로 오후 6시 25분….]더군다나 그날은 하필 몬스터들이 요란하게 날뛰었었다.
그로 인해 중계를 맡은 텔레파시스트가 공격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제3, 4 공략소대에서 보내진 정보가 제5 통신소대에 전달되는데 대략 3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
그리고 3시간 전에 보내진 정보가 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 제3, 4 공략소대는 군단장의 토벌에 실패했다.
하나, 각 소대는 군단장을 피해서 예술의 전당으로 퇴각할 생각이다.
하나, 제니스클랜의 오검 중 둘이 사망하고 말았다.
하나, 단군 클랜로드가 죽어 현재 제니스클랜의 지휘를 받고 있다.
하나, 십이좌 이자 KK 클랜로드 황산군이 사망했다.
[─제4 공략소대에서 전파합니다. 제발, 제발 텔레파시를 받는 대로 제5 통신소대에서 응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4 공략소대의 전력은 60%까지 급감했습니다. 본 소대는 더 이상, 코발트 나이트의 추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에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 주둔한, 제2 공략소대, 제2 보급소대, 제5 통신소대의 지원을 바랍니다. 현재 시각으로 오전 1시 23분, 본 소대는 예술의 전당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탈환대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소대원들의 피로도가 이제는 한계에 달했습니다.] [제3 공략소대에서 제5 통신소대로 전합니다. 본 소대는 현재 병력으로 크림슨 나이트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이상 밤이 깊어지면 몬스터들의 위협이 심화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이에 본 소대는 현재 시각으로 오전 1시 27분, 크림슨 나이트의 추적을 회피하는 것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이후 본 소대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술의 전당으로 향해 다른 부대의 지원을 바랍니다. 제3 공략소대의 위치는 현재….]예기치 않게 거의 동시에 도착한, 두 개의 텔레파시.
크림슨 나이트.
그리고 코발트 나이트.
제3위계 군단장 두 마리가 의정부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는 소식에.
예술의 전당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발칵 뒤집혔다.
☆
그리고 그 시각.
경기 북부, 양주 일대.
제3위계 몬스터 이시미를 토벌한 플레이어들은 승리감에 도취했다.
제5, 6, 7, 8로 흩어진 공략소대는 그날도 경기 북부 일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플레이어들은 내일 하루도 이처럼 승전보를 거두겠노라고 자축하면서 잠에 들었다.
바로 그때─.
─Bububububbbbbbbbb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분위기에 산통을 깨듯이.
양주 일대에서 거대한 기운을 품은 편재가 만들어졌다.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는 마치 밤하늘을 가릴 듯이 거대했다.
가오리를 연상케 하는 놈은 그대로 꼬리를 흔들며 상공을 지나갔다.
─신벌
이도진.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잠에서 깬 그는 즉각 놈에게 전격을 날렸다.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전격이 놈에게 내리꽂혔다.
Bubuuubbbbbbbbb
전격은 분명 놈에게 통했다.
하지만 타격이 크지 않았다.
이시미가 방어력이 높았다면.
놈은 전격에 내성을 지닌 듯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콰아아아아아악!!
녀석이 전격을 되받아쳤다.
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여러 줄기의 전격이 기지 상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곳곳에서 비명이 울리고.
이도진은 황급히 전격을 막아내며, 뒤이어 몰려드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
그때, 놈이 파문을 일으켰다.
직후 주변 일대가 변모했다.
“이건….”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
제6 공략소대를 지휘하는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던전을 만드는 몬스터라고?”
놈을 중심으로 파문이 퍼지고.
파문 안에 들어간 영역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영역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힘이라도 받은 듯 강해졌다.
세계선이 분리된 것도 물론이었다.
놈은, 자신을 중심으로 적색던전을 만들어냈다.
“이동형 던전을 만드는 몬스터라니 그런 게 존재했다는 말이야?”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
하지만 그녀는 놈의 능력을 보고, 저 몬스터가 적어도 제3위계에 준할 몬스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체 자체는 강하지 않은 듯하나, 던전을 만든다는 능력은 인류에게 심히 위협적이었다.
만약 저놈이 서울 상공에 나타나, 서울을 적색던전으로 탈바꿈했다면 능히 2위계로도 통했으리라.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난 거지?
좋게좋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김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탈환대가 그동안 거둔 승리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가겠다는 듯이.
저 몬스터는 편재까지 일으키면서 강력한 몬스터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놈은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기지를 지나쳤다.
“”””…….””””
적색던전이 이동한다.
안심할 수 없었다.
놈이, 의정부로 향하고 있었다.
김유진은 즉각 소리쳤다.
“이도진!”
“네, 클랜로드!”
“제6 공략소대는 최소한의 병력을 기지에 남겨둔 채로 남하한다! 놈이 이대로 의정부에서 활개를 치도록 둘 수 없다! 또한 텔레파시스트들은 어서 예술의 전당으로 연락해, 놈의 출몰을 알리도록 해!”
“거리가 멀어서 텔레파시가 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하하는 중에 텔레파시가 닿는 통신소대를 통해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제9 통신소대에도 텔레파시를 보내기 힘든 상황이라, 텔레파시스트를 직접 해당 소대로 파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어서 저놈을 토벌하러 간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의정부에서도 일이 생겼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길로 제6 공략소대 플레이어들이 황급히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
누군가의 마나가 잠을 깨운다.
굉장히, 진하고 농밀한 마나.
알 속에서 잠을 청하던 존재는 곧 마나의 주인에게 관심을 가진다.
너는 누구니?
알은 묻는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너는 누구니?
그래도 알은 계속 묻는다.
껍질 밖에 있는 그에게 묻는다.
여전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대신, 알은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쿵쿵쿵
심장소리가 들린다.
알은 심장소리를 들으며, 주인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자신의 주변을 떠도는 마나를 읽어 주인의 기억과 감정을 읽는다.
그래, 네가 나의 주인이구나.
마침내 알은 자신의 주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태어나기만을 바라는 존재는 또한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내 주인이 어떤 사람이지는,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하도록 해.
알 속에서 보는 것과 알 밖에서 보는 것은 많이 다를 테니까.
친절한 목소리.
알은 화답했다.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람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그러는 한편 몇 번이고 묻는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역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알은 어떻게든 주인의 마음을 읽어 답을 찾으려고 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무엇을 필요로 하니?
네가 바라는 대로 태어나줄게.
알은 끊임없이 주인의 마음을 읽어 원하는 모습을 갖춰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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