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85
죽음이란 무의미하다.
이 세계에 각인되어 있는 한.
자신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녀에게 죽음은 존재치 않았다.
─스스스
지면에 흩뿌려진,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신체가 입자가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진 입자가 한 곳에서 새로이 구성된다.
그곳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나타났다.
“…….”
긴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새하얀 피부.
여성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어둠이 깔린 숲속 한복판, 곳곳에 인간의 살점과 피가 흩뿌려져 있는 상황에서.
오직 그녀만이 상처 하나도 없이, 동떨어지게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또, 살아났구나.”
프리시스 메모리.
그녀는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는 지면을 내려다보고, 이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딘가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
마치 체념한 듯한 어조였다.
“매구가 나타나다니, 상황이 너무 안 좋게 흘러가고 있겠네.”
자신이 죽은 지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을 확인한 프리시스 메모리는 손으로 허공을 갈랐다.
대기에 녹아든 마나로부터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애용하는 지팡이를 구현했다.
탁
그녀가 지팡이로 지면을 치자.
그녀의 전신이 마나로 뒤덮이더니, 검은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마녀를 연상케 하는, 챙이 넓은, 검은색 고깔모자까지도 만들어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네. 일단…, 의정부로 돌아가는 게 낫겠지. 아, 의정부가 던전으로 설정돼 있어서 근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겠네.”
조금 전, 매구의 행동을 생각하면.
녀석은 적색던전에서 나온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필시 자신의 존재를 숨겨, 귀면 가오리를 토벌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해서 귀면 가오리를 부추겨 의정부로 향하게 하는 듯했다.
의정부에서 두 군단장하고 싸우는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러니 서두르기로 했다.
─익스트랙트
☆
작전이 성공했다.
두 개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교차하는 지점을 구분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라색 영역 안에서는 군단장들의 어떤 공격도, 마법도 통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싸우세요! 전 소대원들은 이제부터 보라색 영역을 사수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리 공격에 자신이 있는 분들은 코발트 나이트를, 마법에 자신 있는 분들은 크림슨 나이트를 공격하여 군단장들을 토벌합니다!] [보라색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군단장의 어그로를 끄는 것과 함께 군세를 공격합니다!] [군단장의 발을 묶고 있는 분들은 더는 군단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열심히 힘을 써주세요!]곳곳에서 텔레파시가 난무했다.
제2, 3, 4 공략소대.
제2 보급소대.
제5, 6, 7, 8 통신소대.
8개의 소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통신이 시끄러워 정신이 사나웠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전과 달리 사기가 오른 상태였다.
고전하던 군단장들의 약점을 찾아, 역전의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귀면 가오리, 계속해서 남하 중! 전 소대원들은 기사형 군단장들의 토벌에 박차를 가합니다!]한편으로 그들은 조급해했다.
그들도 이제 밤하늘 저편에 있는 귀면 가오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크림슨 나이트를 상대하는 사람들 뒤에서는 적색던전의 영역이 계속 확장됐다 축소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기껏 성공한 작전이었다.
귀면 가오리가 군단장들의 영역에 들어오기 전에, 저 군단장들을 어서 쓰러뜨려야 했다.
─천라지망
워 크라잉(War Crying)
“이 아리엘이 활약할 때가 이제야 온 거라니까? 노래 시작한다!”
판도라 클랜원들도 바삐 움직였다.
보라색 영역 안에 있던 한창진은 천라지망을 펼치고, 기프트를 써서 크림슨 나이트의 움직임을 최대한 속박하고 있었다.
강시형과 아리엘의 경우, 코발트 나이트의 이목을 끄는 데 집중했다.
이천서도 보라색 영역 안에 있어서 오래간만에 활약하고 있었다.
나는 철혈의 피를 지닌 요새요.
막지 못할 것은 어디에도 없나니.
물론, 코발트 나이트를 붙잡는데 가장 활약하고 있는 사람은 추영훈이었다.
[─가연아, 들었지? 우리 임무는 저 군단장들의 발을 묶는 거야.]“큼큼.”
봉구래 그리고 손가연.
두 사람을 비롯한 스나이퍼들 또한 분주하게 탄창을 갈아끼웠다.
그들 중, 두 사람의 역할은 상당히 독보적이었다.
바로 군단장들의 저격이었다.
봉구래는 크림슨 나이트를.
손가연은 코발트 나이트를 맡았다.
[실패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 물론, 실패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잘못돼도 클랜원들이 도와줄 거야.]“큼큼.”
[좋아, 그럼 이제 준비하자.]서로 다른 건물 옥상 위에서.
군단장들의 영역에서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무전으로 대화했다.
군단장이 활개를 치는 영역 밖은 비교적 대기 중에 녹아 있는 마나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던 덕분이다.
애초 스나이퍼들 옆에는 위치마다 텔레파시스트가 있기도 했다.
“큼큼.”
여하튼 손가연은 봉구래의 무전에, 그가 들을 수 있게 목청을 가다듬는 소리를 냈다.
판도라 클랜원들이 손가연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대화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신호였다.
목청을 2번 가다듬는 건 긍정.
목청을 3번 가다듬는 건 부정.
판도라 클랜원들은 두 가지 신호로 손가연과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애초 저격수는 말이 필요 없었다.
무음의 탄환으로 증명할 뿐이었다.
기프트
단 한 발만으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기프트를 발동했다.
파지익!!
몸이 뜨거워진다.
급격히 데워진 몸이 서서히 힘으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녀의 힘이 탄환에도 깃든다.
헌터나 레인저들이 총기 안에 있는 탄환을 매개로 마법을 사용하는 걸 힘들어한다면.
기본적으로 한 발 단위로 싸우는 스나이퍼는 탄환을 매개로 마법을 부여하는 것에 능했다.
심지어 기프트를 발동한 상태에서 그녀는 저격총과 하나가 된다.
장전된 탄환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눈을 감고도 확인할 수 있었다.
“후우….”
곧 열기에 익숙해졌다.
손가연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내 숨을 한껏 참았다.
스코프로 코발트 나이트를 조준해, 놈이 빈틈을 드러낼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네비게이터의 지시에 따라 녀석을 공격한 플레이어들이 즉각 뒤로 물러났을 때.
스코프에는 온전히 녀석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이때를 기다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손가연.
그녀의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저격총을 떠난 탄환이 빛을 내며 녀석에게 날아들었다.
녀석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영역을 밟고 있는 사람들의 공격은 기민하게 반응한 반면.
영역 밖에서부터 들어온 공격에는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가연아, 클랜로드의 전언이야. 잘했어. 이상 진서나였습니다.]그녀의 탄환은 군단장의 옆구리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놈의 갑옷까지 파괴해버렸다.
그만큼 군단장에게 누적된 공격이 갑옷의 파괴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활약은 목민호가 만드는 약점을 공격하던 플레이어들에게 환영받을 일이었다.
게다가 은하까지 칭찬한 것이다.
“큼큼.”
손가연은 쑥스러운 마음을 숨기려 목청을 가다듬었다.
한편, 그때 봉구래는 다른 곳에서 크림슨 나이트를 노리고 있었다.
Tang!
총구를 빠져나간 탄환이 군단장의 갑옷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물리 공격에 속하는 탄환은 군단장의 몸을 투과하고 지나갔다.
그때, 기프트가 발동했다.
기프트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
기프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환이 놈을 뚫고 지나가며 기프트는 강력한 효력을 발휘했다.
놈이 스턴 상태에 빠졌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워낙에 많았다.
즉시 플레이어들이 함성을 지르며 놈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흥, 그럼 우리 자기들이 잘하도록 계속 견제해야 되겠네.”
기프트가 통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봉구래는 군단장을 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때, 담벼락을 오른 몬스터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단독 행동으로 움직이던 봉구래.
바닥에 엎드려 누운 채로 군단장을 저격하고 있던 그는 몬스터들에게 무방비한 상태를 노출하고 말았다.
몬스터들은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앞발을 휘둘러 그의 복부를 찢었다.
미러링(Mirroring)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봉구래의 신체가 마나의 입자가 돼 사라진다.
놈들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크게 동요했다.
그것이 봉구래가 만든 허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흥, 별꼴이야.”
충무 등급 보물로 만든 아티펙트.
반지 형태의 아티펙트는 비춘 것을 그대로 복사해 다른 곳에 비추도록 설정할 수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 있었던 봉구래는 당황한 놈들에게 총신이 짧은 총을 겨눴다.
어차피 레인저와 텔레파시스트들이 쓰러뜨려주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분신체를 죽여버린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Tang!
자신이 저격당한지도 모른 채로.
몬스터들은 탄환을 맞고 쓰러져, 그대로 소멸했다.
☆
플레이어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귀면 가오리가 보이고 있는 마당에 힘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괜히 귀면 가오리의 힘이 닿아서, 거의 쓰러져가는 군단장 두 마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섬광우
다이아몬드 블래스트
모두 같은 심정.
보라색 영역에서 서로 등을 맞댄 플레이어들이 군단장을 상대했다.
은하, 최은혁, 목민호의 경우에는 코발트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제공권은 이미 우리가 차지했어.
놈도 이제는 날기 힘들 거야.
두 사람의 공격이 끝이 났다.
은하는 유남훈과 함께 군단장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은 조금 전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추영훈, 강시형, 이천서를 비롯해 가디언들이 쇠사슬과 그물을 던져 움직임을 막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인저, 스나이퍼, 헌터들이 비행형 몬스터들을 죽이고 있었다.
블레이즈 크래셔
타이런트 패덕
검신이 불길에 휩싸인다.
은하는 날아드는 검들을 피해서는 놈에게 검격을 날렸다.
놈의 보호마법이 뜯겨나갔다.
그 틈에 은하의 뒤를 따라 달리던 유남훈이 검을 휘둘렀다.
칼날에서 떨어진 독이 놈의 갑옷을 서서히 부식시켰다.
바일런트 플레임
독이 통하는 것을 보았겠다.
은하는 서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사람들을 물리도록 했다.
사람들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불꽃을 머금은 독을 날렸다.
패혈증을 일으키고, 부식을 일으켜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
불꽃의 형태를 취한 독이 군단장의 온몸에 후드득 떨어졌다.
독이 그 즉시 반응했다.
나아가 연쇄를 일으켰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군단장이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다르게 놈에게 위엄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나느으으은……!!
남루한 갑옷을 걸치고.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군단장.
주위를 날아다니던 검들은 이제는 놈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여유를 잃었다.
플레이어들은 이제 녀석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쉬이이이익!!
그렇기에 놈은 처절하고, 추잡하게 반항했다.
허우적거리며 그물을 찢은 녀석이 보라색 영역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강태공 발 묶기
플레이어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강시형이 회수한 쇠사슬을 던져, 놈의 발목을 붙잡았다.
플레이어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당겼다.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이내 놈이 쇠사슬을 자르려 했다.
“나한테서 도망치면 섭하지! 이게 전투 도중에 어떻게 도망갈 생각을 하냐!!”
그때 강현철이 건물 외벽을 박차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대검에 깃든 불길이 소용돌이치며 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화르륵!!
불기둥이 솟구쳤다.
강현철과 군단장이 불에 휘말렸다.
불기둥 속에서는 연이어 금속음이 들려왔다.
두 괴물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은하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보
불길의 망토를 두른 채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우려는 강현철의 불길 속으로 파고든다.
이내 은하는 연신 검을 부딪치던 두 괴물의 형체를 발견했다.
더닝 블레이드
강현철의 불길을 흡수한다.
검신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로 인해 주위를 불태우던 불길의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너이씨…! 야, 이건 내가 상…!!”
강현철이 이변을 알아차렸다.
그가 쌍욕을 하며 뭐라고 했다.
은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잘됐어.
미친 오징어가 붙잡아주고 있어서 이번에는 제대로 노릴 수 있겠어.
그리고 당신한테 막타를 맡겼다가, 민지 같은 애들한테 욕먹을 일이나 있게?
놈은 강현철을 상대하느라 은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은하는 곧장 지면을 박찼다.
그제야 놈이 은하의 존재를 깨닫고 늦게나마 대응하려고 했다.
우보
페이크.
은하는 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놈이 흠칫했다.
놈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모든 게 결착이 난 상태였다.
더닝 블레이드
두 자루의 검이 운다.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와 같이.
꼭 아침해를 연상케 하는 검들이 놈의 가슴을 도려냈다.
──!!
한 번.
그리고─.
──!!
두 번.
수직으로 지나간 궤적 위로 새로운 궤적이 수평으로 지나갔다.
찬란한 빛이 놈의 몸에 십자가의 궤적을 새겼다.
나…느…은….
놈이 대응하려고 한다.
허공에 떠 있던 칼날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 칼날은 기세를 잃고서는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이 땅은 예전부터 우리 거였어. 그만 꺼져.”
군단장이 소멸한다.
은하는 놈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
코발트 나이트가 소멸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글렀다.
크림슨 나이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Bubbbbbbbbb
귀면 가오리가 근접했다.
붉은색의 영역 위로 적색던전의 영역이 덧씌워졌다.
그것을 알아차린 크림슨 나이트가 곧장 적색던전으로 이동하려 했다.
천라지망
한창진, 곽우혁.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놈을 잡아 움직임을 제한하려고 했다.
나는, 이 땅을 지키는 자.
너희를 반드시 섬멸한다.
하지만 끝내 놈이 던전을 밟았다.
던전의 힘이 한쪽 발에 전해지며, 놈의 갑옷이 변모했다.
“젠장….”
적과 흑.
녀석의 갑옷 색이 반으로 나뉘고, 기세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플레이어들은 혀를 찼다.
이제 남은 건 저놈인데….
저놈이 문제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군단장.
은하는 침음했다.
자신은 나설 수 없었다.
캐스터들의 화력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은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한매류 특식
무한 소나기
류연화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당당히 붉은색의 영역으로 들어간 그녀가 창을 휘둘렀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