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796
조아라의 손안에 있는 보석.
씨앗처럼 보이는, 녹푸른색 보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이건 대체 뭐지?
회귀 전의 기억을 들춰보아도.
눈앞에 있는 전리품에 대한 정보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 보석은 이 세상에서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였다.
마석도, 스킬석도 아니야.
그렇다고 던전을 만드는 핵석하고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은하는 보석을 유심히 살폈다.
기본적으로 마석은 푸른색의 빛을, 스킬석은 노란색의 빛을 띄웠다.
또한 마석과 스킬석 모두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모퉁이가 울퉁불퉁하고는 했다.
꼭 제련되지 않은 보석을 닮았다.
그런데 조아라의 손 안에 있는 건 녹색에 가까운 푸른색이었다.
비슷한 색을 띄는 전리품 중에는 던전의 핵석이 있기도 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품은 마석이 던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
하지만 그것 또한 제련되지 않은 보석처럼 모퉁이가 울퉁불퉁했다.
그에 비해서 조아라의 손에 있는 보석은 어떤가.
잘 제련되어 있어.
광택도 예쁘고.
모퉁이가 곡선을 이루는.
타원 형태의 보석.
씨앗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 또한 보석의 형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여하튼 보석은 마석도, 스킬석도, 핵석도 어느 쪽도 아니었다.
혹시 영혼석인가?
근데 그거랑 조금 다른데….
한편으로 은하는 마인이 몸에 품은 영혼석을 떠올리기도 했다.
영혼석의 형태는 완벽한 구체였다.
색은 맑고 푸른 색이었다.
하지만 이 보석과 영혼석이 같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빛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이따금 움직이고 있어.
바로 그것이었다.
보석 안쪽에 맺힌 광채가 이따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님한테서 나온 거니 명왕클랜에게 주는 게 낫겠지?”
그때 조아라가 물었다.
상념에 잠겨 있던 은하는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보석.
은하는 저 보석이 탐이 났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의정부에서 레이드를 통해서 얻는 전리품은 원칙적으로 공적치에 따라 분배되었다.
하지만 와 그리고 명왕클랜의 관계를 고려하면 양보하는 게 마땅하리라.
필시 이번 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명왕클랜에 보상을 양보하려 할 터였다.
그래서 은하가 포기하려 했는데─.
“─지원을 와줘서 고마워요. 그건 판도라클랜이 가져가세요.”
“네?”
사태를 수습하고.
고은실이 다가왔다.
명왕 클랜로드를 대신하는 그녀가 보석의 소유권을 그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은하는 의아해했다.
그러자 고은실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연지는 저희를 원망하면서 죽었을 거예요. 그건 연지나, 저나, 저희 클랜원들에게 못할 짓이었을 거예요.”
“”…….””
“그러니 감사의 뜻으로 드릴게요. , 조아라 플레이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중에 시간 되면 저랑 같이 밥 먹어요. 제가 살게요.” “아…. 아니에요! 제가 한 건 별로 없는걸요. 그러니까 고개를 드세요. 그리고…. 사주신다면 밥은 맛있게 먹겠습니다. 기대할게요. 근데 응? 이요?”
“공짜 밥이라고 좋아라 하….”
“씁.”
“그래서 조아라였군.”
고은실이 깊이 고개를 숙인다.
조아라는 은하의 등에 업힌 채로 손사래를 쳐댔다.
이내 고은실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은하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판도라 클랜로드.”
“네.”
“감사의 뜻으로 전한 다음에 불쑥 이렇게 말하기도 곤란한데…. 하나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저희도 이것을 그냥 받기는 불편하니까요.”
명왕 클랜로드 대리.
아마도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면 정식으로 클랜로드가 될 터였다.
그러니 그녀는 지금이 아니라 바로 다음에 있을 일을 생각해야만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고은실이 감사의 뜻으로 보석을 양보한 이유는 빚을 지우기 위함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다 다를까, 고은실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탈환전을 마친 다음부터는 의정부 부흥 작업과 함께 십이좌를 새로 뽑게 될 거예요.”
“…….”
“그때 판도라 클랜로드께서 부디 저희 클랜로드를 대신할 십이좌로 채선우 플레이어를 지지해주면 좋겠어요.”
도완준이 죽었다.
십이좌의 자리 중 레인저의 자리가 공석이 된 셈이다.
명왕클랜으로서는 잃어버린 자리를 다시 찾고 싶은 것이다.
클랜에 십이좌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으로 클랜의 격이 갈린다.
고은실은 명왕 클랜로드 대리로서 클랜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절대로 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네, 좋아요.”
이에 은하는 선뜻 동의했다.
의 실력이라면 잘 알았다.
십이좌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그의 성격이 애매하긴 했다.
다루기 곤란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바람처럼 가벼운 플레이어.
하지만 자유분방한 그 성격 탓에.
이전 삶에서 는 선녀에게 찬동하는 파에도, 반대하는 파에도 끼지 않았다.
를 대신할 만한 레인저는 찾아보면 나오기는 할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속에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을지, 판단하기는 어려워.
비록 다루기 까다롭다고 하지만.
적어도 주인을 물지는 않았다.
은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게다가 명왕클랜은 유도준이 있는 하나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은하는 자신에게 우군이 되어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판도라 클랜로드하고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직도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판도라클랜과 명왕클랜은 암묵적인 동맹을 맺었다.
☆
사태 수습이 끝나는 대로.
은하와 플레이어들은 의정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데 걸림돌은 없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식물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전투로 인해 부상을 입거나 혹은 포탄에 당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처도 모두 완치됐다.
덕분에 행군 속도가 빨랐다.
나아가─.
─포탄이 떨어지는 게 멈췄어.
먼저 간 사람들이 막은 건가?
어느 순간부터 포격이 멈췄다.
포격 소리가 사라졌다.
은하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고는 목민호를 찾았다.
“민호야.”
“왜?”
“나 먼저 가 있을게. 아라는 네가 대신 업어줘.”
“같이 가도 되는데, 굳이 왜?”
“폭동이 일어났을 것 같아서.”
“아…. 그래, 알았어. 클랜원들은 내가 지휘해서 데리고 갈게.”
“그래, 부탁한다.”
이전 삶에서.
군대의 포격에 화가 난 사람들은 군인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으켰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급기야 그들은 포격을 지시했다는 사령관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일어난 결과는─.
‘─선녀님,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겁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 전 국민이 이번에는 가만히 넘어갈 수 없을 겁니다!!’
‘…….’
‘선녀님이 잘못된 지시를 내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의정부는 저렇게 초토화되었고요!!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지라도, 저는 반드시 선녀님에게 이 책임을 묻게 할 겁니다. 그런 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최악이 따로 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임가을이 회룡역에 도착하기까지 했다.
격노한 플레이어들은 임가을에게 온갖 험한 말을 내뱉었다.
사령관을 죽인 선우화령은 플레이어들을 대표하여 그런 선녀를 규탄했다.
결국, 선녀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를 올렸다.
선녀의 권위가 바닥까지 추락하고.
플레이어들의 지지가 떠나갔으며.
마나관리기구가 선녀의 권위로부터 떨어져나오게 되는 결과를 불렀다.
젠장.
또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이번 삶에도 그렇게 둘 수 없었다.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다.
선녀의 입지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일군 변화였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하여 자신이 일궈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목민호에게 조아라를 맡기고, 속도를 내어 회룡역으로 뛰어갔다.
“─젠장.”
하지만 회룡역에 도착했을 때.
은하는 자신이 끝내 늦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탄모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곳곳에 피의 흔적이 난무했다.
플레이어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군인들과 우격다짐을 벌인 것이다.
군인들이 온갖 실전을 겪은 그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
그 증거로, 그들이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포박당해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옷이 벗겨져, 손과 발이 꼼짝없이 묶인 모습은 영락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판도라 클랜로드다.”
“이야. 살아 있었어.”
“그런데 왜 판도라 클랜로드 혼자 여기에 온 거지?”
은하는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플레이어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길을 비켜주고.
알몸이 된 상태로 포박되어 있었던 군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군인들의 시선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은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클랜원들을 찾았다.
“─은하야.”
“누나. 애들은?”
곧이어 은하는 판도라 클랜원들을 발견했다.
그들 중 류연화가 먼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렸다.
자신을 걱정한 듯싶었다.
하지만 서로 잡담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은하는 우선 클랜원들의 생사부터 물었다.
“다들 무사해. 다친 사람들도 모두 조금 전에 의정부 쪽에서 퍼져나온 빛을 쐬고 다 나았어.”
“그래? 다행이네. 그럼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은 거야?”
“응,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았어. 그래서…, 다행히 피해는 적어.”
사망자가 조금 많기는 하나.
부상자는 0이다.
은하는 그나마 희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완치되면서, 폭동이 더욱 거세진 듯싶었다.
그녀가 한쪽을 가리켰다.
“후….”
플레이어들이 울부짖는 그들에게 총구를 들이밀며 씩씩대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분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군인들을 포박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클랜 네비게이터들이 심할 정도로 폭동을 벌인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기는 해. 하지만….”
“나중에 이 일로 처벌한다 해도, 효과는 크게 없겠지.”
이곳은 의정부였고.
전시 상황과 다름없었으며.
명분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었다.
사실상 그들을 책망할 수단이 달리 없을 것이다.
“창진이 형은 어디 갔어?” “아, 창진이는…. 저기 오네.”
“…….”
은하는 고개를 돌렸다.
몇몇 플레이어들과 함께.
한창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사령관이 손이 묶인 채로 끌려오고 있었다.
은하는 곧장 그에게 향했다.
“창진 형.”
“어, 은하야.”
그들이 은하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사람들이 보는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은하는 몸을 숙이고 있는 사령관을 내려다보았다.
“흐헤헤헤헤헤….”
“내가 찾았을 때는 이런 상태였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치아도 몇 개 빠져 있었다.
은하는 자신을 올려다보고는 대뜸 히히거리는 사령관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스티지안 아이
팬텀 아이
사령관의 정신 상태가 이상했다.
꼭 정신이 파괴당한 것 같다.
은하는 즉각 세뇌마법을 발동해, 사령관의 정신 상태를 더듬었다.
이윽고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이렇게 만든 거지?
누군가 사령관을 세뇌했다.
그리고 정신을 파괴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 이건 모두 선녀가 꾸…컥…!”
그때 사령관이 뭐라 말하려 했다.
은하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사령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얼마나 돼?”
“우리들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이 사령관을 어떻게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사령관을 붙잡았거든.”
“잘했어.”
은하는 한창진의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낯이 익었다.
그중에 도미니크도 있었다.
그들 모두 판도라클랜의 위성클랜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다.
아군이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잊어. 이놈이 세뇌를 당해서 이런 거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클랜로드. 설마 누가 그걸 믿겠습니까?”
도미니크가 대답했다.
사령관이 누구에게 세뇌를 당해서 정신이 파괴당한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턱이 없었다.
누군가는 사령관이 정보를 감추려 스스로 정신을 파괴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오해의 소지 자체를 줘서는 안 됐다.
한편으로─.
“─저 새끼가 내 친구를 죽였어!”
“야이씨!! 어디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거야!? 안 숙여!?”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
플레이어들의 감정이 거세졌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모두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인지 당장 해명하시오!!!”
그런 상황에서 선우화령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사령관을 추궁했다.
“헤헤헤헤헤헤….”
사령관은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
선우화령은 사령관의 상태를 보고 분개했다.
“이게 지금 웃을 일입니까!? 대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이렇게 한다는 말입니까! 누가 하라 시킨 겁니까. 말해보세요, 누가 하라 했냐고요!!”
선우화령이 계속 추궁한다.
사령관은 헤실헤실 웃는다.
그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서, 서, 서, 서….”
“판도라 클랜로드. 그 손 놓으세요. 판도라 클랜로드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이 사람을 때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자초지종을 물어서 누가 이 일을 명령한 것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
은하는 손아귀로 사령관의 양 볼을 세게 조였다.
그러자 선우화령이 은하를 욕했다.
어쩌면 좋지….
하지만 은하는 선우화령의 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기나 했다.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저 새끼 죽여버려!!
너희도 당해봐, 너희도 당해봐…. 으아아아아악!! 너희도 당해보라고 이 개X끼들아!!!
플레이어들의 분노가 들렸다.
그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그들이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저들이 모두 등을 돌릴 수도 있어.
자신에게는 민심이 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지 몰랐다.
사령관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선택 하나로 민심이 떠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습게도, 이전 삶에서는 이 플레이어들의 대표가 되어 결단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건가.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새삼 자각이 들었다.
자신은 너무 높은 곳에 올라왔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다가는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질 수 있는 위치까지.
게다가 바닥에 칼이 득실거렸다.
권력의 칼이었다.
바닥에 득실거리는 칼들이 언제든 자신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두려워하면 안 되지.
자신은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설사 저 칼에 찔린다고 하더라도.
절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초지종을 물을 필요 없어요. 제가, 똑똑히 들었으니까.”
“”””……!!!””””
뎅강, 하고.
은하는 사령관의 목을 베었다.
쓰러지는 가슴에 칼을 꽂았다.
☆
의정부 탈환이 거의 완료됐다.
임가을은 기다리던 소식을 듣고서 즉각 의정부로 향했다.
“─뭐라고요? 다시 말해보세요.”
“선녀님 그게….”
“똑바로 말해보라고요.”
“…저희 소대를 빼고, 모든 군대가 의정부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도봉역의 장벽을 넘어서.
망월사역에서 하루를 지새우려던 임가을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군대가 움직였다.
망월사역에 주둔하고 있어야 하는 전차들까지 의정부로 올라갔다.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임가을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군대가 멋대로 움직이다니.
그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듣자하니─.
“─제가, 명령했다고요?”
“네…. 저희도 어쩐지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사령관과 지휘관 전부 미친 사람처럼 선녀님께서 내리신 명령이라고 해서….”
“”””……””””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명령은 한 적이 없었다.
임가을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숨이 턱 막혀왔다.
자신이 선녀로서 취임하고 이렇게 황당무계한 일은 처음 당했다.
그렇다고 억울하다면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의정부로 올라가세요! 모든 짐을 포기하고 의정부로 올라가서 군대를 멈추게 해야 해요!”
“”””네!!””””
하필이면 무전이 먹히지 않았다.
주위에 마나가 짙게 깔려 있었다.
텔레파시도 멀어서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임가을은 수행원들과 함께 가장 빠른 길을 이용했다.
호위사 박상진의 품에 안긴 채.
그녀는 밀림처럼 빽빽하고, 간혹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숲속을 지나쳐 회룡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아….”
다, 끝나 있었다.
그녀는 참상을 목격했다.
플레이어들이 손이 묶인 군인들을 어딘가로 끌고 가고, 그들의 시체를 정리하고 있었다.
“선녀다.”
“왜 이제야 왔대?”
“미친X.”
“선녀는 무슨 선녀야? 악녀지.”
“”””…….”””
그때쯤, 플레이어들이 그녀를 보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플레이어들이 날이 서 있었다.
임가을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박상진이 내뿜는 기세에 의지해야 했다.
“선녀님…. 아니, 가을아. 괜찮아?”
“어떡해….”
임가을의 몸이 덜덜 떨렸다.
평소와 달리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걸었다.
자신을 적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평소처럼 자신 있게 걷지 못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버텨야 해.
임가을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최대한 냉정하게, 감정이 정리된 듯한 플레이어들을 지휘하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상대가 먼저 움직였다.
“적절한 때에 잘 오셨네요.”
“아….”
판도라 클랜로드 노은하.
그의 곁에 다른 소대를 지휘하는 플레이어들도 모여 있었다.
그들이 흉흉한 기운을 발했다.
선녀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하지만 임가을은 저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툭
무언가가 발치에 떨어졌다.
임가을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
사령관의 머리였다.
그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임가을은 순간 흠칫했다.
뒤에서 박상진이 받치지 않았다면 바닥에 벌러덩 자빠졌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만큼 놀라게 되자─.
─역시, 저들끼리 해결한 거구나.
도리어 감정이 착 가라앉았다.
임가을은 가까스로 평정심을 찾고, 자신에게 머리를 던진 노은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반란군은 모두 진압했습니다.”
“…….”
“저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쿠데타를 작당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령관의 목을 베었습니다.”
노은하가 무릎을 굽혔다.
그가 사령관의 머리칼을 잡아올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임가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그녀가 은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여러분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임가을 또한 무릎을 굽혔다.
그녀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고.
반대로 노은하의 권위가 올라갈 걸 알고 있음에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