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
은하는 처음에는 은아에게 마나를 다루는 법을 천천히 가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은아가 늘어나는 마나를 견디기 힘들어하기 시작하면서 은하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마나는 극소량만으로도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신체가 제어하지 못하는 마나는 폭주 현상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생명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로 변모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은아는 신체가 제어하지 못하는 마나를 무의식적으로 방출함으로써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아의 체내 마나는 초등학생이 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로 인해 몸에서 새어나오는 마나가 편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며, 어떨 때에는 마나를 과다 보유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이전 삶에서도 은아는 몸이 약했었다. 은하는 흐릿했지만 어렸을 때 입원한 은아를 병문안하러 갔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은아의 내력을 몰랐던 은하였지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이제 그녀가 마나 농축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은아에게 마나를 다루는 법을 가르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마침 누나가 먼저 마나를 다룰 수 있게 해달라고 했으니.
물론,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은 처음에는 몹시 반대했다. 은하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은아의 상태는 병원 치료를 통해서도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 시기에는 아직 마나 농축증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마나를 체외로 내보내기만 해서는 지속적으로 쌓이는 마나를 처리할 수 없었다.
은아가 마나를 다룰 줄만 안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자칫했다가는 마나 폭주를 일으킬 위험이 있어, 병원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은하는 이 시대의 의학으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을 통해 그가 걸핏하면 마나 폭주를 일으키려 하는 백련이 마나를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까.
은아가 아무리 방대한 마나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성한 백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으, 이거 어렵네.”
“일정한 방향과 힘을 쉬지 않고 줘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거야.”
은아는 휘청거리며 쓰러진 탑블레이드를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현재 은아는 마나를 섬세하게 다루는 것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마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그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는 마나를 제어하는 센스는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날 때부터 방대한 마나를 품고 있던 그녀가 소량의 마나를 다루는 감을 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은하가 고안해낸 것이 탑블레이드 훈련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나를 일정한 방향으로 다룰 수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사실 은근히 어려운 일이었다.
체외로 나오는 순간 제어에서 벗어나는 마나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면서 지속적으로 같은 힘을 줘야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균형이 흐트러졌다가는 탑블레이드는 이리저리 휘청이다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욱이 은아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은하와 대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고~ 슛!”
“으~ 치사해.”
은아의 삐죽임도 어림없었다.
이건 치사한 일이 아니었다.
은아는 몰라도 은하는 무한정 탑블레이드를 돌릴 정도로 마나가 남아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은하는 물 만난 고기처럼 가장 기다란 줄로 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 승리.”
“으으!”
은아의 마나가 흐트러지는 순간에 파고든 은하의 애쉬드레이거.
슈터를 사용하는 은하가 또 이겼다.
은아가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었다.
“한 번 더!”
“어쩔 수 없네.”
거 봐.
승부욕이 강한 은아였다.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보기 좋았다.
그렇다고 은하가 적당히 봐주면 하루 종일 토라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회귀 전에도 백련을 돌보느라 노하우를 쌓기는 했지만, 은아는 백련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아빠도 같이 낄까!”
“아빠는 안 돼. 누나보다 못하는 걸.”
“아빠는 고~ 슛 하는 법부터 다시 배우고 와!”
“아빠를 얕보지 마라! 셋, 둘, 하나! 고~ 슛!”
“마나도 안 쓰고 돌리는 게 어디 있어!”
“하하하! 어떠냐! 너희들이 아빠를 이길 수 있겠느냐!”
누가 애인지 어른인지 모르는 아버지였다.
누나는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슈터로 돌리다니.
누나가 불쌍해.
아, 나도 지금 그러고 있었지. 그럼 뭐 쌤쌤이네.
“은하야! 안 하고 뭐하고 있어! 고~ 슛! 아빠를 몰아붙여야지!”
“…어쩔 수 없지. 고~ 슛!”
이게 만화라면 내 생각대로 탑블레이드가 움직일 텐데.
마나를 사용하면 피곤하고. 휴우.
그래도 은아가 토라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은하는 남아 있는 마나를 고려하며 애시드레이거를 투입시켰다.
“둘이서 협공이라니, 너희들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슈터로 돌린 아빠가 더 치사해!”
고작해야 탑블레이드건만.
아버지와 은아는 기를 쓰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만 마나가 바닥을 보인 은하는 일찌감치 장외를 선언하고 대결을 지켜보았다.
누나도 이제는 잘 돌리네. 실전에 강한 건가.
“우리 집은 애들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인 것 같아.”
연말 연예대상을 보고 있던 어머니에게도 아이들 놀이에 끼어든 아버지가 아이로 보인 모양이었다.
“이제 내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년이면 은하도 6살이고, 유치원에 가야겠지?”
“나는 안 가도 되는데.”
“안 돼.”
언제나 은하의 의견을 존중해주던 어머니였지만 유치원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의무교육도 아니건만.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그가 밖에 나가서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결국 은하는 겨우겨우 떼를 써서 6살이 되는 내년에야 유치원에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내년은 벌써 코앞이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보고 있는 연말 연예대상이 그 증거였다.
유치원인가.
걸핏하면 울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 사이에 끼어 있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유치원에 갔다가는 애들 뒷바라지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상까지 들었다.
“아싸! 이겼다!”
“왜 튕겨 나오는 거지!? 왜! 도대체 왜!? 한 번만! 한 번만 더!”
시끄러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지.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은아가 아버지를 이기고 있었다.
아아, 저러면 이길 수밖에.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잘하네.
은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은아가 탑블레이드 주변을 마나로 코팅하고 있었으니 아버지의 탑블레이드가 닿지도 못하고 튕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체 표면에 마나를 입히는 작업은 탑블레이드를 회전시키는 것보다도 컨트롤이 필요한 작업이었으니 은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치졸함을 금세 답습하는 은아였다.
응, 귀찮으니까 못 본 걸로 해야겠다.
“당신, 이제 나와요.”
“벌써 이 시간인가?”
연예대상을 보고 있던 어머니가 화제를 돌렸다.
은아와 놀고 있던 아버지는 그제야 TV로 고개를 들었다.
“응?”
은아도 마찬가지. 폐회식을 끝으로 전환되는 화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때가 지금이었구나.
1분을 남겨두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숫자.
은하는 연예대상이 끝나고 전환되는 화면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오늘이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라는 것을.
전환된 화면은 상공에서부터 서울의 야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너도 나도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도심.
그 사이에서도 유독 강한 빛을 발하고 있는 붉은 기둥.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은 돌로 다듬어진 신로(神路). 그리고 신로 끝에 놓인 제단.
종묘 정전.
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자, 지금까지 한 번도 몬스터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던 성역은 그 위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새 역사의 시작입니다!]리포터의 목소리는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도 리포터의 떨림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은하 역시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떨리고 있는 중이었다.
남쪽 신문 동쪽에서 절도를 갖춰 나오는 마나관리국의 고위급 임원들. 그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뉘어 신로의 좌우를 둘러쌌다.
이어서 남쪽 신문 서쪽에서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단으로 이어지는 신로로 향했다.
마나관리국의 임원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그녀를 경애한다는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던 카메라 화면이 바뀌었다.
교체된 장면은 신로를 걸어가는 그녀를 가까이에서 담아내고 있었다.
“예쁘다….”
은아가 참았던 숨을 토하며 말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그녀를 알고 있는 은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존재감을 각인시키듯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는 여성. 그러면서도 그녀는 망설이는 일 없이 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도, 리포터의 격찬 숨소리도 너무 멀게만 들렸다. 또각또각 울리는 소리만이 뚜렷하게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드레스 자락. 바닥에 닿을 것만 같은 붉은 드레스가 밤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드레스를 입으면서 여실히 드러나는 허리는 누구나 감탄을 토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카메라 앵글은 점점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이윽고 그녀의 옆얼굴이 화면에 담겼을 때, 머리를 반쯤 묶어 올린 비녀가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조명이 아니었다.
마나였다. 장신구를 이루는 마석이 흘러나오는 마나에 반응하고 있던 것이다. 눈꽃처럼 흩날리는 마나의 편린이 빛을 발하면서 눈을 뗄 수 없는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선녀 임가을.
대한민국의 초대 선녀. 그녀야말로 새 역사를 여는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이용하고, 버려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버릴 줄 아는 그야말로 철혈의 여제였다.
누구보다도 처절하고 악착 같은 그녀는 결단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그녀가 우아하고 고귀하게 보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난 것처럼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의 리포터가 말하지 않았던가.
새 역사의 시작이라고.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대 뒤에 숨어 있던 그녀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역사는 기존의 역사에서 궤를 달리하게 된다.
.
몬스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끓기 시작하면서부터 전 세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이 사건으로 몬스터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30%를 잃는 대가로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행정구역을 지켜내야 했다.
그리고 의 공포를 절감한 인류는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몬스터의 위협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런 세계에서 기존의 정치는 힘을 잃었다. 몬스터로부터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나라는 정치·경제·행정이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을 줄 아는 정치가는 민심을 잃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 살아가던 재력가들은 재산을 잃고, 법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 힘을 가진 자들이 범죄를 저질렀다.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마나가 새로이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한민국은 실질적인 권력과 재력 그리고 마나를 가진 자들이 기존의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신흥세력으로 대두되면서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정을 찾은 뒤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도시와 도시 사이는 이미 연결이 끊겨 있었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몬스터로부터 멸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멸망해 있었다.
희망을 잃은 세계.
절망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런 세계에 한줄기 작은 촛불이 드리우는 사건이 바로 이날이었다.
선녀 임가을의 취임은 정치·경제·행정이 힘을 잃은 국가를 쇄신하는 계기에 이른다. 몬스터의 천적이 되는 힘을 가진 그녀는 모든 민중의 구원이 되는 동시에 선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의결기구를 구성한 것이다.
[배우 임가을 씨는 , 등으로 불리는 명실 공히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여배우입니다.그리고 오늘밤을 끝으로 임가을 씨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초대 선녀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 , , .
임가을을 수식하는 말은 셀 수 없이 존재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한민국의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미모는 한층 빛을 발해 아역배우로서의 탈을 벗어내는가 하면, 남자들이 가장 여자친구로 삼고 싶은 연예인, 가장 배우자로 삼고 싶은 연예인, 어머니들이 가장 며느리로 삼고 싶은 연예인, 여자들이 가장 되고 싶은 연예인으로 인기를 독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그녀는 이 나라에서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위치에 오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임가을. 그녀는 마나가 편재하는 특성을 부정하고, 마나를 편산시키는 특성을 지닌 의 기프트를 소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편재된 마나는 몬스터를 탄생시키고, 몬스터는 마나를 탐해 사람이 사는 도시로 달려든다.
제아무리 인류가 철조망을 구축하고, 방벽을 쌓아올려도 몰려드는 몬스터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도시 내부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라면 더욱이.
그런 상황에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희소한 기프트를 지닌 그녀의 존재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몬스터로부터 안전해지고 싶은 국민들은 모두 그녀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수장의 위치에 오르게끔 성원과 지지를 보낼 수밖에.
결국 임가을은 여배우로서의 삶에서 물러나,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선녀라는 자리에 취임하
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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