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08
후기 탈환전이 시작되었다.
적색던전 경기북부청사.
매구를 토벌하는 탈환대에 지원한 클랜들은 적색던전 경계선 부근에 모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적색던전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녀석은 귀면 가오리의 스킬석을 탈취해, 적색던전의 영역을 넓히는 능력을 손에 넣었어. 그걸 고려하면 안전거리를 더 벌려둘 필요가 있어. 그러니 너희도 저기에다가 막사를 설치해놓도록 해.”
“네, 그렇게 할게요. 쌍둥이 자매랑 가연이, 태희. 너희가 인원을 데리고 막사를 설치해줘.”
제니스 클랜로드 지용현이 말했다.
그는 자리에 모인 클랜들을 총괄 지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권한이 높은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 은하는 주위를 둘러보며 플레이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전에 문서로 확인하기는 했지만 참가한 플레이어가 다 네임드네.
S급 클랜은 판도라클랜을 비롯해 제니스, 블레이즈, 템페스트클랜이 참가했다.
제니스의 오검, 블레이즈의 팔옥, 템페스트의 오맹금 전원도 있었다.
이외 다른 클랜에서도 대체적으로 A급 이상 실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참가해 있었다.
그리고 십이좌는 우리를 제외하면 4명인가.
진파랑, 한창진을 포함해.
참가한 십이좌들은 6명이었다.
지용현, 강현철, 프리시스 메모리, 유수진.
제3기 십이좌 중 절반이 탈환대에 참가한 것이다.
그만큼 아주 위험한 임무였다.
“”””…….””””
적색던전에는 진입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정비하면서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강현철조차도 조용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판도라 클랜로드.”
“네, 제니스 클랜로드.”
“보아하니 판도라클랜에서도 클랜 정예 병력을 모두 이끌고 온 듯한데 괜찮은 건가?”
“그래서 저도 인원을 빼려 했는데, 다들 한사코 자기가 가겠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지용현의 시선이 은하의 뒤에 있던 판도라 클랜원들에게 향했다.
그가 걱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은하 역시 클랜의 미래를 위해서 정예 병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클랜에 남겨두려고 했다.
하지만 류연화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혔다.
그들이 그렇게 나오니, 은하로서도 거절할 수 없었다.
다들 다른 사람들이 걱정된 거지. 한 명이라도 더 참전해 전력에라도 보탬이 되려고….
전에 매구에게 당한 빚을 갚으려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말이야.
그래서 판도라클랜도 다른 클랜과 정예 병력의 비율이 맞먹었다.
노은아, 목민호, 차은우, 정하양 등 서브로드 전원이 지원했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물론, 은하는 클랜 전력의 80%나 되는 클랜원들을 매구 토벌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김민지, 온태희처럼 전투에 취약한 클랜원들 대다수는 이곳에 남겨서 던전 경계를 서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는 제니스 클랜로드도 오검을 전부 데려왔네요? 블레이즈클랜과 템페스트클랜도 그렇고.”
“전부 데려오기는 했지만 우리도 한 명은 이곳에 남길 거야. 아마도 블레이즈클랜도 그러겠지.”
한편으로 다른 클랜이 정예 병력을 전부 데려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니스클랜의 경우, 선녀정부의 검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용현은 전기 탈환전에서 무너진 선녀정부의 위세를 되세우기 위해서 오검 전원을 차출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니스클랜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오검 한 명은 이곳에 남기기로 결정했다.
블레이즈클랜도 의외기는 하네.
그래도 1명은 여기에 남겨놓겠다니 YH그룹과 행정관의 눈치가 어지간히 보였나 보네.
블레이즈클랜은 클랜원들 대다수가 성향이 호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매구 토벌에 전원이 지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S급 클랜이었다.
그만큼 누군가가 고삐를 잘 잡고서 클랜을 조율하고 있다는 뜻이다.
필시 한서현처럼 클랜의 행정을 도맡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인지 블레이즈클랜도 팔옥 중 한 명을 남긴다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의외는─.
“─템페스트클랜의 오맹금은 전원 매구 토벌에 참가하겠다는군. 아니, 템페스트클랜의 정예 병력 대다수를 투입하겠다고 하더라고.”
“…그런가요.”
은하는 템페스트클랜을 찾았다.
그들의 분위기가 가장 살벌했다.
클랜원들은 몇 번이고 디바이스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행동을 했으며, 병적으로 탄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특히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는 벌써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템페스트의 초대 클랜로드 신명환 플레이어가 매구에게 당해 목숨을 잃었으니까 말이야.”
지용현의 설명대로.
템페스트클랜에게 매구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었다.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저들의 클랜로드였던 신명환이 매구에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템페스트클랜은 상당한 병력 손실을 입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병력 손실은 회복하고 어찌어찌 위상을 찾는 중이라지만,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극복해야 할 과거인 거겠지.
현 템페스트 클랜로드 강예희.
그래도 이전 삶에서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그나마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 삶에서 그녀는 매구에게 강한 적의를 드러낸 것은 물론, 상당한 히스테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 그녀는 냉정한 성미를 보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그랬을 테지. 그런데 매구 토벌에 참가하게 되며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튀어나오고 있는 걸 테고….
은하가 기억하기로, 이전 삶에서 강예희하고 유수진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강예희로 인하여 템페스트클랜에 불화가 워낙 많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었다.
은하는 이참에 한쪽에서 소시지를 먹으며 라이플을 정비하던 유수진에게 다가갔다.
“손은 어때요? 이제 괜찮아요?”
“아, 초코파이 로드.” “…….”
“농담이야. 이름 기억하고 있어.”
“제 이름이 뭔데요?” “…그런 게 중요한가?”
“물은 내가 잘못이지.”
유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상대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서린 긴장이 풀어졌다.
이내 그녀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라이플을 정비하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손은 잘 나았어. 이전보다 몸도 더 좋아졌고. 고마워.”
“대가 있는 선의였는데 고마워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아, 그랬지. 그 대가도 클랜로드가 이번에 갚았다고 그랬나.” “덕분에 클랜에 십이좌가 2명이나 생길 수 있게 되었죠.”
“흠…. 초코파이클랜의 십이좌들은 내가 잘 챙겨줄게.” “그럼 고맙죠.”
“아, 맞다. 그리고….”
그러던 중이었다.
유수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뭔가 생각났다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테이블에 먹으려고 둔 소시지 한 봉지를 은하에게 넘겼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왜 줘요?” “소식 들었어. 임신했다며.”
“그 소식이 거기까지 퍼졌네…. 네, 이번에 아내가 임신했어요.”
“초코파이 클랜로드가 임신한 게 아니었어? 다들 판도라 클랜로드가 임신했다고 하도 이야기하길래, 난 그런 줄 알았지. 아내가 임신했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댔겠어?” “저기요, 딱 들으면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클랜 이름 알고 있네. 초코파이는 무슨….”
“응? 내가 뭐라고 했지? 초코파이클랜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사람이….”
“그래서 임신 몇 주인데?”
“이제 16주요. 병원에서는 올해 12월쯤에 태어날 거래요.”
“흠, 배가 안 불렀는데….”
“장난치지 마시죠.”
“재미없는 초코파이구나. 어쨌든 그거 가져가.”
“그래서 이건 왜요?” “소시지는 영양성분이 많아. 그건 초코파이 클랜로드 아내…. 그런데 몇 번째 아내?”
“…첫 번째 아내요.” “첫 번째 아내한테 가져다줘. 그거 먹고 열심히 낳으라 그래.”
“…네. 돌아가는 대로 서현이한테 전해둘게요.”
“응, 아기가 맛있는 초코파이로 태어나기를 바랄게.”
“…….”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지만.
은하는 한숨을 쉬기만 했다.
이제 곧 매구를 토벌하게 될 텐데 이상한 말장난으로 사람들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은하는 몸을 돌렸다.
“맛있는 초코파이로 태어나면 뭐 어쩔 건데? 내 새끼를 먹기라도 할 거야?”
만약 그랬다가는 가만 안 둔다.
은하는 다짐했다.
한서현에게 알게 모르게 세뇌된 그는 어느새 자신의 아이에게 소유욕을 느끼고 있었다.
☆
이제 곧 매구 토벌전이 시작된다.
현재 놈은 경기북부청사 5층에서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까.
창이 다 깨져서.
언뜻 건물 내부가 엿보였다.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놈은 그곳에서 탈환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매구는 제2위계야.
희생은 불가피하겠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고, 그중에는 판도라 클랜원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걱정돼?”
“너는 걱정 안 돼?”
“걱정되지. 다들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때 정하양이 손을 잡았다.
그녀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은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긴장을 풀려고 했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년, 은하는 매구와 전투를 벌여 가까스로 놈이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벌해야 했다.
“그래도 님이 같이 작전에 참가해서 다행이야. 마녀님 치유마법은 믿을 수 있잖아. 게다가 우리 클랜에는 은아 언니, 이리야 언니, 은우, 우비 언니도 있고. 엘릭서도 2개나 챙겼잖아?”
그런 은하의 부담을 덜어주려는지 정하양이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동시에 무겁기도 했다.
정하양도 토벌전에 참가한다.
자신의 누나 노은아도 있었다.
내가 극구 말렸지만….
그래도 소용없었지.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이 한사코 참여하겠다 하니 그도 결국 말릴 수 없었다.
“─클랜로드가 이리 겁이 많으면 어떡해? 우리, 이길 거잖아.”
“…….”
“맞지?”
정하양이 다시 입 밖으로 꺼냈다.
그녀도 불안하고, 무서울 텐데도.
그녀가 힘껏 웃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맞아, 이겨야지. 아니, 이길 거야.”
말에는 힘이 있었다.
말이 의지를 좌우한다.
그렇기에 은하는 부정을 탈 만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렇게 말하며,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맞아,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건데.
여기까지 와서 뭘 걱정하는 거야?
아기가 태어난다는 소리를 듣고서.
너무, 약해졌다.
의지가 이리 약해서야 되겠는가.
하물며 자신은 클랜로드였다.
지휘관인 자신이 겁을 먹어서야, 어디 클랜원들이 정신을 차릴 수가 있겠는가.
은하는 정하양이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힘껏 웃어 보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클랜원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진파랑이 쾌활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이, 클랜로드!! 이럴 때일수록 우리한테 뭐 말해야 하는 거 아냐? 건배사 좀 하지 그래?”
“어휴, 건배사는 무슨…. 빙구 오빠, 우리가 지금 술을 마시고 있어? 건배사는 무슨 건배사야?”
“”””아하하하!!””””
김민지가 딴지를 건다.
클랜원들이 빵 터졌다.
은하도 그들을 따라 웃었다.
웃음소리가 클수록.
공포가 희석된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이완된다.
은하는 이 상황에서도 웃으려 하는 클랜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아, 이럴 때일수록 술 한 잔씩 마셔야지. 민지야, 태희랑 메리하고 사람들한테 술 한 잔씩 돌려줘.”
“와, 얘가 나는 여기 남는다 하니 술 심부름이나 시키네? 노은하 참 많이 컸어?”
“큰 전투를 앞두고서 술이라니…. 그러다 애들이 취하면…웁…!”
“어머 민호야, 가만히 있어야지. 너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도 없는 애가 된 거니? 네가 천서야? 시형이야? 마신 다음에 바로 마나를 사용해서 독기를 빼버리면 되잖아. 아니면 너, 내가 그것도 못 뺄 거라고 생각해?”
“어, 저기, 은우야….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건드리는 거야? 서운하네. 천서는 몰라도 난….”
“서운한 건 아리엘의 대명사지롱! 시형시형, 내 자리 뺏어가지 마아! 아, 나는 이슬 마시는 거 찬성이야! 사실 내가 몰래 팩으로 된 이슬을 가져왔는데, 아, 미리 말해두겠는데 전투가 끝난 다음에 마시려고 했다? 어쨌든 이걸로 다 같이 짠 하면….”
“내가 네 짐은 샅샅이 검사했는데, 대체 그건 어디에다 숨겨온 거야? 이리 내. 작전이 끝날 때까지 내가 압수하고 있을 테니까.”
“앗! 폭력 반대! 카에데가 때린다! 그리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숨기지 못하는 물건은 없지롱!”
“여러분, 술도 좋지만 이럴 때에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건 어떨까요? 자, 우리 다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이번 싸움이 끝나면 상으로 저한테 성….”
[얘들아, 우리 이제 조용히 하자. 우리가 소풍 나온 것도 아니고 꼭 막판에 이렇게 분위기를 흩트려야 하니?]언제 침묵이 찾아왔었냐는 듯이.
판도라 클랜원들의 말주머니가 팡 터져버렸다.
정신이 없었다.
“…내가 얘네들 인생을 걱정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참, 미친놈들이다.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그의 눈에는 그들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그러는 사이 김민지가 클랜원들에게 한 잔씩 술을 돌렸다.
“사기잔이네?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서현 언니가 혹시 모르니 하나씩 가져가라고 했다더라. 이 언니도 참 센스가 끝내줘.”
사기로 만들어진 잔.
잔을 받은 은하는 의문을 표했다.
이내 김민지의 설명을 듣고 순수히 감탄했다.
한서현의 선견지명이 대단했다.
여하튼 클랜원들은 모두 사기잔에 술을 채웠다.
클랜원들이 모두 은하를 바라보며 건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여기까지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것 외에 딱히 할 말은….”
“우우! 노은하 내려와! 클랜로드가 그렇게밖에 말 못하냐! 좀 신나게 말을 해….”
“응, 파랑 오빠는 입을 좀 다물고. 근데 우리 이 사기잔 깨뜨리는 거야?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그냥 집에 가져가….”
“자기. 1절까지는 좋았는데, 왜 2절에서 뇌절을 치는 거야?”
“건배사는 이거다! 공짜를 밝히는 조아라의 모근을 위해 건배!!”
“야이씨! 진파랑! 너이씨! 이리와! 나도 이제는 못 참아! 내가 그냥 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아라가 수빈이화가 됐네….”
“내가 뭐가 어때서? 최은혁, 괜히 시비 걸지 마시지. 아니면 매구한테 마법을 날리기 전에, 너한테 먼저 한 방 날려줄까?”
“하….”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좋은 마음도 다 없어졌다.
징글징글하게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은하는 결국 구구절절한 건배사를 포기했다.
“꼭 이기자. 건배.”
“”””건배!!””””
쨍그랑 하고.
술을 마신 사람들이 바닥에 힘껏 사기잔을 떨어뜨렸다.
사기잔이 깨졌다.
한 차례의 일탈을 마친 클랜원들은 묘한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
더 이상 불안한 것은 없다는 얼굴.
은하는 클랜원들의 얼굴을 보고는 흡족했다.
필시 자신의 얼굴 또한 그러리라.
그때였다.
“은하야.”
“어, 왜?”
정하양이 소매를 잡아당겼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은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서는 은하에게 속삭였다.
“얼른 이겨서 돌아가자.” “어?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나도 아기 갖고 싶어.”
“…어?”
“그동안 유정이랑만 있었으니까, 이기고 돌아가면 그때는 나랑 같이 있어 줘야 해? 알았지?”
“…….”
이번 싸움은 이길 수 있겠지만.
과연 다음 싸움은 이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생각했다.
미래를 바꾸는 것도 좋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현재를 즐기는 거야.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순간, 은하는 미래가 아닌 바로 가까이에 있는 현재를 바라보았다.
☆
탈환대는 공략을 개시했다.
그런데 탈환대가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
경기북부청사는 껍데기였다.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아니, 경악했다.
“이건, 대체….”
세상이 탁 트여 있었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것은 탁 트인 세상이었다.
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공간.
대지는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천장에는 종유석이 자라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석순이 나 있었다.
간간이 종유석과 석순이 연결된, 석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잘 왔어.
너희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서, 그냥 싹 다 정리했어.
공간 저편에.
새하얀 여우가 웅크리고 있었다.
놈이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콰직!
순식간에 플레이어들 앞에 나타난 놈이 제일 앞에 서 있던 플레이어의 허리를 물어버렸다.
철퍼덕
남자가 위아래로 찢어져 죽었다.
그걸로 첫인사를 마친 매구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이게 다는 아니지?
☆
회귀 전, 매구 토벌전.
적색던전 경기북부청사 5층을 앞둔 온태양은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괜찮아, 우리는 이길 거야.”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매구를 토벌하게 된다면 자신은 명실상부 영웅이 될 것이다.
그 마음이, 두려움을 이겨냈다.
“꼭 이기자. 우리는 이길 수 있어. 내가 있고, 너희가 있으면.”
파티원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태양은 그들의 실력을, 아니, 그들의 기프트를 믿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
아니, 과거는 돌이키고 싶지 않다.
미래?
아니, 미래를 위해 감내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부도, 명예도, 여자도.
자신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현재에 만족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자.
그런다면 행복한 미래가 자동으로 손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