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13
클랜에 남는 엘릭서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매구와 싸우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사용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은하는 자연 치유력에 기대는 중이었다.
프리시스 메모리의 마법의 부담과 그밖에 다른 부담은 치유마법으로 해결할 수가 있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엘릭서를 쓰면 며칠 내로 부상을 회복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지.
덕분에 시형이나 다른 클랜원들이 죽지 않고 살았는걸.
부상자가 태반이기는 했으나.
판도라 클랜원들은 이번 전투에서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재활 치료 생활을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게다가 매구를 토벌하고 난 다음에 해야 할 일도 얼마 없었다.
기껏해야 경기 북부 공략 회의에 참석하는 일뿐이었다.
“튼튼아, 엄마 뱃속에서 잘 크고 있지?”
“그거 어제도 말한 거 아니?”
“그래서 잘 크고 있대, 안 있대?”
“네, 아빠.”
그러다 보니 최근 은하의 일과는 주로 한서현과 노닥거리는 거였다.
마침 한서현도 샤키라를 비롯해서 행정원들에게 인수인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일이 적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무실을 찾아가면 소파에 앉아서 일도 안 하고 노는 두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다.
“행정관님도 저러실 거면 편하게 집에서 쉬시지.”
“”””에휴….””””
그 광경을 매일 같이 보게 되는 샤키라나 행정관들은 곧잘 한숨을 쉬고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은하는 한서현의 배를 만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구와 격전을 벌이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승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때 은하는 자신이 죽게 될 경우 슬픔에 빠질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동안 위기는 언제든 있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회귀 전의 기억도 아니고, 목표하는 미래도 아니라, 현재 그 순간만을 떠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내 기프트가 바뀌었던 건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게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몰라.
과거를 학습하는 .
현재에 집중하는 .
미래를 선택하는 .
그런 건지도 모를 일이지.
여하튼 그렇게 매구와 싸운 이후.
은하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매구와 싸우는 사이에도 계속 걱정되었던 한서현과 배 속에 있을 아이에게 말이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조건이 맞다면 기프트를 언제든 원하는 상황에서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을 컨트롤하는 게 어렵겠네.
은하는 한서현의 배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마나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기프트도 시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한다고 하더라도 어디 마음을 바꾸는 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기프트는 다 간파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회귀 전에 를, 이번 삶에 을, 그러다 이제야 를 쓰게 되었겠는가.
내가 목표로 하는 게 어디인가.
그게 기프트의 트리거라면….
어떻게 보면 지금 나는 미래보다 현재에 더 안주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회귀를 하고 26년.
앞으로 6년이 지나게 되면 자신은 이전 삶에서 생을 마감한 그 나이가 된다.
이전 삶에서 보낸 32년과.
이번 삶에서 보내는 26년의 차가 메워지려 하고 있었다.
하긴…. 회귀 전의 기억도 이제는 너무 어렴풋이 생각만 나네.
과거에 지배당했던 인생이.
회귀를 하고 과거를 발판으로 삼아 미래를 바라보는 인생을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혼돈과 같았던 자아는 거의 하나로 이루어지면서 현재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니?”
“이제 곧 태어날 아이 생각.”
“이름은 정해놨어?”
“아들에 맞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아직 생각 중이야. 우리 부모님이나 처부모님께 물어보는 건 어때?”
“안 돼. 첫째 아이는 무조건 네가 지어야 해. 그래야 네가 아이한테 더 정을 붙일 거 아니니.”
“진짜…. 너한테는 못 당하겠다.”
아마 자신이 현재를 바라보게 된 이유는 한서현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유정이란 과거에 얽매였던 삶.
하백련이란 미래에 얽매이려던 삶.
이번 삶에서 만난 한서현은 그에게 어느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 살라고 가르쳐주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지금 순간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현이한테 완전히 물들어버린 건가.
은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내 그녀의 배에 머리를 댄 채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은하야.”
“응.”
“네가 몸이 약해진 것을 빌미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데. 부상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잖니.”
“흠….”
또한 그녀는 이런 식으로 은하가 현재에 충실하게 만들면서 미래를 내다보게도 해주었다.
은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내 생각에는….”
“아, 지금 발로 찬 거지?”
“튼튼이가 재미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네.”
☆
한편 은하는 서현과 노닥거리면서 하백련의 안전을 신경 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정현 호위사가 특무국장이 되고, 클랜원들이 이번에 부상을 당해서 백련이 경호가 좀 불안하기는 해.
현재 이정현을 대신해서 하백련의 호위를 맡고 있는 사람은 한서현의 전속 플레이어 공백기였다.
그와 믿을 만한 클랜원들이 그녀의 중학교 등하교도 돕고 있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불안했다.
내가 아직 마법을 쓰지 못하니까 도플갱어를 사용할 수도 없으니….
백기 실력도 믿을 만하기는 해도 그래도 영 불안한데 어떡하지?
원래 은하는 도플갱어를 사용해서 하백련과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 진학시킨 상황이었다.
한 번 도플갱어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기는 해도 다시 회복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장발장은 자신에게 정해진 마나가 사라질 때까지 백련의 곁을 지키고는 했다.
그런데 은하가 부상을 입게 되면서 마나를 소진하고 사라진 장발장을 불러들일 수 없게 됐다.
“백련이가 많이 걱정하기도 하고, 뭔가 대책이 필요한데….”
현재 장발장은 적당한 이유를 대고 중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앨리스 재단의 후원을 받는 학교는 이제는 그러려니 여기고 있었다.
문제는 하백련이었다.
부우웅
장발장이 학교에 가지 않게 되자.
하백련이 이따금 장발장에게 톡을 보내고는 했다.
「백련이」: 발짱! 잘 지내고 있어? 생태공원에서 공부하고 부럽다 ㅠㅠ(오후 1:13)
“뭐라고 답해주면 되려나. 사진은 이십오가 많이 준비해줬으니 적당히 보내주면 될 것 같고…. 그나저나 백련이 얘는 수업은 듣지도 않고서 폰을 하고 있는 거야?”
그때마다 은하는 장발장을 대신해 직접 톡을 보내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몇 번 톡을 주고받다 보니 죄책감도 덜해졌다.
이러다 나중에 백련이한테 들키면 죽겠는데?
가끔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은하는 평생 감추기로 했다.
적절한 시기에 장발장도 어딘가로 전학을 보낼 계획이었다.
이제 좀 아슬아슬해졌어.
백련이가 지금은 긴가민가 하지만, 장발장도 점점 나이를 먹게 된다면 알아차리게 될 거야.
아니면 안경이라도 쓰게 하는 게 좋으려나….
요새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장발장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꽤 남았다.
은하는 일단 생각을 미루기로 하고 하백련의 경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기로 했다.
마침 적당한 사람이 있었다.
은하는 전화를 들었다.
[네, 판도라클랜 텔레파시스트 겸 행정원 진서나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전….]“어, 서나야. 나야.”
[…그냥 빨리 말해주면 안 돼? 응? 꼭 길게 말을 하게 해야겠어?]전화 너머로 진서나가 뾰로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판도라 클랜원들이 앓아 눕게 되며 그녀는 현재 일에 치이고 있었다.
또한 한서현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행정원 일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은하는 그런 그녀를 부려먹기로 한 것이다.
“지금 바로 집무실로 와 줄 수 있어?”
[에휴…. 알았어. 하던 일만 하고 가볼게.]“어, 천천히 와.”
그로부터 30분 후.
진서나가 팔짱을 끼고 찾아왔다.
그녀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얼굴에 ‘또 일 시키기만 해봐.’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듯했다.
은하는 웃으며 모른 척했다.
“왜, 무슨 일인데?” “잘 왔어. 일이 많아서 힘들지? 조금만 참아. 애들도 부상을 회복하면 클랜 업무도 원래대로 될 테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데?”
“…너 요새 많이 예뻐진 것 같다?”
“말 돌리지 말구. 나도 나 예쁜 거 알고 있거든? 얼른 말해봐.”
“그러면서 좋아하는 거 봐라.”
진서나의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그녀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은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다름이 아니라 무슨 일이냐면….”
이때부터 은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장발장을 중학생으로 위장해서는 하백련과 같은 학교에 보내버렸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한서현, 정하양, 이유정, 노은아, 차은우, 목민호, 진서나, 김민지 정도.
그래서 진서나는 은하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부분에서 기겁했다.
“그래서 나 보고 발장이를 대신해 백련이 곁에 두겠다고? 나한테 지금 중학교를 다니라는 거야?” “어디까지나 당분간 내가 장발장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게 될 때까지 해주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한테 중학교 교복을 입히겠다는 거지?”
“…너는 딱 맞는 기프트를 가지고 있잖아.”
진서나를 중학교에 침투시키기.
당사자는 혀를 내두르며 경악했다.
은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프트 만큼 적절한 게 없었다.
그녀는 성장 호르몬을 조절해서는중학생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다.
더욱이─.
“─중학생으로 변신하란 게 아냐. 너까지 신분을 위조하기는 그러니, 그냥 을 사용해서 장발장으로 변신해달라는 거야.”
그녀는 을 사용해 변신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베이스로 삼고 있는 몬스터의 섭리 덕분이었다.
“나한테는 그게 그거야. 중학교에 가라는 건 똑같잖아.”
그럼에도 진서나는 샐쭉거렸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은하는 알고 있었다.
협상의 여지가 있어.
쟤 지금 고개 돌리는 것 봐.
싫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면 되는데 계속 앉아 있기도 하잖아.
자신이 어떻게 하기에 따라서.
진서나를 설득할 수 있다.
은하는 머리를 굴렸다.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안타깝게도 진서나는 친구들 중에 제일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별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뭐야?”
직접 물을 수밖에.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가 다리를 바꿔 꼬았다.
“이 클랜의 지분을 줘, 많이.”
“…….”
“뭐, 그건 농담이고. 음, 그러게…. 내가 원하는 게 뭐가 있을까?”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며.
여우가 입꼬리를 올린다.
꼬리가 천천히 흔들리는 걸 보니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좋겠다. 너, 폰 줘봐.”
“폰? 그건 왜? 자.”
“잠금도 풀어야지. 아니다. 어차피 네가 비밀번호를 뭐로 설정했을지 뻔하지. 아하, 역시나.”
“그래서 폰은 왜?”
“잠깐만 기다려봐. 어디 보자…. 음,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내 이름, 댕댕이로 저장해놨네?”
“…….”
“저번에 진서나로 바꾼다 해놓고 나 몰래 또 이러는 것 봐.”
“그래서? 이름이라도 바꾸겠다고?”
“응. 이번에는 절대로 바꾸지 마. 바꾸면 진짜 다음 번에는 네 말은 안 들어줄 줄 알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다 됐다. 자, 가져가”
진서나가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은하는 전화번호부를 확인했다.
진서나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서나 눈나」
“이거 오타 난 거 아니야? 눈나는 무슨 눈나….”
“의도적인 오타지. 그게 더 정감이 가고 좋지 않니?”
“후…. 그래, 알았어. 그럼 이걸로, 장발장으로 변신해줄 거지?”
그리하여 하백련의 경호 문제가 깔끔히 해결되었다.
☆
몸은 차차 회복되고 있었다.
이제 마나를 발현하는 것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요새 매구의 스킬석을 흡수하는 데 전념했다.
“후….”
마나관리기구에서 회의를 마치고 클랜 회관으로 돌아가는 길.
은하는 차량 뒷좌석에서 스킬석을 흡수하고 있었다.
브루노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없이 차를 몰았다.
생각보다 흡수가 잘되지 않네.
몸이 다 낫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거의 다 흡수했네.
손안에 들어오던 스킬석은 이제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 거의 다 흡수했다.
이내 은하는 마나를 거두었다.
이 이상 스킬석을 흡수하려 했다가 마나 회로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은하야.”
“네, 아저씨.”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늘었구나.”
브루노가 입을 열었다.
백미러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의 시선이 차량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되는데요?”
“어제보다 10명 더.”
“많이도 늘었네.”
추격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는 순전히 브루노의 감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은하는 태연했다.
“아예 오늘 일망타진을 해버리죠. 아저씨, 거기로 가주세요. 폐공장.” “알았다.”
“저는 중간에 내릴게요. 그래야만 놈들이 옳다구나 하고 저를 쫓아올 테니까요.”
사람들의 선망을 사게 되면 그만큼 많은 적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한서현의 조언이 맞았다.
이윽고 은하를 태운 차량은 근처 폐공장으로 향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