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17
아리엘.
제2차 의정부 탈환전 이후, 그녀의 지명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녀가 의 힘을 발휘해서 인어로 변해 싸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포토] 하늘을 바다처럼 누비면서 적을 해치우는 아리엘!! [포토] 여신 강림! 아리엘의 일상그동안 아리엘은 판도라클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아 예의상 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인어로 변신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환기시켰다.
게다가 아리엘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별 생각 없이 흘리는 발언과 행동으로 아리엘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엘이 의정부에서 돌아왔을 때 기자에게 한 인터뷰가 좋은 예였다.
“─아리엘 씨는 피부가 참 고운데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비결이요? 음…. 이슬?”
“네? 이슬이요?”
“저는 이슬 없이는 못 살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꼭….”
“네, 기자님. 리엘이가 물을 엄청 마시거든요. 피부를 가꾸는 데에는 역시 물밖에 없는 거죠.”
“네…. 그런데 김민지 플레이어는 왜 아리엘 플레이어의 말을 막….”
“아, 참고로 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얼마 전에도 클랜원들이 맛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혹시나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저 좀 나오게 도와주시면….”
“아, 네…. 혹시나 그런 게 있다면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중에 김민지가 말을 막았기에.
사람들은 아리엘이 물만 마시면서 산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사람들은 저희들 멋대로 아리엘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겉으로 보기에 아리엘의 이미지는 밝고, 유쾌하고, 애교가 많은 등등 자세히 알지 않고서는 모르는 면이 많았다.
게다가 그녀가 아인이면서도 거의 인간의 외형을 닮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방송 출연에 꽤 기회가 많았다.
“안녕하세요! PD님! 지난번에는 미팅 약속을 취소해서 죄송합니다!”
“아, 어서 와요. 요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죠. 오면서 PKK단 사람들한테 피해를 입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그런 일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에 잘 피해 다니거든요.”
이날도 그랬다.
아리엘은 방송국을 찾았다.
몇 년 전, 캐치 유어 플레이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PD가 아리엘에게 프로그램 섭외를 제안한 것이다.
“이번에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2주 파일럿 프로그램이에요. 어쩌다가 방송 일정에 공백이 생겨서 저희가 부랴부랴 들어가게 됐죠.”
PD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송국에서는 2주 동안의 공백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때우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2주를 담당할 PD를 찾다가 마침 프로그램 하나를 종영하고서 휴식기를 보내고 있던 PD를 찾게 되었다고.
“그래서 제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전에 캐치 유어 플레이어를 찍었던 일이 생각났거든요.”
“그거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그때 은아 언니가 아침에 춤을 추다 걸린 장면이 진짜 웃겼는데….”
“하하, 그게 상당히 화제가 됐었죠. 노은아 플레이어는 그걸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잠깐이었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었죠. 사실은 그래서 노은아 플레이어를 섭외하려 했었어요. 근데 노은아 플레이어가 많이 바쁘다고 해서, 자신을 대신해 아리엘 플레이어를 추천하더라고요.”
“은아 언니가 많이 바쁘기는 하죠. 요즘에는 서현 언니 일을 대신하고 있기도 하고….”
평소에는 깨방정이지만.
아리엘도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알았다.
그녀는 최대한 점잖게 말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PD님, 저는 뭘 하면 되는 건가요? 기획서를 보기는 했는데, 잘 감이 오지 않아서요.”
“기획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예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줄 거예요. 그러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돼요.”
“음…. 요새는 클랜회관에서 혼자 빈둥거리는 것밖에 안 하는데….”
“그거라도 괜찮아요. 제 생각에는 아리엘 플레이어는 혼자서도 재밌는 영상을 많이 찍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아니면 아리엘 플레이어가 평소에 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해도 돼요.” “하고 싶은 거요?”
“네, 예산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그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건 아리엘 플레이어 특유의 비타민 미소거든요.”
“제가 워낙에 비타민이기는 하죠. 정말 뭐든 해도 되는 거예요?”
“사회적인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다 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 방송국이 루미너스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해서, 웬만해서 아리엘 플레이어의 예산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오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라.
아리엘의 구미가 당기는 소리였다.
“─좋아요. 그러면 신나게 노래나 불러봐야겠다.”
“노래요? 아, 아리엘 플레이어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인터뷰를….”
“PD님. 장충동에 있는 무대를 크게 빌리고 싶어요.”
“…네?”
“예산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거라면, 이왕 놀 것 신나게 놀아야죠!”
“…아이돌로 데뷔라도 하게요?”
“오,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근데 그러면 저 혼자 데뷔하기는 그렇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데….”
“…….”
“흠…. 아, 마침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네요. 그 사람들하고 같이 5인조로 데뷔하면 되겠어요!”
“어, 그건 예산이 좀….”
“밤새도록 노래 불러야지!”
PD가 어처구니가 없어 하든 말든.
아리엘은 오늘만 산다.
☆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이 사망하고, 동대문구의 치안이 뒤숭숭해졌다.
동대문구의 관할 클랜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으며, 그만큼 클랜전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판도라클랜이 그냥 동대문구를 차지하고 싶은데….
그럼 다른 클랜들이 가만있을 리 없지. 그 옆에, 광진구를 관할하는 삼라클랜이 강하게 반대할 테고.
은하에게 동대문구는 탐이 나면서 손을 댈 수 없는 지역구였다.
만약 자신이 무력으로 동대문구를 점거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비난을 사게 될 터였다.
동대문구 옆의 광진구를 관할하는 삼라클랜이 동대문구를 빼앗기도록 가만둘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입맛을 다시면서 동대문구 어딘가로 향했다.
이십오의 보고에 따르면 PKK단이 근거지를 두고 있는 곳이라 했다.
청량리였다.
“지하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었군.”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많네요.”
PKK단의 상징인 두건을 두르고.
은하와 이십오는 나무 위에 앉아 PKK단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무대가 하나 들어왔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 선 남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여러분!!]“”””P! K! K!!””””
“저게 구호야?”
“순수 한국인 클랜. 길게 말하면 멋이 없잖아요, 주인님.”
“어느 쪽이든 멋이 없는데.”
“근데 쟤네들 구호 중에는 다르게 외치는 것도 있다더라고요.”
“뭐라고?”
“아, 마침 저기 나오네요.”
“”””P! K! 클랜!!””””
“유치하네.” “유치하지만 잘 먹히는 거죠.”
보아하니 무대 위에 있는 남자는 단체 내에서 계급이 높은 듯했다.
사람들은 남자가 마이크로 말하는 소리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외국인들을 내쫓고, 아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이 나라를 순수 한국인만을 위한 나라로 만듭시다!!]“”””오오오!!!””””
“어째서 저게 먹히는 거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네.”
“선동당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선동당하니까 선동당한 거지.”
“이유가 필요없다는 거네.”
“세상에 모든 일에 합리적으로는 접근할 수는 없는 법이죠. 인간이 기계도 아니고 말이에요.”
“됐고, 저기에 있는 사람들 말고 지도부들은 어디에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십오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지퍼백이 하나 나왔다.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그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기프트
마나의 흔적만 있다면.
그 마나의 주인을 거의 확실하게 추적해주는 기프트.
지퍼백에서 가느다란 마나가 나와 어느 방향으로 쭉 뻗어나갔다.
“찾았어요.”
“가자.”
두 사람은 흔적을 추적했다.
그리하여 무대 뒤.
그들은 무대 뒤에 은밀히 숨어들어 지도부를 찾았다.
그들이 무대 배경 뒤에 숨어서는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은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저 사람, 수상한데?”
“어떤 놈이요?”
“모자 쓴 놈.”
지도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섞여.
모자를 쓴 남자가 있었다.
검은 두건으로 입가까지 가리니,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 눈매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눈매가 묘하게 특이했다.
꼭 맹수의 눈을 연상케 하는─.
─아티펙트로 얼굴을 바꿨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은하는 그가 아티펙트로 얼굴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보아하니 머리에 쓴 모자가 얼굴을 바꾸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걸음걸이가 묘했다.
몸이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건가?
걷는 게 조금 이상한데….
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은하는 상대의 걸음걸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묘하게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는 걸음걸이였다.
마치─.
─얼마 전에 서나가 마법을 사용해 장발장으로 변했을 때도 저랬는데.
꼬리가 있던 아인이 꼬리가 없어져 무게중심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걸음걸이.
은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이십오.” “네, 주인님.”
“저 모자 쓴 놈의 정체를 파악해. 그리고 저놈들이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네, 주인님.”
“내 느낌상 저건 아인이야. 아인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인 척결을 주장하는 단체 뒤에 아인이 있다니 말이다.
역시 PKK단 뒤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단서를 찾은 은하는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다.
그러자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잘 들어왔다.
“그러니 마스터, 내일은 아침부터 농성을 시작해서….”
“알았네. 그럼 자네들은 밑에 있는 플래티넘 애들한테 명령해서….”
듣자하니 내일 있을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들이 꺼내는 말에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었다.
“마스터는 알겠는데, 플래티넘은 대체 뭐야?”
“PKK단의 계급 체계더라고요.”
“계급이 어떻게 되는데.”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집단 수장을 마스터라 하고, 그 밑으로 다이아, 플래티넘, 골드, 실버, 브론즈란 게 있다고 하더군요.”
“꼭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네.”
“저치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이건 게임과 같은 거일 수도 있죠.”
“이해할 수 없네.”
“아, 참고로 저희 등급은 애매하게 골드로 해놨어요. 혹시나 어디 가서 단원들을 마주쳐서 등급을 물으면, 골드라고 말해주세요. 아까 제가 준 카드도 꺼내시고요.”
“이 금색 카드?”
은하는 금색 카드를 꺼냈다.
수작업으로 만든 듯한 카드였다.
도색칠이 엉망이었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뭐 이딴 집단이 다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저 모자 쓴 남자는?”
“글쎄요…. 마스터하고 대등하게 말하는 것 같으니 적어도 다이아나 플래티넘은 되지 않을까요?”
“알아와.”
이후 이십오가 사라졌다.
은하는 혼자서 PKK단을 둘러보며 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한심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12강 도전한다.”
“12강부터는 장비 강화 확률이 꽤 떨어지니 조심하게.”
“잘 되면 너희한테 남는 강화석을 나눠줄게.”
“하, 내일이면 빚도 다 갚는다. 이제 진짜 내 집이 생기는 거야.”
“오, 드디어 갚는 거야? 잘됐네. 이따 나랑 친구등록 하자. 놀러갈게.”
“내가 전에 말한 무는 잘 키우고 있는 거지? 그게 제일 비싸게 팔려. 그거 꼭 키워.”
“아씨, 다른 팀이 체육관 차지했네. 진짜 누구야? 기껏 사수했다 싶으면 다시 빼앗아버리고.”
처음에 은하는 저들이 하는 소리의 태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손에 쥔 스마트폰을 엿보고, 계속 엿들으며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결론을 말하자면─.
“─인생을 게임처럼 여기고 있는 놈들이구나.”
PKK단의 정체는 그러했다.
세상은 지금 정체를 알면 너무나 황당해지는 작자들에 의해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님, 알아냈습니다.”
“누구인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이십오가 돌아왔다.
은하는 조사 결과를 들었다.
“전아연의 대표 백진호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아봐야겠지만, 백진호인 건 확실합니다.”
“그럼 이 판은 저놈들과 전아연이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던 건가. 무슨 이유로?”
은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자신은 누군가가 짠 판 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백진호의 등급은?”
“플래티넘이요.”
“그럼 내가 플래티넘이 짠 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건데…. 그럴 리 없지.”
“주인님, 등급이 뭔 상관….”
“전아연의 배후를 추적해봐.”
“네, 그렇게 할게요.”
PKK단도 수상하고.
전아연도 수상하다.
은하는 이십오에게 추적을 명했다.
이십오가 은하의 기분을 파악하고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PKK단 추적은 이쯤에서 그만하자. 이놈들의 배후는 창진이 형이 대신 해줄 테니까.
누가 이 판을 짠 것인가.
은하의 생각은 깊어졌다.
☆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 시간도 이제 2개월 정도 남았다.
이제는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배가 한껏 부푼 한서현은 행정관 일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흐름이 이상해.
하지만 클랜이 외부 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완전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
한서현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했다.
튼튼이의 태교에는 안 좋겠지만, 클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튼튼이에게 이해를 바라며.
그녀는 판도라클랜을 흔들고 있는 PKK단에 대해 주목했다.
그들은 순수 한국인이란 이름으로 단기간에 세력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꼭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였다.
놈들의 배후를 잡아내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야 할 일은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다.
상황의 원인과 배후를 추적하는 건 자신의 남편인 노은하가 움직이고 있었다.
괜히 은하가 추적하는 일에 자신도 끼어드는 것은 비효율적인 짓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은하가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줘야 해. 그게 내 역할이야.
한서현은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우선했다.
현재 상황은 외국인들이 침묵하고, 아인과 순수 한국인들이 싸우면서 불씨를 키우는 중이었다.
여론은 현재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론은 아인들에게 조금 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아인들도 폭력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으니, 여론의 호의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여론을 움직이긴 해야 하는데….”
재계그룹의 힘을 사용하면 잠시간 여론을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PKK단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회의적이었다.
필시 PKK단의 이미지가 추락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PKK단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대치하면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여론으로 PKK단을 공격하더라도 얻는 것은 없을 거야.
그 사람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야.
PKK단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한서현은 정공법을 포기했다.
한편으로 아인들도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이 아인들의 대표라고 말하며, PKK단과 싸우는 아인들이 문제였다.
전아연의 아인들.
“그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걸까. 기껏 좋아진 아인의 이미지를 지금 자신들이 망치고 있다는 걸.”
그녀의 입장에서 전아연의 행보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외국인들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면 올바른 시민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도와주러 나섰을 터였다.
하지만 전아연은 PKK단과 함께 일반인들까지 싸잡아 같은 놈들이라 욕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전아연이 일반인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지.
그것조차 시간문제였다.
PKK단을 해결한다 해도 문제야.
그렇게 되면 전아연의 기세는 더 심해지고 말 거야. 그러다가 문제나 일으키기나 할 테지.
결국 그녀가 해결해야 할 단체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PKK단과 전아연.
쌍으로 트롤짓을 하고 있는 놈들을 처리해야 했다.
“양비론으로 갈까…. 아니야, 이건 좋은 수가 아니야.”
둘 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양비론.
그것은 악수였다.
여론의 관심을 돌릴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아인에 대한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부에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을 없애버릴 수밖에 없어.
그렇게 해서 그들이 흥미를 잃고 해산하게 만들어야 해.
와해 공작을 벌인다.
난이도는 높아도 효과는 확실했다.
가닥을 잡은 한서현은 배를 만지며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전아연을 와해하는 방법은 쉬워. 이미 아인 사회는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어. 그러니 그 사이를 자극하기만 하면….”
전아연은 사상누각의 단체였다.
몇 년 전에 전아연이 전국적으로 주도한 운동이 계기가 되었다.
와해시키는 일은 편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그것을 위한 열쇠도 준비되어 있었다.
한서현은 수화기를 들었다.
“서나야. 내 집무실로 와줄래?”
[…후. 네, 언니.]그녀는 대뜸 진서나를 불렀다.
바로 옆방에서 한참 일하고 있었을 진서나가 터덜터덜 찾아왔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아직은 이게 편해요.”
“그래, 알았어. 일단 앉아.”
몇 년이 지났음에도.
진서나는 아직도 한서현을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낯가림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자신을 노은하의 아내로서 어렵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진서나는 혹시나 자신이 한서현의 권위를 침범하지 않을까 주의하고 있었다.
한서현은 조심성이 많은 진서나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비슷한 유형으로 샤키라도 자신의 사람으로 거두지 않았던가.
여하튼 한서현은 뜸을 들이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서나 네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어.”
“…은하도 그러더니, 언니까지도 저한테 일을 맡기려는 거예요? 아, 언니한테는 뭘 부탁해야 하지….”
진서나가 농담조로 말한다.
한서현은 피식 웃었다.
☆
“음, 그렇게 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저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진서나는 긴 고민 끝에 승낙했다.
한서현은 이로써 하나가 해결되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쯤 아기가 배를 찼다.
아기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머지는 이제 PKK단인데….”
진서나를 보내고.
한서현은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머리를 굴렸다.
달콤한 게 당겼다.
샤키라에게 지시해서 다과를 받은 그녀가 초콜릿을 하나 까먹었다.
당분을 섭취하자 머리가 굴러갔다.
“PKK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네. 내부 정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무너뜨리면 될 텐데….”
문득 한 가지 일화가 떠올랐다.
옛날, 미국에 흑인을 타도하자는 KKK단이란 것이 있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세력을 부풀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에게 척결의 대상이 되고 만 흑인들이 그들을 두려워했을 것은 당연지사.
이후에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와해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가관이었다.
“세상에 소속원들의 계급을 어디 판타지소설에나 나올 것 법한 걸로 짓고 말았으니…. 그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유치하게 논다는 소리나 듣게 되었다지.”
대표는 임페리얼 위저드.
간부는 드래곤.
간부 보좌직은 타이탄.
현장 실무자들은 사이클롭스.
그들의 조직 체계와 그들이 쓰는 괴상한 암호는 한 운동가에 의해서 라디오 방송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들의 공포를 샀던 KKK단은 어린아이들의 영웅 놀이에 나오는 악당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린아이에게조차 두려움을 사지 않게 된 것이다.
단원들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며,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단체를 탈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것처럼…. PKK단에게 그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달콤한 게 너무 당겼다.
한서현은 다과로 배를 채우면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졸렸다.
아기가 졸립다고 보채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소파에 쓰러졌다.
“─서현이 얘는 왜 여기에서 자고 있는 거야? 졸리면 내 방에 있는 침대에 가서 잠이라도 자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를 나갔다가 창문으로 들어온 은하는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올렸다.
예전에는 그대로 잠에서 깼으련만.
아이를 임신한 이후로 그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에 들고는 했다.
은하는 그녀를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로 데려가려고 했다.
“안 되겠다…. 서현이 집무실에도 침대를 마련해놔야지. 내가 그걸 왜 이제 생각했을까. 근데 이건 뭐지?”
그러던 그때였다.
은하는 한서현이 잠이 들기 전에 쓰고 있었을 종이를 발견했다.
탁자에 종이가 어질러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KKK단?”
“빠빠?”
“깡?”
한서현은 자신이 희망하던 상황이 설마 실제로 일어날 줄 몰랐다.
은하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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