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27
최근 일본의 정세가 불안했다.
카구야 츠키코는 그저 기분 탓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각에서 전한 소식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관리하는 거로도 내 힘에 벅찬 상황이야.
그러다 보니 규슈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될 수밖에 없어.
한 해가 시작되고 벌써 4차례.
후쿠오카, 가고시마, 나가사키 등 규슈 일대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그리고 오늘 미야자키에서 5번째 폭동이 발생한 것이다.
규슈 일대의 민심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땅이 너무 커.
홋카이도를 거의 포기하고서라도 나머지 지역을 지키는 데 힘썼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커.
내 몸이 버티지 못해.
당시.
일본은 각지에서 출몰한 몬스터가 육해공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아예 끊어버렸다.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일본인들은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오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해왔다.
그것이 큰 화가 되었다.
일본 대기의 마나는 그것을 토대로 일본 특유의 몬스터를 만들어냈다.
상대적으로 역사와 문화가 훼손된 한국의 몬스터는 국가적인 특성이 잘 반영되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그들은 민담과 설화에나 등장하던 몬스터들과 싸워야 했다.
중국도 우리랑 사정이 비슷해도, 걔네는 결국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막아냈었지.
이후에 항아가 두 명이나 나오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도 했고.
설녀, 누라리횬, 견야차 등등.
팔백만이 넘는 신이 살고 있다는 일본은 대재앙 이후 팔백만이 넘는 몬스터들로 득실거리게 되었다.
별의별 몬스터들이 다 나왔다.
아키하바라에서는 마법소녀라는, 문화적 특성에 바탕을 둔 그로테스크한 몬스터까지 튀어나왔다.
그래도 어찌어찌 물리쳤다.
일본은 국가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미친놈들도 많이 있었다.
최근에도 있었다.
“작년 이맘때였나. 미쳐도, 어떻게 좋아하는 캐릭터를 현실화하겠다고 집단 공유 의식 마법을 발동해서는 몬스터를 불러들이려 할 수 있지?”
카구야는 가장 최근에 겪은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일본의 수장이란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트럭형 몬스터에게 제 몸을 던져서 이세계에서 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자살 지망생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영령이란 것을 부르겠다며 사람들이 다 지나가는 대로변에서 편재를 일으키려고 하다니.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신기해하며 영상이나 찍어댔었다.
즉흥적으로 의식에 끼어들어서는 도원결의를 맺는 경우까지 있었다.
여하튼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안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보고서를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어찌 됐든 규슈의 폭동을 막으려면 왕실과 내각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행동을 보여줘야 해.
이걸 어떻게 하지?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일본은 왕실과 내각이 공존하는, 기묘한 정치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왕실은 정신적 상징 역할을 했고, 내각은 왕실의 위상을 등에 업고서 일본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구야는 왕실하고 내각의 중계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안정적인 구조였다.
실제로 성공적이기는 했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성공은 도쿄,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지역뿐만이란 것이었다.
규슈처럼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카구야나 왕실의 위상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상징 역할을 맡은 왕족들을 전역에 배치하기에는 수가 부족한 데다가, 신적 강하한 사람들을 끌어모아도 부족한 현실이니….
왕실은 후사 문제를 겪고 있었다.
현재 정당한 왕족으로서 인정받는 남자는 카구야의 남편뿐이었다.
신적 강하를 당한 왕족을 포함해도 남자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일본이 하렘을 합법으로 허용하고 있을 정도겠는가.
그럼에도 일본은 다음 세대를 이을 남성 왕족이 부족한 지경이었다.
이러다가는 왕실 규범을 위배하며 여성 왕족이 일왕이 될 상황이었다.
당연히도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을 각 지역에 상징으로 세워놓더라도, 모든 지역에 세울 수도 없었다.
혹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왕족을 상징으로 받은 지역의 경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왕족과 별개로, 그 지역 유지가 통치에 간섭하고 있는 실정이니…. 왕족의 비중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지역 유지의 권위가 세다면 그것도 문제야.”
한 차례 멸망 이후, 지역 관계가 장기간 단절된 탓으로, 지역 유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다이묘의 명맥을 잇는 유지들.
그들이 왕실의 편에 서면 좋아도, 반대일 경우는 상당히 골치 아팠다.
지금 규슈가 그러했다.
규슈 유지의 영향력이 너무 커.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격이 맞는 왕족을 보내면 거기가 또 문제가 될 테고….
돌려막기도 할 수 없는 상황.
카구야는 규슈에 터를 잡은 가문을 알아보았다.
왕족을 배치할 수 없으니 차선으로 다른 가문의 사람들을 밀어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명맥을 잇고 있는 가문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끌어들일 수 있는 가문이 호시노미야(星宮)인데…. 이 가문도 후사가 마땅히 없는 상황이구나.”
카구야의 고민은 깊어졌다.
결국 해결책을 내지 못한 그녀는 한국으로 가는 항공기에 올라타야 했다.
☆
제주도와 가장 인연이 있는 그룹은 동해그룹이다.
초대 회장 정지만의 지시에 의해 장남 일가 외 모든 일가가 제주도로 유배 아닌 퇴출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로 내려간 직계들은 그들이 가진 자본을 바탕으로 해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 너희가 지낼 장소는 내가 안내해줄게. 따라와.”
“형도 여기 내려올 정도면, 거기도 상황이 좋지 않나 보네요.”
제주도 서귀포시, 동해 호텔.
하백련과 클랜원들을 이끈 은하는 동해클랜 특별고문 정금전의 안내를 받았다.
동해그룹 직계이기도 한 정금전은 날이 선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가 은하의 말을 듣고는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말도 마라. 큰 피해는 없었다지만 당분간 데몬퍼스를 물리칠 때까지는 해운업 자체가 멈춰버렸으니 손해가 장난이 아니지. 그것 때문에 형이 나 보고 제주도로 내려가라더라.”
“왜요?”
“왜기는 왜야. 네가 온다고 하니까 너 접대해 주라잖아. 제길, 게임이나 편히 하고 싶은데 하지도 못하네. 그리고 한중일 정상 회담이 열리는 장소가 여기잖아. 대표자가 한 사람 나가 있어 줘야지.”
“일 열심히 하네요. 그런데 오늘은 세희 누나가 보이지 않네요? 맨날 형 곁에서 비서를 하고 있더니.”
“국가수반들이 온다면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중이야.”
정금전이 투덜거렸다.
은하는 방으로 안내하는 그로부터 몇 가지 정보를 들었다.
덕분에 그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카구야 일행은 지금 막 도착했고, 항아 일행은 하루 전에 먼저 와서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임가을도 와 있다고 하고.
은하는 짐을 정리하는 대로 일단 임가을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때 정금전이 말을 덧붙였다.
“가급적 중국인들은 피하도록 해. 어제 오자마자 술 파티를 벌이면서 거나하게 놀더라. 그놈들, 술 하나는 장난이 아니야.”
“술 때문에 피하라고요?”
“아니, 술 마시면서 노는 걸 보니 아주 괴팍해 보이더라고. 한 사람, 같은 사람이 있으니 그놈은 특히 조심하고. 어지간히 힘자랑이 하고 싶은가 보더라.”
은하는 그가 누구를 언급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팔방장군 라오 첸이리라.
이전 삶에서도 그는 힘을 자랑하러 이도진과 일본의 십이신장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는 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응해주지 않아서 투덜거리며 돌아갔었지.
얽혀봤자 좋을 것도 없을 테니까 무시해야지.
은하는 다짐했다.
그러고는 옆에서 졸졸 따라 걷는 하백련의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그녀가 뚱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뭐예요?” “괜히 다른 나라 플레이어들에게 호기심 보이지 말고, 회담 동안에는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아저씨가 제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고요?”
“난 그럴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됐네요. 저도 떨어져 있을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머리에서 손 떼세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요?”
“그래, 알았다.”
올해로 15세가 된 하백련.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대꾸했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그러던 그는 손을 거두고 전방을 주시했다.
이것 봐라?
누군가 저 앞에서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은하를 비롯한 판도라 클랜원들은 기운을 느끼고 멈칫했다.
“어머, 언니. 지금 누가 힘을 풀풀 흘리면서 오는데?”
“꼭 나 잡아줍쇼 하는 것 같네.”
쌍둥이가 수군거렸다.
정작 그녀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나는 이 정도로 강하다.
어디 너희들 중에 이 정도로 강한 사람이 존재하는가.
기운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클랜로드, 어떻게 할 거예요?”
“클랜로드도 질질 흘려야죠, 얼른.”
쌍둥이가 보챘다.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햄퍼 웨이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러니 엮이기는 더욱 싫었다.
하지만 자신은 하백련을 대동하고 있었다.
미래에 선녀가 되는 사람을 두고서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권위에 대한 훼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는 전방을 향해 과감히 힘을 발휘했다.
네가 아무리 기를 쓴대도, 예경의 섭리는 어떻게 하지 못할 거다.
제법 묵직한 기운이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손으로 쳐내듯이 밀려드는 기운을 몰아냈다.
그러자 상대가 용을 썼다.
조금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이 곧장 날아들었다.
그마저도 햄퍼 웨이브의 섭리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어쭈? 한 놈이 안 되니까, 이제는 두 놈이 힘을 합치려고 들어?”
이내 은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한 사람이 더 가세한 것이다.
보아하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자존심 싸움에서 질 것 같으니 냉큼 힘을 실어준 듯했다.
은하는 손을 한 번 더 휘저었다.
햄퍼 웨이브
그것으로 끝이었다.
새로운 파문이 두 사람의 기운을 밀어냈다.
그때쯤 은하는 전방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방금 누가 마법을 사용한 거냐? 낌새로 보아하니 컨트롤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얼굴 좀 구경해보자.”
“라오 첸, 자중하십시오. 타국에서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그러는 지도 나랑 같이 했으면서.”
거의 웃통을 까는 복장을 한 남자.
대머리에, 근육의 거한의 이름은 라오 첸이었다.
그리고 서양식 칼을 허리에 차고, 중국식 도복을 입은 남자의 이름은 샤오랑이었다.
그들 모두 항아 하오 렌이 거느린 팔방장군들이었다.
물론, 은하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통역기를 데려온 것이다.
“링, 린. 쟤네가 뭐라는 거야?”
“클랜로드 욕하는데요?” “응, 욕하는 거 맞아요!”
“그럴 것 같았어.”
은하는 피식 웃었다.
굳이 해석이 필요 없었다.
라오 첸의 눈빛이 뜨거웠다.
필시 자신의 마나를 몰아낸 사람이 궁금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은하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그가 은하에게 다가왔다.
“너냐?”
“그래, 나다.”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두 사람은 상대의 언어를 몰라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라오 첸이 손을 내밀었다.
“이번 일정, 재미있겠네. 남자 놈이 번지르르하게 꾸민 걸 보면 아마도 한국인이겠고, 그럼 네가 십이좌란 놈이겠지.”
“얘가 뭐라는 거야?”
“클랜로드가 취향이라네요?” “똑바로 통역해.” “클랜로드가 참 예쁘다네요?”
“내가 말을 말지.”
은하는 손을 맞잡았다.
라오 첸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라오 첸이다.”
“노은하.”
“노은하, 네 이름 기억해두마.”
“기억하지 마, 대머리야.”
손아귀 힘이 꽤 셌다.
은하도 지지 않았다.
라오 첸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두 사람은 샤오랑이 중재할 때까지 계속 힘 싸움을 벌였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꼬마는 뭐지? 머리칼이 꽤 하얀 것 같은데….”
“라오 첸,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이번에 한국의 선녀가 데려온다는 후계자겠죠.” “오, 얘가 걔야? 어리다 들었는데 꽤 어리네?”
“항아님들도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군요.”
“예쁘게 생겼네.”
라오 첸의 눈이 은하의 옆에 있던 하백련에게 향했다.
눈을 마주친 하백련이 움찔했다.
그녀의 태도가 어떻든, 라오 첸은 스스럼없이 손을 뻗었다.
“라오 첸! 지금 뭐하는 겁니까!?”
“꼬마야, 반갑다. 나는 라오…!!”
웜 홀
샤오랑이 깜짝 놀라며 말릴 때.
은하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에 백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라오 첸의 손이 갈라진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 손이 은하의 발치로 나왔다.
은하는 곧장 손을 밟았다.
“이게 어디서 얘한테 손을 대려고 그러는 거야?”
“끄윽!! 너이씨, 뭐하는…!”
“뭐라는지도 모르겠네.”
외교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은하는 적당한 선에서 라오 첸의 손을 짓밟았다.
마음 같아서는 분질러버리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편 라오 첸이 황급히 공간 속에 집어넣은 손을 빼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은하는 그의 감정을 읽어냈다.
이놈 이거, 설마…?
은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의 짐작이 맞는다는 듯, 라오 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걸로 너하고 대련할 수가 있는 명분을 만들었구만.” “라오 첸, 당신…. 그걸 제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뭐 어때. 어차피 이놈은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 거 아니야. 뭐…, 이놈도 대강 눈치챈 듯하지만.”
“…….”
“내 잘못은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상처 입은 자존심은 회복해야겠다. 너, 나랑 한 판 붙….”
“링, 린. 얼른 내 말을 전해. ‘그래, 용서해주겠다고.'”
“”好的, 会原谅你.””
이전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에게 얼마나 시달렸던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가.
은하는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얼른 쌍둥이 자매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쌍둥이 자매가 키득거리며 재빨리 라오 첸의 말을 가로챘다.
“너….”
“사과 잘 받았다. 가자, 백련아.”
“네? 네….”
“야, 너! 거기서!”
“그만하세요, 라오 첸. 안 됐지만 당신이 진 겁니다.”
은하는 대인배다운 얼굴을 하고서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라오 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더는 유치한 수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다만 은하의 등을 뚫어져라 노려볼 뿐이었다.
“백련이 얘가 어떤 사람인데, 근데 지가 머리를 만지려 해?”
“…아저씨는 그럼 왜 만져요?”
“네 보호자니까.”
“그럼 만져도 되는 거예요?”
“만져도 되지?”
“…생각해볼게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차린 거예요? 저 사람이 대련을 신청하려던 거요.”
“원래 사람은 일이 잘못되는 때는 직감적으로 눈치채는 법이야. 내가 너보다 얼마나 살았는데?”
“흥, 12살밖에 차이가 안 나면서.”
“이제는 그것보다 더 많은걸?”
“네?”
“그런 게 있어.”
라오 첸의 시선을 무시하며.
은하는 클랜원들과 키득거리면서 복도를 지나갔다.
☆
일본의 이명은 특이했다.
예를 들어, 라고 쓰고, 라고 읽는다.
이명을 읽는 방식이 특이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보통 라고 표기하고는 했다.
한편 그 이명은 일본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히키가야 군은 예전, 아카데미 학생으로 재학한 시기에 한국인과 대련을 했다고 그랬나요?”
“…네, 그런 일도 있었죠.”
몇 년 전, 그 이름을 계승해 현재 십이신장의 자리에 오른 히키가야 하야토도 토벌 작전에 참가했다.
카구야를 호텔로 안내한 그는 곧장 선착장으로 향하려고 했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배가 정시에 토벌 작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을 이송할 예정이었다.
그때, 그와 같이 작전에 참여하는 여성이 말을 걸었다.
“듣기로는 그때 패배를 경험하고, 뼈를 깎는 훈련으로 십이신장까지 되었다고 하던데…. 만약 그 사람과 다시 싸운다면 이길 것 같나요?”
이라 쓰고, 라 읽는다.
십이신장 카시와기 세나가 물었다.
히키가야 하야토는 고참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카구야님께서 조금 전에 저한테 그 사람의 근황을 알려주셨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설마 그 사람도 여기에 와 있는 건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인연인가 보네요. 히키가야 군과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실로 엮인 관계인 것 아닐까요? 무스비요.”
“그런지도 모르죠.”
인연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히키가야 하야토는 동의했다.
그때쯤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히키가야는 무의식적으로 그들 중 노은하를 찾으려고 했다.
물론, 그는 없었다.
애초 그는 카구야에게 그 남자가 선녀의 후계자의 호위를 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곳에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히키가야 군.”
“네, 님.”
“질문으로 돌아와서, 어때요? 이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요?”
가 재차 물었다.
그 질문은 마치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어 중 어느 쪽이 더 강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히키가야 하야토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점잖은 성격의 그녀지만, 다른 나라의 플레이어들을 만나니 자연스럽게 상대의 실력에 대해서 궁금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사람은 일찍이 한국의 플레이어하고 대련한 적이 있는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질 겁니다.”
히키가야 하야토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시와기가 어딘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히키가야 군은 강해졌잖아요.”
“사람들은 제가 그놈과 대련해서 근소한 차이로 진 걸로 알겠지만, 사실 그때 저는 처참하게 졌습니다. 아마 그놈의 힘을 절반도 끌어내지 못했을 거예요.”
“말도 안 돼….”
“그놈은 괴물입니다. 그놈한테서 이길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진심이었다.
히키가야 하야토는 일본에서 그와 대련을 벌였을 때 실력 차이를 크게 절감했다.
노은하.
아니, 이제는 .
그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동안 그는 상대와 검을 겨누면 상대의 전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놈의 전력을 가늠하려고 하면 마치 맑고 깨끗한 수면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본디 물이 맑을수록 바닥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니까.
노은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히키가야 군이 아까부터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거군요. 일본에서는 나이 또래 플레이어 중 적수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여기에 너무나 높은 벽이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런 것도 있죠.”
“괜찮아요. 히키가야 군은 더욱더 강해질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십이신장들에게 부탁해서 훈련을 도와달라 할게요.”
“감사합니다.”
물론, 히키가야는 다른 면으로도 노은하를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카시와기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놈이 내가 좋아한 사람과 결혼해 슬하에 자식을 두었다는 소리를…. 그것도 서현 씨를 두고서도 아내를 두 명이나 더 들였다니….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진 채로.
히키가야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토벌 작전이 시작되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