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31
회귀 전, 한중일 토벌 작전.
15세가 된 하백련은 카구야에게 의 부작용에 대해 들었다.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는 방에 틀어박혔다.
“나는, 정말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꿈꾸면 안 되는 거구나.”
은하와 안개꽃 파티원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해줄 수 없었다.
말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어두운 방에서 홀로 침대에 누워 자신의 불행을 곱씹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혼자인 거구나.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잃었고.
어머니도 잃고 말았다.
이제 자신과 피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막연히 언젠가 자신도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며 자신과 피가 연결된 가족을 꾸릴 것이라 생각했건만.
원망만 가득한 은 자신의 사소한 바람마저 빼앗아가버렸다.
“혼자는, 싫어….”
결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할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게 될 사람이 자식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이기적이다.
결국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은 그 사람을 놔주어야 했다.
그러니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하고마음을 나누는 것도 포기해야 했고,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역시 포기해야 했다.
꾸욱
하백련은 베개를 껴안았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서는 소리를 참으며 울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너무 미웠고.
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는 결국 선녀로 살다, 선녀로서 죽게 되는 거구나.
내 행복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드넓은 우주 한복판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듯한 느낌.
이 기분을 평생 느껴야 하리라.
☆
플레이어들에게 크라켄의 다리를 운반해줄 것을 부탁하며.
은하는 동해 호텔로 돌아갔다.
“어서 와요, 판도라 클랜로드! 혹시 어디 다친 데는 없죠? 어디 아프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시급히 조치를 취해드릴 테니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바로 임가을이었다.
그녀가 평소 모습과 다르게 아예 두 팔을 벌리고 은하를 안아주었다.
얼떨결에 임가을과 포옹을 하게 된 은하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이 사람…, 아주 자랑하고 싶어서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거구만.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 주위에 마침 카구야도 있고, 중국의 국무총리도 있었다.
그밖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은하를 보기 위해서인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은하는 그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혀를 내둘렀다.
“잘했어, 얘.”
“그럼 판도라클랜 좀 잘 봐주시죠. 뭐라도 챙겨주시든가요.”
“그건 생각해볼게.”
그때 임가을이 속삭였다.
은하도 목소리를 낮춰 대꾸했다.
이내 은하는 그녀의 포옹을 풀고는 하백련을 찾았다.
응? 백련이 얼굴이 왜 저러지?
이정현 옆에 서 있는 하백련.
그녀가 살며시 박수를 하는 한편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은하는 그녀가 우울해하고 있는 걸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전 삶에서도 이랬었는데….
옆에 이정현이 있었는데도 기분이 안 좋아질 만한 일이 있었던 건가?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생각했더니.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던 듯했다.
은하는 하백련에게 다가갔다.
“아, 아저씨.” “무슨 일 있었어?”
“제가요? 아니요, 없었어요.” “…그래?”
하백련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렇게 세차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부정하는데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괜히 그녀를 몰아세웠다가는 되레 울릴 것 같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데 괜히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은하는 한 발 물러서야 했다.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 내가 꼭 해결해줄 테니까.” “…그런 일 없어요. 아저씨도 이제 돌아왔으니 저는 방으로 가볼게요. 카구야님이랑 항아님들이랑 있어서, 좀 쉬고 싶거든요.”
“긴장이 됐을 만도 하지. 푹 쉬어. 이정현 특무국장님, 백련이를 방까지 잘 데려다주세요.” “그래, 걱정 마라.”
자신의 감정을 들켰기 때문인지.
하백련이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은하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씁쓸해했다.
그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백련이는 나한테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자신이 믿음직하지 못한 걸까.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은하는 주눅이 들었다.
그때 임가을이 말을 걸었다.
“백련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마렴.”
“선녀님은 백련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시는 거죠? 뭔데요?”
“이건 말해줄 수 없어. 말해준대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백련이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이야. 너는 그냥 백련이가 털고 일어나면 백련이 기분을 풀어줄 준비나 하고 있으렴.”
임가을은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려주려 하지 않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래서 좀 더 나중에 알려주려고 하고 있었던 건데….”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임가을이 자리를 떠났다.
은하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백련이가 뭘 알게 된 건가?
뭘 알게 돼서 저러는 거지?
내가 크라켄을 토벌하러 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은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의실에 있던 한국인들을 찾았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
그들이 홱 고개를 돌렸다.
말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노은하 플레이어. 아니지, 이제는 이라 불러야 하는 건가?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오늘 전투는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카구야님.”
이번에는 카구야가 다가왔다.
10년 전에 만났던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외모의 변화가 없었다.
은하는 그녀와 악수했다.
“서현이랑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네. 그럼 나하고 셋이서 밥을 먹어도 됐을 텐데….”
“어쩔 수 없죠. 서현이는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러게. 아, 서현이를 꼭 닮았을 아이를 직접 보고 싶었는데 정말로 아쉽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카구야는 은하와 재회했을 때부터 연신 한서현의 이름을 불러댔다.
은하가 한서현과 노유성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는 귀엽다면서 탄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만큼 그녀는 한서현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따 시간이 되면 영상 통화라도 시켜줘야지.
은하가 알기로, 한서현은 카구야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멀어, 통신이 잘 연결되지 않고는 했다.
기껏해야 문자나 전화를 주고받지, 영상 통화를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카구야가 한국에 왔으니, 통신이 불안정한 환경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은하는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을 조금 이따가 실행해보기로 했다.
“근데 있지.” “네.”
“옛날에 나한테 하렘을 차리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니?” “…….” “서현이가 워낙에 예쁘기도 하고, 그래서 서현이랑 이어지면 하렘은 당연히 안 차릴 줄 알았지. 그런데 서현이랑 결혼한 이후로도 아내를 두 명이나 더 들이다니….” “…….”
“일본은 하렘이 합법인데, 이참에 일본으로 오는 것은 어떠니? 네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내가 돌아갈 때 커다란 캐리어에 넣어서 몰래 데려갈 수 있을 텐데. 이후에 선녀님이 뭐라고 항의해도, 이미 너는 일본에 있는데 어쩌겠니?”
“하하….”
카구야가 게슴츠레한 눈을 했다.
그녀가 장난으로 스카우트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은하는 이제는 마냥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그녀에게 장담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장을 쥐어야 하나?
젠장….
자신은 10년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입을 꽉 닫아버리고 싶었다.
미래는 속단해서는 안 됐었다.
그런 은하의 심정을 읽은 것인지, 카구야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세 사람을 아내로 들인 거 정말 축하해. 그래도 아내가 많다고, 네가 하렘을 차리는 걸 허락해줬을 서현이 소박은 맞히지 말고.” “당연히 그래야죠. 걱정 안 하셔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에휴, 서현이가 너 때문에 속을 엄청 썩였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내가 괜찮은 일본인이랑 서현이를 결혼시키는 거였는데…. 한국 말에 그런 말이 있다지?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하….”
은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그런 말도 있었다.
힘들 때 웃는 게 1류라고.
그는 어떻게든 웃음으로 무마했다.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네? 뭐가요?”
“꼬마 선녀 말이야. 괜히 나 때문에 아직 알아선 안 될 소리를 듣게 됐거든.”
“…카구야님이 백련이한테 뭐라고 말한 거였어요?” “어머, 얘 좀 봐? 꼬마 선녀한테 해코지라도 했을까봐 날 위협하려고 그러는 거니?”
그러던 중, 카구야가 꺼낸 말에.
은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카구야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살며시 언짢은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는 일본의 정상이었다.
그녀가 은하를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기는 했어도, 자신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동을 좋게 여길 리 없었다.
은하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선을 봐가면서 카구야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은하는 곧장 사과를 표했다.
“무례를 보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차기 선녀님을 비호하는 사람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해서요.”
물론 은하도 마냥 사과를 표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역할을 자각해야 했다.
노은하는 카구야에게서 그런 태도를 드러내서는 안 됐지만, 노은하는 오직 하백련을 지킬 뿐이었다.
“그래서 카구야에게 이런 식으로 날이 선 반응을 보인다라…. 역할에 충실하기는 하더라도 사람을 봐가는 유도리(ゆとり)도 보일 줄 알아야지. 그래, 나도 꼬마 선녀한테 잘못한 게 있으니까 넘어갈게.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
“네, 카구야님. 그래서 카구야님은 차기 선녀님한테 무슨 말을 한 건가요?”
“음, 그게 있지…. 너희 선녀님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말해도 되나….”
“카구야님.”
“응, 뭐니?”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는데요.”
“무슨 말?”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
“아, 뭔데 그러니?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얼른 말 안 해?”
카구야가 성화를 냈다.
잠시 후, 은하는 카구야로부터 일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
의 기프트를 가지는 사람은 아이를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가지지 못한다.
카구야에게 이야기를 들은 은하도 그것을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회귀 전에도 의 소유자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은 한 번도 듣지 못했지.
옆나라 일본만 해도 그랬다.
카구야는 일왕의 아내로 있으면서, 한 번도 임신하지 않았다.
마나를 편산시키는 의 힘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는 그 이야기를 별다른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15세가 된 하백련이, 당사자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백련이가 우울해할 만도 하네.
나라도 누가 갑자기 너는 아이를 가지지 못할 거라는 소리를 들으면 황당하고, 충격이었겠지.
은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예외가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니 회귀 전에 자신이었다면, 은하는 하백련이 느꼈을 아픔을 잘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면 어떤가.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한 법인데.
필시 회귀 전에 자신이 하백련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녀로부터 크게 화를 샀을 것이다.
그러나─.
“─아, 은하야. 무슨 일이냐?”
이번 삶에는 달랐다.
은하는 자신을 닮은 아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아이를 가지지 못할 거라는 말이 그녀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은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바닷가에서 벌이는 회식도 팽개치고 하백련을 만나러 온 것이다.
“백련이 안에 있죠? 다들 나가서 바비큐를 하면서 놀고 있는데, 얘가 몸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아, 그게 있지…. 아픈 건 아니고 기운이 없는 건데…. 아, 뭐라 하지. 백련이가 털고 일어나는 걸….” “카구야님한테 다 들었으니 그렇게 얼버무리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들어가게 해주세요.”
“끙…. 뭐 어떻게 하려고?”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요.”
“그거 내 것 아니었냐?” “제가 설마 특무국장님이 먹을 걸 가져왔겠어요?”
“그렇지, 넌 그런 놈이었지….”
“고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밖에 나가보세요. 백련이는 제가 돌보고 있을 테니까요.”
“오, 그래? 고맙다. 그럼 난 진짜 고기 먹으러 간다?”
“네, 가세요.”
은하는 이정현을 내쫓았다.
이정현은 바비큐를 먹을 생각으로 희희낙락거렸다.
보나마나 하백련을 버리고 왔다며 임가을에게 혼이 날 게 뻔했다.
“저 사람도 은근 허당이야. 백련아, 나 들어갈게.”
은하는 혀를 쯧 찼다.
그러고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애초 소리가 들려왔든 말든 무작정 들어갈 생각이었다.
은하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
방안이 어두웠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은하는 불을 켜려다가 멈췄다.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과 별빛으로 충분했다.
“백련아, 자?”
“…아니요.”
하백련은 침대 위에 있었다.
그녀는 옆으로 누운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은하가 근처에 걸터앉자, 그녀가 기운 없는 어조로 꿈틀거렸다.
“배고플 것 같아서 좀 가져왔어. 기운이 없어도 밥은 먹어야지. 자, 일어나서 얼른 먹어.” “배 안 고픈데….”
“안 고파도 먹어. 너 먹는 모습을 보려고 이렇게 온 거니까.”
“치.”
하백련인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었다.
눈시울도 조금 빨갰다.
은하는 모른 척 넘어갔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에서 고기를 집어주었다.
“자, 소시지 들어간다. 입 벌려.”
“제가 먹을게요. 포크 주세요.”
“안 돼, 내가 먹여줘야겠어. 오늘 내가 크라켄을 쓰러뜨린 보상은 이걸로 받아야겠어.”
“그게 뭔 소리래…. 흥, 아저씨는 진짜 유치하고 애 같네요.”
“그걸 이제 알았어? 얼른 먹어.”
“얌.”
하백련이 소시지를 받아먹는다.
은하는 그녀가 맛있게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큼지막한 오징어 다리를 그녀의 입가로 내밀었다.
“오징어 다리? 엄청 크네요.”
“크라켄이 죽으면서 남긴 다리야.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한 번 바비큐로 구워본 거야.” “몬스터 고기는 맛없다는데….”
“한 번 먹어봐. 의외로 맛있더라.” “으….” “나 못 믿어?”
“…조금만 믿죠. 완전히 믿는 건 아니고요.”
“그럼 조금만 먹어봐.”
“그게 왜 이렇게 되는…웁…. 응?”
하백련이 입을 벌린 순간.
은하는 대뜸 그녀의 입안으로 노릇노릇 구운 오징어 다리를 넣었다.
오징어 다리가 워낙에 컸다.
하백련은 치아로 다리를 자르고는 나머지를 접시 위에 퉤 뱉었다.
“이렇게 막 주면 어떡해요?” “어때? 맛있지?”
“생각보다 괜찮네요.”
“크라켄은 좋은 식량이었던 거지. 중국의 플레이어가 가져온 버터가 좋은 거라고 하기도 하더라고. 아, 지금 일본의 플레이어가 이 다리로 타코야끼를 만든다고 하더라?” “타코야끼요? 그게 뭐예요?”
“타코가 문어란 뜻인데….” “그럼 문어 다리가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데몬퍼스는 마석 이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거든. 그래서 오징어로 대체한 거라는데…. 그냥 넘어가자. 자, 하나 더 먹어.”
“얌.”
이제는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은하는 흡족했다.
생각해보면 이번 삶에서 하백련과 이렇게 지낸 적이 없었다.
은하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카구야님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네가 왜 기운이 없던 건지.”
“아….”
이윽고 은하는 그녀를 만나러 온 목적을 말했다.
하백련이 흠칫했다.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체념한 듯한 어조.
목소리에 물기가 차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털어내려고 하지만 선뜻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은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잘 될 것이라면서 위로해줄 수는 없었다.
그런 위로는 하나마나였다.
“─내가 몇십 년이 넘도록 살면서, 10년 전에야 느낀 게 뭔지 알아?”
“…몇십 년은 뭐예요? 아저씨 나이 제가 다 아는데.” “아무튼 들어봐.”
“네, 들어는 볼게요.”
대신 은하는 그녀에게 위로가 아닌 확신을 주기로 했다.
10년 전에 깨달은 확신이었다.
은하는 일본에서 한서현을 구하며, 지금까지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나한테는 불가능한 게 없어.” “네?”
“내가 못하는 건 없다고. 넌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는 걸 성공시킨 걸 봤을 거 아니야.” “그래서요?”
“그런 내가 가능하다고 말해줄게. 너, 아이 가질 수 있어.” “네? 지금 장난해요?”
“얘가 못 믿네. 걱정 마. 어떻게든 네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내가 반드시 방법을 찾아줄게.”
“…….”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다.
이 세상을 전부 뒤진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은하는 하백련을 위해서, 전세계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방법을 찾아줄 생각이었다.
“그러니 아직 결혼도 안 했으면서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란 소리야. 너는 아직 어려. 그걸 걱정하기에는 이르다고.”
“…….”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고 기다리고 있어줘. 내가 꼭 방법을 찾아줄 테니까.”
어떤 놈이 하백련을 데려갈 건지 잘 모르겠지만.
먼 미래에, 은하는 자신이 그랬듯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니─.
“─그건 네 걱정이 아니야. 앞으로 내가 할 걱정이지. 너는 나만 믿고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거야. 알았지?”
“왜 제 일인데…. 아저씨가 책임을 지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러면 안 돼?”
하백련이 묻는다.
은하는 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물음에 답하려면 제일 먼저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청맞게 웃으며 넘겼다.
은하는 마지막으로 하백련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정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흑색던전이라도 공략하지. 공략자는 어떤 소원이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루어준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는 그냥 알아.” “은아 언니가 미래를 본 거예요?”
“나는 그냥 안다니까.”
아직,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던전.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 4년 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연합이 을 공략하게 된다.
한 번 입장하면 공략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흑색던전에서 돌아온 그들은 세상이 깜짝 놀랄 정보를 공개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줄 수가 있는 힘을 준다고 했지.
대가 없는 .
혹은 보다 더 뛰어난 섭리.
바로 그것이었다.
은하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백련에게 단언할 수 있었다.
한편, 이전 삶에서 은하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남유럽 사람들이 공개한 정보 중에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치, 그게 뭐예요. 그렇게 말하면 안 부끄러워요?”
“얘가 진지하게 말해주니까 이렇게 받아치네?”
이번 삶을 살며 다짐했듯.
은하는 하백련을 위해서라면 다시 흑색던전을 공략할 생각도 있었다.
물론, 은하가 감춘 마음을 모르는 하백련은 웃음을 터뜨리기나 했다.
“고마워요, 오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백련은 아무런 근거 없이 무작정 자신을 믿으라는 노은하를 보면서 기분을 풀었다.
☆
회귀 전.
은하는 최근 들어 기운이 울적해진 하백련이 신경이 쓰였다.
그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결국 은하는 더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말해.”
“네?” “어떤 놈이냐고. 누가 너한테 무슨 소리를 했길래 그런 얼굴인 거야?”
“에이, 오빠. 진짜 아무런 일도 없었다니까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얼굴이 계속 그 모양이야?”
“…그냥, 혼자 삭히게 내버려두면 안 될까요?”
“그렇게 내버려두려 했는데, 이젠 안 되겠다. 내 옆에서 계속 그렇게 끙끙대고 있는데 어떡하라고.”
“…….”
그때 은하는 처음으로 하백련에게 짜증을 냈다.
사실 그도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다음에 내뱉은 말로 깨달았다.
“너랑 나는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네?”
의무적으로 그녀를 비호했건만.
어느새 은하의 일상에 하백련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이제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백련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은하는 그 말을 내뱉고 깜짝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다, 됐다. 없던 걸로 하자.”
자신답지 못했다.
어딘가 미친 게 아닐까.
은하는 그녀의 방을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하하하, 아, 뭐예요.”
“…….”
“가족, 가족인 거구나.”
하백련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은하는 그녀가 자신에게 이렇게나 크게 웃는 모습을 보여줄 줄 몰랐다.
은하는 눈을 깜빡거렸고.
하백련은 뭐가 좋다는 듯이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기나 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였던 게 아니었네요. 그렇죠. 저한테는 이제 오빠가 있었죠.”
“너 왜 웃는….”
“고마워요, 오빠.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어요.”
하백련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끝내 은하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그날 이후로 그녀의 얼굴이 다시 좋아졌다는 것이었고.
“오빠, 뭐해요?”
“…디바이스 정비.”
그때부터 은하에게 찰싹 달라붙어 연신 짹짹거렸다는 것이다.
그때, 은하는 아기 고양이 하나가 귀찮게 달라붙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싫지 않았다.
“─오빠는 어떤 사람을 좋아해요? 저는 어때요? 오빠가 하라는 대로 다할 수도 있는데….”
“쌍둥이들한테 오염되었나 보구나. 장난치지 마라.”
“치, 장난 아닌데. 그거 알아요?”
“뭘?”
“저 이제 조금만 있으면 법적으로 준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
“오빠가 주저할 게 없어진다고요. 미성년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쌍둥이 이것들이 진짜….”
그때는 설마 아기 고양이가 자라서 호랑이가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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