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36
경기 북부 개발 회의가 개최됐다.
회의에 참가하는 주체인 재계그룹 100위에 해당하는 회장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특이할 것은 회장이 몸소 회의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계자가 대리로 참석한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경기 북부 개발 회의는 참가만으로 실적이 나오는 회의니까 그런 건가.
승계 구조가 확실하게 굳혀 있는 재계그룹은 이번 회의로 인해 얻는 성과를 대리자들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은하는 대략 상황을 이해했다.
10대 재계그룹만 하더라도 현재 후계자의 나잇대가 20대 후반부터 포진해 있었다.
그들이 실적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가하고 있는 시기였다.
“매부,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매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나 알아?”
“아, 처형. 왔어요?”
“‘왔어요?’가 아니지. 내가 이번에 얼마나 도와줬는지 감안하면, 겨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니?” “도와줘서 고마워요, 정말. 나중에 뭐라도 해드릴게요.” “됐어, 서현이한테나 잘해.”
시리우스그룹에서도 회장이 아니라 한서연이 참석했다.
한서연은 은하를 보자마자 대뜸 화를 냈다.
이전 삶에서 시리우스그룹의 경우, 갤럭시그룹과 함께 민간이 주최해 경기 북부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사업을 확장할 자금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라면 거의 그러했다.
그런데 시리우스그룹은 이번에는 은하에게 설득당해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개발을 주도하는 게 낫다는 입장을 표하게 된 것이다.
한서연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면 애들이랑 결혼하기를 정말 잘했어.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앨리스, 루미너스그룹도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정하양, 이유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머, 차기 선녀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서연 언니. 그냥 편히 불러주세요.” “아, 그럴까요? 근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차기 선녀님이 힘들어지게 될 텐데…. 정말 그럴까요?”
“괜히 백련이 주무를 생각 말고, 정중하게 대하세요.”
“와, 매부 태도 봐. 내가 매부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줬는데, 진짜 이러기야?”
“크흠. 그거랑 이거랑 별개죠.”
” 맞네, 에휴.”
한편 회의에 참여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선녀, 고위급 관료, 100위권 재계그룹 회장들이었다.
원래 은하는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편법을 쓰면 가능했다.
백련이 호위사 자격으로 참석하면 되는 일이지.
자신도 회의에 참석하고 싶노라고.
은하는 하백련에게 부탁했었다.
이에 하백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선녀 임가을에게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임가을은 그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참여를 허락했고 말이다.
“저한테 고맙죠?” “그래, 고맙다.” “깡!”
“그럼 저한테도 잘해요.”
“그래, 잘해야지.”
한서연이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러 자리를 떠났다.
은하와 하백련 그리고 깡이.
두 사람과 한 마리만 남게 됐다.
그러자 하백련이 눈동자를 굴려서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꼭 고양이 눈처럼 생겼다.
은하는 그녀에게 감사해했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많네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전부 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인 거네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백련이 넌 100위 안에 드는 재계그룹 사람의 얼굴은 다 외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있다.
저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그녀를 애처럼 취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선 안 됐다.
그래서 은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두지 않고, 등 뒤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네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두도록 해. 오늘 모인 사람들 중에서 대다수는 너와 같은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아까 본 시리우스그룹의 후계자, 내 처형한테 의지해도 괜찮아. 근데 그 사람은 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뭐, 경계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제가 친해지면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누군가요?”
“그건 네가 파악해가야겠지만…. 일단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너를 대할 때 최대한 조심할 거야. 유도준 알지? 쟤는 그냥 마음대로 다루면 되고….”
은하는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그나마 마음 편히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하백련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차기 선녀님.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갤럭시 드론 사장인 최정훈이라 합니다. 오늘은 회장님의 대리자로 참석했지만요.”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은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백련은 의아해하면서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갤럭시그룹은 바로 선녀님의 부름에 응답할 거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판도라 클랜로드도 오랜만이야. 설마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될 줄…,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
“…그래, 오랜만이야.”
최정훈의 시선이 은하에게 향했다.
은하는 최정훈과 손을 맞잡았다.
최정훈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녀석 뭐지?
오늘따라 얼굴이 왜….
왜 이리 최정훈 얼굴을 보는 것이 기분이 나쁠까.
은하는 무언가 확신한 그를 보며 얼굴에서 표정을 풀 수 없었다.
“그럼 이따 보자. 회의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정말 기대되네. 그럼 저는 물러나 보겠습니다.”
최정훈이 손을 풀었다.
그가 하백련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섰다.
“엄청 매너 있는 사람이네요?” “매너는 있지. 하지만 속지 마.” “오빠 얼굴을 보면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표정 관리 좀 하세요.”
“끙….”
“선녀님이 그러셨어요.”
“뭐라고?” “저한테 얻을 게 있는 사람일수록 매너 있게 다가올 거라고요. 그러니 그 사람이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요.”
“선녀님이 말씀 잘하셨네.” “근데 오빠도 저한테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응?” “저한테 뭐 바라는 거 있어요?” “없어, 없다고, 없다니까.” “하긴, 오빠는 머리 굴리는 타입은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요. 흠, 그냥 내가 좋아서 잘해주는 거구나.”
“그래, 그걸 이제 알았냐?”
“아니지.” “…….”
하백련이 밝은 얼굴로 웃었다.
은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우리 엄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였죠?” “…….”
“응, 속지 말아야지.”
하백련이 키득거린다.
그게 아니라고.
은하는 말을 삼켰다.
말해봤자 들어주지도 않으리라.
은하는 포기하고, 하백련이 앉을 자리나 찾기로 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선녀 임가을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
“다음은 철도 부설에 대한 안건을 가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선녀정부와 재계그룹들의 기세는 비등비등했다.
어느 쪽이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회의를 이끌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회의의 핵심인 철도 부설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은하는 벽 앞에 서 있었다.
언제든 하백련을 지키는 자세로 선 그는 화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그러니 제발 좋은 쪽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
경기 북부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양측의 목표는 서로 같았다.
그렇기에 선녀정부와 재계그룹들은 서로를 견제할지언정, 어느 정도는 의견을 일치하고는 했다.
선녀정부는 가능한 민간이 운영할 사업권을 재계그룹들에게 넘겨줬고, 재계그룹들은 대가로 경기 북부를 선녀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능한 개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철도 부설권은 달랐다.
선녀정부는 넘기려고 하지 않았고, 철도를 부설할 수 있는 자금을 지닌 재계그룹들은 철도 부설권까지 얻길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회의 안건이 되니 회장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 자리는 어떻게 보면 재계그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만든 자리야. 회의는 회의고, 선녀정부가 멋대로 정책을 결정해도 되기는 해.
하지만 그렇게 됐다가는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지지를 잃게 되겠지.
선녀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철도 부설권을 회의 안건에 올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재계그룹의 목소리가 강해, 차마 안건에서 빼지 못했다.
대신 회의를 통해 철도 부설권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황을 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적인 판결은 국무 회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이 회의에서 나오는 반응이 여론과 국무 회의에 영향을 끼치게 될 터였다.
“논의는 그동안 계속 해왔으니까, 가결만 부탁드릴게요. 경기 북부에 사철을 놓는 것에 반대하는 분들은 지금 손을 들어주세요.”
임가을은 강단 있게 나섰다.
자신의 의지는 반대라고 표명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부터 손을 들도록 지시했다.
“네, 반대합니다.” “”””…….””””
사람들은 눈치를 살폈다.
그때, 한서연이 대뜸 손을 올렸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어 그녀의 의견에 동참했다.
경기 북부의 철도를 민간 기업이 운영한다고 해도, 이익을 얻게 되는 주체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철도 부설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참한 것이다.
또한 시리우스그룹과 관계를 맺은 그룹들도 손을 올렸다.
물론 전부 손을 들지는 않았다.
일부는 눈치를 보고 있기만 했다.
시리우스그룹의 눈초리를 받을 게 걱정이 되기는 해도, 눈앞에 있는 떡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정도는 예상했어.
비슷한 이치로 찬성하는 파벌에서 이탈자가 나올 거야.
오히려 한서연이 자기 파벌을 거의 끌어들였다는 게 놀라운 거지.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은하뿐만 아니라 은하의 편에 선 사람들도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파벌이 아닌 그룹도 최대한 끌어들인 것이다.
“40이군요.”
갤럭시그룹이 거느린 파벌 중에서 몇몇이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하여 절묘하게 투표가 가능한 100명 중에서 40명의 표수를 얻게 되었다.
임가을은 흠 소리를 냈다.
이내 그녀가 짧게 말했다.
“좋네요.”
“”””…….””””
과반수를 넘겼으면 좋았겠으나.
40도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임가을은 고개를 들어, 벽 앞에 선 은하에게 시선을 보냈다.
은하가 의도한 일임을 안 것이다.
알면 나중에 갚으시죠.
은하는 시선으로 대꾸했다.
임가을이 그 시선을 읽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는 회의를 이어갔다.
“그럼 찬성하는 분들도 이제 손을 올려주세요.”
“네, 찬성합니다.” “”””…….””””
이번에도 우수수.
임가을이 발언을 마치자마자, 곧장 최정훈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그의 파벌과 다른 그룹들이 움직였다.
갤럭시, KK, 삼라, 동해그룹.
그들이 거느린 파벌과 은하가 미처 포섭하지 못한 아군의 파벌 그룹이 찬성했다.
은하는 빠르게 손을 올린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37명이네요.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3명이 부족한데, 찬성하는 사람은 더 없는 거죠? 나중에 다른 소리는 말아줬으면 좋겠는데요.”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3표 차이가 어디인가.
은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편을 든 사람들이 찬성하는 사람들을 회유한 결과였다.
다들 정말 수고했어.
회의가 끝나는 대로 저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줘야지.
저 사람들 그룹 이름도 기억하고.
한서연, 유도준, 이유천, 정하양의 아버지 정석훈.
은하는 네 사람이 너무 믿음직하게 보였다.
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저도 찬성합니다.”
“”””……!!””””
임가을이 가결을 마치려는 그때.
별안간 누가 입을 열었다.
이내 그가 손을 들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우수수 손을 들었다.
…뭐?
아니, 왜….
은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파인그룹도 찬성을 표합니다.”
파인그룹의 회장 장석영.
중립파의 필두.
그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회의에서는 기권을 표하기만 하던 남자가 한쪽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파인그룹과 지금 손을 든 분들의 표까지 더해지면…. 49네요.”
“하하, 아슬아슬했군요.”
40:49.
기권 11.
은하가 속으로 경악한 가운데.
임가을이 떨떠름한 어조로 말하고.
최정훈은 저 혼자 박수했다.
☆
중립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어느 편에도 거들지 않고, 가만히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지.
그건 우유부단한 거지.
파인그룹의 회장 장석영.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립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중립이란 균형을 추구하며 이익을 얻는 상태를 뜻한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서 중립을 취하는 이유는 그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인 거지.
파인그룹은 파인톡을 필두로 하여 IT업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파인그룹이 정부의 정책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파인그룹의 태생이 단순히 IT 개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석영은 IT에 미쳐 있다.
자신의 분야에 간섭하지 않는 한, 장석영은 선녀정부와 재계그룹과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편견이었다.
하지만 장석영은 사실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노련했다.
이전까지는 1세대의 세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많은 회장들과 붙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지.
10대 재계그룹 중에 파인그룹은 가장 늦게 출범했다.
20대 중반에 집안의 지원을 받아 IT기업을 세운 장석영은 제일 먼저 플레이어 라이브러리 사업에 착수해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다.
당시 10대 재계그룹의 회장들은 통신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들은 당장 먹고 살 수가 있는 식품과 군수물자에 주력했다.
반면 장석영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언젠가 통신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 확신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대적하지 않아서, 파인그룹은 선녀정부하고 재계그룹 어느 쪽에도 견제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중립을 표한 파인그룹은 많은 이익을 얻었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장석영이 예견한 세상이 찾아왔다.
또한 1세대 회장들이 은퇴를 하며, 자연히 2세대 회장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긴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장석영은 그들로부터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나아가 찬성파든 반대파든.
그들은 자신을 회유하거나, 혹은 자신이 상대편에 넘어가지 못하게 각종 이권을 챙겨주고는 했다.
선녀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녀정부도 자신이 중립을 지키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재계그룹의 입장이 서로 비등하다.
내가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주느냐 그것에 따라 전세가 역전되는 건가.
재계그룹의 힘이 강한 세상이라면, 그들 사이에서 줄을 타며 중립으로 이권을 누리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선녀정부하고 재계그룹의 힘이 서로 균등해졌다.
나아가 재계그룹은 의견이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주체가 과연 누구겠는가.
중립파지.
중립파인 파인그룹이었다.
졸지에 파인그룹은 세상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야말로 중립파에게는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갤럭시그룹의 후계자는 그걸 알고 바로 나를 찾아왔던 거겠지.
이내 장석영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이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비밀리에 찾아온 최정훈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었다.
‘파인그룹에서 힘을 빌려주신다면, 경기 북부 개발에 있어 통신 부문은 전부 파인그룹에게 맡기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제안은 아니구나. 너희가 사철을 얻든 말든, 결국 파인그룹이 수주를 따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제안드리는 겁니다. 만약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향후 북부 개발에 필요한 설비와 비용을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
재계그룹이 철도를 운영하든.
선녀정부가 철도를 운영하든.
어차피 통신 장비는 파인그룹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비 투자를 지원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최정훈의 제안은 구미가 당겼다.
장석영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편으로는 의문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갤럭시그룹의 힘이라면 다른 그룹의 파벌을 뺏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졸병 하나보다 장수 하나가 지닌 가치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장수만 잡는다면 밑에 있는 휘하 병사들도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기는 하지.’
‘그리고 생각했고요.’
‘뭘.’
‘재계그룹이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권위가 강성했다고 가정할 때, 과연 파인그룹은 어떻게 나왔을까 하고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장석영은 무언가 중얼거리는 그를 바라보면서 갤럭시그룹의 초대 회장 최윤한을 떠올렸다.
그도, 심계를 꾸밀 때에는 그렇게 웃고는 했었다.
그래서 섬뜩했다.
최윤한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됐다.
장석영은 경험적으로 최정훈 또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란 것을 직감했다.
‘혼잣말입니다. 하지만 가능하시면 질문에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나오셨겠습니까?’
‘내가 손을 들어주든 말든, 흐름은 이미 찬성하는 그룹에 가 있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중립을 유지한 채로 정부의 호의를 얻으면서….’
‘철도 부설권을 얻은 그룹과 경기 북부 개발에 착수하고, 또 반대한 그룹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면서 미래에 대비하려고 했을 테죠.’
‘…그렇겠지.’
‘그것이 노은하의 패인입니다.’
‘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려만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노은하의 패인이라고요. 혼잣말입니다. 잊어주세요.’
☆
의결이 가결되려고 한다.
임가을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그래도 9표 차이야.
9표 차이라면 부담이 있기는 해도 무시해도 될 수치이기는 해.
여기에 국민 여론을 움직이면….
설마 파인그룹이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낌새를 보아하니 갤럭시그룹하고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그녀는 진 것이다.
아니, 노은하가 진 것이다.
애가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네.
임가을은 노은하를 곁눈질했다.
가만히 서 있는 노은하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꼭 망부석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리라.
임가을은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녀 역시 예상외였으니 말이다.
“그럼 더 없는 거겠죠?”
임가을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일단 회의를 끝내고 청와대로 가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녀는 가결을 마치기로 했다.
바로 그때였다.
벌컥
난데없이 문이 열렸다.
가결을 끝내려던 임가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헉, 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
20대 중반의 여성.
그녀가 가슴을 꾹 누르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자리로 향했다.
그녀가 임가을과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로 다가갔다.
저건 YH그룹의 자리인데….
오늘 유일하게 참석한 그룹 중에서 의결권이 없었던 그룹.
YH그룹의 초대 회장이 별세해서 그룹 내부가 뒤숭숭했기 때문이다.
회장이 정해지지 않기도 했고.
부회장도 병세가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YH그룹의 대리자는 의결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참석자는 회의를 듣기나 하며 사전에 YH그룹이 제출한 요구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살피기만 했을 뿐이다.
“아, 아가씨. 여기는 어떻게….”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 YH그룹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성이 당당히 그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임가을은 저 여성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짓고,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YH그룹 회장을 대리해 참석하게 된 최예진이라고 합니다.”
최예진이 원래 앉아 있던 사람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자는 서류를 보고 깜짝 놀라서 임가을에게 가져다주었다.
임가을은 서류를 확인했다.
YH그룹에서 회장이 정해졌으며, 최예진을 현재 회장의 후계자로서 인정한다는 법적 문서였다.
“그럼 이제 저희 그룹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거겠죠?”
최예진의 등장으로.
회장은 어수선해졌다.
결과는 다시금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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