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37
시간을 되돌려, 몇 시간 전.
최예진은 후계자 생활에 적응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경기 북부 개발 회의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기 북부 개발 회의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내부를 다지는 게 중요해.
어차피 회의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발언권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거고.
그러니 신경 쓰지 말자.
초대 회장 최윤혜가 별세했다.
할머니가 별세하고, 변호사를 통해 직계들에게 공개된 유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여성의 경영 참여를 배제한 그녀가 최예진을 인정한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그로 인해 최예진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지금껏 그녀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성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예진은 날개를 얻은 듯 자신의 편에 설 사람들을 포섭하러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YH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라.
문화를 창출하고 판매하는 우리는 철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
한편 YH그룹도 경기 북부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회의에는 의결권을 갖고 있지 않은 대리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YH와 루미너스.
두 그룹의 근간은 문화였다.
따라서 두 그룹은 어느 그룹에서 철도를 소유하든, 그들이 얻게 될 이익에 크게 영향이 없었다.
그저 철도가 깔리는 도시 인근에 문화 시설을 짓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땅의 가치가 올라간다.
철도 부설권을 얻은 그룹들이 되레 러브콜을 보내야 할 판이었다.
굳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철도를 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우웅
그래서 최예진과 YH의 직계들은 회의가 있는 날에도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최예진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서현 언니?”
시리우스그룹의 직계 한서현.
그동안 자신을 뒤에서 지지해준, 은인과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상대도 자신에게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원해준 것이지만.
최예진은 그 점을 잊지 않았다.
“이 언니가 웬일이지?”
자신이 정식 후계자가 되었다는 건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축하 전화일 리는 없었다.
최예진은 의아해하면서 한서현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 잘 지내니?]“여보세요? 언니, 무슨 일이야?”
[네 힘이 필요해서.]“내 힘?”
[정확히 말하면 YH의 힘. 이제는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지 않니?]“…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언니는 진짜 못 속이겠다. 어떻게 알았대?”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깔려 있고, 그들이 모두 내 남편의 귀가 돼주고 있으니까.]“…….”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지만 최예진은 빠른 눈치를 통해 노은하가 가진 모종의 정보력으로 알아낸 것이라고 확인했다.
판도라클랜의 정보력이 그렇게나 대단하다던데…. 그렇긴 한가 보네.
그녀는 소리 없이 혀를 내둘렀다.
한서현의 전화로 알 수 있었다.
YH그룹의 힘이 아직 약한 이상, 한서현에게는 거역할 수가 없음을.
“그래서? 언니는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건데?”
[간단해. 지금 당장 회의에 참석해 내 남편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해.]“왜? 질 것 같대?”
[갤럭시그룹이 교묘하게 움직였어. 파인그룹의 합의를 얻어낸 것 같아. 나도 지금 그 정보를 듣고 너한테 이렇게 전화를 거는 거야.]“파인그룹이? 웬일이래. 걔네들은 회의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갤럭시그룹에서 눈이 회까닥 돌 제안이라도 했나 보지.]“흠,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게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근데 내가 언니를 도와주면 그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려나.”
[네 야망은 어디까지니?]“…….”
[단순히 YH그룹의 주인 자리에서 만족하는 건 아니지?]정재계 사람들은 대체로 한서연을 두려워하고는 했다.
하지만 최예진은 달랐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한서연보다 한서현을 더 두려워했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서현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숨기지 못하겠다.
최예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할머니가 못 이룬 염원, 이제 그건 내가 이뤄줘야지.”
[그래, 거기에서 만족하면 안 되지. 언젠가 시리우스의 적이 되겠지만, 그때까지 네 야망을 응원해줄게.]갤럭시그룹에서 파생된 YH그룹.
YH그룹의 염원은 창설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갤럭시그룹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최예진의 염원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갤럭시그룹이 자신들보다 못되기를 바랐다.
[갤럭시그룹의 허를 찌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지?]“당연하지. 정훈이 오빠의 콧대를 꺾어서, 내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퀵이라도 불러서 갈게.”
[그래, 끊을게.]그리하여.
몇 년간에 걸친 한서현의 안배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최예진의 등장이 판세를 바꾸었다.
정신을 차린 은하는 그저 두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해된 것은─.
“─YH그룹은 철도 부설에 있어서 반대합니다.”
최예진이 반대를 표했다는 것.
그로 인해 YH그룹의 파벌에 속한 사람들이 의견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권표를 던진 그룹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기권이 한 명도 없네요. 의견을 다시 정리해보면…. 반대가 51표가 되었군요.”
임가을이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은하의 귀에 탁 꽂혔다.
돌아가는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이 바란 상황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51:49.
우리가 이겼어.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최예진하고 그녀를 따르는 파벌이 딱 과반수를 넘는 숫자를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공지로 알려드릴게요. 그럼 이걸로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임가을이 신이 났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어서 찬물을 끼얹지 못하게, 당장 회의를 끝마쳤다.
“이건 말도 안 돼!”
“51:49라고!? 우리가 2표 차이로 이렇게 됐다는 거냐!?”
회장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임가을은 그들의 소리를 무시하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들어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패배자들이 지껄이는 소리였다.
“와, 서현이 진짜…. 이런 식으로 통쾌하게 의표를 찌를 줄이야. 진짜 매부는 아내 하나는 잘 뒀어.” “처형, 이게 어떻게 된….”
“어떻게 된 일이냐니. 그냥 보면 모르겠어? 매부가 그토록 바란 대로 상황이 흘러간 거지.”
회의장에 들어올 때 걸친 품위는 어디에 두고.
사람들이 고래고래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한서연은 그들을 보며 깔깔 웃고는 은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아는 눈치였다.
“서현이가 예진이를 설득해 여기에 오게 한 거겠지. 이런 짓을 할 애는 서현이밖에 없어.”
“서현이가요?”
“톡이라도 확인해봐. 서현이라면 너한테 뭐라도 보내지 않았을까?”
한서연이 옆구리를 건드렸다.
은하는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의에 참석해 있느라고 스마트폰 전원을 꺼놓고 있었다.
전원을 켰다.
한서현의 톡이 와 있었다.
「♥서현 마님♥」:
이십오라는 사람이 정보를 보냈어. 갤럭시랑 파인이 결탁했나 봐. (오후 01:53)
지원군을 보내줄게.(오후 2:02)
다 끝났니?(오후 4:35)
걱정이 묻어나는 문자였다.
은하는 그녀가 보낸 문자를 보고는 얼굴이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은하는 그녀에게 파인톡을 보내며 회의가 잘 끝났다고 전달했다.
서현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고마워, 정말.
사랑스러워 죽겠다.
얼른 한서현이 보고 싶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런 은하의 감정을 읽은 것인지.
“어머, 얘 좀 봐? 좋니? 내 동생이 그렇게 좋아? 얼씨구.”
한서연이 장난을 쳐왔다.
은하는 그녀가 옆구리를 쑤시도록 내버려두었다.
여하튼 일이 좋게 해결되었다.
그녀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이야, 은하야.”
“그래, 오랜만이야.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맙고.”
최예진의 도움이 정말 컸다.
은하는 자신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그녀를 반겼다.
최예진은 대뜸 한숨을 쉬었다.
“나하고는 크게 관계없는 일이지만 서현 언니가 닦달을 하느라 이렇게 오게 된 거야. 그러니 나한테 말고 서현 언니한테나 고맙다고 해.”
“그래도 이렇게 온 게 고맙지.”
“그럼 오늘 일은 잊지 말고 있어. 언젠가 갚아야 할 테니까.”
“그래, 잊지 않을게.”
“그러면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볼게. 다음에 보자. 서연 언니도.”
최예진은 다망해 보였다.
그녀는 은하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은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YH를 끌어들인 건 나랑 서현이가 그동안 작업한 결과란 걸 잊지 마.”
“알았어요, 기억할게요.”
“이걸로 시리우스하고 YH 관계는 다시 좋아지겠네. 잘됐네. YH도 네 편이 된 셈이니까.”
한서연이 설명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YH그룹은 그동안 은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최예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예진이 후계자가 되면서, 은하와 YH그룹은 원만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최예진이 후계자가 된 것은 YH그룹이 은하하고 얽힌 앙금을 풀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우리랑 앨리스, 루미너스, 예외로 하나하고 YH는 다르니까. 우리는 매부한테 그룹의 미래를 배팅한 만큼, 앞으로 가능한 협력하겠지만 YH, KK처럼 다른 그룹은 그게 아니니까.”
“…알고 있어요.”
한서연의 충고였다.
은하도 알고 있었다.
기업가들에게 영원한 동료는 없고, 또 적은 없었다.
YH가 지금이야 협력을 하겠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하나 있기는 있어. YH가 네게 복종하게 만드는 법.”
“그게 뭔데요?” “간단해. 예진이랑 결혼하는 거지.” “…….” “정략결혼만큼 확실한 것은 없어. 네가 YH를 손에 넣고 싶은 거라면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야.”
“관심 없네요.”
“왜? 예진이도 예쁜데.”
“지금 여동생의 남편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확 서현이한테 일러버릴까 보다.” “당연히 서현이가 더 예쁘지. 근데 서현이도 네가 정략결혼을 위해서 결혼하는 거라 그러면 허락해줄걸?”
“…….”
“서현이가 두려워하는 건 매부가 자신 말고 다른 사람한테만 마음을 주게 될 때야. 하지만 정략결혼은 아무 감정도 없는 거잖아?”
“그래도 안 해요. 됐거든요.” “킥, 안 넘어오네?”
“자꾸 시험하려고 하지 마시죠?” “정략결혼으로 성공한 자는 결국 정략결혼으로 망한다고 하지. 그게 이 바닥의 생리야. 명심해.” “…….”
“감정으로 한 결혼이라면 끝까지 그 태도를 고수하도록 해. 당연히 이성으로 한 결혼도 마찬가지이고. 감정과 이성이 혼재하게 되는 순간, 그건 혼돈이야.”
“앞으로도 정략결혼을 할 생각도, 다른 여자 만날 생각도 없거든요?” “글쎄…. 이성은 그런 것 같지만, 감정은 어떨지 모르겠네. 감정이면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지. 그건 매부의 아내들이 관여할 부분이지.”
한서연이 계속 시험하려고 든다.
그녀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은하는 살짝 짜증을 냈다.
그녀는 물러날 때를 알았다.
그녀가 분위기를 바꿔서는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건 그렇고 해인이가 불쌍하게 됐네. 재기의 기회를 노렸을 텐데, 수가 틀리고 말았지 뭐야.”
한서연이 턱짓했다.
오해인이 구겨진 얼굴을 하고서는 파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은하의 시선도 그녀에게 향했다.
“정략결혼으로 성공한 자, 동시에 정략결혼으로 망하는 자의 표본이 바로 쟤라 할 수 있어. 정훈 오빠는 손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자마자 잽싸게 꼬리를 잘라버렸잖아? 만약 철도 부설권이 쟤네한테 넘어갔다면 삼라그룹은 다시 날개를 달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아마 조만간에 정훈 오빠랑 해인이는 파혼을 하게 될 거야. 아이, 꼬셔라.”
“…사심이 들어 있는 말이네요.”
“능력도 안 되면서 내 호적수한테 꼬리를 치는 게 그동안 얼마나 보기 싫었는데.”
“처형 혹시….”
“정훈 오빠, 내 취향이지. 그런데 우리 둘이 워낙 욕심이 많은 탓에, 고작 감정 하나 얻겠다고 가진 것을 버리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처형은 서현이랑 딴판이네요.”
“서현이가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됐을 수도 있어. 자,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뭐가요?”
“앞으로 삼라그룹이 과연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
은하는 머리를 굴렸다.
삼라그룹의 상황이 위태로워지리란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한서연이 가르쳐주었다.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하겠어. 앞으로 오랫동안 택배맨이나 하며, 다른 그룹들에게 굽실거리겠지.”
한서연이 깔깔거렸다.
은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앞으로 삼라그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 한편─.
─이 사람이 나중에 뒤통수를 치고 독주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네.
은하는 한서연을 경계했다.
좋은 이해관계자였다.
하지만 한서연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관계는 파탄이 날 수 있었다.
비록 철도 부설권이 선녀정부에게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나, 한서연은 남다른 수완으로 의정부를 시리우스 왕국으로 만들어버릴지 몰랐다.
그래,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지.
가능하면 이 사람하고 싸울 일은 오지 않기를 빌고 싶은데.
은하는 속으로 빌었다.
이내 그는 한서연을 뒤로했다.
그대로 오해인에게 걸음을 옮겼다.
“오해인 누나.” “…뭐니? 날 비웃으러 온 거니?”
“”””…….””””
오해인이 도끼 눈을 뜨고 물었다.
은하는 키득거렸다.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 은하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세를 낮췄다.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앞으로 까불지 마라.” “……!!”
“손을 대도 적당히 손을 댔어야지. 내 클랜에 손을 댔더라?”
“…….” “네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는 걸 감사히 여겨. 안 그랬으면 이렇게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지금 협박하는 거니?”
“경고하는 거야.”
“…….”
“앞으로 쥐죽은 듯이 다니도록 해. 제 분수도 모르고 이런 식으로 날뛸 생각이나 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다고, 씨.”
그녀가 고통을 참든 말든.
은하는 그녀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해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굴복했다.
오해인은 이제 적이 되지 못한다.
☆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은하는 하백련을 데리고 클랜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판도라 클랜로드.”
“왜?”
그때 최정훈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생각이 뚝 떨어졌다.
더욱이 잘못했으면 최정훈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됐을 수도 있었다.
은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축하한다고. 파인그룹을 끌어들여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YH가 복병으로 나올 줄은 몰랐네.”
“안 됐네. 결국 내 아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거지.”
“아, 역시나…. 네가 준비했던 게 아니었던 거구나. 서현이가 한 건가. 잘 결혼했네.”
최정훈의 말투가 아니꼽다.
마치 한서현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자신한테 패배했을 거라는 말투.
은하는 마냥 부정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쳐다보기나 했다.
이윽고 최정훈이 비아냥거렸다.
“그래서 서현이하고 결혼한 건가? 서현이의 존재는 계산하지 못했는데 지난 삶에서는 그녀의 존재가 무슨 변수라도 됐었나 보지?”
“…무슨 소리야.”
지난 삶이라는 말.
은하는 최정훈이 불쑥 꺼낸 말에 내심 깜짝 놀랐다.
그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서는, 그럼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정훈은 간파한 듯했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 전에 찾아본 캐유플에서 널 그렇게 부르더군. 인생 2회차라고.”
“…….”
“아니면 직접 말해줘야 하는 걸까? 여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단순한 블러핑이 아니다.
은하는 깨달았다.
최정훈은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회귀했다는 걸.
얼버무리기는 힘들 것 같고….
최정훈이 직접 말하는 것을 보면, 이놈도 주변에 알릴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은하는 빠르게 생각을 마쳤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대화나 하자.”
“바라던 바야.”
은하의 제안에.
최정훈이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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