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48
신화를 체화하고, 현현하라.
은하가 처음 신화란 말을 들은 건, 그가 고등아카데미 3학년이었을 때, 아마겟돈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신화를 완전히 체화할 수 있을 영혼의 소유자인 것 같구나.’
그때 은하는 아마겟돈이 말한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는 신화란 단어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서, 신화가 어떠한 경지를 뜻한다는 걸 내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신화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사멸하고 마셨다. 이 이야기는 이제 여기까지만 하지.’
7년 전, 서울 재앙에서.
백서진은 의 죽음을 들은 지용현에게 그런 말을 건넸었다.
나아가 은하는 백서진에게 마인이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다시 한 번 신화란 단어를 들었다.
‘익현이 그놈은 신화를 체화하고, 또 현현했다. 신화를 현현하게 되며 육체는 신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사멸을 맞이하기 시작했지.’
아마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지.
은하는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그런 결론을 내렸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신화라는 이름이 단순한 명예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 백서진은 신화의 경지를 언급하고 싶지 않아 했었다.
은하는 그 이유를 내심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어떤 경지인지는 잘 몰라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지이니 만큼 금기시되는 영역인 거겠지.
플레이어 라이브러리를 뒤지더라도 나오지 않는 정보.
은하는 아마도 살아있는 신화들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더는 알아서는 안 됐다.
살아있는 신화는 그런 존재였다.
이 나라에서, 때로는 선녀보다도 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
은하도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기가 저어되었다.
그래서 외면하기로 했더니─.
‘─네가 대우주 자체가 되는 거다. 네 소우주로 다른 소우주들을 모두 장악하고 덮어씌우는 거다.’
살아있는 신화, 황진희.
그녀가 성장의 한계에 막혀 있던 은하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은하는 그녀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가 해준 조언은 단순히 성장의 실마리를 남겨준 것이 아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지.
그녀는 그 경지로 올라갈 수 있는 단서를 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신화일 것이다.
그리고─.
─의지의 합치로 이루어지는 경지.
그게 신화의 경지라는 걸 거야.
마나교 반혼제 테러에서.
은하는 자신이 대우주가 됨으로써 세상을 불꽃으로 뒤덮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실제로 자신이 장악한 공간에서, 자신은 마나를 소모하지 않고서도 상상한 그대로 마법을 구현했다.
이후로 은하는 다시금 그 경지를 재현하려고 했었다.
나랑 클랜원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그 경지의 열화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마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진짜하고는 비교할 수 없어.
신화의 경지에 발을 들인 이후.
은하는 한 번도 그 경지를 재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만족했다.
의식마법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적잖은 소득을 거뒀으니 말이다.
그 이후, 은하는 매구의 섭리까지 흡수하게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클랜원들 또한 더욱 성장했다.
그래서 자신과 그들이 힘을 합치면 마인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마겟돈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회귀 전에 온태양은 놈을 어떻게 이겼던 거지?
나는 분명 회귀 전의 온태양보다 더 강해졌는 데에도 아마겟돈에게 이길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서.
은하의 눈은 더욱 정확해졌다.
상대의 힘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아마겟돈은 달랐다.
은하는 아마겟돈과 공방을 나누며, 아무것도 가늠하지 못했다.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였다.
아마겟돈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굉장히 높은 경지에 있는 거야.
그가 마몬을 상대하며 느낀 감상은 전력을 다한다면 이길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아마겟돈은 전력을 다하고, 클랜원들과 십이좌들이 합세한다고 가정을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전 삶에서 온태양과 십이좌들이 아마겟돈을 어떻게 쓰러뜨린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신화란 걸 현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래서 황진희를 찾은 것이다.
그녀라면 답을 알고 있을 테니까.
자신이 아마겟돈과 대적할 수 있게 같은 경지에 오르는 방법을.
신화 현현이란 것을 말이다.
☆
“우리는 이 나라를 재건한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신화를 체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많은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신화를 체화하고자 하려면 그만한 업적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었지.”
여기에서 할 말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자꾸나.
황진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옮겼다.
아무도 쓰지 않는 회의실에 들어온 그녀는 방음 결계를 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화란 자신의 의지를 이 세상에 물들이는 마법과 다름없지. 그런데 개인의 의지로 세상을 물들이는 건 외부의 도움이 없고서는 불가능해. 세상은 자신의 인지 능력만 아니라 인지하는 모든 존재의 인지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인지 능력을 통일시키려면 초점을 하나로 맞출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 그것이 업적이고, 신화다. 인지하는 모든 존재가 너를 보고, 네가 그동안 쌓아 올린 업적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하여 대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
“하지만 업적은 쌓기 힘든 법이고, 기억이란 퇴색되는 법이야. 우리가 직관적이고 간결한 이명을 사용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세상이 우리의 이명을 듣는 순간 자동으로 우리의 업적을 떠올리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지. 그 프로세스를 짠 것이 준이와 반익현이었고 말이다.”
황진희가 말해준 이야기는 은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명이란 플레이어를 알기 쉽게끔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황진희가 해준 이야기에는 이면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이명이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겉멋만 번지르르한 이명이 생겨나게 됐다만…. 초기에 이명은 플레이어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업적의 결과물이 바로 라는 이명 하나에 담겨 있는 셈이지.”
“…….”
“너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플레이어는 별것도 아닌 업적으로 이명을 얻거나 만들고 있는 반면, 너는 누구나 알 만한 업적을 세워 너 자신을 입증하며 이명을 얻었지. , …. 그리고 이제는 이란 이명을 얻고 말았고 말이야.”
“…….”
“처음 말했던 내용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멸망을 극복하면서 더 이상 세상이 멸망할 만한 위기 같은 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
“재건된 세상에서 업적이란 사소한 가치만 지니고 있으면 될 뿐이야. 그런데 누군가 신화를 현현할 만한 업적을 세우려고 한다면, 평화로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란 하나밖에 없겠지.”
“…전쟁이겠네요.”
“그래, 전쟁이다. 다시 말하자면, 군주들이 군웅할거하는 시대가 다시 열린다는 거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신화를 체화하지 못하도록 모든 정보를 봉인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경계했다. 네가 신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이 나라를 전란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경우에 따라서 너를 제거하는 것도 일찍이 생각했었다.
은하는 자신을 앞에 두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멈칫했다.
그녀의 눈빛이 진지했기 때문이다.
이내 그녀가 금세 눈빛을 거뒀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나는 그때 너를 말리든, 제거했어야 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너는 우리가 두려워하던 군주가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선녀보다 위에 서는 권위를 가지고 말았지.”
“…….”
“그러나 네가 재앙들을 이겨내고, 다음 세대의 선녀를 보좌하는 한편, 이 정부의 권위를 존중하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 그래서 나는…, 너에게 신화를 가르쳐주는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네가 부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럴 생각은 절대 없어요. 저한테 신화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겟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황진희는 죽을 때까지 신화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겟돈이 나타났다.
그녀는 두고 볼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직접 토벌전에 참가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자신에게 신화를 전수해주려는 것이리라.
은하의 예상이 맞았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뗐다.
“신화를 현현한다는 건 쉽게 말해, 일대에 네가 세운 업적을 재연하여 세상의 섭리가 너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를 발동하고 난 다음에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말지.”
“부작용이요? 어떤….”
“너도 한 번 느껴보았을 것이다. 네 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며, 네가 약해지는 느낌을 말이야.”
“아….”
“신화를 현현하려면, 필연적으로 네 의지를 세상에 퍼뜨려야만 한다. 그런데 의지를 그리 널리 퍼뜨리면, 신화를 거두어들일 때 어떻게 될까. 너에게서 떨어져나온 의지는 그대로 세계의지에 동화돼, 돌아오지 않고 소멸하게 되겠지. 네 영혼의 일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야. 결국 신화는 쓰면 쓸수록 네 영혼을 소멸시키는 셈이지.”
“…….”
“신화를 현현하게 되면 육체적인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이 신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데 몸이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우리는 현재, 육체와 영혼이 소멸을 맞이해가는 사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반익현 그놈은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 몸을 마인으로 바꾼 거겠고.”
살아있는 신화는 쇠락하고 있다. 황진희의 말의 요지였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쇠락해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마겟돈은 마인이 되어 사멸의 운명에서 벗어났다.
만약 두 사람이 붙는다면─.
“─내가 지든, 이기든. 나는 이번에 사멸을 면치 못할 거다. 그러니까 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뒷일을 너한테 맡기려는 거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신화를 현현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
“신화를 현현할 수 있는 상대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마찬가지로 신화를 현현하는 것밖에 없거든.”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너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어.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음에도 아직 신화를 현현하지 못하는 건…. 네가 무엇 때문에 조건을 갖춘 것인지, 그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이야.”
“무엇 때문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란 거냐.” “…….”
“지금 네 신화의 근간이 되는 것. 그것을 매개체로 삼아 세상에 녹은 마나에 각인시키는 거다. 요컨대…, 그래,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군.”
황진희가 숨을 골랐다.
은하는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녀가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신화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이뤄낸, 그때를 떠올려라. 그렇게만 한다면 대기 중에 녹아 있는 마나가 너에게 대우주를 만들어줄 것이다.”
마나교 반혼제 테러가 그 예이다.
마나에는 기억, 사념, 감정 등이 녹아 있다.
황진희의 말은 대기 마나에서 그중 자신의 신화의 근간이 되는 마나를 일깨우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 신화의 근간이 되는 것.
그게 대체 뭐지?
바로 그것이었다.
은하는 황진희의 조언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되니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너는 누구냐. 네가 인생에서 가장 기뻤을 때, 슬펐을 때는 언제더냐. 네 전성기는 언제고, 사람들이 언제 네게 열광했다고 생각하느냐.”
“…….”
“끝도 없이 고민해라. 자기 자신의 우주에서 진리를 찾아, 그 진리를 핵심으로 세상에 구현하는 거다.”
진리를 찾아 나서는 수도승처럼.
자신에 대해 끝도 없이 고민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의를 내려라.
은하는 황진희가 떠나고 난 후에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대체 누구지?”
조언을 들으면 깨달음을 얻고서는 정신이 맑아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해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 끝에, 그는 자신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상황에 도달했다.
나는 누구지?
노은하.
그럼 노은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그래서? 그 다음은?
왜? 어째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그리고 질문이 고도화될수록 점점 나오지 않는 대답.
은하에게 황진희가 건네준 조언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는 역할을 하게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칠마의 테러가 확인되었습니다. 십이좌들과 각 클랜들은 시급히….]칠마의 테러가 재개되었다.
☆
칠마의 테러 예고로부터 5일 뒤.
놈들이 테러를 감행했다.
테러는 마나관리기구의 예측대로 서울, 경기, 인천권에서 일어났다.
제일 먼저 테러가 관측된 장소는 경기도 남양주였다.
“남양주에서 대규모의 편재 확인! 현장 정보에 따르면, 편재를 일으킨 존재가 사마엘과 비슷합니다! 현재 남양주의 클랜들이 대항 중! 시급히 증원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마나관리기구 관리국 모니터실.
통제관 윤이별이 정보를 파악하고 플레이어들에게 전파했다.
칠마의 테러 소식을 듣고 재빨리 화상연결한 임가을이 모니터 너머로 지시했다.
[작전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윤이별 통제관, 님은 지금 뭘 하고 있죠?]“네, 선녀님. 현재 옥상에서 원거리 이동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분 뒤에 가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연속 사용은 힘들고, 마법을 발동하고 10분이 지나야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일단 사마엘을 토벌하기로 한 사람들부터 현장에 투입하도록 하죠.]임가을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도진과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20.
신라클랜에서 사마엘 토벌을 위해 준비한 정예 병력이었다.
[이도진 플레이어. 할 수 있죠?]“네, 선녀님. 얼른 가서 사마엘을 토벌하고 오겠습니다.”
[부탁할게요.]십이좌를 선출할 때, 플레이어의 배경을 보는 이유는 위기 상황에서 병력을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선녀정부는 십이좌를 두는 것으로 십이좌가 속한 클랜의 플레이어들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칠마가 테러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십이좌들과 그들의 클랜은 특히나 도움이 되었다.
이도진은 즉각 클랜원들을 이끌고 모니터실을 빠져나갔다.
이후로도 마인들이 감지되었다.
“강북구에서 판데모니움이 출현! 데몬 계열 몬스터들이 확인됐으며, 식별코드가 마몬과 동일한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총은주 플레이어. 당장 현장으로 출동해주세요.]십이좌들과 그들이 소속한 클랜이 상대하는 마물은 다음과 같았다.
마몬 – , 삼라클랜.
릴리스 – , 명왕클랜.
마스테마 – , 레귤러스클랜.
아바돈 – , 템페스트클랜.
선기준과 동해클랜의 경우, 마나관리기구를 방어하기로 했다.
마나관리기구는 작전을 지시하고, 플레이어 라이브러리가 있기 때문에 만약을 위해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벨제뷔트는 창진이 형이랑 바보 형, 우리 클랜이 맡기로 했지.
은하는 윤이별의 전파를 들으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은하는 이번 삶에서도 벨제뷔트를 상대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하는 해당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다.
작전에 투입되는 사람은 진파랑과 한창진, 배수빈 등이었다.
은하는 다른 작전에 투입된다.
나랑 랑 님. 그리고 블레이즈 클랜원들은 아마겟돈을 상대하기로 했어.
나 외에 판도라 클랜원들 20명이 벨제뷔트를 맡기로 했고.
칠마의 수장을 자처하는 아마겟돈.
그러다 보니 마나관리기구에서는 아마겟돈을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는 선녀의 요청에 따라 아마겟돈을 토벌하기로 한 것이다.
벨제뷔트를 토벌하러 가는 애들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 애들은 강해.
류연화가 있고, 한창진이 있었다.
이리야가 있고, 노은아가 있었다.
그 외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몇몇 마인들은 2차 테러 장소가 달라졌는데….
벨제뷔트는 찜찜하게 회귀 전처럼 수원시에 출몰했다는 거지.
은하는 벨제뷔트의 출몰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판도라 클랜원들을 바라보았다.
배수빈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회귀 전 기억이 떠올랐다.
“수빈아.”
“왜?”
은하는 배수빈을 불렀다.
클랜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려던 그녀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은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게 말이야….” “뭐야? 왜 뜸을 들이고 그래? 지금 한시가 급하니까 얼른 말해.”
“…….”
이전 삶에서.
배수빈은 벨제뷔트에게 공격당해, 몬스터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를 죽여야 했다.
은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의 어깨에 턱 손을 얹었다.
“조심해. 시체더미 속에 숨어 있을 몬스터들에게 물리지나 말고.”
“뭐래? 내가 그럴 것 같냐?”
“어, 너는 그럴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주 나를 무시하고 있네. 만약에 놈들에게 물린다고 해도, 몬스터로 변모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처음부터 물릴 짓을 하지 말라고.”
배수빈이 흥 소리를 냈다.
그녀가 은하의 손을 쳐냈다.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간 배수빈이 문을 닫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야, 노은하.”
“어, 왜.”
“네가 한 말 때문에 사망 플래그가 세워진 거면 나중에 죽을 줄 알아. 날 바다에 빠뜨리는 것도 모자라서, 몬스터에게 감염이나 당하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겠다 이거잖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 좋을 대로 당해줄 생각 없으니 끝나고 돌아와서 보자.”
은하의 의도가 어찌하였든.
배수빈이 투지를 불태웠다.
이윽고 그녀가 모니터실을 나갔다.
“어이구….”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걱정해도 유분수였다.
“오기로라도 안 죽겠다는 건가…. 그래, 그것도 낫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안 좋은 일은 반드시 회귀 전과 똑같이 일어나고는 했다.
운명이라는 것일까.
그렇기에 은하는 배수빈의 죽음이 운명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기만을 빌 뿐이었다.
“…구에서 다시 한번 전파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마인들의 출몰지를 전파하겠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사마엘. 서울 강북구, 마몬. 경기도 과천시, 릴리스. 인천광역시 부평구, 마스테마. 서울 서대문구, 아바돈. 경기도 수원시, 벨제뷔트. 이상 6개 지역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칠마의 수장 아마겟돈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윤이별이 재차 말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