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5
이게 무슨 일이야.
톰 마이론은 젠코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트레디치인 그가 고작 어린아이한테 당할 줄은.
그래, 좋다. 상대가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건 인정한다.
그는 젠코와 아이의 치열한 전투를 직접 목격했다. 자신이 낄 여지도 없었던 전투에서 쓰러져도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젠코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서 도망쳐야 해.
톰은 아이를 죽이는 일을 포기했다. 기력이 다한 아이를 죽이지 못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릴 터였다.
앨리스호텔 1층 중앙로비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반파되어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용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괜히 잘못 얽혔다가는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은 지금 줄리에타를 감금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는 않겠지만, 만일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만에 하나라는 일이 바로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18층에 올라와서야 깨달았다.
여기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톰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알버트와 브루노의 격렬한 전투였다.
보아하니 젠코를 죽인 아이와 브루노는 한패인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국제적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데, 알버트와 브루노의 전투는 결말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브루노가 미묘하게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뿐.
.
톰은 불길 속에서 금색이 섞인 마나를 다루는 브루노를 보고는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이러니 트레디치 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알버트가 밀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두면 안 돼.
톰의 행동은 재빨랐다. 그는 세 사람이 아직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줄리에타에게 뛰어갔다.
“─어?”
뒤에서부터 붙잡은 그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브루노 발렌타인!”
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총성이 멈추고, 대기를 찢던 주먹이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게임은 끝이다. 줄리에타 발렌타인이 죽는 꼴을 보고 싶어?”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줄리에타를 인질로 잡았더라면, 전투를 벌이지 않고도 브루노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알버트는 그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그와 전투를 벌이는 짓을 택했다.
알버트가 방한을 계획할 때부터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변했다.
톰은 이탈리아에 돌아가는 대로 마이론의 보스, 빈센트 마이론에게 알버트 발렌타인의 행각을 보고할 생각이었다.
“알버트 님.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내십시오.
브루노 발렌타인. 눈앞에서 줄리에타 발렌타인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어서 마나를 거둬.”
☆
“줄리.”
브루노는 톰에게 붙잡힌 줄리에타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마주친 그녀는 목을 겨누고 있는 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괜찮아.
이거 하나도 막지 못해서야 줄리에타 발렌타인이, 아니, 줄리에타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계속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정했으니까.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으니까.
“혹시라도 내가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야. 괜히 후회할 짓 하지 마.”
톰 마이론이 협박했다. 그는 자신의 협박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칼끝으로 목덜미를 그었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 불그스름한 선이 생겼다.
나는 괜찮아.
그럼에도 줄리에타는 눈빛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브루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믿기로 했다.
“알버트 님. 얼른 끝내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젠코 님이 사망했습니다. 소란이 컸던지라,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지금 당장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괜히 꼬였다가는 일이 골치 아프게….”
“─그런가. 젠코가 드디어 죽었나.”
“네, 사망했습니다. 그것도 어….”
드디어?
톰은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
톰이 무슨 말인지 따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알버트가 겨눈 총구가 브루노가 아니라, 톰을 향했기 때문이다.
총구에서 빠져나간 탄환이 그의 이마를 관통했다.
“어?”
몰래 역공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줄리에타. 뒤로 벌러덩 쓰러진 톰을 내려다본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브루노도 마찬가지였다. 총성을 듣고 깜짝 놀란 그가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이어서 그는 탄환이 지나간 열기로 달궈진 총을 쥐고 있는 알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젠코가, 드디어 죽은 거군.”
입꼬리를 귀에 걸릴 정도로 끌어올린 알버트.
유쾌했다. 아주. 실로.
그는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무시하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녀석을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설마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당할 줄은 몰랐군.”
동료를 죽이고도 태연하게 중얼거리는 알버트.
그가 브루노에게 총구를 겨누며 말을 이었다.
“톰 마이론도 죽었다. 바다 건너 이 나라에, 더 이상 마이론의 그늘은 없구나.”
“오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대체 무슨 꿍꿍이야?”
줄리에타가 물었다.
알버트는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로지 적의를 드러내는 브루노를 주시하며,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브루노, 다시금 너에게 제안하지. 발렌타인으로 돌아와라. 줄리에타, 너도.
젠코가 죽은 지금이야말로, 마이론을 붕괴시킬 절호의 기회다.”
“오빠, 미쳤어?”
미쳤다. 단단히 미쳤다.
줄리에타는 입가를 쪼개며 총을 겨누는 알버트가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가 이렇게까지 무모하고,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렌타인의 보스라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일순 동정심이 들 정도로 가여웠다.
“너희에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보내는 생활은 힘들지 않았나? 도망치는 생활이 괴롭지 않았나?
발렌타인으로 돌아와라. 지금이라면, 줄리에타 너를 지켜줄 수 있다. 그리고 브루노, 너도 줄리에타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소리라고 비난당할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몰라도, 분위기 좀 파악해라. 갑분싸라는 말도 몰라?”
은하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비상계단으로 올라온 그는 톰이 줄리에타를 인질로 잡고 있던 순간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버트가 경계심을 거둘 때를 노려, 톰이 바닥에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는 시야 바깥에서부터 뛰쳐나온 것이다.
“하긴, 네가 갑분싸라는 말을 알겠니. 나도 애들한테 배운 말인데.”
한 걸음 물러난 알버트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칼날을 피했다.
바닥에 착지한 은하는 그가 총구를 겨누지 못하도록 지근거리까지 파고들었다.
조금도 유예를 주려 하지 않았다.
“네가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거 하나는 말해줄게.”
마나를 발현할 수 없었다. 체내 마나가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다.
이름 모를 기프트의 영향으로 신체능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은하는 알버트를 상대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네 놈이 뭔데 내 허락도 없이 내 사람들을 데려가려 그래?”
작은 체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은하.
알버트가 바로 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를 조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법으로 공격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은하가 술식을 전개하려 할 때마다 교묘하게 방해했다.
“줄리에타 누나도 그래. 누구 맘대로 떠나려 그래?”
알버트의 다리 사이로 뛰어든 은하가 발을 걸었다.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한 알버트가 그를 걷어찼다. 총을 쥔 손으로는 다리 밑에서 움직이는 그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물론 발에 걷어차인 그가 가만히 당할 리 없었다.
다리에 걷어차이는 순간, 다리에 매달려 칼로 종아리를 내려찍었다.
“Porca miseria!”
제길!
보호마법을 전개하고 있던 알버트가 막아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고작 어린아이한테 당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그가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발렌타인의 보스로서 체면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존심에 금이 갔다.
포커페이스를 잃을 정도로.
“버릴지 말지는 내가 정해. 멋대로 떠나지 마.”
알버트는 드디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은하를 잡았다. 그가 일부러 보인 빈틈이 미끼일 줄은 생각지 못하고 덥석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탄환이 그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가 앞으로 픽 하고 고꾸라졌다.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다.
은하의 상태를 파악한 알버트는 길고 긴 전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브루노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알버트는 눈을 크게 떴다.
“알았어, 줄리에타 누나?”
시간은 끌었다.
충분하지?
총상을 입고 바닥에 엎드린 은하가 입술을 씰룩였다.
─.
뒤에서부터 브루노를 껴안는 자세로 주문을 읊조린 줄리에타.
그녀가 감고 있던 녹색 눈을 떴을 때, 황금색 마나가 브루노의 전신에 스며들었다.
당했다.
알버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은하가 시간을 끌기 위해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응, 다시는 내 맘대로 떠나지 않을게.”
브루노의 등을 밀어준 그녀가 답했다.
“살아서 돌아와야 해.”
“어.”
무릎을 피고 일어나는 브루노.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그가 손바닥이 보이도록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로, 당길 수 있는 데까지 어깨 뒤로 당겼다.
Inferno V, II, X, IV.
Combinazione Diavolo(Eldorado).
콤비네이션 디아블로(金)
위험하다. 위험했다.
피해야 했다. 막을 수 없었다.
알버트는 그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Che…?”
어느새 복도 끝에 서 있던 알버트 발렌타인.
도망칠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출구라고는 오로지 그가 달려오는 정면밖에 없었다.
Fuoco a caso(연사)!!
연사했다. 총성이 울리지 않을 때까지 마나를 실어 탄환을 발사했다.
브루노는 타깃을 조준하기 위해 뻗은 왼손으로 공격을 튕겨냈다.
거대한 창이 되어 날아간 탄환마저 몸으로 들이박았다.
이윽고 죽음을 불사르고 뛰어든 그가, 공간을 가득 메운 빛줄기를 두 줄기로 갈라버렸다.
“Che il diavolo ti porti.”
지옥으로 떨어져라.
전신은 이미 만신창이.
그럼에도 그는 어깨 뒤로 당겼던 주먹을 전력을 다해 앞으로 뻗었다. 다리로 몸을 고정하고, 체중을 실어 주먹을 휘둘렀다.
“Ch─!!”
대기가 폭발했다.
보호마법이 처참히 부서져나갔다.
안경이 처참히 깨지고, 눈 속으로 유리조각이 들어갔다.
오른쪽 광대뼈를 직격당한 알버트는 머리가 뒤흔들리는 충격에 정신이 없었다.
얼굴이 주먹에 붙은 것 같았다.
분명 한 번 휘둘렀을 뿐인 주먹이 얼굴에 달라붙은 것처럼 결코 떠나려 하지 않았다.
뒤통수를 벽에 박았다.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리고, 벽에 금이 갔다.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벽만이 아니었다.
머리 안쪽에서부터 무언가가 쩌적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Ahhhhhhhhhhhh─!!
새어나가지 못한 비명이 가슴 속에서 날뛰었다.
안면이 함몰되었다.
벽이 부서졌다.
급기야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벽채로 날아갔다.
18층.
시야가 일그러졌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사라지고, 마치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정신없이 돌았다.
추락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알버트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마나를 쥐어짰다. 마나를 제어할 때마다 함몰된 얼굴이 통증을 호소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나 폭주를 일으키고 말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마나를 제어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보다.
나는, 발렌타인을 재건해야 한다!
아버지에게 맹세하지 않았던가.
발렌타인의 보스가 되기로 했을 때 결심하지 않았던가.
어떠한 굴욕도 참아내고, 발렌타인 앞에 마이론을 굴복시키겠노라고.
이제 시작이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보호마법을 전개했다.
어느덧 소용돌이치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는 소리가 울렸다.
☆
─살아남았다.
알버트 발렌타인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한시름을 놓았다.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절반이 함몰된 탓이었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기회는 아직 남아 있었다.
젠코 마이론은 죽었고, 브루노와 줄리에타의 행방을 찾았다.
이제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이딴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발렌타인을….”
어서 도망쳐야 했다.
브루노가 쫓아올 수도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그를 설득하기는커녕, 그를 상대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간신히 구덩이 속에서 기어 올라왔을 때였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맹렬히.
“이탈리아 대사 알버트 발렌타인.”
바람을 몸에 휘감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철부채를 펼친 여성.
그녀, 신서영은 반론을 허용치 않겠다는 어조로 선고했다.
“당신을 앨리스호텔 테러 주모자로 체포합니다.
피차 골치 아픈 일은, 하지 말죠?”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드높은 빌딩 사이를 지나치는 바람이 일제히 몰려 들어서는 그를 에워쌌다.
저항이라도 했다가는 몸이 조각날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협박.
알버트 발렌타인, 고개를 숙인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하, 너무 늦었네. 이거 은아한테 혼나겠는걸.”
심야였다.
빌딩 위에 걸린 밤하늘은 별빛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신서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