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75
여명검과 황혼검. 새로운 검을 얻게 된 은하는 바로 그날로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배수빈, 류연화 이외의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이 그렇게 좋아? 유란이보다? 서나한테 맡기면서까지?”
그러자 병원에서 퇴원한 정하양은 매일 같이 훈련실을 찾는 은하에게 눈을 흘기고는 했다.
다행히 그녀가 이해해줘서 그 이상 핀잔은 없었다.
“유란아, 아빠는 버려두고, 우리는 서나 언니한테 놀러가자.”
“아우.”
“재밌게 놀다와. 이따 봐.”
“치이, 몰라.”
정하양과 진서나는 사이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서나가 보모가 되고, 정하양은 곧잘 노유란을 데리고는 그녀를 만나러 가고는 했다.
정하양 나름대로 최은혁이 떠나고 그녀를 배려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진서나는 최근 웃는 얼굴을 자주 보여주었다.
여하튼 은하는 두 사람을 보내고, 마저 훈련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럼 해보자꾸나.]“…어.”
황혼검이 말을 걸어왔다.
은하는 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황혼검에 균일하게 모여든 마나가 거세게 요동쳤다.
푸른 마나가 검게 변하고, 검신에 붉은 선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흡수한 마법의 술식이었다.
미티어
은하는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그러자 궤적이 마법진으로 변하며, 그 속에서 불길을 감싼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조아라에게 흡수한 마법이었다.
콰앙!!
위력을 조절한 마법이었건만.
훈련장 한 곳이 깊이 패였다.
다행히 복구가 가능한 피해였는지, 훈련장이 그가 흘린 마나를 흡수해 피해를 수복했다.
“하루 전에 흡수한 마법이었는데도 여전히 메모라이즈되어 있다니 정말 대단하네.”
[하지만 마법을 흡수해서 방출하는 효과를 지닌 아티펙트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거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흡수하고, 어느 마법까지 흡수할 수 있느냐는 거지.]“그래서 너는 어디까지 가능한데?”
[아직 실전을 겪지 않아 모르지만, 제3위계 몬스터의 마법까지는 아마 무리 없이 소화할 수가 있을 게야.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할지 모르고.]“제1위계는?”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군. 그런 게 이 세상에 있었다면 이 세상은 진즉 멸망했을 것이다. 존재할 수가 없는 대상의 마법을 복사할 수 있느냐니, 어리석은 질문이로구나.]“흑색던전의 보스가 제1위계일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 세계선이 다른 던전이라면 존재할 수도 있겠지.]“그래서 어떨 것 같은데?”
[해봐야 안다. 하지만 못할 거다. 마나학에서 제1위계는….]“알았어, 설명은 됐어.”
황혼검은 말이 많았다.
특히 자신이 아는 지식을 설파할 때면 말이 더 늘어났다.
은하는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으러 사전에 황혼검의 말을 잘라냈다.
[쯧, 내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걸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냐. 그리고 지가 먼저 물어봤으면서….]“나는 요점만 들으면 돼. 앞으로는 그렇게 알아둬.”
[오만한 주인이로구나.]“그래서 미티어는 어떤 것 같아? 네 말대로 응용이….”
[네 가지 마법을 조합해, 고차원적 마법을 만들어낸다는 발상은….]“요점만.”
[된다. 해봐라.]황혼검이 탐탁지 않게 대꾸했다.
은하는 검이 말하는 바에 따라서 내장된 마법을 발동했다.
미티어
조금 전과 다르게 운석은 그 즉시 지정한 목표로 떨어지지 않았다.
은하의 뒤편에서 나타난 미티어는 그대로 대기 상태에 있었다.
그 순간, 미티어가 회전했다.
[이 마법의 주인에게 알려주거라. 가속 마법을 지면을 향한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정석적으로 할 필요는 없단 말이지. 마법은 편견에 사로잡히면 안 돼. 이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지정하면 회전력이 더해지면서 마법의 위력은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은하는 미티어의 제어를 풀었다.
그러자 미티어가 전방으로 날아가 벽면을 와장창 파괴했다.
훈련장이 상처를 수복하는 속도가 조금 전보다 길어졌다.
그것으로 파괴력은 증명된 셈이다.
[어떠냐. 이게 나의 힘이다.]“꽤 좋네. 흡수한 마법의 술식을 응용할 수도 있다니.”
황혼검의 성능은 정말 대단했다.
은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검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정도면 감당해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앞으로 아마겟돈의 지식을 이용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겠어.
마나 제어는 물론이고.
검의 지식까지 이용할 수 있다.
마치 걸어다니는 책을 들고다니는 기분이었다.
간이용 네비게이터.
은하는 흡족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이런…. 또 시작이군.]“왜?”
[배가 고프다. 마나가 필요하다. 밥, 얼른 내게 밥을 다오. 젠장.]아바돈의 영혼석 때문인지.
황혼검은 고상하게 말을 하다가도 종종 은하의 마나를 요구해왔다.
검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려면 이럴 때마다 마나를 내줘야 했다.
붉닭이, 깡이, 황혼검.
은하는 세 존재에 마나를 건네느라 열심히 마나를 회복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인의 신체를 얻게 돼서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체내 마나가 늘어나서 좋긴 좋네.
이만한 마나가 빠져나가도 아직도 여유가 된다니 말이야.
은하는 황혼검을 칼집에 넣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황혼검이 아니라 여명검을 사용하는 것에 있었다.
그는 여명검을 꺼내들었다.
우웅
여명검이 기분 좋은 듯이 울었다.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
검은 그에게 굉장히 친화적이었다.
하지만 성능을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사용해도 모르겠다니까. 이 검이 대체 뭐하는 검인지.”
은하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확인한 여명검의 성능은 얼마 없었다.
그중에서 다른 검과 차별화가 되는 성능을 뽑으라면─.
─이 검이 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해.
목민호의 기프트 .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
여명검은 검신에 마나를 주입하면 마법조차 벨 수 있었다.
마법을 베는 순간 마법의 캐스팅이 무효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티어를 예로 들자면, 운석들 중 하나를 파괴하는 순간 마법 자체가 무효로 돌아갔다.
물론, 마법을 캔슬해버리는 것만큼 상당한 마나를 잡아먹지만.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을 검으로 베어내는 순간 발동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으니 꽤나 좋았다.
이외 검에 마나를 주입하지 않고서 벽을 베어내면, 마치 두부를 썰 듯 벽이 베어지고는 했다.
그만큼 절삭력이 대단했다.
기프트 와 비슷하다고 평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
은하는 여명검이 전해오는 감각에 오늘도 생각에 잠겼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데….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은하는 자신의 직감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십오를 만나, 어둠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한 구 가져오게 했다.
은하는 시체에 검을 찔렀다.
하지만 시체는 살아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 때문인 거지….”
은하는 정하양에게는 알리지 않은 상자를 구석에서 끌어왔다.
상자를 열자 차에 치여 죽어버린 고양이의 사체가 있었다.
검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가져온 것이다.
성능을 확인한 다음에 불에 태워서 약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러줄 생각이었다.
“이래도 효과가 없고….”
검신에 마나를 부여하고.
은하는 살며시 상처를 새겼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심장이나 뇌를 찔러야 하나? 심장에는 마나가 모여 있고, 영혼은 마나학에서 뇌에 있다고 하니….”
은하는 실행해볼까 고민했다.
황혼검도 여명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을 하니 홀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오빠! 오늘도 훈련이에요?” “안녕하세요, 판도라 클랜로드.”
“아, 백련아. 그리고 안녕하세요, 님.”
훈련장 문이 살며시 열렸다.
하백련이 빼꼼 얼굴을 비쳤다.
그 위로 프리시스 메모리도 얼굴을 내밀었다.
“프메 언니하고 훈련하러 왔다가 오빠도 훈련 중이라는 소리를 듣고 뭐하나 보러온 거예요. 그런데 거기 그 상자는 뭐예요?”
“아, 안 돼. 보면 좀….”
“…이게 뭐예요?”
“…….” “이걸로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백련이 쪼르르 다가왔다.
은하가 상자를 치우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못 이기는 법.
하백련은 고양이 시체를 확인하고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
“훈련을 위해서 어쩔….”
“그래서 죽인 거예요?”
“죽은 걸 가져온 거야.”
“그래서 이걸로 뭘 하던 건데요?” “…소생술.” “네?”
“되살리려 했어.”
하백련이 슬그머니 거리를 벌린다.
은하의 눈에 그녀가 자신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에 은하는 이실직고했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혹시 사령술을 사용하려는 건…. 오빠, 혹시 그 검에 깃든 영혼한테 세뇌된 건 아니죠?” “그럴듯한 소리지만 아니야.”
하백련이 황혼검을 가리켰다.
그녀도 황혼검에 아마겟돈 비슷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은하는 즉각 부정했다.
그녀가 오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생명 윤리를 어기면서까지 사령술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사령술이 아니라 소생술이야.”
“마나학에서는요, 결국에는 영혼을 연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령술과 소생술에는 큰 차이가 없다던데….”
” 님한테 잘 배웠네. 그런데 그것도 엄연히 차이가 있어. 내가 하려던 건 소생술이야. 검의 성능을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그 검이 이번에 태극 등급 보물로 만들었다는 건가요?”
프리시스 메모리가 끼어들었다.
그녀가 고양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여명검을 바라보았다.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네, 그래요. 여기요.”
“태극 등급의 보물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효과라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알려드릴게요.”
프리시스 메모리가 흥미를 보였다.
은하는 내심 의외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표정을 관리하고 그녀에게 검을 넘겼다.
그녀는 마법에 조예가 깊었다.
혹시나 그녀가 검에 깃들어 있는 마법에 대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은하는 그녀에게 태극 등급 보물을 얻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이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사용하는 마법하고 비슷한 섭리가 담겨 있네요. 원래 대자연에 녹아 있는 섭리는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이죠.”
“이게 무슨 검인지 알겠어요?” “만약 제 생각이 맞는다면 이 검은 소생술을 사용하는 검이 아니에요. 소생술은 일부에 지나지 않죠.”
“그럼….”
프리시스 메모리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은하에게 검을 되돌려주며 말했다.
“인과를 파괴하는 검이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대단한 검을 얻었네요.”
☆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환생까지 손을 대고, 감정까지도 관여한다면 다시 말해 운명에 간섭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요?”
“운명이요?”
네, 운명이요.
프리시스 메모리가 생긋 웃었다.
은하는 그녀가 해주는 말을 듣고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운명에 관여한다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어떻게 하는 거지?
여명검은 운명을 베는 검이다.
그렇다면 운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베어낸다는 말인가.
은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답을 구하듯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난처해했다.
“음…. 저도 설명하기 애매하네요. 다만 운명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은 현존하는 마법 체계에서 최고봉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해할 수 있는 게 이상한 거예요. 운명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도 있고, 난이도가 높은 수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게 아닐까요?”
“저는 운명은 정해진 미래라고만 알고 있어요. 그럼 이 검의 힘으로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어떻게요?”
“판도라 클랜로드가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르죠.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라고 해요. 차이를 말하자면, 운명은 바꿀 수도 있지만, 숙명은 바꾸지 못하는 거라 해야 할까요.”
운명과 숙명은 다르다.
은하는 그 소리를 듣고 송윤서를 떠올렸다.
송윤서.
그녀는 운명을 보는 힘이 있었고, 자신은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노라고 말했었다.
그러면 는 숙명을 보고 있었던 건가?
운명이 아니라?
은하는 의아해했다.
미래를 예견하는 송윤서가 운명과 숙명의 차이를 몰랐을까 싶었다.
그때, 프리시스 메모리가 첨언했다.
“예를 들자면, 판도라 클랜로드가 남자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바로 숙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꿀 수 없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미래에 서울이 붕괴한다는 예언이 존재한다면, 바꿀 수는 있죠. 비록 그것을 바꾸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겠지만, 바꾸지 못할 건 없어요. 그게 운명이죠.”
그 이야기를 듣자하니.
송윤서가 보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운명이 맞았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보는 미래가 어떤 이유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해, 미래를 바꾸려 노력해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해서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송윤서는 이전 삶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송윤서의 능력이 아닌 여명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요? 이 검은 운명이란 것에 어떻게 간섭하는지….”
“운명에 대해 생각하려면 이번에는 인과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네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현재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서 일어나는 결과에요. 그래서 인과인 거죠.” “…….”
“따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언은 결과를 말하는 거죠. 그러면 그 결과가 일어난 원인을 알고서, 원인 자체를 바꿔버리면 그 결과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예견되어 있던 운명이 바뀌는 거죠.”
도보로 프랑스로 간다고 가정하자.
도보는 수단이자 원인이고, 프랑스는 목적이자 결과이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
만약 도보로 프랑스에 가지 않으면 당연히 프랑스에는 가지 못한다.
원인이 바뀌고, 결과도 바뀐다.
원인과 결과는 이어져 있다.
그녀가 은하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에 마법이 관여한다면 정말 마법 같은 일을 일으킬 수가 있게 된답니다.”
“어떻게요?” “제 이동마법에 대해 아시죠?” “익스트랙트요?”
“네. 그 마법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과를 역전시킨 마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저는 아니지만요.”
“…….”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말, 바꿔 말하면 그 결과가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프랑스로 간다는 결과를 먼저 내고, 후에 도보로 이동 거리를 돌아가면 훌륭히 원인도 회수되지 않나요?”
“그게 말이….”
“말이 안 되니까 마법인 거예요. 상식으로 마법을 발동해서는 굉장히 곤란한 법이죠.”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은하도 익스트랙트가 대충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이 경지에 오르고 나서도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경지였다.
오직 그녀만이 가능한 경지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자신도 비슷한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은하는 믿기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여명검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검은 달라요. 능숙하게 다룰 수만 있게 되면 제 마법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수가 있을 거예요. 저는 아주 부분적으로 인과에 손을 댈 수 있지만, 인과를 완전히 어그러뜨릴 수 없거든요.”
“…….”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검은 아마 인과를 파괴하는 검이에요. 인과를 파괴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프리시스 메모리가 말을 골랐다.
이내 그녀가 마침 시야에 들어오던 고양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판도라 클랜로드의 검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저기에 죽은 고양이도 살릴 수 있어요.” “아까 제가 해봤는데….”
“죽은 고양이를 찌르기만 하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결과를 찌른다고 달라지나요?”
“…….” “살리려면 원인을 없애야죠.”
“원인을 없앤다고요?” “저 고양이는 어떻게 죽었나요?”
“차에 치인 것 같던데요.”
“그러면 고양이가 죽게 된 원인은 고양이를 친 차 때문이겠네요.”
“그렇겠죠.”
“그럼 그 차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파괴해버리면, 고양이가 죽게 됐던 원인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네?”
“차가 기능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겠어요. 절대 불가능하죠.”
“…….”
“그 검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요. 결과와 원인을 뒤집고, 그 원인을 파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그만한 마나를 소모하게 되겠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아마 제약받는 건 없지 않을까요?”
“말도 안 돼….” “그래서 태극 등급인 거겠죠.”
은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한편 그는 머릿속으로 그녀가 깨우쳐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으니, 저는 그만 자리를 피해드릴게요. 백련아, 우리는 훈련하러 갈까?”
“네, 언니. 알겠어요. 오빠 힘내요.”
하백련이 손을 흔든다.
그녀가 프리시스 메모리를 따라서 훈련장을 나간다.
은하는 멍하니 손을 흔들어주고는 여명검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여명검은 답이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은하는 여명검의 마법을 시험하려 다시금 머리를 굴렸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은하가 여명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는 시기가 다가왔을 때쯤에는 5월이 되어 있었다.
5월에 일어난 일은 세 가지.
“은하 형! 나 왔어!”
“클랜에서는 클랜로드라 불러야지.”
“헤헤, 그것도 그런가? 알겠습니다! 클랜로드!”
“그렇게 격식을 차리지는 말고.”
고등아카데미 3학년 어베니어.
어베니어가 판도라클랜으로 실습을 나왔다.
은하보다도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어베니어는 들어오자마자 강시형을 대련에서 날려버리는 모습을 선보여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저게 불도저지, 인간이라고? 차라리 마인이라고 해라….”
강시형은 위기감을 느꼈다.
플레이어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그가 아직 아카데미 학생인 어베니어에게 겁을 먹은 것이다.
“…답은 기술밖에 없어. 어떻게든 드론을 개발해야 해.”
그 즉시 강시형은 새로운 스타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디언의 역할은 다양했다.
지키는 방법은 많았다.
그는 신체적 차이에 좌절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벽해수를 달달 볶아, 시험용 드론이 만들어졌다.
“오, 이거 괜찮은데? 이 드론으로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를 감시해서 정보망을 넓힐 수 있겠네.”
그리고 강시형이 예전부터 들여온 노력은 빛을 보았다.
은하는 강시형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에게 세 개 지역 순찰을 맡기고 나아가 서울 전역 감시를 맡겼다.
“…탈퇴할까.”
강시형은 막대한 일을 받게 되면서 인생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베니어에게 절망하지 않았건만, 노은하 때문에 절망할 판이었다.
한편 두 번째로 일어난 일은 바로 어버이의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 백련아,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은하는 하백련을 비호하게 되면서 매년 카네이션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올해는 무슨 일인지 카네이션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은근히 그날을 기대하던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백련은 퉁명스레 말했더랬다.
“이제 오빠한테는 안 줄 거예요. 오빠한테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해도, 솔직히 아빠는 아니잖아요. 흥!” “……!!”
은하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가까스로 실의에서 헤어나온 그가 하백련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지만, 그녀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은하는 올해부터 그녀의 카네이션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에 한서현 왈─.
“─이제부터는 유성이한테 받으렴. 유란이도 있고, 유정이 배 속에 있는 아이한테도 받으면 되고. 안 그러니, 유성아?”
“아빠! 아빠! 바보야!”
결국 은하는 노유성이 좀 더 자라 카네이션을 만드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하백련이 요즘 들어서 부쩍 자립심을 기르고 있는 것 같아 서운했다.
마지막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뒤에 일어났다.
“…어때? 잘 태어났어? 저기 있지, 우리 아기, 눈은…. 어때?”
“눈에도 아무 이상이 없대. 정말로 건강하게 잘 태어났어. 건강한 아이를 낳아줘서 고마워.” “…정말?” “그래, 정말. 이제 푹 쉬어.”
이유정이 출산했다.
예쁜 딸이 태어났다.
그녀는 출산을 하자마자 딸아이의 건강부터 살폈다.
은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는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줬다.
딸아이는 건강했다.
앞도 잘 보았다.
“흑….”
“왜 울고 그래?”
“하지만, 너무 기쁜걸….”
“앞으로도 계속 기쁜 일만 있을 거야. 그러니 그렇게 울다가는 이제 흘릴 눈물도 없을걸?”
“응….”
딸아이의 이름은 노유린.
은하는 그녀도 노유린도 건강해서 안도했다고 한다.
이 행복이 계속되기를 빌었다.
그로부터 2달이 흘러─.
─시간 참 빨리 지나가네.
연화 입장에서는 느렸으려나?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은하는 류연화와 결혼한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노은하와 선녀정부에 대한 환호성은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본디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도 더 짙어지듯─.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제거해야 할 대상은 누구지? 선녀? 아니, 선녀는 안 되겠고….”
작금의 상황을 극도로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었다.
“선녀의 칼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게 가장 현명하지. 선녀는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되니까.”
“그럼 누구?”
모략은 언제나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가까스로 얻은 평화에 취하게 된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노은하
강현철
이도진
“이상 세 사람이 가장 방해가 되는 녀석들이지. 그 세 사람만 없다면, 선녀의 힘은 급격히 약해질 거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세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칼을 간다.
“잠시간의 평화였던 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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