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92
토벌 작전으로부터 며칠 전.
은하는 류연화가 신화를 현현하고 훈련장을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뜻은 전대 남궁성운도 훈련실에서 나왔다는 것이리라.
백서진의 전투 방식을 파악하려면 장인어른에게 묻는 게 나을 거야.
은하는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아직 훈련장에 있었다.
“아, 은하야.”
“훈련 끝났다면서? 얼굴을 보니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나 보네.”
“응, 다 스승님 덕분이야.”
은하를 보자마자 류연화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은하는 눈웃음을 교환하고 찬찬히 상태를 살폈다. 몸에서 묻어나는 기운이 있다.
존재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며칠 만에 본 류연화의 존재감은 이전보다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초 그녀의 얼굴을 보고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남궁성운은 초췌해 보였다.
“…장인어른, 괜찮으세요?”
“허허, 나도 늙기는 늙었나 보군. 사위도 나랑 대련하려 내려온 거면 내일 하는 게 어떤가.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서….”
신화를 전수한다.
은하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이룩한 업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의미는 곧 자신의 존재력을 넘기는 일이리라.
그러다 보니 남궁성운의 존재감은 이전보다 작게 느껴졌다.
류연화에게 신화를 전수하게 되며 힘을 많이 잃은 듯했다.
은하는 냉큼 그를 부축했다.
“대련은 나중에 쾌차하신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걷는 것도 힘들 텐데, 방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허허, 사위 하나는 잘 두었구만. 그래, 그럼 좀 부탁하지.”
“저도 도울게요.”
남궁성운이 몸을 맡겼다.
류연화도 은하를 거들었다.
남궁성운은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의미가 변질돼 가 제자를 뜻하게 됐지만, 본래는 신화를 자신의 제자에게로 전수하기 위해 만든 거였지. 신화를 전수하려면 되도록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넘기는 게 상성이 좋으니까 말이야.”
“…장인어른의 신화는 연화에게만 전수할 수 있었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성진이 놈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신화의 힘은 그런 식으로 오래도록 전수돼야만 강해질 수 있다고 하더군. 그렇기에 신화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툭하면 얘기하고는 했지.”
윤성진.
남궁성운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긴 듯했다.
그가 두 사람에게 그냥 들으란 듯 이야기를 계속했다.
“반면에 준이는 신화는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반동도 반동이지만, 재건한 세상에 신화의 존재를 남겼다가는 다시금 분란의 씨앗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 애초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류의 문명은 마나를 쓰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가요.”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에 진정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고 말했었어. 그래서 플레이어들을 철저히 관리해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었지. 그런 부분에서…, 백서진과 의견이 일치했던 거야.”
그리하여 신화가 봉인되었다.
플레이어들은 세를 거듭하게 되며 이전 세대보다 강해지면서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백서진이 어느 누구도 오르지 못한 위치에 오른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의 독주를 막을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노라고.
남궁성운이 자조하듯 말했다.
그가 은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위, 자네일세.”
“…….”
“내 신화는 붕괴하고 있고, 이제는 연화에게 전수하게 되면서 더 이상 신화를 현현할 수가 없게 되었네. 그러니 이제 신화를 현현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와 연화밖에 없어.”
신화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신화다.
은하가 황진희에게 들은 말이 남궁성운의 입에서도 나왔다.
그가 말을 더했다.
“그중에서도 자네의 신화는 무척 특별해. 자네는 아마겟돈의 신화를 쓰러뜨린 것으로 자네 신화의 격을 한 단계 높였지. 아마 이 나라에서 살아있는 신화의 신화보다도 격이 높은 신화를 가진 사람은 자네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백서진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은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건 남궁성운의 신화를 전수받은 류연화도 맡을 수 없는 일이다.
은하의 신화는 그만큼 특별했다.
그렇다고 하나─.
“─백서진의 신화를 조심하게.”
백서진의 신화가 격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남궁성운이 경고했다.
“살아있는 신화들도 서로의 신화가 어떠한 이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지 않아. 그중에서 백서진의 신화는 더더욱 알려진 게 없지.”
백서진.
남궁성운도 백서진의 신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신화와 신화의 싸움에서, 상대의 신화를 모른다는 것은 패인이 된다.
이에 그는 은하에게 자신이 아는 백서진의 신화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 경고한 것이다.
“백서진이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생각해볼 때,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의 신화를 조심해야 하네. 그러면 자네의 신화가 아무리 격이 높아도, 그놈의 신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거야.” “…….”
“그러니 그럴 때를 대비해 자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거야.”
“심장이요?”
남궁성운이 가슴을 가리켰다.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몸뚱아리, 육신.”
“…….”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업적이 아니라 온갖 인생의 경험이 녹아 있는 몸 말일세.”
인간은 신화를 현현해 신이 된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완전한 신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봤자 인간이다.
그러니─.
“─결국 신이 되지 못한 인간들의 싸움이란 누가 더 신에 가까운 건지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인간으로서 더 극의에 도달한 것인지로 승패가 갈리는 법이지.”
“…….”
“건강한 정신은 곧 건강한 몸에서 비롯되는 법. 모든 근본은 그 몸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려무나.”
역설적이게도.
신화와 신화의 싸움은 인간으로서 누가 더 강한지로 결착이 난다.
은하는 그 말을 되새기기로 했다.
☆
경상남도 창원, 백서진의 비고.
플레이어들과 슬레이어들의 전투는 플레이어들에게로 판세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국가가 뒷받침하는 플레이어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슬레이어들은 비고에 있는 재화로만 전투에 임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슬레이어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흠, 기문진법이라고 해봐야 결국 결계의 한 부류에 불과할 뿐이지. 사람의 발길을 물리는 마법인 만큼 바람을 물릴 수 있을 리가.”
하물며 슬레이어들의 방벽이 돼줄 기문진법은 플레이어들에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하양이 여러 개로 얽혀 있는 트랩을 해제하는 것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네비게이터들까지 가세하니 기문진법도 해체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들 측에는 채선우가 있기도 했다.
바람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그는 플레이어들이 들어가지 않은 영역에 먼저 바람을 들여보내, 설치돼 있는 진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바람으로 파훼할 수 있으면 그 자리에서 파훼하고, 불가능하면 정하양에게 넘겼다.
“내 생각보다 비고가 공략당하는 속도가 빠른데…. 이대로 가다가는 그분께서 선녀를 사로잡기도 전에 놈들에게 패배하고 말겠군.”
이에 마스테마는 상황을 분석하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나라의 명운을 거는 전투에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을 전투.
백서진과 노은하의 전투의 승패와, 누가 선녀를 옹립하는가에 따라서 정세가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슬레이어들이 진다고 해도, 백서진이 선녀를 사로잡아 그녀를 인질로 전국에 방송을 내보낸다면 플레이어들은 그녀의 생존을 위해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슬레이어들로서는 전투를 여기서 플레이어들의 발을 붙잡아, 백서진이 선녀를 잡을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이쯤에서 옮기면 되려나.”
그런 의미에서 마스테마의 계략은 반쯤 먹혀든 것과 다름없었다.
마나관리기구가 투입해낼 수 있는 정예 병력이 창원으로 내려왔다.
기문진법 안으로 깊숙이 발을 들여 빠져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아공간을 열어 슬레이어들과 다른 곳으로 도망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예 병력이 이곳에 고립되겠지.
그사이 우리들은 그분을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도 되고, 다른 곳에서 테러를 일으켜서 녀석들의 시선을 끌어도 된다.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슬레이어들은 버리고 가도 된다.
어차피 백서진이 왕이 되는 순간, 어둠은 모두 그를 따르게 돼 있다.
그것이 어둠의 습성이다.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른다.
어디 어둠뿐인가.
이해득실에 밝은 사람들의 경우, 백서진의 편에 붙을 수도 있었다.
즉, 이 자리에 있는 슬레이어들은 대체 가능한 병력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마스테마는 자신의 곁에 있는 슬레이어들을 데리고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
─아공간이 열리지 않는다고?
마스테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아공간을 열 수 없었다.
대기에 녹아 있는 마나가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아공간 마법은 대기와 체내의 마나가 서로 호응을 해야 열리는데, 그것이 봉쇄되고 말았다.
“저희가 그런 식으로 도망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죠.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설마 저희가 그렇게 하게 두겠어요.”
프리시스 메모리.
그녀가 마스테마의 마법을 분석해, 아공간을 봉쇄하기 위해서 일대에 녹아 있는 마나를 멈춘 것이다.
그녀만이 가능한 마법.
그녀가 금발의 머리칼을 찰랑이며 생긋 웃었다.
“제가 있는 한, 당신은 이제부터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마법을 쓰지 못할 거랍니다.”
그녀가 석장으로 바닥을 쳤다.
마스테마는 혀를 차고 물러나면서 그녀에게 대항하려 했다.
바로 그때─.
“─나를 빼먹으면 섭하지! 이놈이 어디서 나를 무시하고 있어?” “……!!”
진파랑.
그가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예기치 못한 기습.
그가 손에 쥔 클로를 힘껏 휘둘러 마스테마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때마침 수풀 속에서 여성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도 가세할게요!”
십이좌 강예솔.
그녀가 지팡이로 허공을 그었다.
프리시스 메모리의 마법이 완성돼마스테마를 붙드는 사이, 강예솔의 소환마법이 발동했다.
“숲에 어울리는 존재라면 토끼지. 어디 만렙 토끼에게 짓눌려볼래?”
안경을 낀 그녀가 키득거린다.
직후 그녀의 뒤로 소환진이 나타나 거대한 토끼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소환수.
만렙 토끼라는 괴상한 이름을 받은 토끼가 껑충 뛰어올랐다.
꾸이이잉!!
그 토끼가 마스테마를 찍어누른다.
참으로 굴욕적인 공격이었다.
☆
마나관리기구 본부.
플레이어들과 슬레이어들의 전투는 공성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녀를 수성하기 위한 플레이어, 선녀를 약탈하기 위한 슬레이어들의 전투라고 할 수 있었다.
뇌보
우보
그들 모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격전을 벌였다.
더욱이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은하와 백서진의 전투는 더욱 치열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전투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움직임을 쫓아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위치가 변해,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블레이즈 크래셔
라이트닝 크래셔
은하는 백서진의 검을 튕겨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검이 번쩍 빛을 뿜었다.
여명검이 진홍의 불길에 휩싸이고, 황혼검이 푸른 전격에 휩싸인다.
은하는 즉각 지면을 박찼다.
뇌보를 사용해 백서진의 배후에서 모습을 드러내 검격을 휘둘렀다.
──!!
백서진이 재빨리 대응한다.
그가 손에 쥔 두 자루의 검으로 은하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도류와 이도류의 싸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밀리는 쪽은 백서진이었다.
은하는 그대로 몰아붙였다.
우보
월무
백서진이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은하의 검격을 흘려보낸 그가 즉각 진각을 밟아 빠져나간다.
조금 전, 은하가 공격을 가한 듯이 그의 뒤에서 나타난 백서진이 검을 휘둘렀다.
이도류를 이용한 연속기.
은하는 한 발을 물리는 한편으로 그의 품으로 들어갈 틈을 엿봤다.
공격과 공격의 간극 사이에 빠르게 파고든다.
이그니스 댄스(Ignis Dance)
푸른 전류와 진홍의 불꽃이 인다.
색이 다른 입자가 넘실거린다.
은하는 자신의 스타일로 재정립한 월무를 선보였다.
팅!
백서진이 박자를 바꾼다.
공격의 궤도를 튼 그가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낸다.
칼날에 깃든 어둠이 마치 불씨처럼 떨어져 나가며 흩날린다.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
푸른 전류와 진홍의 불꽃.
그리고 어둠의 충돌.
이번에도 결착은 나지 않았다.
은하의 칼날이 백서진의 팔 근처를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맞부딪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백독지왕(百毒之王)
백서진의 망토가 펄럭였다.
그가 숨기고 있던 암기를 날렸다.
수십 개에 이르는 암기.
공중에 떠오른 암기가 은하에게로 날아들었다.
“큭…!”
은하는 불길을 일으켰다.
암기가 기세를 잃고 떨어졌다.
하지만 일부가 불길에 굴하지 않고 그의 몸을 스쳤다.
암기에 독이 묻어 있었다.
은하는 따끔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고통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은하는 체내 마나를 끌어올렸다.
바일런트 베놈
몸속에서 섭리가 꿈틀거린다.
섭리가 그 독을 파괴한다.
은하는 섭리에게만 맡기지 않고, 몸속에 직접 불을 일으켰다.
화르륵!
그의 몸이 진홍의 불길에 휩싸여 독들을 태워버렸다.
백서진은 그 광경에 감탄했다.
“독에 내성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독들도 극복해낼 줄이야. 그중에 제3위계 오버랭크에 속하는 바실리스크의 독도 있었건만, 정말 대단하구나.”
“안타깝게 됐네. 내게 독이 통하지 않아서 말이야.”
은하는 이죽거렸다.
그가 돌연 여명검이 있는 방향에 아공간을 열었다.
“그럼 이제 네 차례다. 너도 어디 한 번 당해보시지.”
바일런트 베놈
은하는 아공간에 검격을 날렸다.
직후 그가 백서진이 있는 근처로 새로운 아공간을 개방했다.
검격이 그를 공격했다.
백서진은 피하지 못했다.
촤르륵!!
은하가 쇠사슬로 백서진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검격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큭…!! 웁…!!”
바일런트 베놈의 효과가 작용한다.
패혈증을 일으키는 독.
피가 썩고, 그 피가 전신으로 퍼져 몸을 오염시킨다.
백서진이 피를 토해냈다.
“이, 이 독은 대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리라.
그 독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은하 자신밖에 없었다.
은하는 백서진이 극독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체내 마나를 발현하는 걸 기다려주지 않았다.
촤르륵!!
“……!!”
쇠사슬을 끌어당긴다.
백서진이 끌려온다.
그가 우보를 밟으려고 하나, 독이 그의 몸을 헤집고 있었다.
우보를 발동하는 것을 실패했다.
그리고 은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금 일격을 가했다.
환수변환
라이거 블래스터
콰아아아아앙!!
응축한 전격을 쏘아낸다.
푸른 전류가 그를 집어삼킨다.
☆
“직접 싸워 보니…, 알겠구나. 너는 정말…, 쿨럭, 강하구나.”
호각으로 보였던 전투도 잠깐.
백서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은하의 실력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간신히 독에 내성을 지니고, 은하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이다.
결국 그는 신화의 편린을 꺼내는 상태까지 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다. 다 늙은 몸으로 황금세대의 대표자인 너를 상대할 수 있겠냐.”
백서진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어둠.
보폭으로 세 걸음 정도의 공간에 신화를 드리운 그가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마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는 듯이 젊어지고 있기까지 했다.
“어차피 너도 예상하고 있었겠지. 너와 나의 싸움은 이런 게 아니라, 신화와 신화의 싸움인 걸 말이다.”
그가 입가를 끌어올렸다.
은하는 점점 공간을 장악해나가는 그를 노려보았다.
은하 역시 알고 있었다.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리라.
“잔말 말고 꺼내기나 해.”
은하도 의식을 집중했다.
그의 몸에서 불씨가 흘러나온다.
진홍의 불씨가 그의 주변을 잠식해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화르륵!!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빨랐다.
일대가 진홍의 불길에 휩싸였다.
이제 은하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사상을 각인시켰다.
그가 세계에 고했다.
신화 현현
리바이벌
신화의 완성이다.
은하의 머리칼이 붉게 변한다.
눈동자 속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의 세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불꽃의 망토를 어깨에 걸친다.
은하는 그들의 군주가 되어, 바로 눈앞에 있는 적들을 눈에 담았다.
“부활의 신화라니, 참 대단하구나. 어떻게 그런 신화를 체화한 것인지 놀랍기만 해. 죽음에 가까운 상태는 너만 겪은 게 아닌데 말이다.”
백서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어둠의 속도는 굉장히 느렸다.
꿈틀꿈틀, 꿈틀꿈틀.
촉수처럼 생긴 어둠이 확산되면서 세계를 형성한다.
밀도가 높은 어둠이 공간을 잠식해 모든 것을 물들여버린다.
곧 그의 사상이 울려 퍼졌다.
태초에 세상이 어둠에서 태어났듯,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둠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니.
사상이 각인된다.
밀도 높은 어둠이 그때를 기점으로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온갖 물감을 섞어 만들어진 듯한 칠흑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덧칠한다.
그의 세상에 발을 들인 슬레이어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 어둠을 발아래에 두면서, 세상을 내다보는 왕이로다.
은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백서진의 신화가 그의 신화마저도 칠흑으로 뒤덮고 있었다.
은하가 그 힘에 대항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무슨 일인지 그의 신화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백서진의 신화에 빨려들고 있었다.
“은하야!!”
“”””……!!””””
비단 은하의 신화뿐만 아니라.
은하의 신화 속에 있던 사람들도 형체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은하는 노은아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물감에 덧칠되기라도 한 듯 지워졌다.
어느새 은하는 검은 세상에 홀로 서 있었다.
아니, 혼자는 아니었다.
저 앞에 백서진이 있었다.
신화 현현
암흑지근(暗黑之根)
백서진의 신화가 완성되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그의 무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전성기 시절로 젊어지고, 조금 전 전투에서 파괴된 무장이 복구됐을 뿐이다.
“네 신화는 분명 대단하다. 아마도 신화의 격으로 따지자면 네 신화를 능가하는 신화는 없을 테지.”
“…….”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백서진이 입을 열었다.
신화를 현현하지 못하게 된 은하는 말없이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나라에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신화보다 격이 높아질 수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야─.”
백서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은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나라는 어둠 위에 세워졌고, 나는 그 어둠을 관장하는 왕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지.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은하 네가, 너희가 어떻게 이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 것 같으냐. 바로 이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만든 나라에서 너희가 이룩한 모든 것은 결국 어둠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백서진이 차분히 설명했다.
“어둠이 잠식한 나라에서 태어난 너희들이 내 위에 설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지.”
오직 이 나라에 국한해서.
백서진의 신화는 어떤 신화보다도 우위를 가진다.
그것이 백서진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신화였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