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94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빠지고 말았다.
백서진에 의해 이 나라의 모든 게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못됐던 거야. 나라를 멸망에서 재건하는 것만 생각하고,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야.”
“””””…….””””
저 아래에서.
플레이어들과 슬레이어들이 싸우며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고 있다.
임가을은 유리창 너머를 내다보며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되돌려야지. 이 싸움은 그걸 위한 싸움인 거고, 그게 내 마지막 임무가 될 거야.”
임가을이 단언하듯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아래를 보던 하백련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다음에는 네가 해야 해.” “제가요?” “올바른 토대에서 만들어진 나라가 정말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걸 알릴 상징은 너밖에 없으니까.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임가을이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 사이, 임가을의 얼굴도 이젠 세월의 흐름을 숨길 수 없게 됐다.
의 기프트가 무한히 젊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화가 일반인들보다 느리게 진행될 뿐이지.
하백련은 그녀의 미소에 피어오른 잔주름을 확인하고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머지않아 자신이 선녀로 취임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는 그 시기를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선녀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
언젠가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네, 제가 할게요. 제가 선녀님이 못하신 일을 꼭 마무리할게요.”
하백련이 당찬 어조로 말했다.
임가을은 고맙다고 답했다.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물론, 그 전에…. 저들의 쿠데타를 막아야 하겠지만 말이야.”
“괜찮아요. 은하 오빠가 어떻게든 해줄 거예요.”
노은하와 백서진이 싸우고 있다.
승세는 노은하에게 있었다.
하백련은 마음속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를 올렸다.
노은하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에게 보호만 받고 있는 그녀는, 분하게도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신화 현현
암흑지근
백서진이 신화를 현현했다.
어둠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일대를 장악해버렸다.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그 광경에 숨을 삼켰다.
“이건, 대체….”
노은하의 신화는 수도 쓰지 못하고 백서진의 신화에 삼켜지고 말았다.
마나관리기구 정문 일대에 한 치도 들여다보기 힘든 어둠이 깔렸다.
플레이어도, 슬레이어도 저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임가을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흠….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좋은 상황이라고는 받아들이기 힘들겠네요.”
그때 송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구두 소리를 내며 창가로 다가왔다.
“죽은 건 아닌 것 같네요. 저들의 별은 아직도 반짝이고 있거든요.” “”””…….””””
“그래도 위험한 상황이긴 하네요. 판도라 클랜로드의 별빛이 밝기를 잃어가고 있어요. 흠, 모든 존재를 어둠으로 빨아들이는 능력이려나? 당연히 저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백서진의 독무대겠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 건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리는 그녀.
하백련은 송윤서처럼 태연하게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송윤서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생긋 미소를 지은 송윤서가 하백련을 쳐다보았다.
“밖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 없을 것도 없죠. 그래도 괜찮아요?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느냐고.
송윤서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백련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오빠가 아마겟돈과 싸울 때도 응원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무력하게 그러고 있는 것보다 저도 오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노은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항상 다쳐서 돌아오는 은하를 보면 괜히 가슴이 찡해지고는 했다.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은하에게 보호만 받는 자신이 정말 싫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보호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고 있고 싶지 않았다.
왜 나만 보호받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나도 오빠를 돕고 싶어.
위험해도 상관없다.
노은하만이 아니다.
저 아래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위험을 각오하고 있었다.
자신만 이곳에서 편안하게 전투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피력했다.
이에 송윤서가 활짝 웃었다.
“그래야 제가 섬기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죠. 주눅이 들어 있는 것보다 지금 그 표정이 잘 어울려요. 그럼 어디, 위험에 뛰어들어 볼까요?”
송윤서가 손뼉을 쳤다.
그녀가 헤르미트에게 말을 걸었다.
“헤르미트.” “네, 윤서 언니.” “어린 선녀님을 데리고 지금 당장 저 아래로 뛰어내리세요.”
“”””……!!””””
송윤서가 키득거렸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백련도 그녀가 그런 말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헤르미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두 눈을 깜빡거리기나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하고 다르게, 송윤서는 확신에 차서 단언했다.
“저는 신화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알고 있어요.” “”””…….””””
“은 마나로 이루어진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편산시킨다는 걸요. 자, 그러니 헤르미트! 얼른 뛰어요! 두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헤르미트가 망설이고.
송윤서가 다그친다.
결국 헤르미트는 에라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백련을 품에 안았다.
그녀가 사람들의 만류도 무시하고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진다.
방탄 처리가 된 유리가 부서지고 추락감이 엄습한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게 된다.
“꺄아아악!!”
하백련은 헤르미트를 꼭 잡고서는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을 뜨려 했다.
송윤서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내 힘이라면….
어쩌면 저 어둠 속에서 한 줌의 빛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가 침착하게 정신을 집중해, 체내 마나를 발현했다.
기프트
백은의 빛이 어둠을 밝힌다.
☆
벨페고르의 내단을 흡수하기 위해 심상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은하를 빼다 닮은 무의식은 그에게 한 가지 충고했었다.
‘과거는 후회하는 게 아닌,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게 성찰하라고 존재하는 거야. 오해하지 마.’
무의식의 충고는 은하에게 상당히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언제나 과거를 후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후회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내가 에 잡아먹혀 이성을 잃은 상태로 싸웠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는지 몰라.
과거를 성찰하는 게 아니라 여태껏 후회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으니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기프트는 자신이 어느 곳에 의식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미래에 두고 있다면 .
현재에 두고 있다면 .
과거에 두고 있다면 .
거기에 의지가 추가되어 기프트를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즉, 후회와 증오로 점철된 의지는 기프트의 통제를 잃게 만든다.
이전 삶에서 내가 에게 의식이 잡아먹힌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겠지.
회귀 전은 후회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후회에 파묻혀 있을 것이 아니라, 그 후회를 밑바탕으로 하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해야 했다.
은하는 회귀하고 나서야 깨달았고, 뒤늦게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다짐할 수 있었다.
과거를 밑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과거를 성찰한다.
그렇기에─.
─기프트
그는 이제는 기프트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회귀하고서 처음으로 를 발동했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선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괜찮아, 제어할 수 있어.
정신은 멀쩡했다.
기프트에 잡아먹히지 않았다.
은하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감각에 의식을 집중했다.
우보
백서진의 신형이 사라진다.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청각, 지면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촉각,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다.
은하는 그 즉시 검을 피해냈다.
시각, 백서진의 눈이 커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은하는 빠르게 발을 놀렸다.
──!
금속음.
검과 검이 충돌한다.
은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한쪽 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린 그가 여명검을 휘둘렀다.
다시금 검과 검이 부딪친다.
그때, 가 학습한다.
은하의 신체능력이 대폭 상승하고, 백서진이 다음에 펼칠 수에 대비해 몸을 움직이게 한다.
은하는 그 감각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휘익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궤적.
상체를 뒤로 기운 그는 황혼검으로 궤적이 지나간 자리를 내리그었다.
당황한 백서진이 반대쪽 손에 쥔 검으로 공격을 막아낸다.
이에 은하는 여명검으로 대응했다.
지면에 원을 그리듯 몸을 움직여, 백서진이 폭넓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대응한다.
이내 지면에서 뛰어오른다.
진회축
마법이 아니다.
격투술이다.
푸른 번개가 스파크를 일으킨다.
은하의 발길질이 백서진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가 뒤로 밀려나는 즉시─.
─라이거 체인
은하는 주위를 떠다니는 쇠사슬로 백서진의 팔을 낚아챘다.
이윽고 쇠사슬을 끌어당기며, 그가 강제로 거리를 좁히게 만들었다.
라이거 블래스터
그 순간, 은하는 쇠사슬을 변형해 그에게 전자포를 쏘았다.
마나를 눌러 담아, 깡이의 힘으로 쏘아내는 마법.
백서진은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해 정통으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큭…!!”
백서진이 짧게 신음했다.
그가 방벽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은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월무
은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여명검을 휘두른다.
이어서 몸을 돌려 황혼검을 휘둘러 그가 방어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거기에서 이어지는 연속기.
여명검과 황혼검으로 긋는 궤적이 그를 몰아세웠다.
“커헉…!!”
급기야 황혼검의 궤적이 백서진의 가슴을 베어냈다.
어깻죽지에서 사선으로 생긴 상처.
상처가 크게 벌어지며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아직이야.
이걸로 만족해서는 안 돼.
더, 더, 더 빨리.
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신체 능력이 계속해서 상승한다.
이 기세를 멈출 수 없다.
라이거 체인
은하는 도망치려는 그를 붙잡았다.
백서진이 사슬을 끊어내려고 한다.
은하는 냉큼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똑같은 수법.
백서진이 그에게 끌려오는 그 순간 품 안에 숨겨둔 암기를 발사했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기프트
급소를 공격당하는 게 아니라면, 죽지 않는다.
은하는 날아드는 암기를 보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기프트가 고하고 있었다.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준다.
피해서는 안 된다.
──!!
암기가 눈꺼풀 위를 지나쳤다.
은하는 눈을 감지 않았다.
한쪽 눈을 잃는 정도로 백서진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눈은 다치지 않은 듯했으나.
눈꺼풀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한쪽 시야가 피로 얼룩진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황혼검을 휘두르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온 감각이 고하고 있었다.
백서진이 바로 눈앞에 있다.
“어림없…!!”
백서진이 방벽을 펼친다.
예상 범위 내였다.
는 이미 백서진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황혼검을 휘둘러 방벽을 내리쳤다.
황혼검
황혼검이 마법을 흡수한다.
방벽이 파훼당한다.
백서진의 얼굴에 당황함이 깃든다.
은하는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디 이것도 받아보시지.
은하는 여명검을 힘껏 휘둘렀다.
가 근력을 증가시킨다.
백서진이 황급히 검을 들어 막지만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난다.
여명검
나아가 검이 부서진다.
그러자 여명검의 효과가 발동되며, 인과가 재조정된다.
부서진 검이 그동안 은하에게 행한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다.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서, 몸에 힘이 들어갔다.
“……!!”
낭패감.
백서진의 얼굴에 마치 그런 감정이 번졌다.
그것도 잠시─.
──!!
그의 무기를 부순 여명검이 그대로 사선으로 떨어졌다.
새하얀 궤적이 만들어지고.
궤적이 번쩍인 순간 그의 몸에서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
“쿨럭….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다니. 도대체 그 움직임은 뭐지?”
“내가 그걸 왜 알려줘?”
“정말이지…. 너는 내 어둠으로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숨기는 것이 많구나.”
백서진이 피를 철철 흘렸다.
치명상을 입고 물러난 그는 자신이 조금 전에 당한 공격을 믿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정도로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은하의 전법이 예상외였다.
어디 그뿐인가.
백서진은 전투 중에 점점 강해지는 은하의 상태를 예측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나─.
“─그럼 이건 어떠냐. 이것마저도 대응할 수 있을까.”
백서진은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은하가 강한 것은 인정하나, 겨우 그뿐이다.
이 신화가 존재하는 한, 그는 절대 패배하지 않으리라고 자부했다.
백서진의 존재가 흐릿해진다.
그가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이에 어둠 속에 홀로 남은 은하는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이 어둠 속에서.
나를 찾아낼 수 있겠느냐.
백서진의 비웃음.
주위가 지금보다 더 깜깜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진정한 어둠.
전격으로 밝힐 수 없다.
이제 은하는 자신의 몸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우보
그 속에서.
백서진은 정확히 은하를 노렸다.
은하는 등 뒤에서 날아든 공격을 직감적으로 막아냈다.
그 즉시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뜀박질했다.
허공에 검을 휘두른다.
베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소용없다.
네가 인지하는 순간에 나는 이미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감각까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은하는 공격을 받아주었다.
푹!
“……!!”
백서진의 칼이 복부를 찔렀다.
은하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쇠사슬로 자신의 배를 찌른 백서진의 팔을 붙들었다.
미친놈….
바로 앞에서 들려온 소리.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하는 감각을 믿고서는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나는 지금 어둠 그 자체이다.
어둠을 벨 수 있을 것이라….
바로 그때였다.
돌연 어둠이 밝아졌다.
어둠 속에 녹아든 백서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화아악!
단 한 줌의 빛.
그 빛이 어둠을 환히 밝힌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빛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운 어둠을 몰아낸다.
백서진의 신화에 금이 간다.
무슨…!! 설마, 인가!?
백서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은하는 그 소리를 무시했다.
상황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는 지금 이 상황에 맞는 최적의 행동을 도출하고 있었다.
기프트에 몸을 맡긴다.
그동안 자신이 이룩한 몸뚱아리로 백서진에게 증명한다.
“그만, 뒈져.”
첫 번째 공격은 실패했다.
하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을 성찰하고, 학습한다.
다시 한번.
그리고 한 번 더.
또 한 번.
몇 번이고 검을 휘두른다.
은하는 발에 힘을 주었다.
하체에 힘을 준 그가 허리를 크게 비틀었다.
동시에 황혼검을 움직였다.
어깨 뒤로 당겨진 황혼검이 그만큼 힘을 얻어 앞으로 나온다.
──!!
수평의 궤적을 긋는다.
그 궤적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형체가 드러난 그의 가슴을 가른다.
깊게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은하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은하는 그 피를 뒤집어쓰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촤락!
회귀 전, 백서진에게 배운 기술을 모조리 때려 박는다.
궤적은 한 번에서 그치는 일 없이 허공에 수도 없이 새겨진다.
13연격.
그리고 그 공격이 행해졌을 때쯤, 마침내 백서진의 방벽이 걸레짝처럼 찢겨 나갔다.
은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여명검이 울고 있었다.
은하도 알고 있었다.
───!!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푸른 마나가 새하얀 칼날에 스며들었다.
빛을 머금은, 인과를 파괴함으로써 현실을 조작하는 힘을 지닌 검.
한계까지 모은 힘이 검을 찬란하게 빛나게 했다.
이윽고 은하는 너덜너덜해진 채로 서 있는 백서진을 향해, 이번 삶의 자신이 있게 해준 마법을 발동했다.
여명검 – 플래티나 크로스
비록 마법에 담긴 술식과 구조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나.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완성된 마법.
백서진의 신화에 흩어지지 않고, 의 힘에 의해서 불완전하게 완성된 마법이 번쩍였다.
세상이 일변했다.
“아….”
백금색의 궤적.
백서진의 몸에서 생겨난 십자가가 부지불식간에 세를 부풀리며 어둠을 새하얀 빛으로 폭발시킨다.
제일 먼저 빛에 삼켜진 백서진은 멍하니 소리를 내뱉었을 뿐이다.
그것이 끝이었다.
백서진의 신화가 빛으로 갈기갈기 뜯겨 나가고 있었다.
“네가…, 이겼구나.”
남아 있던 신화가 거의 본능적으로 백서진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다.
그럼에도 빛을 막을 수 없다.
마침내 백서진은 인정해야 했다.
자신의 신화가 격을 잃고 있다.
만약 승리했다면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었을 테건만.
그는 패배한 것으로 더는 신화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졌다.
“마지막에 하필이면…. 저 아이가 난입할 줄이야.”
육신이 사멸한다.
사멸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
백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