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896
웃기지 마.
은하는 편하게 눈을 감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백서진을 보고는 뇌까렸다.
화가 치밀었다.
“오, 오빠…?”
“백련이 너는 이제 그만 돌아가. 나머지는 나 혼자 해결할 거니까. 헤르미트 누나.”
“네, 클랜로드.”
“백련이를 데리고 돌아가도록 해. 나는…, 이놈이랑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거든.”
“…네, 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백서진을 보낸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은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뜬 백서진에게서 등을 돌려, 하백련과 헤르미트에게 말을 걸었다.
이윽고 헤르미트가 하백련을 덥석 끌어안고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녀가 한 번의 점프로 임가을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착지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거냐.”
한편 백서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리라.
그런 반면 은하의 입꼬리는 거의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뭘 하기는.”
“…….” “죽음에 대한 모독이지.”
백서진이 비록 변절했다고 하나, 그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을 무작정 폄하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신화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이런 식으로 편하게 보내줘도 된다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특히나─.
“─그동안 당한 빚은 갚아야지.”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백서진에게 당하기만 했던 은하는 더더욱 그를 편하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마침 여기 좋은 게 있네.”
은하는 바닥으로 시선을 향했다.
백서진이 사용한 단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모두 합해서 18자루.
휘이익
은하는 마나를 발현해, 그 검들이 자신의 발치에 모이도록 했다.
그러고는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런가. 네 손으로, 직접 나를 죽이겠다는 거로구나.” “그래, 맞아.”
“알았다. 죽여라.”
백서진은 깨달은 눈치였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진은 신화에 사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니 아직, 죽일 수 있었다.
“너 역시, 언젠가 이런….”
푹
백서진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은하는 검으로 백서진의 눈을 찔러 그대로 뒤통수까지 검이 나오도록 박아버렸다.
사멸하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순간 남아 있던 몸이 입자가 돼 소멸해버렸다.
그렇게 백서진은 죽었다.
죽은 줄 알았다.
이렇게 끝내는 게 어디 있어?
은하는 여명검을 손에 쥐었다.
여명검이 찬란한 빛을 머금었다.
여명검
여기, 백서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놓여 있다.
은하는 단검을 파괴했다.
여명검은 그 원인을 파괴한 것으로 결과까지도 파괴해버렸다.
백서진이 부활했다.
“나는 분명 죽었을 텐데….”
“누구 마음대로 죽으려 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죽고 나서 생각하도록 해.”
콰직!
이번에는 있는 힘껏.
은하는 두 손으로 단검을 쥐고는 백서진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지며, 조금 전에 마나의 입자가 된 것처럼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여명검
은하는 두 번째 단검을 부쉈다.
연달아 여명검을 사용한 데다가, 사람을 되살리는 부담이 상당했다.
그나마 백서진이 소멸하고 있어, 부담이 적은 것이리라.
체내 마나가 쑥쑥 빠져나간다.
은하는 허리춤을 뒤져, 에스프레소 더블샷으로 입을 축였다.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머리가 으깨진 기분은 어때?” “…….”
“아직 16자루 남았다.” “너는 한 사람의 죽음을 뭐라…, 커헉…!!”
백서진이 분개한 듯이 소리쳤다.
은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세 번째 단검을 그의 입속에 찔러 넣었다.
칼날이 그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또 한 번, 백서진이 죽었다.
여명검
그리고 은하는 다시 원인을 부숴, 백서진을 살려냈다.
“이, 이건 대체….”
그때쯤 백서진도 더 이상 태연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손발이 입자가 되어 사라져 상체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쉽네. 하체라도 남아 있었다면 거기도 찌르는 건데.”
“…….”
“이따 보자.”
네 번째.
은하는 그의 눈만 살짝 찌르고는, 그가 어둠 속에서 처절하게 죽도록 만들었다.
다섯 번째.
혀를 잘랐다.
그가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은하는 시끄러워서 죽였다.
여섯 번째.
웜 홀 마법을 사용해 그의 두뇌를 손으로 주물렀다.
“이거 보이지?”
“악취미가…, 따로 없구나.”
한편으로는 새로이 웜 홀을 열어, 그의 두 눈에 자신에게 농락당하는 두뇌를 보여주었다.
백서진은 그것만으로 분노했으며, 눈에 실핏줄이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모독을 당한 백서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고 했다.
그 순간, 은하는 단검을 휘둘러서 그의 뇌를 난도질했다.
백서진이 죽었다.
여명검
일곱 번째.
백서진이 자살을 선택하려고 했다.
은하는 그보다 더 빨리 단검으로 그의 숨통을 끊었다.
여명검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네가 인간의 도리를 운운하는 게 어이가 없기만 하네. 잘 가.”
여덟 번째.
백서진이 분개해 목청껏 외쳤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던 사람은 명예롭게 죽기를 소망한다.
죽음에 의미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가 은하에게 저주를 건 것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서진은 설마 이런 식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하물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아울러 으로서 존재하는 삶의 완성이라고 여겼었다.
따라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은하에게 신화를 넘기고 죽는 것은 그의 승리를 의미했었다.
“그렇게 가게 둘 수는 없지.”
즉, 백서진은 전투에서는 졌지만, 그의 신념은 지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이겼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은하는 그것을 부정했다.
그의 신념마저 무너뜨리고,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아홉 번째.
“부탁이다, 제발 죽게 해다오. 그냥 편히 가게….”
백서진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즉각 은하에게 애원했다.
아홉 번의 죽음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조차도 무너지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9자루 남았어. 딱 절반이네.”
“아….”
물론, 은하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푸슉!
열 번째.
열한 번째.
“십이.” “십삼.”
“십사.” “십오.”
“십육.” “십칠.”
백서진을 수도 없이 죽였다.
그만큼 은하는 여명검으로 인하여 갖은 부담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원인을 파괴하면서 백서진을 살리고, 죽이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십팔.”
은하는 18자루의 단검을 이용해, 그에게 18번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렇게 백서진이 죽었다.
☆
백서진이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면서, 잔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이거, 바깥으로는 새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겠군.”
선기준.
그는 어둠이 걷히고 난 세상에서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니.
은하의 신화도 놀라울 따름인데, 저 힘까지 세상에 알려져 버린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말 것이다.
백서진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행동.
은하를 란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꺼림칙함을 품게 될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번 전투는 방송으로 송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도 혹시 몰라 그는 마법으로 은하와 백서진을 감춰버렸다.
“이긴 건가….”
이윽고 그가 마법을 거두었을 때, 전장 중심에는 은하가 홀로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끝난 것이다.
백서진을 물리쳤다.
“백서진이 죽었다!!” ” 노은하가 승리했다!!”
그때쯤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곧장 그것을 알아차리고, 전쟁을 끝내는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며 플레이어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반대로 슬레이어들의 사기는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백서진의 죽음이 그만큼 잔인하고, 가축을 죽이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리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돌격!! 당장 잔당들을 소탕하라!! 너희는 얼른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길을 막도록 해!!”
그렇다고 이 상태로 승리의 기쁨에 취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슬레이어들이 도망치려 했다.
선기준은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즉각 플레이어들에게 지시했다.
그제야 플레이어들이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슬레이어들을 쫓았다.
추격전의 시작이었다.
“한 사람도 놓치지 마라!” “인근 클랜에 연락해 얼른 지역을 봉쇄해라!”
“청량리! 놈들이 어둠으로 빠지지 못하게 길을 막아야 해!!”
플레이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포위망을 만들었다.
텔레파시스트들이 인근에 위치한 클랜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판도라클랜 진서나 텔레파시스트의 슬레이어 토벌 작전에 대한 결과를 간략히 보고합니다. 선우화령, 이동혁, 마인 마스테마, 할파스, 바르바토스의 토벌을 완료하였습니다. 현재 슬레이어들이 사기를 잃고 와해해 도주 중. 이에 본 토벌대는 창원시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아 잔당 소탕에 들어갑니다. 이상으로 진서나 텔레파시스트의 보고를 전달한 동해클랜의….]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으로 낭보가 울렸다.
소식은 빠르게 서울로 퍼졌다.
백서진이 쓰러졌다!
군주 노은하가 승리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작전.
그러나 마나관리기구에서 일어난 전투는 감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가장 먼저 백서진의 소멸을 들은,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플레이어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따라 외쳤다.
그 소리가 파도치듯 서울 전역에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거야, 원…. 시끄럽네.” “시끄럽기는. 다 너 듣기 좋으라고 소리치고 있는 거잖아. 그보다 너, 아까 그 짓은 왜 한 거야?”
은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신화와 기프트를 발동한 반동에, 여명검의 반동까지 더해지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몸에 마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때, 그를 치료하러 온 노은아는 다짜고짜 그의 팔을 때렸다.
그녀가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 같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짓은 하지 마.” “알았어, 안 그럴게.”
은하는 순순히 사과했다.
은하 역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서진을 몇 번이고 죽인 것은 그리 좋은 행위가 아니었음을 자각했다.
자신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행위고, 도리를 벗어난 자의 행위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고 싶었다.
‘이걸로 아빠 몫은 갚은 셈인가.’
개인적인 만족에 지나지 않았지만.
은하는 백서진을 몇 번이고 죽이며 그나마 원한을 갚을 수 있었다.
한편 은아는 그것에 대해 은하에게 더는 뭐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은하의 몸을 치료하러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이것 봐, 이게 뭐야? 애가 몸이 만신창이가 됐어. 너는 왜 싸우면 맨날 이렇게 되는 거니?”
“나도 안 다치고 싸우려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네.”
“말은….”
은아는 은하의 옷을 들추어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은하는 괜스레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 상태로 치료가 이어졌다.
“대체 어떻게 싸웠으면…. 어쩌다 배에 구멍이 난 거야? 너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던 거 알아, 몰라? 잘못했으면 눈도 잃을 뻔했어.”
“당연히 안 죽으려고 잘 조절….” “조절?”
“…누나는 어디 다친 데 없어?” “얘가 말 돌리는 거 봐.”
노은아는 혀를 쯧쯧 찼다.
이내 은하를 한 대 세게 때리려다 조용히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치료마법을 사용해 당장 급한 상처부터 치료하기 시작했다.
“후, 일단 응급치료는 끝났으니까 나머지는 병원에 가서 치료해보자. 여기서 더 치료할 수 있는 건 더는 없어 보이니까.”
이윽고 노은아의 치료가 끝났다.
그녀가 손등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훑었다.
“일어설 수 있지?” “응, 걱정하지 마. 움직이기 힘들면 깡이한테 업혀도 되는 일이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러 갈게.” “누나는 정말 다친 데 없는 거지?”
“어둠 속에서 조금 다치긴 했어도, 네 덕분에 말끔히 치료돼서 없어. 보시다시피 아주 멀쩡해.”
은아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반동은 여전히 그를 죄어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은하는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치료하는 내내 굳은 얼굴을 하던 노은아는 얼굴을 누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은하가 연기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수고했어. 푹 쉬어.”
은하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노은아는 등을 돌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야 했다.
자신의 남동생도 치료했겠다, 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려고 전장을 쏘다녔다.
“응? 어라?”
그렇게 몇몇을 치료했을 때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순간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던 그녀의 손이 돌연 반투명해진 것이다.
그것을 눈에 담고 흠칫한 그녀가 치료마법을 중단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반투명해진 손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기분 탓인가….”
피곤해서 그런 것일까.
체내 마나를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착각이리라.
노은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