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15
이놈들은 뭐지? 여기는 어디지?
은하는 눈을 깜빡거렸다.
30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더니, 웬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다.
쓰레기 더미에 몸이 파묻힌 그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자신을 기분 나쁘다는 듯 빤히 쳐다보는 남자들을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퍽!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기절해 있던 자신의 몸을 뒤지려던 듯싶었다.
은하는 두 발로 지면에 서자마자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컥! 이 새끼가 무슨 짓이야!?”
“야, 밟아!”
“밟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고.”
한 남자가 나가떨어졌다.
은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남자 두 명을 발로 돌려찼다.
그들이 대응할 시간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검이 어디 갔지?
허리춤에 검이 없었다.
여명검과 황혼검이 보이지 않았다.
은하는 뜻하지 않는 상황에 놀라며 마저 남자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당황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
체내 마나를 발현할 수 없다.
심장은 조용히 뛰고 있기만 했다.
“…마나 자체가 안 느껴져.”
남자들이 바닥을 뒹군다.
혹시라도 그들이 반항하지 못하게 발로 친히 두 손을 분질러준 은하는 처연히 중얼거렸다.
그때쯤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웬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저 끝에는 도시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봐.”
“뭐, 뭡니까.”
“몇 가지만 좀 묻자.”
은하는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듯한 남자를 들어 올렸다.
남자는 은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몸을 벌벌 떨었다.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해줄 듯한 얼굴이었다.
“여기는 어디야?” “네?”
“여기가 어디냐고.”
“서, 서울인데요.”
“…….” “성북구요, 보문동.”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보문동이라고?
그러고 보니 분위기가 내 기억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나는 흑색던전에 있지 않았나.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회귀 전에는 30층의 문을 지나서 곧장 보스 몬스터를 만났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서울이라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봐, 던전 가이드.”
“네?” “너 말고. 던전 가이드.”
은하는 입을 움직였다.
남자가 의아해한다.
남자의 반응을 무시한 은하는 계속 던전 가이드를 불렀다.
이곳이 흑색던전 안이라면 녀석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놈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치겠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애들은 어디에 있는 거고.
마나 자체를 발현할 수가 없으니 마법도 사용할 수 없다.
공략대원들을 찾기도 요원했다.
이 세계에서 은하는 일반인보다는 조금 강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내 그가 남자에게 못다 한 말을 꺼냈다.
“야.” “네, 네!”
“왜 마나를 쓰지 못하는 거지?” “마, 마나요?” “그래.” “…이제 이 세상에는 몬스터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뭐?”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은하가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흑색던전이 전부 공략이 되면서, 이 세상에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
“그리고 8번째 흑색던전을 공략한 플레이어가 마나를 세상에서 지워달라고 소원을 빌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마나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몸이 된 건데…. 모르세요?”
은하는 남자의 목덜미를 잡은 손을 놓았다.
남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남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들을 지나쳤다.
나 보고 이 소리를 믿으란 건가.
골목길을 걷는다.
골목길을 나와 도시를 둘러본다.
“…….”
화려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얼굴이 무척 밝았다.
몬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였다.
하우 알 유? 아인 파인! 앤 유?
벨소리가 울렸다.
은하는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스마트폰이 나왔다.
화면에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누나?”
표시된 이름을 보고.
은하는 흠칫했다.
노은아의 이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전화를 받기로 했다.
[너 지금 어디야!?]“누나? 정말 누나 맞아?”
[얘가 지금 무슨 소리래. 설마 또 술이나 퍼마시고 길바닥에서 잔 건 아니지? 진짜 유정이 속 썩이는 짓 하기만 해봐, 그때는 내가 아주….]“…….”
[그래서 지금 어디인데?]“보문동.”
[멀지 않네. 얼른 집으로 와.]“집? 어디 집?”
[…진짜 술 취한 거야? 어디기는. 고서광 할아버지가 있는 집이지.]“…….”
[오늘 할머니 생신이잖아. 우리끼리 생신 잔치를 하기로 했으니까 꼭 늦지 않게 오도록 해.]그 말을 끝으로 뚝 끊어진 전화.
은하는 멍하니 서서, 조금 전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그때쯤 정신이 들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할머니 생신이었지.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자신이 을 공략하고 3년이 지났다.
그사이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하백련은 훌륭히 정권을 장악했고, 정적을 모두 해치웠다.
“…내가 꿈을 꾸고 있었나 보네.”
길고 긴 꿈을 꾼 기분이다.
아니, 내가 죽어서 회귀했다니.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노은하는 현실을 자각했다.
☆
3년 전.
은하가 을 공략하고 여러 나라에서 흑색던전의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몇 개월 전, 마지막 남은 흑색던전이 공략되었다.
인류는 평화를 맞이했다.
더 이상 플레이어가 필요하지 않는 세상이 찾아오게 된 거지.
플레이어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났다.
이제 은하도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그는 일반인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하백련과 친분이 두터웠고, 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고 있어 돈이 꽤나 많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현재 한적하게 살고 있는 돈 많은 백수의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은 종종 지루하기만 했다.
그때는 지옥 같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는 했어.
그러다 보니 아주 가끔 지난날을 그리워하고는 했다.
어제도 그랬다.
은하는 자신처럼 과거를 그리워한 진파랑, 선기준, 이십오를 만나서는 거하게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길가에 나자빠져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만 것이다.
“…유정이한테 혼나겠지.”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내린 은하는 집에 있을 이유정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쳤다.
을 공략하고.
은하는 하백련이 정권을 장악하자 이유정과 결혼식을 치뤘다.
그날은 선명히 기억에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그중에는 그들이 어릴 적에 여읜 부모님도 있었다.
안개꽃 파티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동료들도 결혼식을 찾았다.
어떻게 죽었던 사람들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느냐면, 은하가 빈 소원이 그들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게 해줘.’
최심부.
은하는 던전의 주인을 죽였다.
은하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유정은 을 발동해 그에게 흑색던전의 주인을 죽일 힘을 줬고, 그 대가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된 은하는 소원을 빈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은하의 소원은 참으로 소박했고, 굉장히 원대했다.
흑색던전은 그의 소원에 응해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를 만들어줬다.
나 때문에….
세상이 뒤죽박죽되기는 했지.
보다 더한 기적.
세계 단위를 개변시키는 힘.
그 힘은 과거까지도 바꿨다.
그가 가족을 잃은 계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수정됐다.
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과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기준은 잃었던 딸을 되찾았고, 배수빈은 남자 때문에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게 됐으며, 유도준은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
이유정의 가족들도 되살아났다.
어디 그뿐인가.
설마 유정이가 새벽그룹과 관련된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지.
이유정의 가족이 되살아나면서.
거대한 나비 효과가 발생했다.
사실 그녀는 새벽그룹의 직계였고, 그녀의 아버지 이정인은 새벽그룹의 정당한 계승자였다.
그로 인해 달라진 세상에서 회장은 이병인이 아니라 이정인이 정통하게 그 자리를 승계한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집에 들어가서 혼나면 혼나야지, 어쩌겠어. 내 잘못인데.”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졌다.
은하는 지금 삶이 만족스러웠다.
가끔 과거가 그리워지기는 해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정에게 혼이 나는 것도 그에게 일종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다.
은하는 문을 열었다.
“나 왔어.”
“왔어?” “…화났어?” “알면서 묻는 거야?”
자신이 올 것을 예견했던 듯이.
이유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은하는 싹싹 잘못을 빌었다.
“몇 개월 후면 애도 태어날 텐데, 자꾸 이런 식으로 할래?”
“미안해, 정말.”
이유정이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아직 부푼 티가 나지 않는 배.
은하는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어머님 집이니까, 끝나고 봐.”
“…그래.”
“다들 너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음식 식겠다. 얼른 들어가자.”
“응.”
이유정이 휙 몸을 돌렸다.
은하는 이따가 신혼집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이내 그는 이유정을 따라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왔니?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술을 그렇게 퍼마시다가 온 거니?”
“은하 왔냐? 집안에서 가장 어린 네가 늦게 오면 어떡하냐?”
“죄송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했다.
두 사람은 혀를 쯧쯧 찼다.
노은아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내 동생이지만 진짜…. 유정이가 이따 대신 혼낸다고 해서 내가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알았지? 그러니 유정이한테 감사해하도록 해.”
“…다음부터는 적당히 마실게.”
“피, 맨날 말로만 그러지.”
노은아가 도끼눈을 떴다.
은하는 그녀에게 꼼짝하지 못했다.
한편 그녀의 옆자리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지. 다음부터 그러지 마렴. 건강도 신경 쓰고.” “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은하의 소원은 할머니를 살려내, 자연적인 수명을 대폭 늘렸다.
덕분에 할머니는 건강했다.
은하는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은하는 이유정의 옆자리에 앉고서,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그들을 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노은아가 은하가 중얼거린 소리를 포착했다.
“뭐가 다행이야?” “아….”
가족들의 시선이 향했다.
은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전부 다 꿈이었지 않은가.
은하는 별거 아니란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꿈을 꿨거든.”
“꿈?”
“어, 그 꿈에서 나는 회귀를 해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더라고.”
“두 번째 삶? 이상한 꿈을 꿨네. 그래서 꿈에서 너는 뭘 했는데?”
“음, 뭘 했냐면….”
가족들은 은하가 말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이에 그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흑색던전 공략에 실패하고, 이유정의 도움으로 회귀한 이야기.
간략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긴 이야기였다.
“응, 그렇구나. 내 덕분에 회귀하고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다는 거구나? 그래서? 4명이랑 결혼하니까 그리 좋았어? 다시 꿈을 꾸게 해줄까?”
“…꿈, 이었잖아.”
“꿈이면 용서받아도 되는 거야?” “미안해. 나한테 너밖에 없다는 거, 유정이 너도 잘 알잖아.”
은하가 하렘을 차렸다는 대목에서.
이유정을 시작으로 가족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다만 할머니는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런데 다들 배고프지 않니? 일단 밥을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할머니가 은하를 도와주었다.
은하는 맞은편에 있는 할머니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가족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유정이 너는 힘들게 이런 걸 다 만들어왔니? 애도 있는데 다음부터 이러지 않아도 돼.”
“아니에요, 어머님. 힘들지도 않고, 요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낙으로 살고 있는걸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렴.”
“네, 어머님.”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가족들은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며 웃고 떠들었다.
…즐겁네.
은하도 그들 틈에 섞여 즐겼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흡족한 얼굴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드문드문 흠칫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까 은애가 보이지 않는데, 은애는….”
“은애라니?”
“”””…….”””” “어?”
“그게 누구야?”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것인지.
은하는 종종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고는 했다.
그러면 가족들은 대화를 뚝 끊고,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미안, 아직 꿈에서 덜 깼나 봐. 꿈에서는 은애라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거든.”
“엄마 자식은 너하고 나뿐이잖아. 그래도 예전에는 여동생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는 해.”
노은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은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어제 너무 마시기는 했나 보네.
꿈이랑 현실이 분간이 안 된다니.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서 가족들의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가족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맞아, 이게 현실이었지.
여동생 같은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하는 여동생의 존재가 어렴풋해지는 걸 느꼈다.
원래 꿈에서 본 내용은 눈을 뜨면 잊어버리는 법이다.
다만 워낙 긴 꿈을 꾸었다 보니, 그것을 잊는 게 늦었을 뿐이다.
서현이도, 하양이도.
다 가공의 인물이었던 거구나.
애들도 없었던 거고….
꿈에서 29년의 삶을 산 탓일까.
문득 아쉽기도 했다.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족들과 화기애애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여동생이 없어도.
아내들이 없어도.
자식들이 없어도.
꿈속의 친구들이 없어도.
은하는 행복했다.
“정말?”
“…….”
“정말 행복해?”
그럼에도 그는 이유정이 하는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드러이 손을 잡아 왔다.
은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여기는….”
은하는 고개를 들었다.
가족들이 그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내 꿈이었던 거구나.”
회귀 전.
노은하가 무의식적으로 갈망해왔던 세상.
의식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후회.
은하는 씁쓸한 얼굴로 읊조렸다.
너무나, 달콤한 꿈이었다.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리라이프 플레이어 91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