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16
아리엘은 정신이 들었다.
허름한 지붕에 올라 있던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 거구나.”
“뭐가?”
옆에는 태양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가 앉아 있었다.
별명처럼 언제나 밝은 얼굴을 한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기억났거든. 태양태양,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구나?”
아리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 자신이 동경한 친구는 사실 죽어 있었다.
이 세계는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 꽁꽁 감춰두었던 바람이 이루어진 꿈속이었다.
“훗, 하마터면 이 아리엘이 깜빡 속을 뻔했네?”
“그 제스처는 뭐야? 내가 너한테 밝게 웃으라고 했지, 그런 식으로 이상해지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이게 바로 내 매력이야! 사람들이 내 매력에 껌뻑 죽는 거 모르지?”
아리엘은 폴짝 뛰어올랐다.
지붕 위에 선 그녀는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키는 많이 크지 않았다.
아인 치고는 꽤나 작았다.
그럼에도 아리엘은 개의치 않으며 가슴을 힘껏 내밀었다.
“어때? 나도 이제 글래머가 됐지? 은하은하도 나한테 홀딱 반했다고.”
“그건 네 착각 아닐까?”
“쳇, 태양태양.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 현실적이 됐어.”
“그러는 너는 너무 4차원이 됐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이대로 여기에 남을 거야? 아니면 현실로 나갈래?”
“…….”
“현실로 나가면 후회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태양이 묻는다.
아리엘은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로 올려다보는 그를 쳐다보았다.
“음….”
아리엘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이내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아. 후회할 것 같았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리엘은 기지개를 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녀는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래도 좀 아쉽다.”
“뭐가?”
“네가 조금만 더 늦게 죽었다면, 내가 이슬 맛을 알려줬을 텐데.” “이슬?” “응! 내 삶의 원동력!”
“힘들다고 술독에 빠지지는 말고.” “걱정 마. 이제는 안 그러니까.”
“그래?”
“응!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 혼자 궁상맞게 마시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구!”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 이슬 마시고 싶다.
아리엘은 입맛을 다시며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나는 갈게. 바이바이.”
“그래, 바이바이.”
친구가 손을 흔들어준다.
아리엘은 친구를 뒤로하며 의식을 집중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다 끝나면 꼭 회식하자고 해야지.”
그대로 꿈을 깨부순다.
아리엘을 비롯해, 사람들은 하나둘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나섰다.
☆
나는 남들과 다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봉구래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이 과연 무엇인지 정체를 깨달았을 때는 바닥이 없는 수렁에 빠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상한 거구나.
세상은, 사회는 그와 같은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자신도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꺼림칙했고, 심하게는 역겨웠다.
사회 기조가 그랬으니까.
그 속에서 남들과 같이 자란 그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아니야, 나는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를 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혼자 속앓이를 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내가 왜 우울해해야 하는 거지?
내가 정말 잘못된 건가?
나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나?
그럼 나는 왜 태어난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던 그에게는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자문자답하며, 모든 존재가 살아 있는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지고, 몸에서 힘이 샘솟았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걸 거야.
그러니까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나도 세상의 일부인 거야.
한 번뿐인 인생이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즐겁게,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
우울하게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그때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는 너무 힘들다니까. 자기들은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이러는 거니?” “”””구래 네가 없으면 못 살지!!””””
이 세계에서.
봉구래는 자신의 낙원을 구축했다.
중구에 있는 어느 카페 안.
창가 자리에 앉은 봉구래의 곁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봉구래는 그들을 두 팔로 안고는 행복에 젖어 있었다.
“어머.”
남자들이 달라붙어 피곤하다.
봉구래는 이들과 그만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서 쉴까 고민했다.
그때, 창가 너머로 절로 눈이 가는 남자가 지나간 것이다.
“미안, 자기들.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은 먼저 가볼게. 안녕!”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남자였다.
봉구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앞을 지나는 남자에게 말이나 붙여보기로 했다.
남자의 성향은 관계없다.
이쪽이 아닌 거라면 그냥 친구처럼 지내면 되는 것이고, 이쪽이면 깊이 알아가면 될 뿐이다.
“저기요.”
“…네?”
봉구래는 마나를 발현해서 빠르게 남자를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어깨를 붙잡힌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봉구래는 남자를 보고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 님?” “하하. 이젠 플레이어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불렸었죠.”
“…….”
조각 같은 얼굴을 한 미남.
전 십이좌 이도진이 마치 겸연쩍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봉구래는 웃지 못했다.
“…그랬던 거군요.”
자신은 꿈을 꾸고 있다.
봉구래가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거리의 풍경이 사라졌다.
모든 것은 허상이었다.
새하얀 공간.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는 두 사람만 서 있었을 뿐이다.
“힘들면, 꿈에서 깨지 않아도 돼요. 더 자도 되는데…. 그래도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이도진이 다정하게 묻는다.
봉구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봉구래.
그는, 아주 강한 남자였다.
가만히 새하얀 바닥을 내려다보던 그가 씩씩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런 저를 동료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만 꿈에서 깨어나야죠.” “소중한 동료들이 있는 거군요.” “네, 엄청 소중한 사람들이죠.”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 시선 앞에선 가끔 주눅이 든다.
하지만─.
‘─구래? 그래도 그래구래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란 건 변함없는 거네. 괜찮아! 나도 아인이라고 어렸을 때 많이 차별받았거든!’
‘음…. 남자로서 좀 그렇기는 한데, 나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지. 어차피 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그럼 상관없어.’
아리엘 그리고 강시형.
그 밖에 많은 친구가 자신에 대해 편견 없는 시선을 보내주었다.
그들이 곁에 있었기에, 봉구래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
“─꿈에서 깨어나야죠.”
자신을 위한 세상을 나선다.
그는 어느새 손에 나타난 라이플에 힘을 주었다.
이내 그는 머리 위에 있는 세상에 거대한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을 시작으로 세상에 차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유리 조각처럼 깨진다.
“잘 뚫었네.”
봉구래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올 필요는 없었나 보군요. 그럼 이제 우리 클랜원들을 깨우러 가야겠네….”
이도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몸이 마나가 되어 사라진다.
“건투를 빌게요. 저는 이제 없으니, 대신 멋진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한때 한국 최강 중 하나로 손꼽힌, 이도진의 소원이었다.
☆
『축! 차은우 사진전』
“…….”
차은우는 사진전 앞에 놓여 있는 화환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진짜다.
“선생님! 거기서 뭐하세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야죠! 이따 사인회가 있을 거란 말이에요!”
“…가인이?”
“네, 왜 그러세요?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일단 들어가요!”
“어어!?”
그때 불쑥 자신의 손을 붙잡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
차은우는 그녀가 갤럭시그룹 직계 최가인이라는 것에서 깜짝 놀랐고, 그녀가 자신의 매니저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아, 맞아. 그랬지, 참….
이내 그녀는 기억을 떠올렸다.
은 공략했다.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이에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누구나 알아주는 사진가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그런 자신의 사진전이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시간이 되면 저기에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면 돼요.”
“응, 그렇구나.”
그녀는 최가인의 말을 흘려들으며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았다.
모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었다.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저런 때도 있었지.
차은우는 한참 사진을 바라보면서 추억에 젖었다.
사진 속에 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저 미소를 담아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사진을 찍는 이유?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이 뒤부터는 없네?
사진은 시간순으로 이어졌다.
차은우는 복도를 걸었고, 머지않아 사진이 끝나는 지점에서 멈췄다.
아카데미 시절에서 시작된 사진은 을 공략하기 이전에 끝나 있었다.
“…….”
“…선생님? 조금 있으면 사인회가 시작되는데….”
안이 빈 액자들만 걸려 있다.
복도는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데 사진은 한참이나 부족하다.
차은우는 빈 액자와 복도 끝에서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꿈속인 거구나.” “…….”
자신의 바람이 반영된 세계.
차은우는 세계의 진실을 깨닫고, 최가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어울리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던 최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내 그녀가 가면을 벗어던졌다.
“그래, 맞아. 여기는 네 꿈속이야.” “…….”
“하, 성미에 맞지 않게 이게 뭐람. 내가 누구 매니저나 할 사람은 절대 아닌데 말이야.” “가인이니?”
“그렇다면 어쩔 건데? 혹시 나를 때리기라도 하게?”
“…….”
흥 소리를 내는 최가인.
팔짱을 낀 그녀가 눈에 힘을 주고 대꾸했다.
차은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제 목을 더듬었다.
붉은 쵸커는 없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웃음이 나왔다.
“뭐, 뭐야!? 왜 웃어!?”
“아니…. 내가 이제는 가인이 너를 무서워하지 않는 거구나 싶어서.”
“…흥, 애가 건방져졌어. 짜증나.” “그리고 너도 많이 변했구나 해서.” “…….”
“날 깨워주러 온 거야?”
“…네가 마지막에 발버둥 치는 걸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거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게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그렇구나.”
차은우는, 어렸을 적부터 최가인의 곁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 최가인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도 여러모로 많이 봐왔으니까.”
무엇을 봐왔다는 뜻일까.
차은우는 고개를 홱 돌려 말하는 최가인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오랜만에 만난 것에 반가움을 느낄 뿐이었다.
비록 자신과 그녀의 사이는 악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어. 그러면 나는 이제 가볼게.” “…나가는 길은 알고?”
“알 것 같아.”
차은우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복도를 내다보았다.
사진이 걸려 있지 않은 복도.
저 너머에 꿈을 나가는 길이 있다.
자신이 아직 채워 넣지 못한 액자, 저 액자들을 따라가다 보면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이에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차은우.”
“…왜?”
별안간 최가인이 부른 것이다.
차은우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최가인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좀, 신기한 얼굴이었다.
이내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
“그때는 내 친구가 돼줄래?”
최가인답지 않은 말이다.
참 많이 변했다.
차은우는 생각지 못한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고, 그녀가 불안한 듯이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이야 뻔했다.
“응, 싫어!”
“…씨, 재수 없어.”
“그때 네가 나한테 하는 거 보고 생각해볼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자신을 죽이고 착한 아이를 가장한 소녀는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은우는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마음이 호소하는 대로 대답했다.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리라이프 플레이어 91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