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18
나쁜 꿈을 꿨다.
꿈속에서 자신은 옷장 속에 숨어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옷장 틈새로 어머니가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게 기억에 선명했다.
“가연아, 왜 그러니?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거야?”
“오늘 너무 놀아서 피곤한 건가. 아니면 어디 아프다거나….”
“…….”
그 꿈이 꿈으로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손가연은 깨닫고 말았다.
여기가 꿈인 거구나.
자신의 미련이 반영된 세상.
이날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부모님과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가연아? 정말 괜찮은 거니?”
“안 되겠다. 아빠랑 병원 가자.” “…….”
싫다, 너무.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다.
조금 더 부모님을 보고 싶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
손가연은 염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어린 모습의 손가연은 부모님에게 입을 열고 말했다.
“그날, 저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 “엄마, 아빠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손가연은 자신의 목소리가 이리도 명료하게 나온다는 것에 놀랐다.
과거의 세상에 떨어졌기 때문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자신은 그날을 극복한 것이다.
그러자니 그녀의 말에 더욱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요. 이만 가봐야 해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한때는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죽는 것이 무서웠던 그녀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슴에 새겼다.
몬스터.
놈들을 세상에서 모두 죽이겠다고, 놈들과 싸우다 죽고 말 것이라고.
손가연은 그러한 마음에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정말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
온태희가 있었고, 선미예가 있었고, 유수진이 있었고, 노은하가 있었다.
그 밖에 많은 사람이 생겼다.
이제 그녀는 그들과 즐거운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말 죄송해요.”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손가연은 자신을 낳아주고 사랑한 사람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정말 잘됐다.”
“그렇다면 안심이네.”
“…….”
부모님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뜻을 존중해주었고, 응원해주었다.
손가연은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미소를 보니, 손가연 역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네가 커가는 걸 보고 싶었어.” “네가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싶었단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어.”
“네가 진로를 생각하는 때가 되면 옆에서 같이 고민해주고 싶었단다.”
“네가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남자를 엄마한테 소개해줄지 보고 싶었어.”
“네가 실패를 겪고 좌절했을 때, 실패해도 괜찮다고 해주고 싶었지.”
“아, 네가 성인이 되면 가족끼리 술을 마시고 싶었어.”
“그때 아빠가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걸 못 해줘서…. 엄마랑 아빠가 정말로 미안해.”
부모님의 입에서 나온 사랑의 말.
손가연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무게에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부모님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엄마는 다행이라 생각해. 네게 못다 한 우리를 대신해, 이제 네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맞아, 걱정은 한시름 덜었단다.”
“저도….”
“”…….””
“저도…. 엄마랑 아빠랑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손가연은 부모님을 껴안았다.
어느새 그녀는 의 모습으로 부모님을 껴안고 있었다.
성장기가 끝난 그녀는 어머니보다 키가 컸고, 아버지보다 작았다.
세 사람은 그렇게 부둥켜안으며, 사랑과 행복이 섞인 말을 속삭였다.
이윽고─.
“─이제 그만 가볼게요.”
손가연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이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났다.
“나가는 길은 알고 있니?” “…알 것 같아요.”
손가연은 어머니의 물음에 나직이 답했다.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상.
그렇다면 이 세상을 나가는 길이 어디에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이에 그녀는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황급히 2층 계단을 올랐다.
어릴 적 그녀의 방에 도착했다.
“여기가 틀림없어.”
손가연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손가연은 방 안에 놓인 물건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한곳으로 향했다.
자신의 트라우마가 된 옷장이었다.
이내 그녀는 굳게 닫혀 있던 옷장 문을 열었다.
키아아아악!!
옷장 속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부모님을 죽였던 놈이다.
그놈이 그녀가 꿈에서 깨지 못하게 덮쳐들었다.
“방해하지 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공격을 피해 몇 걸음 뒤로 물러난 그녀는 놈의 눈을 주시했다.
그리고 라이플을 쥐는 자세를 취해 놈을 겨냥했다.
손에는 라이플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세계가 자신의 세계라면─.
─요정환장
마키나 스나이퍼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마키나 스나이퍼의 환장을 불러낸 그녀는 놈의 아가리 속에 라이플을 찔러넣었다.
봐주는 것은 없다.
과거의 원한까지 합쳐서 죽인다.
기프트
레일 건
섬광이 놈을 몸속에서부터 찢으며,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놈을 관통한 빛이 옷장 속을 꿰뚫는다.
빛이 터지고, 꿈이 깨진다.
☆
쏴아아.
인천, 할머니의 집.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진파랑은 할머니와 창밖을 보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
그러다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초등학생 때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듯한 세계.
이곳은 꿈속이었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에게 주워져,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을 때의 기억.
그 나이대로 어려진 진파랑은 곧 꼬리를 살랑거리는 것을 멈췄다.
먹고 있던 수박도 내려놓았다.
“가려고? 더 있고 싶지 않니?”
“…….”
“파랑이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여기에 있어도 된단다.”
그때도 들었던, 너무나 자상해서 살짝 눈물을 흘리게 했던 말.
할머니는 인자한 얼굴로 물었다.
진파랑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더 있고 싶어요, 솔직히.”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내가 있을 장소가 여기가 아니라서요. 해야 할 일도 많이 있고요.”
“그러니?”
진파랑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에 할머니는 그를 붙잡지 않고, 그가 솔직한 마음을 꺼내게 했다.
그렇게 해서 확신을 품을 수 있게 도와주는 듯했다.
“네, 이때랑 지금은 다르거든요? 내가 있지 않으면 답도 없는 애들을 챙겨야 해서요.”
“그러니?”
“네, 특히 노은하 그 녀석.”
진파랑은 히히거렸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그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올려다봐야 했던 할머니를 이제는 내려다보게 됐다.
그는 감회가 새로웠다.
“할머니하고 약속하기도 했잖아요. 나 보고 은하를 부탁한다면서요.”
“그래, 그랬지.” “걔는 내가 없으면 글러먹었어요. 그러니 이 몸이 가서 도와줘야죠.”
“그러니.”
“네, 그러니까 저는 이만 갑니다.”
꿈에서 어떻게 깨어나는 것인지.
진파랑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손을 살며시 오므렸다.
마치 클로를 쥔 듯한 자세였다.
그대로 그는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클로가 모습을 드러내고, 날카로운 날이 공간을 찢었다.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가는 거니?”
“네! 가봐야죠. 오랜만에 할머니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말.”
“나도 그렇단다.”
할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
보답하려면 끝이 없을 만큼.
홀로 세상을 살아가던 그는 결코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갚지도 못하고 떠나기나 하고….
시큰거리는 콧잔등을 문지르며.
그는 송곳니를 내보인 채 웃었다.
“갈게요.”
“잘 가렴. 몸조심하고.”
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진파랑도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아공간으로 뛰어들었다.
☆
자신의 후회를 바탕으로 한 세상.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행복해, 정말.”
“…….”
은하는 이유정에게 말했다.
행복하지 않을 리 없었다.
회귀 전에 바랐던 삶이다.
회귀 전, 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삶을 갈망해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 갈망이었지.
회귀한 자신이 바라는 행복은 결코 아니었다.
부족했다.
너무 부족했다.
이제 그는 의 행복에는 만족할 수 없었다.
노은애가 있어야 했고.
아내들이 있어야 했으며.
아이들이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동료들이 있어야 했다.
“미안해. 근데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
은하는 이유정에게 사과했다.
일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더니 그녀가 살며시 웃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얼굴.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회귀를 하고 29년.
29년의 삶은 그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꿔버렸다.
전부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
“유정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두 번째 삶을 살지 못했을 거야.”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돌아가서 그녀를 껴안는다.
이유정은 가만히 몸을 맡겼다.
“갚을 수 없는 것만 받기만 했네. 너한테 어떻게 감사해하면 좋을지 잘 모를 정도로.” “알면 잊지 마, 바보야.”
그녀의 얼굴에 얼굴을 맞댄다.
이유정이 은하의 손을 꼭 쥔다.
두 사람은 그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마나의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세상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 세상에는 의자에 앉은 이유정과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은하밖에는 없었다.
“얼른 가, 이제.”
“어, 그래야지.”
“나한테 고마우면 지금의 나한테 더 잘해주고.”
“그럴게, 꼭.” “이번 삶에도 너랑 맺어질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나야말로. 두 번이나 날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
자신의 후회가 바탕이 된 세상.
하지만 은하는 자신이 안고 있는 이유정이 기억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눈앞에 있는 그녀는 정말로 이유정이 맞을 것이다.
너는 내가 아는 유정이인 거구나.
은하는 확신했다.
그녀는 회귀 전의 이유정이 죽으며 세계 의지에 녹아든 사념이다.
영혼의 기억이라 할 수 있는 것.
그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뻐.”
“…나도야.”
이유정이 흐느낀다.
은하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그녀와 입술을 맞췄다.
“이제 갈게.”
“잘해, 이번에는. 실패해도 이제는 회귀시켜줄 사람도 없으니까.”
“이번에는 꼭 물리쳐야지.”
은하는 그녀를 안은 팔을 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를 또 한 번 껴안고, 떨어진다.
그녀가 눈물을 훔친다.
손을 흔드는 그녀를 뒤로한 그는 새하얀 세상으로 나아갔다.
“이제 그만 나와.”
손에 검은 없지만.
검은 분명 자신의 곁에 있었다.
은하는 두 자루의 검을 떠올렸다.
이내 허리춤을 두드린 그의 손에서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명검과 황혼검.
두 자루의 검을 손에 쥔 은하는 힘껏 공간을 찢어발겼다.
현실로 나갈 공간이 만들어졌다.
은하는 그 공간으로 발을 디뎠다.
공간의 틈새를 손으로 잡은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유정이 서 있었다.
“유정아.”
은하는 이유정을 불렀다.
그러고는 겸연쩍은 얼굴로, 그동안 한 번도 건네지 못한 말을 건넸다.
“사랑해.”
“…….”
이유정이 흠칫한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풀어진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바보야, 그런 말은 회귀 전에 말했어야지. 겁쟁이, 멍텅구리.”
“그러게.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이제라도 말해줬으니까, 내가 용서해줄게. 앞으로도 그렇게 솔직히 표현하라고.”
이유정이 키득거리며 다가온다.
까치발을 들어 입술을 맞춘다.
“잘 가.”
“응.”
“이제 비밀도 다 털어버리고.”
“…….”
“네가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이제 다들 너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이유정이 등을 떠민다.
은하는 부서진 공간 속으로 완전히 발을 들였다.
공간 너머에 있는 그녀를 보고는, 최대한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응, 그럴게.”
이유정의 말이 맞았다.
더는 감출 이유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두 받아들여줄 것이다.
은하는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던, 마지막 걱정을 훌훌 털어버렸다.
“나도 사랑해.”
등 뒤에서 이유정이 고백한다.
은하는 여명검을 든 손을 들어서 그녀의 말에 화답했다.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부터 이 심연에 틀어박혀 있는 괴물을 죽이러 간다.
☆
백색의 세계.
이유정은 홀로 세상에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언니.”
“응? 뭐가?” “제가 은하랑 둘이 있을 수 있게 시간을 내준 거잖아요.”
“이런, 들켰네. 그래서 좋은 시간은 잘 보냈어?”
“네, 더 있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이유정은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후련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옆에 선 노은아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은하도 참…. 걔가 흑색던전을 공략하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노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만 떠올려도 기겁했을 정도다.
세계 의지에 녹아들어, 드문드문 의식이 각성한 그녀는 은하를 극구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 의지가 되어 떠도는 그녀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애초 말을 걸었다고 해도─.
“─은하가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란 건 언니도 잘 알잖아요.”
“휴, 그렇지.”
“저는 처음부터 예상했었는걸요? 은하가 어떻게든 언니를 기억해서, 흑색던전을 공략할 거란 걸요.”
“애가 이런 면은 회귀 전이나 후나 하나도 변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건 그래. 내 동생이지만 정말 대단하기는 하다니까.”
본인이 자리에 없다고.
두 사람은 연신 노은하를 곱씹으며 키득거렸다.
“근데 언니는 괜찮아요? 저 때문에 은하하고 대화도 못 나눠봤잖아요. 언니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돼. 나보다 네가 더 많았을 거 아니야. 그리고 믿고 있거든.”
노은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자신의 남동생을 모를까.
그녀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기겠지, 뭐.”
노은하는 언제나 그랬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모두 해냈다.
이루고자 하는 바는 모두 이뤘다.
그러니 흑색던전의 보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노은하는 늘 그렇듯 승리할 것이다.
노은아는 묘한 예감을 느꼈다.
이에 이유정도 동의했다.
“맞아요, 이겨야죠. 한 번 당했는데 또 지면 그때는 저한테 혼나야죠. 진짜 지기만 해봐.”
과장되게 눈에 힘을 주는 이유정.
노은아는 그녀를 보고 빵 터졌다.
그때쯤 백색의 세계가 소멸을 맞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깬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요, 언니.”
“그래, 그러자. 애들을 깨우겠다고 힘들었던 거 있지? 특히 창진이…. 나이도 그만큼 먹었으면 날 껴안고 질질 울지 좀 말지.”
“멋진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맞아, 그렇다니까! 은하가 주변에 여자들이 계속 꼬여서 문제라지만, 창진이도 이건 보고 배워야 해.”
“하하…. 그래도 할머님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살았어요.”
“다들 같은 마음인 거겠지. 걔네가 꼭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
마나가 한 장소에 편재해 만들어진 세계가 바로 던전이다.
흑색던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마나에는 그 존재가 지닌 사념, 감정, 기억 등이 존재한다.
요컨대, 마나로 이루어진 던전은 세계 의지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중 흑색던전은 특수했다.
흑색던전에 모인 의지는 보스에게 집중하는 게 아닌,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최심부의 경우에는 더욱 활발하게.
그래서 두 사람의 의지를 비롯해, 공략대원들과 관련된 의지가 그들이 꿈에서 깰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어찌 보면 기적인 셈이다.
“언니는 얼른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준비?” “돌아갈 준비요.”
“…….”
“은하가 이길 거잖아요. 그쵸?”
“…그렇지. 그래야지.”
여하튼 노은하는 이길 것이다.
노은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세계의 소멸과 함께 마나의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이유정도 마나의 입자가 되었다.
그녀는 은하가 떠나간 자리를 보며 소리 없이 입을 움직였다.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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