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21
전 세계 최초, 흑색던전 공략.
을 공략한 사람들은 단숨에 세계적으로 알아줄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각국에서 그들에 대한 방문 요청이 쇄도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공략 일지는 지금 시대를 휩쓸고 있다고 평가될 만큼 수많은 사람의 손을 오갔다.
그리고 그들은 일지를 읽고 나서는 거의 반드시 똑같은 의문을 토했다.
“대체 노은하의 정체가 뭐야?”
한국 최강, 제4기 십이좌 필두.
판도라 클랜로드, 군주 노은하.
각 층에 대해 기록한 일지에서는 그의 활약이 빠지지 않고 나왔다.
어찌 보면 공략 일지는 허구이며, 노은하를 주인공으로 만든 소설이란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던전 가이드가 내는 미션에 바로 대응해서는 해결책을 내놓았다니, 30층 내내 그게 가능한 일이야?”
공략 일지에서 기록된 그는,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묘사되었다.
1층에서 죄수들을 죽인 것은 물론, 각 층에서 주어지는 난제를 빠르게 해결한 업적 등으로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견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었다.
“노은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한국 정부가 과장한 것이 분명해!”
“영웅을 신으로 승격시키려 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일지도 모르지.” “인간이 이런 업적을 세웠다고!? 그건 불가능해!!”
노은하의 존재 자체와 그가 세운 업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
자신의 나라에서 높은 입지를 점한 그들은 노은하가 신으로 추앙되며, 자칫 그 여파가 자신의 나라에까지 미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위신을 세우기 위한 작업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그의 업적은 터무니없기만 한 일이었다.
있을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존재가 절대 있어선 안 됐다.
“노은하! 그는 신이야!!”
“군주를 이 나라로 불러들여야 해!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우리도 흑색던전을 공략해야지, 어?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래!?”
“노은하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이만한 업적을 세운 그는 전 세계의 공인이나 다름없어! 노은하에 대한 정보를 전 세계가 공유해야 돼!” “노은하를 국제 사회의 플레이어로 임명해야 한다! 그와 같은 강자는 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한다!”
다른 한쪽은 노은하의 업적에 아예 심취해버린 부류였다.
그들은 노은하가 전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제 마나관리기구에서는 그를 필두로 전 세계의 강자를 모아 국제 무력집단을 만들려고 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 세계는 아직 국가 간의 교류를 맺는 게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애초 노은하와 선녀정부가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근데 그 소문이 사실일까?” “뭐가?”
“흑색던전을 모두 공략하게 되면, 더는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을 거란 소리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알겠어. 우리나라는 흑색던전을 공략하지도 않았는데.”
한편 이 공략되며, 흑색던전에 대한 정보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 흑색던전에서 얻는 부산물은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에는 비견할 수 없는 섭리를 품고 있다.
둘, 흑색던전의 공략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무엇이든 단 하나의 소원을 빌 수 있다.
셋, 흑색던전이 전부 공략된다면 몬스터가 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때 그들은 정보의 진의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불가능해, 절대!!”
“아니,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사실 그 논쟁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나 일어났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국가에서는 논쟁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은 공략된 이후에도 여전히 강원도 철원에 존재했다.
플레이어들은 이제는 흑색던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에 그들은 던전 가이드를 통해 공략대가 가져온 정보를 파악했다.
그렇게 진위 여부를 파악함으로써,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국가에서는 논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1년이 흘러서, 남유럽에서 공략을 성공했다.
의 던전 가이드도 같은 대답을 내놓는 것으로, 결국 세계 모든 나라는 논쟁을 중단할 수 있었다.
“남유럽이 연합해 을 공략했다고 하는데, 그럼 500명으로 을 공략해낸 한국은 대체….”
“근데 그거 못 들었어?”
“또 뭐가?” ” 공략에, 노은하랑 판도라 클랜원들이 참여했다더라.”
“”””…….””””
“남유럽 연합의 자존심을 위해서, 가장 큰 공훈은 세우지 못했다지만 걔네가 없었다면 아마 공략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하던데?”
“그 정보, 어디서 들었냐.”
“국제 플레이어 라이브러리에서.”
“아, 나도 그 정보 본 적이 있어. 노 어베니어라고 했나? 이란 이명을 가진 플레이어가 대활약을 펼쳤다더라. 그것도 21살에.”
“”””…….””””
또한 판도라클랜이 공략에도 참가했다는 소식은 다시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그때쯤 노은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노은하가 을 공략하고 빈 소원이 뭐였대?”
“몰라, 나도. 근데 정황으로 보자면 흑색던전 공략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전원을 되살려달란 게 아니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 결국 안에 들어가서 죽은 범죄자들 빼고, 나머지는 다 살아돌아왔으니까.”
“생각할수록 참 대단한 사람이야. 어떤 소원이든 빌 수 있으면, 나는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을 텐데….”
“그래서 네가 일반인인 거야.”
한편으로 3년이란 시간이 흘러서도 은하가 을 공략하고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회귀했다는 사실도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비밀로 유지되었다. 여담으로, 마나관리기구가 발행한 『 공략 일지』는 이리야 외 25명이 자문으로 참가했다.
☆
노은하의 소원은 어떤 사람에게는 소박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하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흑색던전에 빈 소원은 더없이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었다.
그와 그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심연 끝자락까지 나아갔고, 마침내 소원을 이룬 것이다.
“…노은아?”
“”””……!!””””
“미안, 내가 걱정을 많이 끼쳤지? 나, 돌아왔어. 정신이 들어 보니까 중구 한복판에 서 있더라고.”
이 공략됐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회관을 지키던 판도라 클랜원들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희미해져 가던 기억에서 노은아가 선명히 떠오른 그 순간, 류연화는 무언가에 이끌려 회관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이 회관을 나왔을 때, 노은아가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그들을 발견한 노은아는 겸연쩍게 웃음을 내비쳤다.
“은하랑 다른 애들은 걱정하지 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났…어…?”
클랜원들이 놀라서 벙찐 가운데.
노은아가 횡설수설하게 말했다.
그때, 류연화가 불쑥 달려들었다.
그녀가 노은아를 덥석 껴안았다.
갑작스럽게 안긴 노은아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다행이야.” “…….”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나한테 왜 말도 없이 사라졌어. 다음에도 그런다면 은아 너라도 그때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아….”
흑색던전 공략이 진행되는 동안.
클랜회관을 지키던 류연화는 내내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다.
친한 친구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클랜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수도 없이 갈등한 그녀는 노은아를 보게 되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절대,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세게 노은아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미안해.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울지 마. 나까지…,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
노은아는 류연화의 마음을 읽었다.
허공을 방황하기만 하던 손길은 곧 류연화의 등을 꽉 붙잡았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려고 하던 노은아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자리에 있던 클랜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누나.”
“어서 와! 다들 정말 보고 싶었어! 어디 다친 데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흑색던전을 공략한 플레이어들이 서울로 귀환했다.
전 세계 최초로 흑색던전을 공략한 소식은 한국을 들썩여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봉역으로 몰려, 영웅들의 귀환을 기다렸을 정도다.
하지만 은하는 그들을 뿌리쳐서는 곧장 마중을 나온 클랜원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노은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도 고려치 않고 냅다 그녀에게 뛰어가려고 했다.
그보다 더 빨리─.
“─보고 싶었어.” “…창진아?”
“아니, 씨….”
한창진이 달려든 것이다.
그가 노은아를 꽉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었어. 은아 네가 없는 삶은 이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얘가…. 사람들 다 있는데 이렇게 질질 짜면 어떡하자는 거니?”
“”””……!!””””
한창진이 엉엉 울었다.
그동안 으로 군림해, 냉혹한 남자라는 분위기를 풍기던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버렸다.
그들은 그만큼 흑색던전의 공략이 순탄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했다.
한편 노은아를 안으려고 하다 그만 한창진에게 선수를 빼앗긴 은하는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 형이 진짜….”
한창진을 바라보는 은하의 시선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사람들은 노은하의 얼굴을 보고는 흑색던전을 공략하느라 많이 날이 서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창진은 뒤에서 그가 죽일 듯이 노려본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모든 신경이 노은아에게로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와 결혼해줘.”
“…….”
“너 없이는 이제 못 살 것 같아. 앞으로는 계속 내 곁에 있어 줘.” “”””……!!””””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창진은 품속에서 반지함을 꺼내 그녀에게로 내밀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시 경악했다.
설마 한창진과 노은아가 사귀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창진아….”
“하하, 이걸 이제야 주게 되네…. 은아야, 받아줄 거지?”
노은아의 눈동자가 떨렸다.
설마 고백으로 혼날 줄 몰랐다.
이내 그녀는 평정심을 찾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한창진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난으로라도 싫다고 말할 수도, 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윽고 노은아는 그 모습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얼굴에 그만 지고 말았다.
“그럼 나한테 앞으로 잘해.”
“…….”
“자, 네가 직접 끼워줘.”
노은아가 왼손을 내밀었다.
한창진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우는 모습을 보고 축하했다.
그날 모든 언론사는 전 세계 최초, 흑색던전을 공략했다는 보도를 하며 두 사람을 찍은 사진을 가장 앞에 배치했다.
그리고 노은하는─.
“─저 자식이….”
노은하는, 몹시 분노했다.
지켜보는 사람들만 없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류연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류연화는 은아를 축복하는 한편, 한창진을 저주했다.
“”죽여버릴까….””
“”””…….””””
그 남편에, 그 아내였다.
클랜원들은 눈치껏 은하의 곁에서 거리를 떨어뜨렸다.
다행히 유혈 사태는 없었다.
눈에서 살기가 넘쳐흐르는 그에게 한서현과 이유정이 다가온 것이다.
“4개월 만에 돌아와 놓고 오자마자 우리가 아니라 새언니부터 찾니?”
“서현아….”
“공략 축하해. 많이 피곤하지?”
“둘 다 정말 오랜만이야. 그리고 유란아!! 엄마가 엄청 보고 싶었어!”
두 사람은 아이들도 데려왔다.
정하양은 자신의 딸 노유란을 보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녀가 엄마라고 옹알이를 시작한 딸아이를 사랑스럽다는 듯 안았다.
은하도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고는 자동으로 얼굴이 풀어졌다.
그때, 한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만 인정해주는 건 어떠니?”
“인정? 무슨 인정?”
“은하 너도 알잖아. 은아 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
대답은 이유정에게서 들려왔다.
한서현과 이유정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은하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그래, 내가 인정한다. 우리 누나, 계속 혼자 살게 할 수는 없지.”
마음 같아서는 노은애까지 데리고, 꼭 붙잡고 살고 싶었건만.
노은아가 저리 좋아하니, 은하도 이제는 별수 없었다.
피식 웃은 은하는 앞으로 노은아가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 전에 저 자식을 따로 불러서, 남자 구실만 하게 죽여놓고….
물론, 은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창진을 죽지 않게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이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늦지 않으리라.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듯이 순수하게 기쁨을 나누기로 했다.
은하는 세 아내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아이들까지 있다 보니까, 두 팔로 모두 끌어안기에는 벅찼다.
내가 욕심이 너무 지나쳐서, 이젠 다 안지도 못하게 됐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가 안지 못하는 만큼, 세 사람과 아이들이 안아주었다.
또, 한 명 더 있었다.
“연화 너도 이리 와. 한창진 같은 개뼈다귀는 그만 노려보고.”
“아…. 응!”
은하는 류연화에게 손짓했다.
류연화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이가 없어 그들에게 끼지 못해 어정쩡하게 있던 그녀가 다가왔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보듬었다.
“이제 모두 끝났어. 앞으로 너희들 속 썩이는 일은 없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여보는 언제나 여보하겠지.”
“그렇게 되지 않게 노력해줘. 아마 힘들 것 같지만….”
“괜찮아, 속 썩여도.”
“…….”
은하의 예상과 다르게.
감동적인 해후는 없었다.
그들은 은하가 하는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을 공략하게 되면 너희에게 말해주겠다고 약속했지? 그동안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사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는 이유는….”
그날 밤, 은하는 클랜원들을 불러 자신이 회귀자란 것을 털어놓았다.
회식 자리가 발칵 뒤집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다수가 흑색던전에서 들은 데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은하의 비밀을 예상한 탓이다.
애초 가족들은 그가 무엇을 말하든 전부 믿어줄 생각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궁금해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회귀 전에는 어떻게 됐는데?”
자신들이 회귀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는 것.
이에 은하는 답하기 곤란해졌다.
“어, 음, 민지 너는 아마 평범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
“쳇, 뭔가 대단한 것을 바랐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지? 아닌가. 너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고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멋지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민지야.” “왜 진지한 얼굴을 하고 그래? 왜? 뭐, 왜, 뭐.”
“거울 좀 보라고.”
“오랜만에 뚜껑 열리네. 야! 내가 너보다 인물은 훨씬 낫거든!?”
김민지를 시작으로, 농담을 들은 사람들이 날뛰었다.
“오빠, 저는요?” “백련이, 너? 너는, 음….”
하백련은 조용히 궁금해했다.
어느새 은하의 근처 자리를 차지한 그녀가 술잔을 홀짝이며 물었다.
17세가 되어 준성인이 된 그녀는 이제 종종 술을 마시고는 했다.
단, 은하랑 있을 때만.
“음…. 그냥 훌륭한 사람이 됐어.”
“에이, 그게 뭐예요. 오빠하고 그냥 일적으로만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 오빠가 미래를 바꾸면서까지 저를 지키겠다고 했다면서….”
“음, 내 딸 같았지.”
“흥, 거짓말.”
차마 하백련에게, 너는 회귀 전에 걸핏하면 자신에게 들이댔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그녀가 말도 안 된다며 기함할 게 뻔했으니까.
물론, 은하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한결같이 따뜻했다.
“흐음, 그렇구나.”
오빠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미래를 바꾸기로 한 거구나.
하백련은 은하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납득하고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호우 너도 알고 싶어?”
한편 호시미야 카아데를 비롯해, 온태양과 연이 있던 사람들도 연신 질문을 해왔다.
“들으면 후회할 텐데….”
“어차피 회귀 전의 일이야.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니까 괜찮아.”
“진짜지?”
그날, 호시미야 카에데는 온태양의 하렘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차은우, 조아라, 아리엘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내가, 내가 그놈이랑 결혼했다고? 내가 대체 왜….”
은하는 그날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호시미야 카에데를 처음 보았다.
☆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흘렀다.
노은아는 마침내 결혼했다.
노은하와 아버지라는 벽을 넘어선 그녀는 한결 행복한 얼굴을 하고는 식을 올렸다.
“…더 때릴 걸 그랬나.”
“…더 팰 걸 그랬나.”
은아를 보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한창진을 노려보며.
아버지와 은하는 뒤늦게 후회했다.
노 씨 가문의 여자들은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고 한다.
“부케 던질게요!!”
이윽고 결혼식이 끝이 났다.
은하는 배가 부른 류연화를 데리고 은아가 부케를 던지는 것을 보았다.
“배는 괜찮아?”
“응, 괜찮아. 다만….”
“다만 어떤 거?”
“배가 부른 동안에 창을 휘두르지 못해서 아쉬워서…. 많이 무뎌졌을 텐데 아이를 낳으면 훈련을 열심히 해야겠어.” “푹 쉬라니까. 내가 강한데 누나가 창을 휘두를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아이만 건강하게 낳는 걸 생각해.”
“응.”
류연화의 출산이 머지않았다.
또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된다.
은하는 그때를 고대하며, 떨어지는 부케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언니, 너무 멀리 던졌어!”
은아가 부케를 힘껏 던진 나머지.
차은우는 예상한 지점보다 조금 더 뒤로 날아간 부케를 잡으려 애썼다.
그녀가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어찌 된 일인지 발이 꼬여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
“─잡았다! 어…?”
“차은우 신도, 괜찮아요? …응?”
이리야가 부케를 받고 넘어지려는 차은우를 뒤에서 지탱했다.
그리고 졸지에 그녀는 은우가 잡은 부케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묘했다.
“은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미안해, 내가 그만 멀리 던졌나 봐.”
“뭐냐, 뭐냐? 저러면 리야 누나도 부케를 잡은 거 아냐? 혹시 설마…. 은우가 목민호는 냅다 차버리고서 리야 누나랑 결혼한다는 게….”
“진파랑, 죽고 싶냐.”
“누가 누구랑 결혼하든 상관없지만 축가는 아리엘에게 맡겨라!!!”
“은아 언니도 결혼했고, 조만간에 민호랑 은우도 결혼하게 되는구나. 나는 언제 가지….”
“우비야, 우리 나이 아직 32….”
“32?”
“…어느새 그렇게 됐네.” “조만간에 멋지게 기대할게.”
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이 저마다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러고는 깔깔거린다.
은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부케에서 손을 떼는 이리야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리야 나이도 이제 36인가? 시간 참 빨리 갔네. 언제 이렇게 됐대.”
평소에는 그녀에게 하대하고 있어 그녀의 나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겉모습도 젊어 보여서 자신보다 나이가 6살이나 많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한테 걸핏하면 이상한 모습이나 보여주는 것 빼고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진짜 어디 누가 안 데려가나.
은하는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 중얼거림이─.
“─야, 야, 야, 야! 빅뉴스! 너희들 그거 들었어?”
“뭘?” “글쎄 군주랑 가 결혼한다는데!? 이미 애까지 생겨서 판도라클랜이 발칵 뒤집혔대!”
“”””…뭐어어어어어어!?””””
“뭐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이제 라 불러야 하는 거냐?”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노은아의 결혼으로부터 1달 뒤.
판도라클랜은 남유럽 연합과 함께 공략에 나섰다.
거기서 모종의 사건이 발생하고.
은하는 결국 이리야를 다섯 번째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싹둑싹둑
노은아와 아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그들 모두 가위질하는 흉내를 내며 은하를 위협했다고 한다.
정까망은 손으로 터뜨리려고 하다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세상이 두 번째 흑색던전 공략으로 떠들썩해진 가운데, 유독 한국에선 노은하의 하렘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
노은하와 이리야의 혼인.
그들이 어쩌다 이어지게 됐냐면, 당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은하가 을 공략하며 전 세계는 한바탕 뒤집혔다.
공략을 준비하던 남유럽 연합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공략 날짜를 앞당기게 되었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공략을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이탈리아에서요?’
선력 4년의 한-이 회담.
당시 그 회담에서 임가을은 언젠가 이탈리아 정부가 을 공략하게 될 때, 한국에서도 공략에 발을 담그도록 획책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조약은 임가을이 하나라도 이익을 챙기겠다는 심산에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 조약은 한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형태로 변한 것이다.
남유럽 연합이 을 공략한 사람들의 응원을 요청하며, 그들과 선녀정부에게 막대한 이익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 판도라 클랜로드는 꼭 공략에 참여해달라고 연락했는데, 어떻게 할래?’
물론, 그것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노은하는 꼭 참가해야 했다.
이에 임가을은 노은하를 호출해, 그가 공략에 참가하게 설득했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은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고, 그래서 그가 공략을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마침 새로운 검이 필요했었는데, 잘됐네요.’
은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을 공략하게 되면서 그는 그 공훈의 대가로, 아버지와 자신의 죗값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선녀의 명령에 복종해서 공략에 참가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남유럽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질 좋은 마나합금이 채굴되지. 마침 검의 재료를 구하고 있었는데, 정말 잘된 일이야.
하지만 은하에게는 공략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명검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공략 당시, 은하는 여명검에 깃든 마법을 발동해서는 던전의 주인을 소멸시켰다.
인과를 파괴하고, 개변하는 힘.
그 힘은 은하의 신화와 어우러져, 에서 죽은 사람들을 은하의 자의에 따라 되살려냈다.
‘그건 그렇고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사망자가 1명도 없다니…. 어떻게 그런 힘을 지닌 보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니까 태극 등급인 거겠죠.’
‘너는 그런 보물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 거라는 게 무섭지 않니?’
‘…….’
‘언젠가 세상에, 옛날처럼 활발히 국가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때가 오게 되겠지. 나는 그게 기대되면서 두렵기도 해.’
‘왜요?’
‘그 옛날,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얼마 없었던 반면에, 마법은 누구든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런 세상에서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그러다 자칫 잘못해서 국가끼리 대립하고, 전쟁이라도 발발하게 되면, 나아가 그게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
‘이 일어난 건 인간이 마나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마법을 남발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세계급 전쟁이 일어난다면?’
‘…선녀님은 언젠가 디스트럭션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러지 않겠니? 사람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욕심쟁이니까. 언젠가 인류는 자기들끼리 전쟁을 일으키다 거대한 디스트럭션에 집어삼켜지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몰라.’
‘…….’
‘그것이 진정한 파멸이란 거겠지. 그래서 나는 이란 억제력이 그때는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이요?’
‘그래, 무엇이든 부정해버리잖니. 네 여명검을 부정한 것도 그렇고. 그러니 네가 백련이를 잘 지키렴. 나는 그때 편히 놀러 다닐 테니까.’
여명검이 힘을 잃은 것에는 분명 은하가 무리하게 인과를 개변하며, 그 힘을 소진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때 임가을이 말한 대로였다.
은하는 심연의 주인을 죽이기 위해 여명검에 새겨진 의 문장을 발동했었다.
그 힘은 심연의 주인뿐만 아니라, 검의 힘마저 부정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이제 은하의 여명검은 단순히 상징성만 지닌 장식용으로 전락해버렸다.
지금이야 검을 쓸 일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여명검을 대체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은하는 남유럽으로 넘어가서, 거기서 검을 만들 재료를 모으려고 계획한 것이다.
문제는 공략대에 참여할 멤버였다.
‘누구를 데려가야 하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하려면 대략 1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을 공략하고, 겸사겸사 선녀정부가 이탈리아하고 회담을 나누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몇 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전력 편성에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클랜원들은 여러모로 바쁜 상황이었다.
‘은하야, 제발…. 은아랑 편안하게 신혼 생활을 보내게 해줘.’
‘…진짜 확 데려가?’
우선, 한창진과 노은아.
당시 아직 은아와 결혼하지 않은 한창진은 은하를 찾아와 울먹이며 자신을 데려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은하로서는 그가 노은아와 오붓한 신혼 생활을 보내지 못하도록, 그냥 결혼만 시키고 이탈리아로 데려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한창진은 어둠을 관리하는 으로서 한국에 남아 있어야 했다.
‘이참에 푹 쉬면서, 이탈리아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는 건 어때?’
‘은하야, 제발…. 내가 진짜 너한테 충성을 맹세할 테니까, 제발….’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신혼여행.
은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두 사람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목민호와 차은우.
‘나도 좀 빼주지. 공략이 끝날 때면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리는 날짜가 될 것 같은데.’
‘결혼식 미루면 안 되냐?’
‘네가 은우한테 가서 말해봐.’
‘…걔한테 물으면 맞을 것 같아서 너한테 묻는 거 아니야.’
‘안 됐지만, 나도 이번에는 너한테 양보해줄 수 없겠다. 나도 이제 좀 유부남이 되자.’
두 사람의 결혼식도 있었다.
류연화는 임신 중이었고, 정하양은 을 공략한 시간만큼 노유란을 돌보고 싶어 했다.
이외에 클랜원들은 다양한 이유로 공략에 참가할 수가 없게 되면서, 전력 편성에 난항을 겪게 됐다.
‘이탈리아에요? 이제는 은하신교를 이탈리아에 선교하러 가는 거군요! 좋아요, 저도 따라갈게요!’
‘선교하러 가는 거 아니야. 거기서 내 옆에 꼭 붙어 있기나 해. 에휴, 데려갈 정상인이 왜 이렇게 없냐.’
이리야는 그 과정에서 참여했다.
은하는 그녀와 어베니어를 포함해, 몇몇 클랜원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출항했다.
그러다 을 공략하며, 뜻하지 않게 어느 층에서 이리야와 고립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 층은 인간이 몬스터로 변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층이었다.
‘이 꼴이 뭐예요, 상스럽게….’
그때, 이리야는 서큐버스가 됐다.
용인으로 변한 은하는 그녀와 함께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러 해당 층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그녀가 서큐버스의 기운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쓰러지는 일이 몇 차례 발생했다.
‘…괜찮아요. 다음 층으로 내려가면 이 문제도 해결될 거예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럼 성은이라도 주실래요?’
‘…….’
‘장난이었어요. 그래도 가능하면…. 주님의 피라도 받아갈 수 있을까요? 그걸로도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알았어. 피라면 얼마든지 줄게.’
그러다 여차저차, 여차저차.
두 사람은 선을 넘고 말았다.
한 번 넘은 선은 그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책임감은…, 느끼지 않아도 돼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걸요.’
‘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
‘이 아이를 낳고 싶어요. 이 일로 주님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게요. 던전에서 일어난 일이니, 이 아이는 아인으로 태어날 거예요. 주님하고 접점을 확인할 방법도 없을 테죠.’
을 공략하고, 은하가 이탈리아에서 머무르는 사이.
자신의 임신을 알게 된 이리야는 그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은하는 이탈리아에 머무르는 동안 몇 번이고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아빠 없이 태어나는 애는 그럼 무슨 죄겠어.’
‘그렇다고 이 애를….’
‘뭐가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한테만 책임을 넘기는 건 내 마음이 그러지 못해.’
‘아….’
‘우리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건지, 둘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혼자 떠안으려고 하지 말고.’
은하는 이리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몇 개월이 흘러 딸을 낳았다.
보라색 머리에 뿔이 두 개 나고, 검은 용의 꼬리가 달린 아인이었다.
노유은.
은하는 아인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앞으로 행복한 일만 있기를 빌었다.
“응애!”
류연화의 아들, 노유설은 자신과 나이가 같은 그녀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된 것이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92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