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51
리라이프 플레이어 (951)
은하가 차은우를 알고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넘어갔다.
그러니 그가 그녀의 성미를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은우는 잘못 건드리면 안 돼.’
자신과 알고 지내는 여성들 모두 해당하는 사항이기는 했지만, 차은우는 특히나 까다로웠다.
토라지면 오래가는 것은 물론, 음흉하게 괴롭히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웬일로 쌈을 싸 주나 싶더니만, 안에 민지가 만든 음식이 들어가 있었다거나…….’
은하를 비롯해 그 수법에 당한 사람이 클랜에서 한둘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그녀가 싸 주는 쌈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일 정도였다.
혹은 그녀의 쌈을 받고 나서 자신이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는지 뜬금없이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거나…….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
그렇기에.
행여나 차은우에게 밉보이기라도 할까, 은하는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다.
“나는 이만 가 봐야겠다. 다시 말하지만, 미리 결혼 축하할게. 둘 다 행복해라.”
“흐음……. 정말이지? 그래, 잘 가. 다음에 보자.”
급히 자리를 떠난다.
은하는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마주친 사람은 바로…….
“형, 누나.”
“오, 은하야. 어디 가는 길이야?”
“우리 커피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누나가 쏜다!”
〈만독불침〉 유남훈과 〈치어링〉 여우비.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참이라는 두 사람이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은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마음 같아서는 화제를 전환해 〈심해의 던전〉 공략대 모집으로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이 형이랑 누나도 곧 결혼하지.’
그래서 〈심해의 던전〉 공략에 처음부터 지원하지 않은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유남훈과 여우비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자신에게 목숨 빚을 진 두 사람이니만큼 결혼을 미루고, 공략 참가를 강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무슨 쓰레기도 아니고 굳이?’
은하는 고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억지를 부릴 마음일랑 없었다.
그러니 사정을 전하지 않고 이대로 헤어지려 했건만, 두 사람이 먼저 화제를 언급했다.
“미안, 은하야.”
“…….”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번 공략은 힘들 것 같아. 우리 결혼이 그 시기에 걸쳐 있어서…….”
“하지만 은하 네가 정 안 된다면 우리가 결혼식을 미루고서라도 따라가도록 할게.”
“아니면 예정대로 치르는 대신 던전 안에서 식을 올린다든가……. 그것도 나름 운치 있겠다, 하하…….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거나. 아마 던전에서 결혼하는 사람은 우리가 세계 최초가 되겠지?”
“아니야, 우비야. 내가 찾아봤는데, 던전에서 결혼한 사례가 있긴 하더라고. 미팅은 흔한 일이고…….”
“그래도 흑색던전에서는 최초겠지. 음……. 갑자기 나쁘지 않을지도……?”
“…….”
도중부터는 진지한 분위기에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여우비와 유남훈.
은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도음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은하는 그들을 배려하기로 했다.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 나 때문에 결혼을 망칠 수는 없지. 공략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이랑 누나는 신경 쓰지 마.”
“아……. 고마워, 은하야. 정말.”
“그리고 미리 말하도록 할게. 둘 다 결혼 축복하고, 꼭 행복하게 살도록 해.”
* * *
이후로도 은하는 친구들을 설득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중에는 제 발로 직접 찾아온 사람이 있기도 했다.
“은하은하! 이야기는 들었다구! 용사 파티 동료를 모으고 있다며? 거기에 이 아리엘이 빠지면 섭하지! 어서 아리엘을 데려가랏!”
등장하자마자 특유의 하이 톤으로 정신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머메이드〉 아리엘.
머리 양옆에 난 푸른 비늘이 폴짝거리는 그녀의 행동에 맞춰 연신 파닥였다.
은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용사 파티는 무슨 용사 파티야? 그보다 지금 공략에 참가하겠다고? 이럴 거였으면 왜 지원 안 했어?”
“미안! 노느라 까먹었어!”
아리엘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너란 애는 진짜…….”
참으로 아리엘답다.
은하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익숙하다는 듯이 받아넘겼다.
“어쨌든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너는 꼭 데려갈 생각이었거든.”
“아, 진짜? 은하은하, 내가 많이 마음에 들었구나? 평소에는 안 그러는 것 같더니!”
“그래, 마음에 들었다. 거기서는 네가 많이 도움이 될 테니까.”
“응? 그래? 왜?”
고개를 갸웃하는 아리엘.
은하는 친절히 답해 주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기도 하고, 던전 위치가 북대서양에 있잖아. 그래서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나, 지형이 주로 바다와 연관돼 있거든. 그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수중전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네 기프트는 그쪽으로 특화돼 있잖아.”
“오호……. 은하은하, 잘 아는구나? 과연 회귀자야.”
“글쎄다, 이 정도는 참가국들도 예상하고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던전은 기반을 둔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대단해!”
아리엘이 추켜세워 준다.
은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참가하는 거로 안다?”
아리엘 포섭은 완료다.
은하는 이대로 몸을 돌려, 다른 친구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바로 그때.
“앗! 은하은하! 잠깐!”
아리엘이 얼른 두 손을 뻗었다.
신장이 작은 그녀가 매달리다시피 은하를 붙잡았다.
은하는 의아했다.
“왜? 뭐 문제 있어?”
“문제? 있지! 생각해 보니까 그냥 가 주기에는 아까워서! 그리고 민지랑 다른 애들도 얘기했는걸? 이러면 가벼운 여자로 보이기 쉽다고!”
“아니야, 절대 안 가벼우니까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민지랑 걔네는 왜 이상한 소리나 해서는…….”
마지막 말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같이 가 주면 뭐 해 줄 거야?”
“…….”
한편, 아리엘의 태도는 꿋꿋했다.
그녀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뭘 원하는데?”
결국 은하는 아리엘의 요구에 응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음……. 글쎄? 뭐가 좋으려나?”
“생각도 안 해 놓은 거야?”
“은하은하! 내가 언제 계획적으로 사는 거 봤어?”
“자랑이다, 아주…….”
“아, 이게 좋겠다! 나랑 같이 코노에 가서 노래 부르는 거야! 듀엣 하자, 우리! 횟수는 열 번 어때? 아, 코노에 열 번 가자는 거야! 오해하면 곤란해!”
“그러니까 코노에 열 번 가자고? 가서 듀엣도 하자라…….”
다행히 은하의 걱정과 달리,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들어줄 만했다.
‘횟수가 조금 많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뭐……. 괜찮네.’
만약 아리엘이 혼자 코노에서 최소 3시간 이상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좋아, 딱히 못 갈 것도 없지. 콜,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아싸! 듀엣으로 뭐 부를지 미리미리 선곡해 놔야겠다!”
이때의 은하는 알지 못했다.
훗날, 아리엘에게 끌려가서는 코인 노래방에서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한동안 몸을 사리며, 그녀를 피해 다닌다는 것도…….
언젠가 크게 후회하고 만다.
* * *
이외에도 은하는 친구들을 설득해, 공략대로 포섭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아리엘과의 협상처럼 무언가를 내줘야 하기도 했지만…….
“이 정도야 감수할 만하지.”
은하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하여.
“필요한 사람은 다 모았네.”
〈심해의 던전〉 공략대에 참가할 클랜원들은 다음과 같았다.
* * *
‘다들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직접 말하는 게 낫겠지.’
〈심해의 던전〉을 공략하러 간다.
그 소식을 브루노와 줄리에타, 자신의 부모님에게 전하기 위해 어베니어는 근무를 마치는 대로 평소 거주하는 클랜 기숙사가 아닌, 자신이 나고 자란 집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큰 소리로 알렸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아들 왔니!? 어서 와!”
줄리에타가 응답했다.
어베니어는 소리가 들려온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에는 줄리에타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먼저 클랜에서 퇴근한 브루노도 있었다.
“오늘도 고생했다.”
“아빠도요!”
“아들, 많이 배고프지? 배달로 맛있는 거나 시켜 먹을까? 뭐 먹고 싶니?”
“음…….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고기면 다 좋아요!”
짧게 격려하는 브루노.
그리고 다정하게 반기는 줄리에타.
어베니어는 두 사람과 도란도란 근황을 주고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로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고, 상이 차려졌을 때쯤.
“엄마, 아빠. 저 할 말이 있어요.”
“…….”
저녁을 앞에 둔 어베니어는 본론을 꺼냈다.
“은하 형이랑 이탈리아로 가서 〈심해의 던전〉을 공략하려고요.”
괜찮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심연의 던전〉에 들어갔을 때처럼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거의 확실할 정도로 성공이 보장돼 있으니까.
왜냐하면.
“은하 형한테 회귀 전의 기억이 있기도 하고, 미래에서 온 유성이도 성공을 장담했으니까요.”
“…….”
“게다가 은하 형 이야기로는, 회귀 전에는 제가 공략에 큰 역할을 했다는 모양이더라고요.”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어베니어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러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나갔다.
이윽고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렇구나.”
브루노와 함께 조용히 경청하던 줄리에타가 입술을 뗐다.
그녀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고심해서 결정한 일이라면 우리는 말리지 않을게. 대신에 꼭 조심해서 돌아와야 한다? 가서 은하 말 잘 듣고.”
“네, 당연하죠.”
“그리고……. 이제는 니어 너한테도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겠구나.”
우리와 발렌타인 패밀리와 얽힌, 우리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뒷말을 삼킨 줄리에타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녀는 과거를 회고하며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있지…….”
한때 시칠리아의 공주라고 불린, 발렌타인 패밀리 보스의 딸로서 철없던 시절을 보낸 사연.
발렌타인 패밀리의 세가 기울며, 마이론 패밀리 보스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제의받은 사연.
정략결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브루노와 함께 한국으로 도망친 사연.
그런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서 20년 전 한-이 회담을 틈타 한국에 입국한 자신의 오빠와 마이론 패밀리의 트레디치와 얽힌 사연 등.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사실, 오빠는 나를 미끼로 써서 젠코 마이론을 없앨 계획이었대. 그것으로 마이론 패밀리를 약화시키고, 빅 마마와 함께 차근차근 짓밟으려 했다고……. 나를 아예 마이론 패밀리에 팔아넘길 생각은 아니었다는 모양이야. 변명이겠지만…….”
“…….”
어베니어는 자세를 바로 한 채,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이제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서 발렌타인이나 마이론 패밀리에 대한 감정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하지만 그쪽에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그러니…….”
이야기의 시점은 현재로 이동했다.
줄리에타는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네 출생에 대해 탄로 나지 않도록 주의하렴.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 때문에 발렌타인과 마이론 패밀리를 건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해. 나는, 우리는 이제 괜찮으니까.”
마지막으로.
“이번에 은하한테 얘기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재 트레디치를 이끄는 필두가 바로 내 오빠, 알버트 발렌타인이라고.”
“…….”
“그 오빠도 공략에 참가한다니, 아마도 만나는 일이 있을 거야. 그러니 미리 알아 두렴.”
“……만약 그분이 저를 알아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오빠가 이제는 어떻게 변했을지,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러니까, 니어야.”
“네, 엄마.”
“그때는 네 눈으로 판단하렴. 내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줄리에타가 염려하듯 조언했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어베니어는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 *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노은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욕실에서 나와 몸을 말리던 어베니어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니어야, 지금 뭐 해?]“나? 지금 씻고 나온 참이지. 왜?”
[나 지금 편의점 갈까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밤길은 위험하다.
노은애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어베니어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 갈게!”
[응, 좋아. 그럼 10분 뒤에 집 앞에서 만나. 시간 충분하지?]“얼른 옷 입고 나갈게!”
전화를 끊는다.
어베니어는 쏜살같이 움직여서는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옷을 찾아 입었다.
이후, 약속 장소로 나갔을 때는 정확히 10분이 지나 있었다.
“니어야.”
“누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노은애가 손을 흔들었다.
어베니어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노은애는 피식했다.
“천천히 와도 됐는데, 뭐 하러 땀나게 뛰어오고 그래? 이러면 씻은 보람도 없겠다.”
“누나 기다리게 하면 안 되니까!”
“으이구. 편의점 가자. 누나가 아이스크림 사 줄게.”
“좋아!”
그길로.
두 사람은 편의점으로 향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터라, 서로를 편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베니어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한동안은 누나를 못 볼 것 같아. 이번에 은하 형을 따라서 〈심해의 던전〉을 공략하러 가기로 했거든.”
어베니어의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한편으로 그는 내심 긴장했다.
‘누나가 가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가지 말아야 하나? 하지만 내가 없으면 안 될 텐데……. 은하 형도 지켜야 하고…….’
어베니어는 노은애의 눈치를 살피며 답변을 기다렸다.
다행히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응,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다치지 않게 몸조심하도록 해. 공략 잘하고. 우리 오빠도 잘 부탁할게.”
다행히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노은애가 이해해 준 것이다.
어베니어는 속으로 안심했다.
바로 다음에 나눈 대화로 인해 일순 움찔하고 말았지만.
“그런데 공략하러 간 동안에는 얼굴도 못 보겠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은하 형 말로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것 같다네.”
“뭐어? 최소 6개월?”
“…….”
대뜸 눈매를 치켜세우는 노은애.
어베니어는 그녀의 눈빛 앞에 위기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수습하듯 말을 꺼냈다.
“어어……. 누나, 내가 최대한 빨리 공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야? 공략 진행 속도는 전적으로 오빠나 다른 나라 지휘자들한테 달려 있을 텐데.”
“그럼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서…….”
“됐네요, 그냥 열심히만 해. 돌아오면 못 본 만큼 보고, 놀면 되는 거잖아?”
“응……. 그렇지…….”
노은애가 별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자연히 위기를 넘긴 어베니어는 속으로 십년감수했다.
이내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는 슬며시, 친근하게 제안했다.
“누나, 돌아오면 우리 영화나 볼래?”
“영화? 무슨 영화?”
“전에 누나가 보고 싶다고 한 시리즈물 있잖아. 영화 이름이…….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였던가? 아마 돌아올 때쯤에는 개봉해 있지 않을까?”
“시기가 맞아떨어지긴 하겠네……. 응, 좋아. 영화 같이 보자.”
“아싸! 동기부여가 막 되는데?”
행동으로 감정이라도 표현하듯, 어베니어가 주먹을 쥔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노은애는 키득 웃음을 흘렸다.
“나랑 영화 같이 보는 게 그렇게 좋아? 동기부여도 되고?”
“그러엄! 당연하지!”
“그래? 그럼……. 더 확실하게 동기부여 되게 해 줄까?”
“응? 어떻게?”
어베니어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노은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오면.”
“…….”
가로등 불빛을 받는 입술이 굉장히 탐스럽게 반짝거린다.
먹음직스러운 과실 같다.
어베니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때, 사람을 홀리는 입술이 마저 말을 내뱉었다.
“누나가 뽀뽀해 줄게.”
“……!”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어조.
그러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어베니어의 눈이 크게 떠지며, 얼굴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그가 거세게 콧김을 내뿜었다.
“누나, 진짜지? 약속한 거다? 두말하기 없기야.”
벌써부터 안달이라도 난 듯한 어베니어의 독촉에.
노은애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궁금하면 돌아와서 봐! 진짜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