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52
리라이프 플레이어 (952)
마침내 〈심해의 던전〉 공략대 편성이 완료됐다.
편성 인원을 확인한 사람들은 대체로 납득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속된 말로.
“거를 타선이 없어.”
그렇기에.
“〈심연의 던전〉 공략에서 활약한 판도라 클랜원들이 얼마 없는 게 조금 흠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지.”
“지금 편성 인원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네임드들이 다 떠나면 여기 치안은 누가 지키냐고. 〈군주〉랑 선녀님이 현명하게 편성했다고 봐야지.”
“휴, 다행이다. 나는 혹시나 정치적인 목적에서 지원자들을 버림패로 쓰려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 그런데 이 구성을 보면 버림패는 아니겠어.”
“이 사람아! 버림패는 무슨……. 판도라 클랜 로드가 처음부터 공략에 참가하겠다고 못을 박았었는데, 설마 버림패로 쓰려고 했겠어?”
“확신이 든다. 판도라 클랜 로드는 진짜 공략해 버릴 생각인 거야. 이 구성이라면……. 가능해.”
사람들은 더더욱 공략 성공에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일 끊이지 않고, 세간의 화제에 오르는 가운데.
“교관님! 교관님은 왜 공략대에 지원하지 않았어요? 교관님이면 선발은 확실했을 텐데!”
“…….”
〈위스퍼〉 김민지.
판도라 클랜의 초창기 단원이자, 중견 간부이기도 한 그녀는 최근 자신을 깔보는 듯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
‘또 시비네.’
플레이어 아카데미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나아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한 학기 동안 객원 교관으로서 아카데미를 찾은 김민지는 현재 레인저 부문에 속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부터 비호감이던 여학생이 대뜸 비아냥거린 것이다.
‘얘는 이번 기수 유망주라더니, 인성이 완전 개차반이구나?’
김민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정신머리란 게 있지 않고서야, 판도라 클랜의 이름을 빌려 학생들을 만나러 온 자신에게 이리 무례하게 굴지는 않으리라.
판도라 클랜에 원한이 있거나, 입단에 염원이 없다면 모를까.
물론, 그조차도 미련할 뿐이다.
플레이어 업계 제일로 평가되는 판도라 클랜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만약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정확히는 노은하한테 일러바치면.
‘매장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 플레이어 하기 싫나? 아니,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나?’
그러니 가소롭기만 했다.
‘에이, 내가 봐준다. 애한테 정색하고 달려들 수는 없지.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를 잡고 드잡이질이라고 하고 싶지만……. 주위에 보는 눈도 있으니까.’
계산을 마친다.
조용히 여학생을 응시하고 있던 김민지는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서 너희를 가르쳐야지. 내가 어떻게 거기를 가겠니?”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묻어났다.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위 권력자로서의 여유였다.
“…….”
한편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여학생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녀가 대놓고 혀를 찼다.
당연히 김민지는 그녀의 태도가 심히 거슬리고,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쟤 좀 봐라?’
김민지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그래도 아직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인해 줄 수 있었지만…….
“정말 교관님이 부러워요.”
“뭐가 부러운데?”
“교관님은 운이 참 좋으시잖아요. 〈군주〉 님이랑 소꿉친구 사이라서 쉽게 판도라 클랜에 들어가고, 간부도 되고…….”
“…….”
“이제 저희 때는 다르다니까요? 판도라 클랜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아, 부러워라. 저도 〈군주〉 님 같은 소꿉친구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학생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고, 급기야 선을 넘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뭐, 운도 실력이라는데 어쩌겠어요. 아무튼 교관님은 진짜 좋겠다! 제 롤 모델이에요!”
“그러니?”
여학생은 드디어 자신을 먹였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이나 지어 댔다.
그 얼굴이 김민지를 더 자극했다.
‘얘는 안 되겠네.’
〈군주〉 노은하를 소꿉친구로 둔,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
제대로 된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인맥 하나로 판도라 클랜에 입단한 낙하산 플레이어.
이외에도 등등.
김민지는 은연중 세간의 시선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고 평가되는지, 또한 어떻게 조롱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판도라 클랜이 승승장구하며,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후로는 더더욱.
―내가 운이 좋아서 좋겠다고? 지들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왜 그따위로 ✕랄하는데…….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호흡 곤란을 일으켰을 정도다.
친구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 자존심이 곤두박질치기도 했고, 한동안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바닥을 찍고 나면, 일어날 힘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 나 평범하다, 왜!
플레이어 아카데미 학생 시절,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한 점에서 알 수 있듯.
김민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 강인해졌다.
그녀는 세간의 시선이 어떠하든 당당해지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자꾸 내 체면을 건드리는데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얕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학생은 선을 넘었다.
김민지는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마침 잘됐네. 오늘 수업은 교관들이 피드백을 주는 형식으로 대련을 진행하려 했으니까. 무기는 단검으로 해서…….’
입가를 끌어 올리며.
김민지는 자연스럽게 운을 뗐다.
“내가 롤 모델이라면 이참에 나한테 피드백을 받는 게 어때? 다른 교관한테 가지 말고.”
“아, 정말요? 저야 교관님께서 가르침을 주신다니 영광이죠.”
여학생은 옳다구나 하고 반응했다.
그녀의 눈매가 여우처럼 휘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교관님? 만약에라도 저랑 대련을 하다 교관님께서 지면…….”
엄청 꼴불견일 텐데요?
여학생은 눈빛으로 뒷말을 전했다.
얼굴에는 제 실력을 자신한다는 자만심이 차 있었다.
“나는 괜찮아. 오히려 너야말로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김민지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아니, 도발했다.
“네? 제가 뭘요?”
“나한테 지면 꼴사나울 테니까.”
“…….”
설마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지 실실거리다 흠칫하는 여학생.
그녀가 정색했다.
포켓에서 두 단검을 꺼내 든다.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는 안 할 테니까 걱정 마. 그보다 말로만 씨름하지 말고 어서 들어오기나 해. 아니면 내가 먼저 들어갈까?”
“……아니요. 제가 들어갈게요. 일단은 제가 학생이니까. 하지만…….”
대련에서는 아닐걸요?
여학생은 바람과 함께 내뱉으며, 김민지에게 달려들었다.
‘어디 나한테 대차게 깨져야 제 분수를 알겠지!’
레인저를 지망하는 동기들 중 가장 유망주로 손꼽히는 자신이다.
실력이라고는 변변찮은 김민지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필시 그녀는 자신에게 패배해, 교관들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말리라.
이때까지만 해도…….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여학생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휘익! 탁! 털썩!
“……어?”
몇 번의 합을 주고받았을 때.
여학생은 김민지에게 무력화돼, 다리가 걸리고, 어깨가 눌려서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내가 왜……. 누워 있는 거지?’
여학생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내 드넓은 하늘이 담긴 시야로 김민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에서 실수했는지는 알겠니? 아니면 한 번 더 할래?”
“……네. 한 번 더 해요.”
자신이 김민지 따위에게 졌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실수다.
이번에는 잘할 것이다.
정신이 번쩍 뜨인 여학생은 다시금 김민지와 대련을 벌이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대련이 시작되고…….
“…….”
“같은 수법에 또 당하는구나? 한 번 더 해 줄까?”
여학생은 또 누워 있었다.
이어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대련의 결과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쯤 되니.
“대체,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가운데, 몇 번이고 거듭 패배한 여학생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더 이상 대련할 의지를 잃고는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김민지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조용히 속삭였다.
경고였다.
“이제 알겠니? 너와 나의 차이를.”
“…….”
“앞으로 까불지 마. 또 했다가는 서울에 발도 못 붙이게 할 수 있어.”
“……!”
“카에데 같은 유망주였다면 몰라, 그 실력으로 나한테 개기니? 조심해라.”
〈위스퍼〉 김민지.
판도라 클랜에서 눈에 띄는 활약이 별로 없는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플레이어로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판도라 클랜에서 평범한 축에 속할 뿐이지, 전체 플레이어 기준에서는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과 경험은 그녀를 업계 상위 플레이어로 거듭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사실을…….
“지들은 나보다도 못하면서 무슨 행운 타령이야? 그 시간에 더 노력이나 할 것이지…….”
세상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클랜원들이 이탈리아로 떠나면, 한동안 전력 공백이 생길 것이다.
물론, 전력 균형을 고려해서 공략대 인원을 편성했다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그렇기에.
“민호나 다른 애들도 있다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니 만일에 대비해 네가 우리 클랜 좀 챙겨 줘라.”
은하는 〈검선〉 최은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경기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전화 너머로 탄식을 흘렸다.
[〈심연의 던전〉에 갔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심해의 던전〉이야……. 애들이 뭐라 안 했어?]“뭐라 하긴 했지…….”
[다들 만류했을 게 훤하다.]“그래도 필요한 일이니까. 미래를 위해.”
[미래에서 온 유성이 관련이야? 전에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긴 하네.]“이참에 와서 보도록 해. 우리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음……. 그래야겠다. 너희 공략이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했으니까. 가뜩이나 얼굴 보기도 힘든데, 볼 수 있을 때 봐 놔야지.]“클랜도 잘 부탁하고. 오랜만에 클랜에 오는 김에 푹 쉬어.”
[내 생각에는……. 파랑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 같은데? 저번처럼 갔다가 일만 하고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 나는 의정부 개척 외에는 클랜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거지? 나는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전국을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이러다 계속 클랜에 묶여 있는 거 아니야?]최은혁이 하소연한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은 뒤, 장난스레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면 좀 서운한데? 그렇게 클랜을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잠시 속세에서 벗어나서 스승님의 의지를 잇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거지. 선행.]“우리 나이에 속세는 무슨……. 그 선행, 클랜원으로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잖아?”
[뭐, 그렇기는 한데…….]“오히려 클랜 영향력을 이용하면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겠지.”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최은혁이 숨을 삼키는 소리.
은하는 차분히 눈을 감고, 그가 말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경계심이 담긴 목소리로, 최은혁이 물었다.
은하는 즉답했다.
“그냥 클랜에 남아 달라고. 우리는 너 안 보낼 거야.”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분명 클랜의 도움을 받을 상황이 많이 있을 거야. 그리고 너, 지금 같이 일하는 애들도 데리고 다닐 거잖아. 더더욱 조력이 필요하지 않겠어?”
[…….]작년, 이천서의 주도로 인해 판도라 클랜을 배신하려 한 클랜원들이 있었다.
당시 배신을 용납지 못한 은하는 그들 중 일부는 처단하고, 나머지 일부는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 의정부 개척 작업에 투입했다.
그리고 최은혁은 그들을 챙기러, 은하와 사이가 틀어지면서까지 의정부로 간 것이다.
“듣자 하니 그 애들 중에 클랜에 남으려는 애들도 있다던데.”
[어……. 그렇지. 어찌 보면 의정부에서 요직을 꿰찰 기회이기도 하니까.]“그 애들이 걱정되지 않아? 네가 챙겨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클랜에 남으란 거구나.]“맞아.”
은하는 긍정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테니, 대신 클랜에 이름만 남겨 놔. 그러다 가끔 힘 좀 빌려주고……. 아마 너한테 나쁠 일은 없을 거야. 클랜의 조력을 받고, 네 애들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최은혁은 침묵했다.
필시 고민 중이리라.
은하는 추측했다.
‘제발 한다고 해라.’
은하는 초조한 심정으로 바랐다.
머지않아.
[후우……. 진짜 이름만 남긴다?]최은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과 함께 말했다.
기대하던 답변을 들은 은하는 얼른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이번에 오는 대로 계약서나 새로 쓰자.”
* * *
최은혁이 클랜에 남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린 은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역시 애들이 좋아하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톡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때마침 톡을 읽은 최은혁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단톡방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은하 역시 그 흐름에 동참했다.
그러던 중.
벌컥!
“……어?”
돌연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야! 우리 왔다! 잘 지냈냐!?”
“…….”
전 십이좌, 〈염마〉 강현철.
그가 은하에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은하는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황당한 이유는.
‘애까지 데려왔어?’
강현철의 팔에 그의 아들, 강대한이 안겨 있었다는 점이다.
곧 공중에서 대롱거리던 아이가 은하에게 인사했다.
“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