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9
집 이웃(2)]
한때 안개꽃 파티에서도 음식으로 말다툼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
의정부 탈환전이 성공했던 시기였다.
탈환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기리고,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며칠이나 즐겼다.
안개꽃 파티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들은 의정부에서 돌아오자마자 연회에는 참가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연회를 즐겼다.
그 편이 다른 이들에게도, 안개꽃 파티원들에게도 마음이 편했다.
의정부 탈환 내내 안개꽃 파티는 어느 소속에도 들어가지 않고 전선과 후위를 자유로이 오가며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선에서 일으킨 문제도 한둘이 아니었다.
연회는 저희들끼리 즐기면 충분했다.
‘모두 그 동안 고생했어! 오늘은 은하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자!
단, 뒤풀이에 앞서 안개꽃 파티의 리더 노은하 플레이어의 건배사가 있겠습니다!’
‘…하아, 건배.’
‘어휴, 너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모두 건배~!’
은하는 유정의 손에 잡혀 뒤풀이에 참가해야 했다.
원형테이블 위에는 깐풍기, 탕수육, 피자, 치킨, 햄버거, 보쌈, 케이크, 곱창 등 저마다 전선에서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음식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갈등은 탕수육에서 일어났다.
‘동작 그만! 동생, 지금 뭐하는 거야?’
‘어머, 언니. 뭘 하긴. 탕수육에 소스를 뿌리려 그러지.’
‘뭐? 너 지금 부어먹으려 하는 거야? 야! 그럼 안 되지! 나는 찍먹이란 말이야!’
‘파랑 오빠는 주는 대로 먹으셔.’
‘얘, 그럼 나는? 탕수육은 당연히 찍어 먹어야지.’
쌍둥이 자매와 진파랑이 탕수육 소스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 술을 마시며 떠들던 파티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당연히 찍어 먹어야 탕수육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지. 그냥 먹고, 찍어 먹고, 마지막에는 부어먹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닌가?’
‘아니죠. 탕수육은 소스가 튀김옷에 흠뻑 젖은 채로 먹어야 맛있는 거죠.’
‘그럼 소스를 먹지, 탕수육을 왜 먹어? 부어먹으면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거 몰라?
야, 벙어리. 너는 뭔데?’
「찍먹」
몬스터에게 감염된 아이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중년인은 술에 취해 빨개진 얼굴로 열성적으로 주장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지하시장을 전전했다는 캐스터는 안경을 고쳐 쓰며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로 반박했다.
자신이 설치한 덫에 그만 손가락이 잘렸으면서도 희희낙락했다는 레인저는 옆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소녀의 허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실어증을 앓고 있던 소녀는 그 순간에도 라이플을 놓지 않았다. 마나를 움직여 마스크에 ‘찍먹’이라는 글씨를 보여줬을 뿐이었다.
‘얘, 그럼 너는 남자를 먹을 때 크림을 찍어 핥아 먹지, 크림통에 집어넣고 먹니?’
‘언니,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근데 새하얀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욕탕에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아?’
‘야, 야, 쌍둥이, 너희. 우리 지금 탕수육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거든? 먹을 걸 헷갈리지 마라.’
‘언니, 파랑 오빠는 왜 융통성이 없는 걸까. 근데 오빠, 나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 거기 아래도 파란색이야?’
‘얘, 먹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파란색은 식욕을 감퇴시킨다는데, 누군지는 몰라도 파랑 오빠 애인은 참 천사일 거야. 감사히 여겨.’
‘야! 머릿속에 19금밖에 안 들어 있는 년들이!’
뒤풀이기는 했어도 너무 소란스러웠다.
술이 들어간 파티원들은 허무맹랑한 소리나 지껄이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은하는 떠드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개꽃 파티에서도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같은 것은 없었다.
안개꽃 파티에 가입한 사람들은 삶에 대한 미련이 없거나, 미친 듯이 살다 죽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언젠가 전장 어디선가 죽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이들이 먼저 간 동료를 애도할 필요는 없었다.
‘깨작거리지 말고 좀 팍팍 먹어. 너 요새 많이 안 먹었잖아.’
은하는 말없이 내내 소주만 홀짝였다.
그를 보다 못한 유정이 음식 몇 가지를 담은 앞접시를 내밀었다.
그때 그는 이때까지 자신을 따라주었던 파트너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무슨 일이냐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정이 너는….’
너는 왜 날 따라온 거야?
왜 안개꽃 파티에 가입한 거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말이었다.
죽고자 했던 은하는 의도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헤맬 것만 같아서.
‘왜? 무슨 일인데?’
‘…아냐.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이야?’
그는 머리칼을 넘기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은하가 안주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잔을 들어 독작했다.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맥주잔으로 건배를 제의했다.
그녀는 맥주잔에 입을 대기 전에 테이블에 한데 모여 떠드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뭐 하러 싸우는지 몰라. 반반으로 나눠 먹으면 되는데.’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인데?’
‘궁금해? 궁금해? 나한테 뭐가 그리 궁금해? 오늘은 기분이니까 이 누나가 은하 네 질문 다 받아줄게.’
취기가 오른 것일까.
그때 그녀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장난을 쳐왔다.
반대로 은하는 정신이 사나웠다. 그녀에게 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백련, 너는?’
은하는 바로 옆에서 보쌈을 먹고 있던 백련에게 말을 걸었다.
의정부 탈환전이 수행되는 동안, 그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다리느라 잠을 못 잤다던 그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백련은 말없이 입 안에 집어넣었던 쌈을 꿀꺽 삼켰다.
유정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헤헤, 비밀이에요!’
‘연아, 연아! 언니가 가르쳐준 것도 해야지!’
‘궁금하면 500원!’
‘…너는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은하는 시끌벅적한 연회에서 뚱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
“뭐, 의외로 괜찮네.”
“우와, 맛있다!”
“나는 파닭이나 갈릭 좋아하는데.”
“그러게 누가 게임에 푹 빠지랬니? 그래도 맛있다.”
아이들은 치킨을 먹기 위해 정금전의 방을 깨끗이 청소했다.
바닥에 앉은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상자를 뜯어서는,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콜라와 치킨의 조합을 즐겼다.
“아, 내 돈…. 내 피 같은 돈.”
치킨을 몇 조각 먹고 정신을 차린 정금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서도 입안에 치킨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중이었다.
“하, 빌어먹게 맛있네.”
거의 눈물을 흘리며 치킨을 뜯는 정금전.
옆에서 감자튀김을 먹고 있던 은하는 조금 전, 그가 배달 온 치킨을 계산하러 지갑을 꺼내던 모습을 떠올렸다.
지갑 안에는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겉보기에는 폐인처럼 보이는 정금전이었지만, 지갑 속에 들어 있던 돈을 생각해보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폐인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형은 몇 살이에요?”
때마침 은혁이 입가에 치즈가루를 묻힌 채 물었다.
“십팔.”
“지금 욕한 거 아니죠?”
“그래, 18이다, 이것들아.”
“그럼 학교는 안 다녀요?”
“오빠는 뭐하고 살아요?”
아이들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정금전은 아이들의 질문을 귀찮아하면서도 일일이 답해주었다.
이제는 반쯤 체념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에도 줄줄이 말하기까지 했다.
“일할 생각도 없는데 고등학교를 뭐 하러 다녀. 나는 이대로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거야.” “폐인이네요.”
“허, 참. 꼬마가 그런 말도 다 알고 있네.”
정금전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가 검지를 흔들어보였다.
“폐인이 아니야. 니트지. 나는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아이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수군거릴 필요도 없었다.
서로 마음이 맞았다.
아랫집 이웃이 지금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를 하고 있노라고.
“다 먹었으면 얼른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난 마저 게임 할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조금만 더 먹고요.”
“형, 다 깨고 나면 저도 해보면 안 돼요?”
금전이 아이들 앞에서 치킨을 쥔 손을 벌레를 쫓는 것처럼 휘저었다.
어라?
은하는 금전과 아이들이 떠드는 모습을 보다 방구석에 있던 무언가가 눈에 밟혔다.
금고였다.
금고가 왜 저기 있어?
은하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침대 높이만한 금고를 빤히 쳐다보았다.
금전이 그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야, 노 꼬맹. 뭘 빤히 쳐다보고 그래?”
“형, 저건 뭐예요?”
“뭐긴 금고지. 금고 처음 보냐?” “정말 금고네? 나는 영화에서 본 게 다였는데.”
“현빈이 뺨치는 오빠, 금고 안에는 뭐가 있는 거예요?”
“뭐가 있긴. 내 소중한 돈이 들어있지. 너무 쳐다보지 마. 내 금고 닳는다, 닳아.”
무슨 이유로 금고를 방에 두고 있는 것인가.
은하는 정금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몬스터가 만연하는 세계에서 은행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웬만해서는 집 안에 금고를 두고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돈이라도 많나?
은하는 다시금 그의 지갑에 들어 있던 돈뭉치를 떠올렸다.
단순히 남들보다 돈이 많다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달랐다.
“형, 혹시 숨겨진 자식이라도 돼요?”
“응? 웬 숨겨진 자식?”
금전이 한쪽 눈을 가리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되물었다.
치킨을 먹고 있던 손이란 것을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민…, 집주인 할아버지의 혈연관계라든가.”
“내가? 어딜 봐서 내가 그 노인네랑 닮았다는 거야.”
“맞아. 우리 할아버지 욕하면 화낼 거야.” “그래, 어디서 나랑 그 노인네를 비교한…, 어? 정 꼬맹, 너 뭐라 그랬어?” “우리 할아버지가 훨~씬 잘 생겼거든요!”
“허, 참! 야, 내 치킨 도로 토해.”
정금전은 기가 찼다. 그는 기름이 묻은 손으로 뒷목을 잡으며 하양을 노려보았다.
이 중에서 제일 조그마한 아이가 눈초리를 세우고 있어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녀 딴에는 눈에 힘을 줬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토끼 한 마리가 눈에 힘을 준다고 그게 토끼지 개라도 되겠는가.
“하, 이놈의 노인네가 건드리지 말랐으니 건드릴 수도 없고, 참.
내 돈만 존나게 아깝네. 이것들아, 치킨 다 먹었으면 얼른 가라고!”
“형아! 저한테 게임 좀 빌려주세요!”
“오빠, 갈 땐 가더라도 치킨은 다 먹고 갈게요.”
보아하니 정금전은 연립주택의 주인인 민준식의 정체를 아는 모양이었다.
민준식을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은하는 두 사람이 모종의 혈연관계라도 가지고 있지 않나 의심했었지만, 금전이 거짓말로 답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민준식을 노인네라 부르는 모습으로 보아, 그와 나름 친분이 있거나 그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력이든 권력이든 무엇이든 하나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정씨라…, 에이, 아니겠지.
은하가 아는 ‘정’이란 성을 지닌 재벌가는 대한민국 재계서열 10위에 해당하는 동해그룹밖에 없었다.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정금전이 동해그룹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동해그룹의 혈연이 이런 데에 살고 있겠어?
게다가 그가 알기로는 미래에 동해그룹의 회장이 되는 사람은 정금전이 아니었다.
회귀 전, 동해그룹에서는 새벽그룹이나 영원그룹처럼 승계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회장 정지만이 장자원칙을 내세워 후계자들의 승계다툼을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정당한 후계자를 제외하고 아예 서울 밖으로 내보냈다는 이야기도 유명했다.
그러니 정금전이 동해그룹의 혈연일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에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은하는 치킨텐더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얄짤도 없이 진짜 끊었네. 내가 그런다고 집에 들어갈 줄 알고?”
응, 아닐 거야.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은하는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또다시 가만히 넘길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어휴, 내가 저 꼬맹이들 때문에 마나도 소모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했네.
하, 내 돈이 활활 타는 구나.”
한 손으로는 문을 닫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지폐더미를 쥐고 있던 정금전.
지폐는 불에 타는 것처럼 점점 형체를 잃어갔다.
문틈 사이로 언뜻 본 것이 전부였지만, 지폐는 마나가 되어 그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여기 정말 뭐하는 집이지?”
밖으로 나온 은하는 허망한 시선으로 연립주택을 올려다보았다.
4층에는 민준식이,
3층에는 줄리에타 부부가,
2층에는 은하의 가족과 민지의 가족이,
마지막으로 1층에는 돈다발을 마나로 바꾸는 괴상한 청년이며.
이웃들이 범상치 않았다.
평범한 이웃이 없었다.
하나 빼고.
“야, 먹민지.” “먹민지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너희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는 사람이긴, 수학학원 선생님이지.”
“…응, 그나마 평범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있어. 막 너희 어머니가 사실 재벌가의 자식이라거나, 너희 아버지한테 출생의 비밀이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지?”
“야, 노은하.”
민지가 눈살을 찌푸린 얼굴로 은하를 불렀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리는 김민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랑 현실은 구분할 줄 알아야지.”
…어, 그러게.
근데 내가 설마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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