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
레필리아 레소드-1화(1/398)
레필리아 레소드 1화
재회(1)
“아버지의 이름은 로이스타 아르빈트야. 별명은 신검의 로이스타, 그리고 대륙 최강의 기사지.”
수많은 전공을 두고 무패의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
지금 말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살아 있는 전설로 취급받고 있었다.
“형의 이름은 파에트 아르빈트. 천재 기사라고 불리지.”
아버지와 똑같이 무패의 명성을 가진 천재 기사. 그것이 소년의 형이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가족에 대해 자랑을 하다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아주 잘생겼어.”
소년의 형은 지나가던 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볼 정도로 미남이었다.
“나랑은 다르니까 걱정하지 마.”
소년의 머리카락은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새집이 있고, 꼬질꼬질했다.
조심성이 없는지 코끝에는 작은 흉터가 나 있고, 앞니 하나는 빠져 있다.
전형적인 장난꾸러기.
귀엽다거나 잘생긴 것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생김이었다.
“정말 달라. 너무나 많이.”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대번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이름은 리에르 아르빈트야. 사실 난 딱히 검술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
소년은 손을 뒤로 훔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집이 잡히고, 터진 것을 반복한 손가락은 검술을 훈련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실은 거짓말했어. 나는 검술에 재능이 없어. 내 별명이 뭔지 알아? 번개 같은 거북이, 돌머리 아르빈트, 사생아 소리까지 들었어.”
소년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대륙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강자인 아버지와 형. 당연히 소년에게도 기대는 이어졌다.
하지만 소년은 곧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철저하게 검술에 재능이 없었고, 노골적으로 약했다.
-힘내렴.
소년의 앞에 있는 무언가가 말했다. 그것은 투명한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검의 정령이니까 나를 각성시켜 줄 수도 있겠네?”
-검의 정령? 각성?
생뚱맞은 소년의 말에 빛나는 검이 맑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재미있는 표현이구나. 하지만 난 그렇게 편한 능력은 없는걸.
“그럼 지금까지 왜 말해보라고 했어?”
-속은 시원해졌잖니.
빛나는 검의 말에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소년과 빛나는 검이 만난 것은 겨우 한 시간밖에 안 됐다.
처음에는 빛나는 검을 보고 소년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그런 소년이 싫지 않았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검이지만 파트너가 없는 생활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넌 아버지, 형과는 다른 재능이 있잖니?
빛나는 검은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소년을 위로했다.
소년은 검의 말을 듣고 눈을 깜박거리며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내가? 재능?”
소년의 눈빛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검은 맑은 목소리로 웃어 보였다.
-난 이곳에 수십 년간 있었어.
“나보다 나이가 많아?”
소년이 엉뚱한 곳에서 깜짝 놀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검이 말하다 말고 다시 깔깔 웃었다.
-아무도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알지 못했지.
“밖에 있는 실피들은 알고 있던데?”
지금 검과 소년이 있는 곳은 나무 그루터기 안이었다.
소년은 이런 공간은 처음 발견했다. 마치 투명한 막으로 가려진 것 같은 신비로운 공간은 두려움보단 설렘을 안겨준다.
-걔들은 정령들이잖니. 나보다 더 오랫동안 여기에 살아왔어.
“걔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나 열 살인데? 걔들은 엄청 작은데도? 물론 날개는 달렸었지만.”
이상한 식으로 계산하는 소년의 말에 검이 웃음을 틀어막았다.
묘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억눌린 운명 때문에 마음속 어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정령을 볼 수 없어.
“말했다가 미친 아르빈트라는 별명이 생길 뻔하긴 했어.”
-그들도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없지.
“나는 가능한데?”
-지금까지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어.
검이 갇혀 있는 곳은 누구도 출입하지 못했던 공간이었다.
“설마 그게 재능이란 거야?”
-응. 엄청난 재능이지.
소년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는 재능?”
-아니.
검이 나지막하게 웃어 보인다.
-넌 마법에 재능이 있어.
“마법?”
-그래. 마력으로 만들어내는 연산 술식으로 기적을 만들고, 손짓 한 번으로 악을 쳐부수는 그 능력.
“엄마가 마법사의 명맥은 끊어졌다던데?”
-글쎄, 지금의 세상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은둔해서 사니 모를 수도 있지. 어쨌든 넌 검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지 몰라도, 마법의 축복은 제대로 받고 태어났어.
검의 말에 소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소년은 양손을 꼭 쥐고서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검을 보았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뭘 하면 되는 건데?”
-그건…….
빛나는 검은 소년의 눈빛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그때 검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다음에 알려줄게.
소년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보인다.
“그럼 그렇지. 재능은 무슨.”
소년은 검이 말하는 것을 다르게 오해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으렴. 내가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은 아주아주 나쁜 사람 때문에 갇혀 있어.
“밤에 이불에 오줌싸는?”
-그렇게 어설프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무 오랜만에 만난 사람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을까?
검은 이상할 정도로 소년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나가면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렴.
“왜?”
-여긴 나쁜 사람들이 많거든.
“우리 형 불러와서 해치워 줄까?”
-고맙지만, 아무리 네 형이 강해도 힘들 거야. 어서 서두르렴.
검은 다급하게 말했다.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혼자 여기 있으면 외롭지 않아?”
나무 문을 열고 나가려던 소년이 물었다. 검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서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괜찮아.
검은 곧 자상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속삭였다.
-난 잠이 많거든.
“다음에 안 위험할 때 또 놀러 올게!”
소년의 말에 검은 다시 맑게 웃었다. 그러고는 소년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듯이 말했다.
-만약 네 기억 속의 단편에 나를 찾는다면 와도 좋아.
“알았어. 또 봐!”
-그래, 정말 그런 인연이 있다면 네게 마법을 알려줄게.
“나 머리 나쁜데?”
-건강하렴.
소년은 그렇게 약속하고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하게 물든 숲이 보였다.
소년은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걸었다. 그런데 평소에 보이던 정령들이 아무도 없었다.
바위 위에 걸터앉은 두꺼비의 정령도, 나뭇잎을 타고 노는 작은 바람의 정령도.
그뿐만은 아니었다. 풀숲을 공연장 삼아 연주회를 여는 풀벌레도, 장난꾸러기를 노리는 밤새의 위협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적막했다. 그것을 깨닫자 소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 소년은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
어스름한 달빛에 스쳐 지나가는 형체였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눈빛이 자신을 향한다.
놀란 나머지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두려움에 천천히 눈을 떴다. 우거진 숲 안에서 보이던 괴인은 없었다.
“휴.”
소년은 자신이 헛것을 봤다고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질 것 같은 음성이었다.
용기 내어 뒤를 돌아보자,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을 가진 남성이 있었다.
소년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검이 말했던 악인이 떠올랐다.
손끝이 떨리지만 태연한 척하며 소년이 입을 열었다.
“낮잠 잤는데요.”
“내가 아는 낮잠은 이런 밤중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아실걸요. 단지 제가 잠이 많았을 뿐.”
소년은 남자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사내의 머리칼과 똑같은, 붉은 눈빛이 마치 칼날처럼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늦은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마려무나.”
남자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밤의 장막 사이로 사라졌다.
소년은 쿵쾅거리던 가슴을 부여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살았다.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소년은 어느새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언덕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드는 생각.
‘근데 내가 이 시간까지 뭐 하고 있었지.’
자신이 왜 뛰고 있는지. 아니,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건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랑 대화 나눴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배고프다…….’
소년은 배고프니 모든 사고가 멈췄다.
결국, 소년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것보다는 빨리 집으로 가서 식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 * *
이 세상은 온통 몬스터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몬스터에게 생존하고, 최초의 왕국을 세운 곳은 오트리아 제국이 되었다.
제국은 부흥기를 거쳐, 쇠퇴기를 겪고 있었다.
어린 황제는 힘이 없었고, 제후국으로 갈라진 땅들은 전국 시대를 예고했다.
혼란의 시대가 막을 열자, 검이 부흥하였다.
기사.
모든 소년의 꿈이자 열망과도 같은 단어였다.
기사는 강자의 상징이다.
약자를 지키고, 신의를 지키며, 평화를 수호한다.
유랑시인은 숱한 영웅들의 서사시를 불렀고, 아이들은 검을 들어 노래했다.
“으아악, 제기랄!”
한 청년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질렀다.
청년은 자신의 고운 흑색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흐트러뜨렸다.
“또 무슨 일이야, 리엘?”
리엘이라 불린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유트, 나 카이샤 진학할 수 있을까?”
유트라고 불린 은색 머리칼의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불가능한 것을 왜 물어봐?”
“그치? 그렇겠지?”
리에르는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넌 카이샤 진학할 거야?”
카이샤는 고등교육기관을 말했다.
“아니. 먹고살려면 바로 일을 찾아야겠지.”
카이샤에 입학하려면 중등교육기관인 카에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지, 혹은 추천서를 받거나 해야 했다.
리에르는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이 성적으로 카이샤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당연하잖아.”
리에르는 짜증 나는 표정을 지었다.
리에르와 에레사는 소꿉친구였다. 어릴 적부터 항상 붙어 다녔고, 언제나 그러리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두 살 연상인 에레사는 카이샤에 진학해 버렸다.
보통 우등생이라고 하는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리에르도 에레사와 같은 카이샤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리에르의 성적은 만년 꼴찌를 자랑하고 있었다.
“방법이 없을까?”
“없진 않아.”
“정말?”
유트의 말에 리에르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했다.
“내년에 진학해.”
“지금까지 뭐 들었어?”
“현실성 제로의 잠꼬대.”
리에르는 옆에 있던 책을 휙 던졌다.
유트는 리에르가 던진 책을 가볍게 받아서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굳이 카이샤에 진학할 필요가 있냐?”
“넌 몰라. 잘난 놈아.”
리에르는 심통 난 듯이 중얼거렸다.
유트는 카에르 최고의 유명인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신비로운 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천재적인 검술 재능.
머리도 명석했고, 성격도 좋았다.
“말 그대로 사기 캐릭터!”
“무슨 소리야.”
유트는 생뚱맞은 리에르의 말에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트가 카이샤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은 고아기 때문이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그로선 한가롭게 카이샤에 진학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카에르에 진학한 것도 페이서스 시의 추천서와 지원금 때문이었다.
“사실 방법 하나 더 있어.”
“이번엔 진짜야?”
“어, 진짜야.”
유트의 말에 리에르는 눈이 번쩍 뜨이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곧 축제가 있잖아.”
항구 도시 페이서스. 매년 벌어지는 축제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해마다 열광시키는 대회가 존재했다.
“검술 대회에 나가.”
“나가?”
“응, 나가서 우승해.”
“……. 다른 방법은?”
“당연히 없지.”
리에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 대회는 카에르, 카이샤의 학생들이 전부 모인다.
리에르는 성적만 나쁜 것이 아니었다.
검술을 열심히 배웠지만, 가장 약한 F등급을 받았다. 그런 F등급이 대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샌드백 이외엔 없었다.
“내가 너냐?”
“아니지.”
유트는 반면 S등급 판정을 받은 천재였다. 그리고 작년 대회 우승자이기도 했다.
리에르는 방을 나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리엘, 어디가? 아직 이야기가 덜 끝났어.”
“화……장……실…….”
“어, 그래.”
유트는 리에르가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실웃음을 지어 보였다.
놀릴 생각은 있었지만, 저 정도로 절망할지는 몰랐다.
친구가 얼마나 에레사를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유트는 대회 안내장을 집었다.
[전 챔프 유트 로사리오 귀하.] [금번 대회부터는 싱글이 아닌, 팀으로 참가해야 함을 공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