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0)
레필리아 레소드-10화(10/398)
레필리아 레소드 10화
축제(4)
쿠레드는 단순 무력이라면 카에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다.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리에르는 손목에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부웅!
파공음과 함께 리에르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맹공이 스쳐 지나간다.
“리엘, 침착하게!”
유트가 뒤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한 방 얻어맞았다.
“좌측 1점!”
주심의 소리와 함께 리에르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아파할 새도 없이 리에르는 쿠레드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래, 그래. 점점 그때처럼 뒷걸음질하다가 결국엔 검을 던지고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거다. 아까 큰소리 친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지. 크큭.”
“더럽게 시끄럽네.”
리에르는 쿠레드에게 한마디 내뱉고서 바로 반격하기 위해 검을 바로 세웠다.
리에르는 쿠레드의 가슴을 향해 찌르기를 했다. 하지만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뭐야, 꼴통! 늦잖아!”
쿠레드는 공격을 쳐낸 뒤에 바로 가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내려치기였다.
리에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지만, 쿠레드는 크게 한 보 내디디며 수평 베기를 했다.
탁!
리에르는 머리 위에서 가검을 막았다.
가검과 가검이 서로 바인딩(Binding)하며 교착 상태가 되었다.
쿠레드는 특유의 완력으로 그냥 밀어붙였다.
힘에서 밀리는 리에르는 물러서며 검을 틀었다.
“빌어먹을 오크 새끼.”
“너 혹시 여자 아냐? 손목이 계집처럼 여리여리한 게 힘아리가 없냐?”
리에르는 쿠레드의 가검을 막느라 손목이 마비되는 것 같은 저릿함을 느꼈다.
쿠레드는 계속 멧돼지처럼 밀어붙였다.
공격은 일방적이었다.
리에르는 뒤로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나며 피하고 막았다.
어느새 숨은 거칠어졌고, 몸은 지쳐갔다.
그저 완력에 의지하는 쿠레드의 검이었기에 그나마 회피가 가능한 정도였다.
애초에 리에르에게는 실력도, 경험도 부족했다.
“용감해! 도망치지 않고 있잖아!”
현재 스코어는 5:1.
쿠레드는 스코어상으로 지고 있어도 여유만만했다.
이미 사기를 잃은 리에르가 그때와 같은 패배자의 눈빛을 하는 게 보였다.
이긴 것은 확실했다.
쿠레드는 리에르를 가지고 놀았다.
“패배자 주제에 유트 같은 우등생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찐따 X끼!”
탕!
쿠레드의 가검이 무겁게 내려친다.
리에르는 그것을 겨우 막아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X신 X끼 주제에 가슴 큰 여자에게 구걸하듯이 어울려 다니는 머저리!”
탕!
쿠레드의 빈정거림과 함께 일방적인 공세에 리에르가 무너졌다.
당장에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쿠레드는 잠시 공격을 멈췄다.
리에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시간을 봤다.
몇 시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3분이 지나 있었다.
“쿠레드, 불쌍하잖아. 그냥 끝내주라고!”
“이 새끼, 혼자 재미 보고 자빠졌네. 깝치지 말고 빨리 끝내!”
쿠레드는 팀원의 야유를 받으면서 어깨를 추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생각보단 오래 버티는데? 낙제생 자식아!”
쿠레드가 양손으로 가검을 내리찍었고, 그것을 받기 위해 리에르는 머리 위로 검을 들었다.
하지만 손목에 힘이 풀려 손이 올라가지 않자 리에르는 몸을 옆으로 뒤틀었다.
타악!
소리와 함께 리에르는 자리에서 주저앉아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감싸 안고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쿠레드의 체중이 실린 공격은 리에르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좌측 1점! 우측다운, 좌측 3점!”
쿠레드는 볼살을 늘어뜨리며 씩 웃었다.
리에르는 입술을 사리물며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으로 다시 가검을 쥐었다.
“우측 계속할 수 있나?”
리에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쿠레드는 놀고 있었다. 분하지만 자신의 하찮은 실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측?”
주심이 재차 확인했다.
리에르는 유트를 힐끗 바라봤다.
표정이 애매했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안타까운 것 같기도 했다.
“네.”
리에르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항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괜히 오기가 생겼다.
“시합 재개!”
주심의 확인 이후에 다시 경기는 시작되었다.
쿠레드는 마음만 먹으면 상대를 때려눕힐 수 있기에 더욱 여유만만했다.
다시 리에르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쿠레드는 가볍게 쳐내고서 다시 일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리엘, 상대 페이스에 이끌려가는 검술은 없어! 하던 대로 해!”
‘알고 있다고, 빌어먹을.’
리에르는 그렇게 속으로 뇌까리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숨이 다시 턱 끝까지 차올랐다.
쿠레드의 비열한 웃음이 보인다.
-어제 내가 수련시켜 준 검술들은 다 잊은 거야?
“안 까먹었어요.”
-편안하게 마음먹어. 적당한 긴장은 좋지만 다급한 긴장은 근육을 수축시키고 시야를 좁게 만들지.
“알아요.”
-애초에 상대는 힘만 셀 뿐이야. 검술은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말은 쉽지만…….”
“아까부터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X신!”
탕!
다시 리에르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리에르는 쿠레드의 검이 빠르지 않은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렇게도 빠르게 보였던 공격이었다.
리에르는 떠올렸다.
어제 그녀가 자신의 몸을 써서 직접 겪게 해주었던 그 검술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바람의 결이 있다.
그 결을 따라 검을 움직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던 그 무아지경.
그때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5라운드! (50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알리는 주심의 외침이 들려왔다.
쿠레드는 이제 리에르를 바닥에 눕혀주기 위해 제대로 공격을 시작했다.
리에르는 가볍게 옆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쿠레드의 수평 베기가 지나갔다.
쿠레드는 리에르가 회피하자 깜짝 놀라 자세를 가다듬었다.
분명 쿠레드는 빈틈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리에르는 공격하지 않았다.
쿠레드의 두꺼운 목살이 꿈틀거렸다.
-이 싸움은 너의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야. 사람이 마음먹는 것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마음먹는 것에 따라 눈앞의 환경이 바뀌기도 하지.
리에르는 처음부터 긴장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속삭임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리에르는 쿠레드의 체중이 실린 묵직한 가검이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가볍게 목을 뒤로 젖혀서 피하며 가검을 고쳐 잡는다.
“3라운드!”
느렸다.
왜 인제 와서 깨달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2라운드!”
“이 자식이……!”
쿠레드는 자신의 공격을 계속 피하는 것을 보고 화가 잔뜩 치밀었다.
그가 멧돼지처럼 돌격을 시작했다. 그저 힘만 가득 품은 채로.
-한 걸음 뒤로.
리에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쿠레드는 그대로 뛰어 검을 내리긋는다.
-다시 한 걸음.
검을 눈앞에 세운 채로 리에르는 한 폭의 걸음을 뒤로하였다.
쿠레드의 검이 리에르의 몸에 닿지 못하고 땅바닥을 내리찍게 되었다.
-지금!
쿠레드의 두 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크게 부풀었다.
검을 잘못 휘둘러 땅을 내리찍은 덕분에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기울어지는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드는 리에르의 가검은 점점 거대하게 보인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리자 심판의 선언이 이어졌다.
“우측 5점! 5대10, 우측 승!”
쿠레드의 두꺼운 턱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패배했다.
설마 자신이 이런 낙제생에게 질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이겼네…….”
-넌 검술이 싫었지.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형이 기사였기 때문에 막연히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검술을 배웠다.
하지만 수평관계에 있던 친구들은 이미 수직관계로 바뀌어 있었다.
혼자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던 리에르는 검술을 싫어했다.
-싫다고 하면서 훈련은 거르지 않은 것 같더라.
아르미안은 리에르의 몸을 조종하면서 이미 확인했다.
리에르는 꾸준히 훈련을 해왔다.
천성이 게으른 사람치고는 의외였다.
-이미 기본기는 잘 닦여 있어. 충분히 강해질 자격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에 리에르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듯했다.
리에르는 경기장을 내려오면서 유트와 눈이 마주쳤다.
유트는 빙긋 미소하면서 리에르의 어깨를 두들겼다.
“잘했어.”
처음으로 이겼다.
검술 평가만 하면 항상 낙제하여 낙제생 딱지를 달고 다녀야만 했었다.
리에르는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돼지와 원숭이의 싸움은 원숭이가 이겼네.”
유이는 리에르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비아냥거렸다.
“네가 뭐라 해도 난 이겼어! 이겼다!”
“아, 축하합니다. 그런데 저리 가서 좋아하면 안 될까요? 털 날리거든?”
유이는 리에르에게 명백하게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다를 때 같으면 리에르도 으르렁거릴 테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아서 참았다.
리에르는 검술을 부정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주는 희열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리에르는 유트가 경기장을 올라가자마자 내려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의아해했다.
“왜 내려와?”
“끝났잖아. 다음 시합까지 쉬러 가자.”
유트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등 뒤로, 경기장에 뻗어 있는 상대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힘들었어.”
유트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리에르에게 말했다. 하지만 설득력은 제로였다.
* * *
1승 1무 1패.
예선전에서 리에르가 이루어낸 전적이었다.
리에르는 숙적(?) 쿠레드와 겨루어 1승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음 시합에서는 패했다.
“네가 진 상대는 겉모습은 수수해도 꽤 강한 축이었어.”
유트는 그렇게 리에르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인 유이는 달랐다.
“부디 발목을 잡지 말아주세요.”
리에르는 유이의 빈정거림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세 번째 시합에서는 호각인 상대였다.
상대 선수와 5분간 겨뤘지만, 포인트가 동률이라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다.
“첫 출전치곤 정말 잘한 거야, 리엘.”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왜 설득력이 없이 들리냐.”
“정말 추악한 시합이었어요. 안 본 눈 삽니다!”
유이의 빈정거림에 결국 리에르가 공격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로 뒤엉켜서 싸우자, 유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게 유트 로사리오야?”
“작년 챔프잖아.”
유트의 시합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예선전이라 관중이 없더라도, 3년 연속 챔프를 노리는 유트에게 관심 없는 참가자는 없었다.
“3년 연속 챔프. 역사상 단 한 명만 했었지.”
“응, 나도 해야지.”
리에르의 말에 유트가 점잖게 웃어 보였다.
유트가 말하면 그것은 오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카에르 역사상 3년 연속 챔프를 달성한 사람은 리에르의 형, 파에트 아르빈트밖에 없었다.
리에르는 한숨을 쉬었다.
왜 자신의 주변에는 천재들만 있는지 답답했다.
신이 있다면 멱살잡이를 하고서 물어보고 싶었다.
“원숭이가 불안 요소지만.”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둥글둥글한 붉은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소녀였다.
하지만 입만 열었다 하면 리에르의 복장을 뒤집었다.
리에르는 최대한 연상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주며 말했다.
“처음이라 긴장했을 뿐이다. 내일 본선부터는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내일은 분명 4강전에서 본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겠지.”
“그렇지 않아. 이제 긴장은 풀렸고 대회의 흐름을 난 파악하고 있어.”
“내일은 발목을 잡지 말아주세요.”
유이와 리에르 사이에서 이상 기류가 흐르고 리에르의 이마에서 핏줄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착한 어린이로 만들어주마, 충혈 눈알.”
“땅바닥을 혀로 핥게 해주지. 덤벼 원숭이!”
두 사람은 대회용 가검을 뽑아 서로에게 겨눈 채로 으르렁거렸다. 유트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