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06)
레필리아 레소드-106화(106/398)
레필리아 레소드 106화
어벤져(13)
“콰과광!”
라스의 워해머가 땅을 내려치자 소음을 뿌리며 대지가 흔들렸다.
성기사들은 라스의 방식에 익숙했던지 땅에 검을 꼽고서 지팡이 삼아 버텨냈다.
하지만 리에르는 갑작스러운 진동에 땅에 손을 짚고서 주저앉았다.
“우두두둑!”
땅이 균열일 일으키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자신을 향해 갈라지는 땅을 보고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균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피하는 방향으로 따라왔다.
“흐흐.”
라스는 음흉한 웃음을 흘려냈다. 그는 다시 한번 해머로 땅을 내리쳤다.
지진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쓰러졌다. 성기사들은 아예 몸을 엎드린 채로 대기했다.
“하하핫!”
라스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그동안 리에르의 존재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써드 포스라는 이유만으로 리에르는 최강자처럼 군림했다. 그것이 얼마나 역겨웠는지 몰랐다.
라스는 자신이 대륙 최고의 전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리에르가 생쥐처럼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잘 어울리는구나!”
라스가 대지를 내려칠 때마다 갈라진 균열의 숫자가 늘어났다. 흙먼지 덕분에 이제 시계마저 불편했다.
“최강이라는 이름값을 해야지?”
라스는 도망 다니는 리에르를 보며 즐거워 죽겠다는 반응이었다.
“설마 도망 다니는 거로 최강이었던 건가?”
리에르는 최대한 균열을 피하면서 검은 기류를 집어 던졌다.
하지만 라스는 맨손으로 그것을 쳐내 버렸다. 아무리 견제용으로 시도한 것이지만 포스의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섬뜩한 파공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라스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이제 죽어라!”
라스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전격은 공기를 찢어냈다.
리에르는 가볍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검은 장막이 커튼을 열며 쏟아지는 전격들을 흡수했다.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흡수할 권리를 가진 써드 포스에겐 의미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라스가 해머를 내리쳤다.
이번엔 그의 공격은 균열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리에르는 땅 밑에서 압력이 느껴지고 몸을 회피했다.
리에르의 발밑에서 폭발과 함께 흙기둥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리에르는 라스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움직였다.
라스는 차갑게 비웃으며 다시 한번 해머로 땅을 내리쳤다.
균열이 라스의 앞에서부터 갈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해일처럼 치솟으며 리에르를 향해 덮쳤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땅을 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리에르는 앞을 향해 손을 뻗어냈다. 검은 기류가 커튼과 장막을 치면서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콰과광!
지독한 폭발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리에르가 마음먹고 막아내면 막지 못할 것이 없었다.
“하핫!”
라스가 대지의 해일 사이로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의 육중한 워해머가 리에르를 향해 뻗어졌다.
리에르는 그의 공격을 정통으로 막고서 땅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던 균열은 순식간에 리에르를 덮쳐 버린다.
적이 빠지자마자 균열은 그대로 닫혔다. 감쪽같이 사라진 균열 위로 라스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뭐가 포스라는 거냐? 뭐가 최강이라는 거냐? 이 파괴의 라스에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을!”
라스는 자신의 사냥개가 사냥 당했단 사실을 알면 선지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 순간 서늘한 목소리가 라스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내 그림자를 맞춘 것이 그리 기쁜가?”
깜짝 놀란 라스가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워해머를 가로로 내질렀다.
붕!
호쾌한 소리와 함께 워해머는 리에르를 가격했다.
아니, 정확히는 리에르의 앞에 드리운 장막을 때렸다.
츄악!
라스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느끼고 싶지도, 당하고 싶지도 않은 통증이 워해머를 쥔 손에서 전해졌다.
“으아악!”
라스는 비명을 토해내며 오른팔이 있던 어깨를 움켜쥐었다.
리에르는 두꺼운 근육으로 이루어진 라스의 오른팔을 대수롭지 않게 버렸다. 검붉은 피가 사방을 어지럽혔다.
“끄아아아악!”
라스는 분노와 고통을 뒤집어쓴 채 이를 갈았다.
오른팔이 없으면 워해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아니, 양팔이 멀쩡해도 리에르와 일대일은 무모했다.
리에르의 등 뒤로 검은 칼날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라스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의 뒤쪽에선 지원하기 위한 성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리에르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비아냥을 토해냈다. 그리고 빗물이 고여진 바닥에 발을 굴렀다.
리에르의 등 뒤에 있던 검은 칼날들이 부채꼴 형태로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사방으로 빗살을 가르며 퍼져 나갔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리에르를 둘러싸던 성기사들의 머리통이 피를 뿌리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라스는 순식간에 학살당하는 성기사들을 보며 헛숨을 삼켰다.
“걱정하지 마.”
젖은 앞 머리카락들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 그것은 포식자의 눈빛이었고, 무력하게 만드는 공포였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을 테니까.”
전투를 치룬 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절반에 가까운 성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신에게 축복받은 오러를 검에다 하사할 수 있는 강력한 기사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기의 기사들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라스는 서서히 공포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기만 했다.
절대적인 무력. 절대적인 공포. 처음으로 그것을 느끼며 라스는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꺄앗!”
리에르는 귓가에 들려오는 비명을 놓치지 않았다.
라스의 뒤편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 그녀는 성기사들에게 붙들린 채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리에르를 직접 상대하기 어렵기에 성기사들은 최소한의 도박을 걸고 있었다.
원래는 그에게 인질 따윈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은 절묘했다.
리에르의 몸이 움직인다 싶더니, 이내 라스의 시야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리에르는 어느새 마리엔느를 붙잡은 성기사들 앞에 섰다.
성기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리에르를 보고 당황하지도 못했다. 이미 그를 본 순간 그들의 머리통은 피보라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리에르는 마리엔느를 끌어안은 채 성기사들에게 벗어났다. 마리엔느는 이실렌 대공의 하나뿐인 손녀였다.
리에르에게 큰 영향은 없더라도 일단 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에레사와 같은 금발의 소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스릉, 스릉.
멀지 않은 곳에서 순백의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앞쪽에서는 순백의 기사들이, 그리고 뒤쪽에서는 전의를 잃지 않는 성기사들이 검날을 들고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전부 해치울 수밖에 없나.’
리에르는 젖은 머리카락이 자꾸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이 귀찮아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때였다.
리에르의 품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듯하더니 통증이 밀고 들어왔다.
리에르가 시선을 내리깔자 마리엔느가 원망 가득한 눈으로 올려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움켜쥔 검은 어느새 리에르의 배를 찔렀다. 마리엔느가 힘이 없었기에 깊숙한 검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끈적이는 피가 옆구리에서 허벅지를 적셨다.
“아…… 아!”
리에르의 배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며 마리엔느는 두려움에 손을 떨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혈육을 죽인 남자. 증오해 마땅한 그가 왜 자신을 구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리엔느는 할아버지의 주검을 보고서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리에르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기에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왜 모든 일이 꼬이는 것인지 생각했다.
머릿속을 가로막던 검은 안개는 가셨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떠올랐다.
지키지 못한 첫사랑, 존경하던 형, 그리고 단 하나뿐인 친구 유트.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린 생명의 무게들. 그것이 양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비를 뿌리는 먹구름으로 인해서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피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시야도 흐려졌다.
그래도 리에르는 복수해야만 했다. 평범하고 평화로웠던 자신의 일상과 인생을 일그러뜨린 존재들에 대해서. 그들이 키워주고 배양해 준 이 능력을 이용해서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어깨를 짓누른 원죄가 씻겨져 나갈지도 몰랐다.
비루한 죄 갚음이라 할지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 버린 몸을 쉬게 할 수는 없었다.
리에르는 이를 사리물면서 배로 꼽힌 검날을 맨손으로 쥐었다.
검을 조금씩 뽑아낼 때마다 연분홍 피가 꾸역꾸역 뿜어져 나왔고, 통증이 몸 곳곳에 파고들었다.
리에르가 검을 밀어내자 마리엔느는 뒷걸음질 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찍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보이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진군해 오는 적들은 리에르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주, 죽어버려!”
마리엔느의 저주가 쏟아졌다.
리에르는 그녀에게서 뒷걸음질로 멀어졌다. 지독한 통증이 하반신을 피로 물들였다.
“적혈의 악마!”
순백의 기사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전부 검을 들고서 주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서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눈앞에 이상한 기사들을 발견했다.
생전 처음 보는 갑옷이었다. 국가도, 소속도 불분명한 기사들을 보고서 로빈타의 기사들은 긴장했다.
“도망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맥크웰이 선두에 서서 검을 뽑았다.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우리의 주군, 우리의 대공을 비겁하게 암살한 악랄한 놈을 여기서 죽이고자 한다. 나와 함께 목숨을 걸겠는가?”
“오늘 여기서 살아 돌아가는 이는 없을 겁니다!”
“순백의 아제리엘의 이름으로!”
순백의 기사들이 포메이션을 짜기 시작했다.
“순백의 기사들이 왔다! 성기사들이여, 우리의 우방을 위해 성전을 벌여라!”
라스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소리쳤다.
라스의 외침을 듣고 순백의 기사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일었다.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영지에 침범한 기사들이 우방이라고 말했다.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리더인 맥크웰은 부정하지 않았다.
“모든 대륙의 주적인 적혈의 악마, 리에르 아르빈트를 오늘 이곳에서 처형한다!”
순백의 기사들이 돌격을 시작했다. 마리엔느는 곧바로 지원 온 순백의 기사들에게 구해졌다.
리에르는 반대쪽에서도 성기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
리에르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머금어졌다.
이실렌이 말했던 내부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겠지.’
리에르는 자신의 복부를 꾹 눌렀다.
구해주려 했지만, 오히려 공격만 받았다. 굳이 변명과 핑계는 대지 않는다.
아직 힘은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리에르는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를 중심으로 칠흑으로 만들어진 검이 형태를 갖췄다.
홀 블레이드.
리에르의 초월기 중의 하나였다. 순수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이 스스로 의지를 갖고 적을 도륙한다.
“으아악!”
“물러서지 마라!”
“다 죽어가는 놈 하나 못 잡았다는 개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
라스는 성기사들을 이끌고서 선두에 섰다.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리에르에게 워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리에르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검을 튕겨냈다. 라스의 워해머의 방향이 크게 틀어져서 엉뚱한 곳을 향했다.
레필리아 레소드 2식, 체이서.
방어와 동시에 상대의 허점을 향해 검격을 찔러 들어간다.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라스는 검 끝이 목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피하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츄악!
라스의 목에 리에르의 검이 박혀 들어갔다.
“잠시 빌린다.”
리에르는 자신의 검을 놓고 라스의 워해머를 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잔뜩 불어 넣으며 땅을 향해 내려찍었다.
어스퀘이크(Earthquake)의 마법이 담긴 워해머가 리에르의 손에서도 기적을 발휘했다.
리에르가 소환해낸 홀 블레이드와 싸우던 기사들은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촤악, 츅!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리에르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머리통이 핏물을 터뜨리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추수 때가 되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