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08)
레필리아 레소드-108화(108/398)
레필리아 레소드 108화
코스모스의 교단(2)
리에르는 갑자기 나타난 금발의 남자를 보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가 광소를 지으면서 걸어왔다.
아르미안은 리에르를 제지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직 죽이지 마, 리엘.”
리에르는 아르미안의 말을 듣고 일단은 멈췄다. 하지만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눈앞에 두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죽이지 말라니. 너무하십니다.”
금발의 남자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르미안은 그에게 빙긋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코스모스 교단의 사람이군요.”
“맞습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장로회의 열두 번째 손가락, 벤젤리 라온하르트라고 합니다.”
“그래서 웬일이죠?”
벤젤리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도 신성 방어막이었다.
제법 신력을 가지고 있는 거로 보아서 일반인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다.
“계시가 있으셨습니다.”
계시라는 말에 아르미안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르미안 님. 그리고 적혈의 악마님. 두 분을 교단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풉.”
아르미안은 장로 벤젤리의 말에 살포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손에 묶여 있는 수갑을 보여 주었다.
“교단으로 가고 싶지 않은걸요?”
“선지자의 길을 거부하셨기에 죄의 수갑과 죄의 면류관을 쓰셨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성호를 그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아르미안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수갑이 풀려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머리 위에 씌어 있던 죄의 면류관도 재가 되어 바람에 흘려 나갔다.
아르미안이 얼굴을 굳혔다.
장로 벤젤리는 청아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신께서 선지자의 길을 가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주를 풀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 하시더이다.”
장로 벤젤리의 말에 아르미안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독한 사랑의 저주, 그것은 언제나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신은 마치 지금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소원을 들어주려는 듯 모였다.
“그리고 적혈의 악마님은 칠흑의 왕이 되라 하십니다.”
“왕의 길을 만들라?”
“그것이 선지자께서 하실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죠.”
장로 벤젤리의 말에 아르미안의 입가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런데 암살자는 왜 고용하셨나요?”
“실력은 테스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왕’인걸요.”
아르미안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리에르를 훈련해야 할 기관도 필요했다.
언제까지고 나무 이슬을 맞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아, 참고로 토벌대가 만들어질 겁니다.”
“토벌대요?”
“적혈의 악마를 잡기 위해서 제법 실력 있는 길드에서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길드는 체계적이고 주도면밀하다. 개인의 힘과 단체의 힘이란 것은 차원이 달랐다.
아르미안은 빙긋 웃었다.
“좋아요.”
여러 가지 조건이 부합된다.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리에르가 다시 움직였다.
지독한 목마름 때문에 괴로웠다.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부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르미안은 리에르를 부드럽게 포옹했다. 그리고 달래듯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지. 화내지 말렴. 참아야 해. 아직은 죽이면 안 돼.”
“지금도 아직은 입니까?”
“지켜봐야죠.”
아르미안이 배시시 웃었다. 장로 벤젤리는 쓴웃음을 짓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적혈의 악마, 그리고 선지자시여.”
* * *
리에르와 아르미안은 코스모스 교단으로 이적했다.
처음 두 사람이 등장했을 때, 모든 교단의 간부가 모였다.
선지자 아르미안.
그녀는 코스모스 교단의 탄생부터 함께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에게 버림받고 저주받아 검에 봉인되었다.
리에르는 신관의 전사로서 훈련받았다. 생존 방법과 암살 방법을 교육받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아르미안은 교단에 입성한 이후 항상 리에르와 함께했다.
뒤로는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아르미안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밤마다 리에르를 데리고 자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리에르를 독점하고 싶었다. 단 한순간도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마력을 먹지 않으면 모습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미안이 자리를 비웠다.
그것도 한 달씩이나.
리에르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체취를 맡지 않아 금단 증세는 광기로 적셔질 것만 같았다.
리에르가 다시 폭주를 시작하기 전에 아르미안은 다시 돌아왔다.
지옥처럼 느껴지는 훈련 속에서 유일한 안식이자 보금자리인 아르미안.
그녀가 왔단 소식에 리에르는 훈련장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못 보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어머, 다들 왜 나와 계시죠?”
아르미안은 자신을 마중 나온 장로들과 신도들을 보면서 요염한 미소를 지어 올렸다.
그녀의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르미안은 리에르를 발견하고는 애틋한 눈동자로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리에르는 행복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리에르는 아르미안의 곁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게다가 소중한 듯이 손을 꼭 마주 잡은 모습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선지자께서 또 교단을 위해 큰일을 해냈군요.”
열두 장로 중에 가장 노쇠하고 가장 지혜로운 대장로는 양손을 모아 기뻐했다.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장로와 간부급 신도들은 무릎을 굽히고서 선지자를 환영하였다.
“소개할게요.”
아르미안의 맑은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리에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불안감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아르미안의 곁에 있는 소년의 등 뒤로 보이는 것은 빛의 날개였다.
“우리가 애타게 찾고 있던 또 하나의 왕입니다. 포스 오브 어비스를 소개합니다.”
리에르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불쾌감이 전신을 비집고 들어왔다.
“네 번째 구세주 포스 오브 어비스를 위하여 축복을!”
대장로의 외침이 떨어지자 광장을 메운 신도들이 제창하며 소리쳤다.
“코스모스의 영광을 위해!”
“코스모스의 영광을 위하여!”
리에르만은 들뜬 장내의 분위기와는 미간을 찌푸렸다.
네 번째 포스라고 지칭된 소년은 음침한 눈빛을 들어 장내를 내려 보았다.
포스 오브 어비스는 바깥세상에서 온갖 적의를 맛보았다. 환영이라는 어색한 분위기에 아일 하사드란 이름을 가진 소년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짙은 갈색의 빛이 한 쌍의 날개가 되어 대중을 위협하듯 휘몰아쳤다. 그것을 보고 대중들은 감탄의 목소리를 드높이며 기도의 음성을 내뱉었다.
“괜찮아, 아일.”
“…….”
아르미안이 다정하게 아일을 끌어안았다. 살기를 뿜어내던 그의 날개는 금세 사그라들어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리에르는 아르미안의 품에 안긴 그것을 보고 이를 사리물었다.
그 순간 아일도 음침한 두 눈을 들어 리에르를 바라보았다. 지옥과도 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녹색 머리카락의 여신.
아일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그녀의 다정함에 반하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교단으로 오던 아일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중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인물이 있었다.
세 번째 포스 리에르 아르빈트.
처음에는 아르미안의 말을 듣고 호기심을 느끼고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아르미안의 얼굴은 아일에게 분노하게 했다.
리에르의 존재는 아일에게 있어 질투가 되었고 적의가 되었다.
오직 아르미안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녀의 시선을 양분시키는 존재.
리에르와 아일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듯,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날개를 펼치고 서로의 목숨을 갉아먹을 듯이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르미안은 고혹적인 입술로 미소를 지어 올렸다.
리에르와 아일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지자의 양팔이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경쟁하듯이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둘이 성장하자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코스모스의 이념은 세상의 균형과 조율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였다.
질서는 때론 무력이 필요했다. 상징이 있어야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전사가 되어 활동했다.
포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사람은 한 차례의 실패 없이 모든 임무를 성공시켰다.
그 모습은 마치 서로에게 경쟁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더 많은 실력과 업적을 쌓아야 아르미안을 차지할 수 있는 것처럼.
두 암살자에 의해서 코스모스의 교리는 확고하게 대륙을 잠식하였다.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은 용서 없이 참수되었다.
다른 종교를 따르는 우매한 이들에게 경고의 피보라를 일으켰다. 진실한 호소가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정화의 철퇴를 내려쳤다.
그들을 거부하는 자들은 절대적인 힘의 차이로 압살당했다. 포스라는 두 개의 창날은 교단의 위엄을 바로 세우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네 번째 포스 아일 하사드는 리에르에게 노골적인 위협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벌어지리라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포스로서의 날개를 꺼내면서까지 서로를 위협하진 않았었다. 그런 무서운 행위는 그들의 피앙세인 아르미안을 슬프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 때문에 아르미안이 곤란해졌다!”
아일 하사드는 입술을 떨어내며 소리쳤다.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갈색의 날개가 당장에라도 상대를 덮어버릴 것처럼 넘실거렸다.
흥분해 있는 아일과는 다르게 리에르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무시하는 듯한 리에르의 태도에 아일은 다시 한번 외쳤다.
“우리는 아르미안의 검이다. 검은 주인의 의지에 반하지 않지.”
“공감한다.”
“네 멋대로 장로 하나를 고기조각으로 만들어 둔 덕에 그녀의 위엄이 손상되었다!”
아일은 펼쳐 든 포스의 날개를 접지 않은 채 리에르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부른 이유가 겨우 그딴 일인가?”
“겨우? 난 인정할 수가 없다. 아르미안에게 필요한 것은 나다. 같은 포스라지만 왜 아르미안이 너 같은 쓰레기를 곁에 두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네 녀석은…… 어째서 그녀에게 총애받는단 말이냐.”
터질 듯한 분노 속에서 아일의 두 눈빛이 일그러졌다.
무참한 생명을 도륙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살인귀였다. 하지만 아르미안에 관련된 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온통 어둠인 세상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던 아르미안.
아일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세상 모든 것과 적이 되어도 좋았다.
그녀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훈련을 반복했고,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언제나 아르미안의 눈빛이 머무는 것은 세 번째 포스 유저인 리에르 아르빈트였다.
두 사람만의 특별한 시간을 소유하는 것을 보고 몇 번이나 미칠 뻔하고, 몇 번이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몰랐다.
그래도 아르미안을 그만큼 사랑하고 사랑했기에. 그녀가 불편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그녀와 살을 섞고 싶다면 말해. 자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리에르는 싸늘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그 역시 자신의 단 하나에 세상 같은 아르미안을 남과 양분 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아일은 참아왔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아르미안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고 억눌렀던 분노. 아일의 갈색 날개가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