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09)
레필리아 레소드-109화(109/398)
레필리아 레소드 109화
코스모스의 교단(3)
“이자시이이익!”
아일이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리에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발을 땅에 굴렸다. 하필 두 사람은 포스 전용 훈련장에 있었다.
포스가 훈련하는 곳은 당연히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껏 서로가 싸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말릴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리에르의 주변으로 룬 문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일과 상반된 칠흑의 깃털이 날개를 형성하였다.
모든 것에 대해서 흡수할 권리를 가진 리에르와 모든 것에 대해서 더럽힐 권리를 가지는 아일의 대결.
아일의 오른손에서 빛의 소용돌이가 구체를 이루었다.
리에르는 그에 맞서서 가볍게 손바닥을 펼치며 가로막았다.
“지지직, 치이잉!”
갈색과 흑색의 불꽃이 허공으로 파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일은 마침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눈엣가시 같던 리에르를 꼭 죽여야 한다 생각했다.
죽이기 위해 아일은 갈색의 날개를 길게 펼쳐냈다.
순식간에 주변은 갈색 영역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레벨의 상대와 전투할 때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영역, 즉 결계를 확보하는 것이 필승법이었다.
리에르는 상대의 결계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내 칭호가 뭔지 모르나.”
아일은 리에르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서 갈색의 마력 파도를 일으켰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갈색의 파도는 훈련장에 놓인 칼과 창들을 전부 부식시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리에르의 차가운 눈동자는 아일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포스 오브 석셔너.”
리에르는 자신을 재로 만들려는 소용돌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소용돌이가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리에르의 등 뒤로 칠흑의 날개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자신의 포스가 순식간에 사그라지자 아일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리에르의 등 뒤로 칠흑의 안개들이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이내 칠흑의 늑대로 화하여 거대한 입을 벌리며 꿈틀거렸다.
아일은 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수인을 맺었다. 그의 앞에서 갈색의 골렘들이 대지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칠흑의 늑대와 갈색의 골렘이 서로 맞부딪혔다. 늑대의 거대한 입이 모든 것을 흡수하듯이 씹어 삼켰다. 갈색의 골렘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며 전진했다.
숫자는 갈색의 인영이 월등히 많았다. 거대한 두 마리의 늑대는 시간이 흐르자 갈색 인영의 손에 차츰 형체를 잃어갔다.
아일은 승기를 바로 잡기 위해 등 뒤로 갈색의 빛줄기를 끌어모았다.
리에르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갈색의 파도가 몰아치며 아일이 만들어낸 인영들을 전부 휩쓸어 버렸다.
흡수한 힘을 그대로 뱉어내는 것을 보면서도 아일은 코웃음을 쳐보였다. 그의 등 뒤로 갈색의 빛줄기들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처먹을 테면 실컷 처먹어봐라.”
갈색의 나선이 소용돌이쳤다. 무수한 나선의 위협을 보고 리에르도 손끝을 튕기며 검은 칼날들을 꺼내 들었다.
칠흑으로 이루어진 검은 쏟아지는 나선들을 베어내고, 막아냈다.
하지만 갈색의 나선이 수적으로 우세했다. 검은 칼날들을 뚫고서 갈색 나선은 리에르의 앞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리에르의 전면으로 검은 커튼이 쳐지자 이곳저곳 파문의 물결이 일어났다.
“하하하, 일단 네놈의 팔과 다리부터 찢어주마!”
아일은 유쾌하게 소리치며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다시 한번 나선을 만들어냈다.
그의 웃음을 보고 리에르는 차갑게 조소해 보였다.
“멍청한 놈.”
리에르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 커튼이 사라지며 그의 앞에 칠흑의 나선들이 수북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칼날들이 허공을 점령하듯이 춤추었다.
“흡수할 권리를 가졌다니까.”
리에르의 한 마디와 함께 칠흑의 나선과 칼날들이 연합해서 아일을 향해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전면으로 쏟아지는 공격들을 보고 아일이 다급하게 갑주를 꺼내 들었다.
아일은 자신의 마력이 도리어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은 방어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갑주의 인영은 나선과 칼날을 부식시키며 접근을 허용치 않았다.
“울부짖어도 좋아.”
아일은 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일은 반사적으로 갈색의 날개를 창처럼 뻗어냈다.
하지만 뒤에서 나타난 검은 형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그것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검은 형체, 아니, 리에르의 양손이 아일의 갈색 날개를 붙들었다.
리에르의 차가운 붉은 눈동자. 아일의 갈색 눈동자는 그것과 마주하자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다.
포스의 날개는 신체 일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날개는 마력을 의미했다.
인간의 작은 몸에 거대한 마력을 전부 수용할 수 없으므로 외부로 드러나는 마력. 그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힘이 소실됨을 의미했다.
아일은 끔찍한 고통에 몸서리를 쳤다.
리에르는 그대로 양손으로 아일의 날개를 쭉 찢어내기 시작했다. 갈색의 빛 깃털이 허공에 흩날리며 소멸하자 아일은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의미는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 처음 느껴보는 무력감에 아일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리에르의 주변으로 룬 문자가 생성되었다.
생성된 룬 문자는 이내 검은빛 검날로 화하여 순식간에 아일을 포위했다.
“큭, 모든 것을 베어내는…….”
아일은 강력한 포스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시동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포스 유저가 초월기(Transcend Skill)를 사용할 때에는 자동으로 마력 방패가 형성되었다.
무사히 시동어를 마치기 위한 패시브 능력이었으나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가볍게 아일의 보호막을 깨부순 리에르는 아일의 입을 틀어막았다. 붉은 이체가 뿌려지는 흉흉한 눈동자가 아일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용없어.”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력감. 그리고 악몽과 같은 붉은 눈동자의 뒤편으로 칠흑의 칼날이 춤을 췄다.
“그만!”
이제 종막만이 남은 두 사람의 전투에 제삼자가 끼어들었다.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서 두 사람은 흠칫하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엔 진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교단 의식 행사를 치르던 중이었는지 백의의 로브를 걸친 상태였다.
“아, 아르미안…….”
아일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연적인 리에르에게 패하고 추한 꼴로 뒹굴던 것이 화가 났다.
아르미안은 평소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싸늘하고 냉기가 흐르는 얼굴로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아르미안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그대로 아일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갑작스럽게 얻어맞은 아일은 떨리는 동공으로 뒷걸음질하였다.
“아, 아르미안. 어째서…….”
“누가 멋대로 싸우라고 했어?”
아르미안의 냉랭한 호령에 아일은 시선을 누그러뜨렸다.
“어째서 저 녀석인 거야? 나는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
순간 아르미안의 손목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아일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크아악! 아파, 아르…… 미안, 아파……! 끄흐흑.”
어느새 잘려 나간 팔목을 붙들고서 오열하는 아일의 주변에 붉은 핏물이 철철 흘러넘쳤다. 그 모습을 아르미안이 냉랭한 눈빛으로 조소하였다.
“너에게 말대답을 허락한 적 없어.”
“아…… 르 아파…….”
“방에 들어가. 나중에 신관을 보내주지.”
아일은 바닥을 뒹구는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다정함이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 아르미안의 음성. 그것을 듣고 아일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는 아르미안에게 서운한 시선을 보내지만, 리에르를 향해서는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르미안은 조용히 시선을 리에르에게로 옮겼다. 그녀는 바닥에 피칠하며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아일에게는 관심 한 톨 없었다.
바닥에 피를 흩어내며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아일을 뒤로 한 채, 아르미안은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리에르는 무표정했다. 아일처럼 잘못했다는 표정 따위는 없었다. 그런 리에르의 얼굴을 보면서 아르미안은 가냘픈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 아일의 뺨을 치던 매서운 손길과는 사뭇 다른 손길이었다. 부드럽고 다정한 그녀의 손안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왜 싸웠어?”
“덤비니까.”
“죽이려고 그랬어?”
“그래.”
리에르는 당연하다는 듯이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아르미안은 쿡, 하고 실소하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앳된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남성의 체취를 흩뿌리고 있었다.
정말 다양하고 생기 있던 그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들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를 인형으로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였다.
아르미안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입술을 열어 보였다.
“열한 번째 손가락은 왜 죽였지?”
아르미안은 힐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에르를 이해하고 있었고, 원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모욕했어.”
“그래서, 죽인 거니?”
“그래.”
열한 번째 손가락. 기도하는 자.
열두 장로 중의 한 명인 그는 교단의 수장답지 않은 눈길로 아르미안을 더듬고, 음란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르미안은 진녹색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다시 한번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제 자신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남자의 몸을 끌어안았다.
조금 전만 해도 전투 중이었기에 리에르의 가슴은 따뜻한 온기가 덮여 있었다.
아르미안은 리에르의 체취를 듬뿍 마시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 방으로 가자.”
아르미안은 소녀처럼 배시시 웃어 보이며 리에르의 손을 잡아끌었다.
처음 교단에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그의 손이 크고 두꺼워진 것을 느낀다.
아르미안은 리에르에게 어떠한 것도 따지지 않았고,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위해 사고를 친 리에르에게 애정 어린 눈동자로 굴리는 데 급급했다.
많은 신도를 거느린 코스모스 교단은 예배 시간에는 다른 행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덕분에 복도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배를 집권해야 할 선지자가 의식 예배에 불참하리라곤.
아르미안은 자신의 방문을 열어 보였다.
순백과 진녹의 어울림이 깃들인 침대, 그리고 금빛으로 그려진 방 안의 가구들. 그 속에서 그녀는 눈웃음을 그리며 리에르의 뺨을 어루만졌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리에르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나에겐 화를 내지 않지.”
아일을 싫어하긴 하지만 자신과 같은 힘을 지닌 존재였다.
똑같이 교단에 소속되며, 똑같이 아르미안에게 복종하는 선지자의 칼날이었다.
리에르 자신이 보기에도 아일과는 비교되는 처우였다.
“내가 어떻게 널 때리겠니.”
아르미안은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아이 같은 눈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얼굴은 리에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르미안은 조금 전만 해도 냉랭한 말을 내뱉던 입술로 리에르에게 입 맞추었다.
그리고 아일의 손목을 잘라내던 손길은 리에르의 허리와 등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