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11)
레필리아 레소드-111화(111/398)
레필리아 레소드 111화
잠행(1)
“네 번째 포스 아일 하사드를 쓰고, 봉마진을 사용할 성직자들을 모아주세요.”
“봉마진 따위로 뭘 하겠단 말이오? 상대는 포스요, 포스! 게다가 아일 하사드는 리에르 아르빈트에게 패하지 않았소!”
아르미안의 담담한 말에 장로 한 명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러자 아르미안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그를 직시하면서 조소했다.
“봉마진 따위? 본 교단에 마력이 가장 강한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날 상대해서 바닥을 기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뭐, 뭣이?”
아르미안의 비아냥거림에 중년의 장로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몸을 떨어 보였다.
“승산은 있습니까? 선지자여.”
장로회의 우두머리인 대장로가 노쇠한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네 번째 포스와 아르미안뿐이었다.
“유일신의 이름이 함께한다면요.”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 한마디에 간부진들은 더 이상의 설전을 멈추었다.
흑기사를 상대로 무릎을 굽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비밀로 알려진 적혈의 악마가 사실은 교단의 개였단 사실을 알릴 수도 없는 법이었다.
즉, 교단 자체적으로 해결해야만 되는 문제였다.
회의실 안에 간부들이 하나둘씩 밀물처럼 빠져나갈 때 아르미안은 이마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엘 파실드, 리즈에 이어서 이제는 리에르까지 똑같았다.
신의 저주로 인해 일그러진 욕망과 사랑은 항상 이렇듯 비참한 결말만을 가져왔다.
아르미안의 에메랄드빛 눈가에서 물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했었고, 기억을 지워가면서까지 곁에 두려고 했었으나 그것마저 이젠 화살로 되돌아왔다.
“리엘…….”
대답하지 않을 그 이름을 아르미안은 중얼거렸다.
가혹한 저주의 수레바퀴. 그 속에 갇혀, 고통과 슬픔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를 잃을 거란 생각에 너무나 두려웠다. 그를 잃으면 자신은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다.
그 순간 아르미안은 복부에서 끊어질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벌써 찾아온 건가…….”
아르미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은 투명해져 갔다. 입가에 메마른 웃음이 머금어졌다.
애초에 그녀는 검이었다. 정확히는 에고 소드. 더 정확히는 검에 봉인된 존재.
즉, 그녀는 마력 공급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존재는 포스 사용자뿐이었다.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아르미안은 입가에 엷은 미소가 그려졌다. 에너지 공급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은 이제 지겨워졌다.
지금 그녀의 마음에는 리에르가 있었다. 그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자신은 기댈 곳이 없었다.
악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 그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고운 뺨 위로 눈물이 스며들어 턱 끝에 맺혔다.
“누구 마음대로?”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 화가 난 얼굴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갈색 머리카락의 청년, 아일 하사드는 광기 어린 눈동자를 뒤틀면서 아르미안에게 걸음을 옮겼다.
자신에게는 그렇게도 냉정했던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 이 지경이 되어서도 리에르를 찾고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와서도 그 녀석을 생각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지?”
아일 하사드는 질투에 눈이 멀어 광기를 드러냈다.
“나도 놈과 같은 힘을 지녔어. 당신의 몸을 유지 시켜줄 수도, 만족하게 해줄 수도 있지. 어째서 문제만 일으키는 그 녀석을!”
아일은 아르미안의 손을 억지로 움켜쥐었다. 부서져 내리는 그녀의 손은 이미 차가운 기운만 느껴졌다.
아일의 등 뒤로 갈색의 빛이 뿜어져 날개를 이루었다. 강력한 마력이 마치 혈액처럼 그녀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그제야 그녀의 손은 온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아르미안을 위협하는 놈은 내가 다 죽인다!”
아르미안은 아일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일 하사드, 시궁창에서 태어나 살기 위한 살육을 저지르던 불쌍한 아이였다.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라나고, 평범한 사랑을 했던 리에르의 과거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아일에게 있어서 적의로 번득이는 세상보다는 교단의 개로 살아가는 것이 나았다. 그에게 있어서 아르미안은 세상과 똑같은 무게를 지녔다.
교단은 곧 다가올 강적을 대비하여 마법 함정들을 건설하였다.
중앙 교단의 노출을 막는 숲의 미로도 더욱 정교하게 변경시켰다. 그리고 더 많은 암살자를 배치하여 상대의 피로를 누적시켰다.
파견 나가 있던 장로들도 전부 소환이 되어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교단이 자랑하는 성기사는 불굴의 의지로 갑주를 걸치고 검을 벼르며 적을 기다렸다.
“유일신의 제단을 더럽혀선 아니 된다. 그대들의 목숨으로 성전을 승리로 바꿀 수가 있다!”
“놈의 홀 블레이드(Whole Blade)에 맞으면 보호막이고 뭐고 의미가 없다! 무조건 놈의 어금니를 피하라!”
“흑기사가 날개를 펼치면 웜홀(Worm Hole)이 벌어진다.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거든 눈치껏 산개해라. 알겠나?”
포스 오브 석셔너를 상대하기 위해서 부대의 대장들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유일신의 이름으로 고양된 자들이 보였다. 전투의 승전을 위한 아침의 기도문은 모두의 용기를 증가시켰다.
아일은 그런 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에르와는 같은 힘을 지녔기에 동질감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리에르 아르빈트의 존재는 그녀를 양분시켰다. 그녀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그가 싫었다.
두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아일은 단 한 번도 리에르를 이긴 적이 없었다. 비슷한 나이 또래에 똑같은 포스지만 번번이 패배자란 꼬리표만 달고 살았다.
‘이번만큼은 네놈을 이기고 말겠다.’
아일의 등 뒤로 갈색의 깃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 눈앞에 그 녀석이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멀지 않은 곳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자식.’
여전히 압도하는 힘이었다.
아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놈이 곧 온다!”
아일뿐 아니라 성기사들도 강력한 마력을 느끼고 긴장했다.
지휘관들 역시 몸이 굳어지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포스라 해도 육체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군대를 이길 수 없다.
“신성 창기병 앞으로!”
처음 시작부터 정예를 투입할 필요는 없었다. 지휘관들은 교리에 흠뻑 빠져 있는 신도병을 앞세워 시간을 끌기로 하였다.
“신성 궁보병들은 경계!”
마치 거대한 새의 날개처럼 펼쳐진 진형이 펼쳐졌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들이 전면에 섰다. 그 뒤를 궁병들이 포진해 있었다.
후미에는 언제든지 성기사가 진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누가 보면 군대와 군대가 부딪치는 거로 보였다.
아일은 코웃음 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리에르는 자신보다 강했다.
아일은 혼자서 이 포진을 뚫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리에르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투의 향방은 장로회도, 성기사도 아니었다. 봉마진을 준비하고 있는 아르미안이 키 포인트였다.
아르미안은 리에르와 떨어져 있는 동안 마나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덕분에 무리한 힘을 사용하면 소멸할 수도 있었다.
아일은 그녀에게 불상사가 없도록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 리에르를 꺾어야 했다.
중앙 교단을 지켜주던 미로의 숲이 칠흑으로 아롱지기 시작했다.
결계는 무너지고, 희미하게 들려오던 비명이 점점 확실하게 들려왔다.
‘온다!’
아일은 마나를 공급해 주는 갈색의 날개를 펼친 채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구 속으로 초췌한 몰골의 남성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시, 신성 궁병 발사!”
군대가 학익 형태로, 맹수의 아가리처럼 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당당하게 정면으로 들어오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에르는 칠흑의 날개를 펼쳤다. 칠흑의 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고, 눈동자는 짐승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신과도 같아 보였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가! 쏴라! 다 퍼부어라!”
총대장인 5장로는 멍하니 있는 지휘관들이 답답해서 직접 지휘에 나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궁병들은 당겼던 활시위를 일제히 놓았다.
휘익, 쉬리리릭!
바람을 찢어놓는 수백 발의 화살이 리에르 한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소용없어.”
아일은 팔짱을 낀 채로 조소를 흘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우던 개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모르고 있었다.
리에르는 한 발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정면을 향해 왼팔을 뻗었다. 그의 앞으로 칠흑의 커튼이 그려졌다.
화살들은 리에르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커튼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수백 발의 화살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오히려 궁병들이 당황했다.
리에르는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등 뒤의 깃털을 펼쳐 보였다. 포스가 뿜어내는 빛의 날개는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인간이 빛의 날개를 펼쳐 드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두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 두려운 일이 벌어졌다.
리에르의 정면으로 룬문자가 허공을 태우며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수백의 검은 화살들이 군대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돼지 새끼.”
아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포스도 인간이다. 하지만 리에르는 포스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
그가 마음먹는다면 그 어떤 것도 흡수할 권리를 가졌다.
흡수된 힘은 리에르가 마음먹으면 일회성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이 10초 뒤가 될 수 있었고,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었다. 그저 자신의 포켓 안에 세이브를 시켜놓고 로드했다.
“화살은 치워라. 창기병 앞으로! 놈의 몸뚱이를 꿰뚫어라!”
수백 발의 화살을 쏘아봤자 피하는 시늉을 하기는커녕, 반사해 버린다. 그 결과 오히려 신도병만 잔뜩 피해를 보았다.
어쩔 수 없이 5장로는 백병전에 나서기로 하였다.
절대적인 공포를 뿜어내는 리에르를 보고도 신에게 생명을 내맡긴 병사들은 진격을 시작했다. 그들이 쥔 창은 매서웠다. 단 인간을 상대로 했을 때만의 이야기였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지.”
아일은 교단의 군대가 리에르를 최대한 괴롭혀 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리에르는 달려드는 창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손을 뻗은 자리엔 검은 안개가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것들은 팔과 다리, 그리고 어금니를 드러내는 괴생명체가 만들어졌다.
“먹어라, 꺼지지 않는 배여. 먹어라, 망자의 시체까지도. 삼켜라, 살아 있는 체하는 모든 것들을.”
“크르르르!”
모인 구름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창기병들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뭐, 뭐야 저건……!”
5장로는 다음 지휘를 할 생각도 못 하고 몸을 떨었다.
아무리 전설 속의 포스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리에르의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안개 형태의 늑대들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성전을 치르면 죽어서 천국으로 향한다, 또한 혈족들과 대대손손 축복이 함께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학살 속에서 그것을 머릿속에 두는 사람은 없었다.
5장로의 부대는 순식간에 궤멸하기 시작했다. 늑대에게 잡아먹힌 사람보다, 아군끼리 넘어지고, 짓밟아서 죽은 숫자가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