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12)
레필리아 레소드-112화(112/398)
레필리아 레소드 112화
잠행(2)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내 신은 엄중한 방패느니라.
-마귀들과 싸울 지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영광된 기사들아 검을 들어라.
-참된 성기사들이여, 우리들의 싸울 것은 신께서 굽어보시니.
전장의 찬트(Chants)가 울려 퍼지자 성기사들은 마치 다른 무언가가 된 것처럼 표정들이 달라졌다.
강력한 적의 위압으로 경직되었던 근육은 풀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신의 적에게 철퇴를 가하기 위해 움직였다.
성스러운 오러를 가득 담은 무기들이 번뜩였다. 일당백의 전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리에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번에 전면에 나선 것은 세 명의 장로였다.
3장로는 장로회 중 유일한 성기사였다. 5장로는 전형적인 전사 출신의 전술가였다. 마지막 7장로는 최고의 방어력을 지닌 클레릭이었다.
세 명의 장로는 리에르의 모습에 위압되지 않고 정면대결을 펼쳤다. 사기를 복 돋기 위한 성직자들의 찬트가 이어졌다.
각 장로는 성기사를 이끌고 세 무리로 나뉘었다.
그들은 학습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나갔다간 순식간에 전멸하리란 것을.
리에르는 다가오는 성기사 무리를 보면서 지그시 눈을 열고 중얼거렸다.
“리에르 아르빈트가 부르짖노라. 나선의 계단.”
리에르를 중심으로 칠흑의 나선이 계단 형태로 퍼져 나갔다.
“나 원하노라, 핏빛의 융단.”
리에르를 중심으로 주변의 대지들은 붉게 바뀌었다.
“내 부름에 포효할지니.”
리에르의 눈을 뜨자 붉은 이체가 빛을 발했다. 스산한 바람이 전장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장로들은 산개를 명령했다.
포스 오브 석셔너의 초월기.
“집어삼켜라. 살아 있는 체하는 모든 것을.”
전장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붉은 대지와 나선의 계단이 받치고 있는 칠흑의 하늘이 모든 것을 깔아뭉갰다.
“콰아아아앙!”
찢어지는 굉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거대한 웜홀은 검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단의 군대는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검은 웜홀이 사라지자 전류를 태우는 기류만이 남았다.
실제 웜홀이 발생한 것은 단 30초였다. 하지만 전쟁터에 남은 것은 허망하기만 했다. 잠깐 사이 교단의 군대는 40%가 넘게 괴멸하였다.
“빌어먹을 개자식!”
3장로는 교리를 품고 사는 자로서 맞지 않는 언어를 구사했다.
그는 어느새 리에르의 측면을 돌파하여 거대한 헬버드를 높이 들어 올렸다.
용서할 수 없었다. 3장로에게 있어 심혈을 기울여서, 같이 고생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성장시킨 성기사들이었다.
살아남는다면 좋지만, 죽게 된다면 적어도 그들의 죽음이 의미 있는 전쟁터이길 원했다.
세상의 질서와 정화. 그 하나를 위해 수련했던 성기사들은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대변하여 3장로는 헬버드를 내려쳤다.
“파지지직!”
3장로의 헬버드는 리에르의 앞에 생성된 검은 커튼에 막혀 버렸다.
그사이 살아남은 성기사들이 리에르를 향해 돌진했다. 사방에서 빛나는 오라는 당하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 젖어들게 하였다.
그 상대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스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리에르가 오른팔을 옆으로 뻗어들자 칠흑의 날개가 펄럭였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칠흑을 뚝뚝 떨어뜨리는 칼날들이 생성되었다.
“물러서지 마라! 적은 하나다!”
5장로는 성기사를 독려하며 자신도 전면에 나서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먼저 칠흑의 칼날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5장로는 날아드는 칼날을 오라가 둘린 스피어로 모두 쳐냈다.
포스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칼날들이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더 강력한 공격, 혹은 마력에 소멸하였다. 그리고 물리력에 마력이 담긴 공격이라면 쳐낼 수도 있었다.
찬트를 입은 성기사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검은 칼날을 도려냈다.
하나둘씩 칼날이 소멸하지만, 그것에 목숨을 잃는 이도 점점 많아졌다.
“죽어라!”
3장로의 헬버드가 다시 한번 리에르의 몸을 노렸다. 리에르의 자동 방어 모드도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홀 블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강한 공격을 연달아 맞으면 소멸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스가 전투법을 모를 때의 이야기였다.
리에르는 피하지도 않고 들고 있던 검을 뽑았다. 3장로의 헬버드는 리에르의 옆구리를 내려쳤다.
아니, 정확히는 방어용 커튼이 드리워진 곳에 막혔다.
하지만 리에르의 검은 3장로의 심장을 찔렀다. 붉은 핏물을 뿌리며 3장로가 낙마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그의 동공은 이미 경직된 채로 눈을 감지 못했다.
“팔!”
5장로가 3장로의 죽음을 보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의 날카로운 창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찔러 들어왔다.
리에르는 상대의 공격을 무시하고 검을 찔러 들어갔다.
“파직!”
의외에 상황이었다. 5장로의 공격은 리에르의 커튼에 균열을 일으켰다. 리에르가 찔러 들어간 검도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스치기만 했다.
“지금!”
5장로의 외침과 함께 7장로의 기도가 완성되었다. 광활한 빛의 사슬이 리에르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갔다.
갑자기 빛의 사슬이 왼쪽 손목을 감싸자 리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포스가 없으면 교단은 다 약한 놈들만 있을 줄 알았냐?”
5장로는 리에르가 사슬에 묶여가는 것을 보고 조소했다. 성기사들도 어느새 칠흑의 검을 전부 소멸시키고 둘러쌌다.
수십 개의 오러 블레이드. 그리고 분노한 5장로와 7장로의 공격. 리에르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어 보였다.
“아무리 강한 토끼가 있어도.”
리에르의 주변에서 시커먼 옻칠이 된 칠흑의 칼날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전에 생성된 검과는 모습이 달랐다.
불길한 검붉은 검신. 손잡이까지 형성되어 있는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물건처럼 자유롭게 활주하였다.
“사자를 이길 순 없어.”
이번 검신은 속도가 달랐다. 검신은 정말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곡예를 부리기도 했다.
포물선을 그리고, 찌르고, 베어 들어오는 검신에 성기사는 속수무책으로 도륙당했다.
‘시간 끌기용으로도 안 되는 벌레들.’
아일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교단의 군대를 보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는 갈색 날개를 허공에 피워 올리며 나선을 쏟아냈다.
아일이 쏟아내는 강력한 마력들은 일방적으로 공격하던 검신들에게 달라붙었다.
수북한 나선에게 붙들린 검신은 이내 폭발을 일으키며 소멸하였다.
아일은 딱히 성기사나 장로들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리에르에 대한 도발이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는지 리에르의 눈동자가 성기사에서 아일로 옮겨졌다.
“누가 최강인지 한번 붙어보자…… 리에르 아르빈트!”
아일의 양손에 갈색의 마력이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것은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분해했다.
흥, 코웃음을 치면서 리에르는 가볍게 손을 한 번 휘저었다. 허공에서 칠흑으로 아롱진 룬문자 들이 그려졌다. 그리고 소용돌이의 기운은 룬문자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리에르는 검을 들어 아일을 겨냥했다. 그의 등 뒤로 칠흑의 날개가 펄럭이며 깃털을 쏟아낸다.
아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전신에 기류를 감으며 갈색의 날개를 펼쳐 들었다.
순식간에 아일은 리에르의 코앞에 나타났다.
그는 짐승의 발톱처럼 변한 손을 들어 올렸다. 리에르는 그가 내지르는 주먹을 피하고자 머리를 살짝 숙였다.
하지만 아일의 다른 왼손이 가슴을 가격하기 위해 뻗어졌다. 그대로 리에르는 몸을 회전했다.
“퍽!”
리에르의 뒤돌려 차기가 아일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의 몸이 기울어지자 칠흑의 날개가 시차로 덮쳐왔다.
아일은 가까스로 몸을 숙여 칠흑의 날개를 피해냈다.
아일의 눈앞으로 검은 깃털들이 흩날렸다. 순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발은 그대로 그의 턱을 올려 찼다.
“큭!”
아일은 그대로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리에르가 만들어낸 칠흑의 검들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아일도 지지 않고 나선을 퍼부었다. 갈색의 나선과 칠흑의 칼날들이 서로 뒤엉켜서 교차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검을 들어 그대로 돌진한다. 아일도 손톱을 들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리에르가 들고 있던 검이 아일의 옆구리를 베어 들어갔다. 아일은 한쪽 팔로 그것을 막고서 다른 손을 뻗어냈다.
리에르는 땅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그의 다른 손도 막아냈다.
“후우.”
리에르가 조용히 심호흡했다. 아일은 리에르의 모습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리에르의 모습은 초췌했다. 더군다나 옆구리는 말라붙은 핏물이 그려져 있었다.
리에르의 눈빛은 냉랭하고 여전히 재수 없는 낯짝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들은 적 없던 심호흡 소리는 아일을 조소하게 했다.
“천하의 석셔너께서 호흡을 가다듬으신다고?”
리에르는 지쳐 있었다.
지금도 거의 티가 나지 않지만, 같이 생활하고 훈련했던 아일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주기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양쪽 손을 못 쓰는 아일은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리에르의 얼굴을 들이박았다.
“퍽!”
분명 피하지 못할 공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리에르의 반응은 예전보다 둔했다. 아일은 이제 확신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큭,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발을 들어 아일의 복부를 걷어찼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동시에 눈에서 이체를 뿜으며 빛의 날개를 펼쳐 들었다.
“크크.”
아일은 조소를 터뜨리며 날개 뒤로 갈색 나선을 뿜어냈다.
리에르는 재빨리 손을 앞으로 뻗어냈다. 그의 동작에 따라 칠흑의 커튼이 드리워지며 모든 것을 흡수했다.
리에르는 바로 반격하기 위해 손을 들어 포스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코앞에서 갈색의 깃털이 흩날렸다.
리에르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근접한 아일의 손톱이 어깨와 가슴을 할퀴었다.
리에르는 공격을 다 피하지 못한 덕분에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미 칼을 맞아 부상을 입었던 부위였다. 밀려오는 통증에 리에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미쳤구나.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쉬지도 않고 온 거냐? 크크, 크하하하하!”
아일은 광소를 터뜨렸다.
정말 죽이고 싶었던 상대였다. 정말 토막을 내주고 싶었던 연적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이기에 다시 한번 패배당할 각오도 하였다. 하지만 아일에게 있어 뜻밖의 행운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포스라곤 하나 몸은 인간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간과 똑같이 먹어야만 하고, 잠을 자야만 했다. 리에르는 이곳까지 오면서 밤낮없이 계속 공격을 받은 상태기 때문에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다.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난 아르미안을 소유하는 거다. 너만 없으면…… 네놈만!”
광기 어린 눈빛이 리에르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리에르는 픽, 웃어 보였다.
“겨우 상처 조금 냈다고 좋아 죽는다네.”
“그래, 일단 몸을 먼저 분해해 줘야겠지? 응?”
아일은 동공을 크게 열면서 이를 드러내 보였다.
리에르는 가볍게 허공에 손짓하였다. 마치 알아듣는 것처럼 칠흑의 검들은 아일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아일은 가벼운 스텝과 동시에 칠흑의 검이 만드는 소나기를 피했다. 그러곤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손톱을 들어 리에르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일은 이번에야말로 리에르의 팔, 다리를 토막 내어 움직이지 못하는 박제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리에르는 붉은 이채의 눈동자를 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품 안으로 몇 번이나 뛰어드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