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21)
레필리아 레소드-121화(121/398)
레필리아 레소드 121화
북으로(6)
“하지만…….”
“우리 영지에 너와 같은 포스가 있어.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니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
포스 오브 머더러.
악명 높았던 두 번째 포스이자, 학살자.
리에르는 유트의 말에 황당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점잖은 유트와 전설적인 살인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교단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적이야. 언젠가는 그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내 목표고.”
전혀 몰랐었다. 유트에게 그런 목표가 있었던 줄은.
“대륙에는 적혈의 악마가 죽었다고 소문나 있어. 이제 너는 적혈의 악마가 아닌 리에르 아르빈트로서 나와 함께하면 되는 거야.”
유트의 말에 리에르는 또다시 눈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유트라면 그렇게 말해줄 것을 알았다. 새삼스럽게 그는 감동이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리에르는 달랑 혼자 세상에 남겨졌다고, 외톨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치 않는 친구가 자신을 기다리고 반겨주고 있었다.
“고…… 마워.”
리에르는 가슴속이 불이라도 나는 듯,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느껴졌다.
결국, 그는 뺨 위로 한 줄, 또 한 줄 눈물을 흘러내렸다. 유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이고 있는 리에르에게 다가가 어깨를 어루만졌다.
“위로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만…… 너도 모르는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어.”
유트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리에르에게 말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천연덕스럽고 장난기가 서려진 웃음처럼 보였다.
리에르는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교단을 향하면서 지나쳤던 마을들은 대다수가 교단에게 핍박받던 곳이었나 봐.”
적혈의 악마가 중앙 교단으로 향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리에르를 막기 위해 교단의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투와 함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전멸 당했다.
“교단의 횡포에서 벗어나길 기도하던 존재들에게 너라는 구원자는 영웅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네 겉모습과 차림새를 보고 사람들은 흑사자라고 이름 붙였더군.”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핍박받는 마을을 몇 개나 구해냈다.
새롭게 출현한 영웅에 대해서 대륙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혼자서 열 명, 혹은 백 명 몫을 하는 성기사들이었다.
그런 인물들을 수십, 수백 명을 해치우고 광신도까지 돌파해 버린 남자를 사람들은 경외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던 리에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흑사자 리에르. 어울린다, 야.”
“뭐…… 야. 그게…….”
리에르는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어 얼굴을 붉혔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유트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너도 잘 모르는 일이 있어. 아니, 대륙의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웃음 짓던 유트는 다시 안색을 굳히면서 입을 열었다.
처음 유트도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잘못된 정보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였다.
“교단은 네버 에이지와 비밀 동맹을 맺고 이 대륙을 점거하려 하고 있다.”
유트의 이야기에 리에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폭룡 네버 에이지.
봉인 상태로 수십여 년 간 잠들어 있던 죽음의 화신.
교단이 생겨나기 전부터 대륙을 점거하고, 모든 것 위에 군림하던 지상 최대의 생명체였다.
페이서스의 악몽과 함께 부활했던 마왕은 봉인이 깨어진 이후 차곡차곡 잃었던 힘을 되찾아, 이제는 대륙의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단의 사람이었던 리에르조차도 생소한 정보였다.
“친구로서도, 교단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널 살릴 방법을 찾겠어.”
유트의 눈에서 정말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밖에 전해지지 않았다. 리에르는 다시 한번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마웠다.
그는 다른 무슨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어려웠기에 최대한 간단하게 대답했다.
“응…….”
리에르와 유트가 서로를 맞잡은 이 순간, 교단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 * *
아리아력 790년.
인류 최초의 영웅 아리아가 건설한 대제국 오트리아가 멸망의 길을 걸었다.
대륙에 다시없을 거대 제국은 마지막 황제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국은 커다란 몸뚱이를 양분했다.
귀족들은 서로 파벌 형성을 하면서 대립을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영지를 가진 대귀족들은 독립 군대를 형성하며 각자의 세력을 키웠다.
아레스트 역시 정벌전을 통한 세력 확장으로 왕국 선포를 하였다.
왕국의 명칭은 ‘아렌’이었다.
아렌은 자원이 풍부한 경제 도시를 다수 소유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륙 최강의 십일검 기사단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레스트는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아리아력 795년도.
아레스트의 경제 항구 도시인 페이서스에서 있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졌다.
대륙을 공포로 물들였던 마왕, 폭룡 네버 에이지가 부활했다.
그의 부활을 환호하기 위한 어둠의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움직인 세 번째 포스는 적혈의 악마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항구 도시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칠검 기사단의 주력이 전멸 당했다. 이 이외에도 아레스트가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이 비극으로 인해 구국의 영웅이었던 로이스타 아르빈트는 실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파에트 역시 정치적 문제로 직위 해제를 당하게 되었다.
이미 모든 대륙의 시선은 사건의 주범에게 쏠려 있었다. 그 인물은 아르빈트 가의 차남인 리에르였다.
로이스타의 실각 이후 십일검 기사단은 새로운 귀족들이 맡게 되었다.
정치적 세력 싸움, 아집, 허세로 가득한 그들이 기사단을 제대로 이끌 리 없었다.
순식간에 대륙 최강의 기사단은 예전의 명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십일검 기사단의 몰락을 시작으로, 아렌 왕국은 급격히 흔들렸다.
그 와중에 검은 숲은 계속 아렌을 덮치고 있었다.
아렌은 세력 확장보다 일단 내부를 정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하나의 방책으로 검은 숲 정벌을 준비했다.
하지만 검은 숲 정벌은 연달아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의 아렌에는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로이스타 아르빈트라는 걸출한 영웅이 사라진 이후, 아렌은 혼란스러웠다.
빈 권력을 향한 간신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응당 아레스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륙은 무엇 하나 정립되지 않은 혼란의 시대로 치닫고 있었다.
인간의 야욕은 끊임없는 피비린내와 전투만을 낳았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맞물려 유일신 신앙은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모든 것은 신의 뜻 아래 평등함을 가진다.
그것이 코스모스의 교리였다.
코스모스는 많은 신자를 양산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이럴 때, 자신을 구원해 줄 밧줄을 잡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코스모스 교단은 순식간에 몸뚱이를 부풀렸다.
새롭게 왕국을 세운 영지들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국교로 수립되었다.
코스모스를 국교로 세운 왕국은 자신의 반대파를 손쉽게 제거했다. 물론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부족한 국고도 지원받고, 성기사까지 지원받는다.
무엇보다 코스모스가 국교인 곳은 폭룡의 군대가 공격하지 않았다.
물론 괴소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상쩍은 종교집단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다른 영지를 흡수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모든 것은 유일신 테헤라자드의 가호 아래.
이 말은 기댈 곳을 찾는 서민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교단의 가족이 되기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례를 받는 이도 생겨났다.
자신의 육체와 모든 것을 바쳐서 신에게 귀의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코스모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덕분에 겨우 반년 남짓한 포교 활동은 코스모스의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하지만 교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기 위하여 북으로, 동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동으로는 이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십일검 기사단의 아렌 왕국이 있었고, 북으로는 무법천지였던 영지들을 평정하기 시작한 신흥 세력이 있었다.
바로 유트 페브리안이었다.
아리아력 799년.
아렌 국의 공주 제이미 룬 아레스트는 처음으로 귀족들의 억압을 이겨내게 되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던 아렌 국은 로이스타와 파에트가 군에 복귀하였다.
같은 종교권의 국가들은 서로 무력 개입을 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아렌 국이 종교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불가피하였다.
다른 영지라면 붙어도 상관없으나 신검 로이스타에 대한 무용은 영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았다.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아렌에 대해서 코스모스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교단은 아렌 왕국에게 교단에 대한 기부를 강요했다. 아울러 국교로 세우고 코스모스의 예배당을 세워줄 것을 정중하게 협박하였다.
그전의 아렌이었다면 교단의 요청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이스타가 복귀한 십일검 기사단은 전과는 전혀 다른 기사단이 되었다.
거절의 의사를 기다렸다는 듯이 교단은 1백의 성기사. 그리고 광신도를 소집했다.
약 1만 2천의 대군이 아렌의 국경을 침범하였다.
교단의 해방 전쟁 선포에 아렌 왕국은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교단의 큰 착각이었다.
그동안 중앙 체계가 엉망이었을 뿐이지, 십일검 기사단은 검은 숲 정벌로 단련된 베테랑들이었다.
즉, 타 왕국과의 전투 경험치 자체가 달랐다.
아렌 왕국도 조국 수호를 위해 출정을 시작했다.
“난 파에트를 잘 안다. 그 녀석의 검술은 맵지만, 전장의 경험은 글쎄?”
아크우드의 장자, 티미 지휘관이 비웃었다.
페이서스 시절에는 몰라도,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했다.
칠검 대장으로 복귀한 파에트와 엘빈은 각각 2천의 군대를 이끌고 평지 전투를 벌였다. 압도적인 기병의 힘으로 교단은 큰 패배를 당하고 국경에서 물러섰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서면 교단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러설 수 없었던 교단의 지휘관 아크우드는 같은 종교권의 국가에게 지원 요청을 하였다.
신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철퇴를.
아울러 뒤로는 아렌 왕국의 붕괴 이후 참가 국가에게 영지를 나눠주기로 약속되었다.
교단이 첫 전투에서 패했지만 그들의 상승세는 확실히 대단했다.
교단은 주변 국가의 원조를 통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아렌 왕국의 국경을 진격하였다.
교단의 총지휘관인 테런 아크우드는 장남인 티미에게 선봉을 맡겼다.
티미 아크우드는 과거 아렌 왕국의 페이서스에서 유학하였다. 덕분에 그는 아렌의 지리에도 밝고 아는 이들도 많았다.
교단군 3만과 아렌 군 4천의 전투는 비교 불가였다.
아렌의 기병은 강했지만, 수적 차이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렌과 코스모스의 2차 전투는 코스모스 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제국 시대부터 용병술이 뛰어났던 테런 아크우드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였다.
3차 전투 역시 교단의 승리였다.
“뭐가 최강이냐? 뭐가 최고의 기사냐?”
테런 아크우드는 교단의 지휘관들과 거나하게 축하 연회를 열었다.
이제 아렌 왕국을 삼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