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22)
레필리아 레소드-122화(122/398)
레필리아 레소드 122화
북으로(7)
호랑이의 자식은 호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티미 아크우드의 용맹함에 십일검 기사단은 연전연패당하며 뒤로 후퇴하기만 했다.
대륙은 생각했다.
아렌의 십일검 기사단은 더 이상 최강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반전은 벌어졌다.
계속된 연전연승에 코스모스 교단은 긴장이 풀릴 대로 풀리게 되었다. 그들은 순간 나태해졌고 경계도 허술한 점이 생겨났다.
이들은 점점 자신들이 어딘가로 유도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갑작스럽게 아렌의 기습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코스모스 연합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하지 못한 채 후퇴하였다.
테런 아크우드는 뒤늦게 패퇴하고 물러서는 선봉을 수습하여 특유의 용병술을 선보였다.
덕분에 아렌의 선봉인 파에트와 엘빈은 잠시 진군이 주춤하였다. 하지만 그때 다시 한번 반전이 벌어졌다.
“어차피 비겁한 잔재주일 뿐이다. 놈들은 기습 말고는 할 수 있는 선택이 없다!”
테런 아크우드는 금방 군을 정비했다.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방진을 세우니, 파에트와 엘빈의 기병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이들의 측면에서 허리를 자르고 들어오는 부대가 있었다.
“창을 세워라! 그래 봤자, 별동대다!”
테런 아크우드는 쉼 없이 지휘를 내렸다.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측면 부대가 세운 깃발을 보았다.
열하나의 검을 끌어안은 사자의 문양. 십일검 기사대의 대장기였다.
“로, 로이스타 아르빈트입니다!”
파에트와 엘빈 선봉 부대만 신경 쓰던 교단은 측면에서 허리를 자르고 들어오는 부대에 돌파 당했다.
아렌 구국의 영웅 로이스타 아르빈트가 직접 정예 3천을 이끌었다. 이 뒤를 따르는 대장급 인물도 파에트, 엘빈에 못지않은 기사였다.
무엇보다 로이스타 아르빈트가 선두에 서면, 뒤에 따르는 기사들은 전부 무적의 병사가 되었다.
삽시간에 교단의 군열은 흐트러졌다. 부서지고, 부서진 군대는 대패하여 협곡을 빠져나갔다.
교단은 대패하였다.
코스모스 연합군은 2만도 남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아렌의 국경에서 물러섰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다시 벌어졌다.
아렌의 국경선에 무언가가 포진해 있었다.
“강철?”
테런 아크우드는 이를 사리물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을 가로막은 적의 정체는 로빈타 왕국의 군대였다.
솟아오른 깃발은 방패를 단 수사슴의 문양이었다.
강철의 대공, 이실렌을 상징하는 대장기였다.
이실렌은 죽음을 사칭하고, 적과 내통하던 자들을 전부 제거했다.
순백의 기사단을 점령하던 맥크웰도 예상치 못한 이실렌의 정략에 붙잡혔다.
“빌어먹을! 후퇴, 전원 후퇴해라!”
테런 아크우드는 절대 무능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서둘러서 군을 후퇴시켰다. 절대로 싸워선 안 됐다. 로빈타 왕국이 서 있는 곳은 아렌 왕국의 국경선이었다. 그곳을 넘게 되면 말 그대로 아렌 왕국을 침범하는 것이다.
테런 아크우드는 그 순간 적이 진군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었다.
교단의 정보망이 엉망이었다. 강철과 신검, 대륙 오제중 두 사람이 손을 잡았으리라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숙적이었기 때문이다.
“10군과 11, 12군은 적의 발목을 잡는다! 죽어라, 여기서 죽으면 너희들의 업적이 더욱 크게 빛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들이 신의 이름을 부르며 산화했다. 하지만 강력한 강철의 군대는 멈추지 않고 파도처럼 밀어붙였다.
2만의 군대는 1만으로 줄어들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대패였다.
테런 아크우드는 아들 티미 아크우드와 함께 아렌 왕국의 국경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훌륭한 업적을 남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불명예를 겪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재기하면 됩니다, 아버님.”
“물론이다.”
테런은 자기 아들 티미에게 이 수치를 잊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면, 코스모스 교단은 인류 최초의 신성 왕국을 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패를 당했으니 꿈은 허물어졌다.
“놈들은 나 테런 아크우드를 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테런 아크우드는 복수를 맹세했다.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교단의 동벌은 실패했다.
하지만 북벌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북으로 향하는 교단의 총지휘관은 12장로 중 한 명인 리크 애드멀이었다.
그는 교단의 성기사 출신으로, 뛰어난 전술을 인증 받은 사내였다.
그가 이끄는 8천의 군대는 거침없이 진군하고 있었다.
북은 아직 전문적으로 자리 잡은 종교가 없었다. 춥고 험한 지역인 그곳은 무법천지인 곳이었다.
이곳에선 힘만이 정의였고, 힘이 약하다는 것은 생존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았다.
제국에서 북은 거의 버려진 땅이나 다른 바 없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거리가 멀었기에 통치의 힘이 약했다는 것도 있지만 이 지역은 도적 떼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었다.
또한, 끝없이 일어나는 반란군들은 제국으로서도 골칫거리였다.
한데 제국까지 패망하자 북은 더욱 처치 곤란의 땅이 되었다. 세력을 이루고 있는 북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아집이 강하고 배타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코스모스 교단으로서는 그런 존재들이 포교하기에 더욱 적합하였다.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세력은 아무리 강하고 포악해도 힘의 차이가 있기에.
코스모스 교단의 원정길을 감히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협곡이나 험한 산지에서 북의 기습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마어마한 힘의 차이에 북 세력은 하나둘씩 코스모스에게 짓밟히고 복속되었다. 하지만 교단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역사상 단 한 번도 하나가 된 일이 없는 북 세력은 통합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강대한 적을 상대로 속수무책이자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또한, 이전에 북의 패자였던 지크 페브리안의 아들, 유트 페브리안은 페리안이란 영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패업을 앞두고 어이없는 암살을 당한 북의 황제.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엔 그의 아들에게 기대하기 시작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북에서 유일하게 기사단을 창설한 페리안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단은 그들의 저항을 보고 멈추지 않는 노도의 발걸음을 옮겼다.
군세의 차이. 세력의 역사. 강력한 병장비. 병사들의 훈련도. 그 어떤 것도 페리안은 교단의 정벌단을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전란이 멈추지 않는 대륙의 서기, 아리아 799년 열 번째 달.
북은 예전 같지 않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숲에 어우러진 낙엽들. 곧 벌어질 전란을 생각하자면 찬바람이 불어야 북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날씨는 어느새 포근해져 있었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 북은 절대적인 패배만이 보이게 되었다.
터벅, 터벅.
말라붙은 낙엽을 밟으며 누군가가 걸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한 순백의 로브. 그것을 걸친 백발의 남성은 얼음이 녹아내린 호숫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백발의 남성은 호숫가에 몸을 적시러 날아드는 나뭇잎, 그리고 그것에 놀라 고개를 숨겨 버리는 물고기들을 보며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
머리카락과 눈썹까지 눈이 내린 듯 보이는 청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완벽하고도 매끄러운 콧날, 부드러운 입술과 자상한 눈매에 흰 피부는 여신이 보아도 질투할 것 같은 미남자였다.
청년은 호숫가에 가늘고 긴 검지를 담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무언가 글자라도 쓰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자 호숫가의 한 면이 은은한 빚을 내기 시작했다.
일렁이던 물결은 청년이 그려놓은 사각형 안에서 멈추어 서더니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
사람의 얼굴은 점점 윤곽이 잡히고 모양이 갖춰졌다. 호수 안의 얼굴은 천천히 입술을 열어 백발 청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요. 엘.”
“교단의 군대가 움직이고 있던데, 방비는 잘 되어가시나요.”
엘이라 불린 남성은 사뭇 걱정되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와 대화하는 수면 속의 남성도 엘에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남성이었다.
그는 요염해 보이는 붉은 입술을 열며 미소를 그려 넣었다.
“근처에 계신다면 교단의 군대가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걸 구경하실 텐데 아쉽군요.”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을 가진 미청년은 검지로 입술을 어루만지며 조소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분명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 청년의 칭호를 잘 알고 있는 엘은 그가 농담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엘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리즈를 찾아가던 중입니다.”
“그거 잘되었군요.”
리즈라고 불린 붉은 미남자는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반겼다. 그에게 있어서 엘이란 존재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으며, 상담자였다.
여러 가지 이변들에 대해서 상의할 수 있을 존재가 필요했고, 또한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엘. 유트 군이 리에르 군을 데리고 올 거예요.”
“정말입니까? 다행이군요…….”
“한 일, 이주면 이곳에 도착할 듯합니다. 세 명의 포스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기대되는군요.”
리즈는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리즈의 말처럼 엘도 이런 날이 찾아오리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 시대에 한 명의 포스가 아닌 자그마치 세 명이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세 명이 인연의 끈으로 묶여 한자리에 만난단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얼른 만나보고 싶군요. 무엇보다도……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있으니까요.”
근래 안 좋은 소식만 들려와 엘은 마음이 어두웠다. 하지만 모처럼 좋은 소식이 생겼단 것에 굉장히 기뻐했다. 마침 엘의 뒤쪽에서 여성들의 맑은 웃음들이 들려왔다.
“그럼 곧 만나길 기대하죠, 엘.”
“네, 그때 뵙겠습니다.”
파란 머리와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두 여성이 나타나자 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레사 양, 기쁜 소식이 있어요.”
엘의 말에 에레사라 불린 금발 머리 여성은 의아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품고 웃어 보였다.
“리에르 군과 곧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엘의 말에 에레사는 믿어지지 않는 듯 멍한 얼굴이 되었다. 엘과 함께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나 있었다.
에레사는 그의 등 뒤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녀는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마음만은 3년 전 그때에서 멈춰져 있었다.
리에르를 만난다.
에레사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 여행의 이유이자 끝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적혈의 악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소꿉친구. 에레사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리에르는 치기 어린 소년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다정하고, 좋은 남자였다. 그런 그가 피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란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리엘을 예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
에레사는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파란 머리칼의 여성, 카르샤는 에레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포옹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를 알아볼까?’
에레사는 오랫동안 여행을 다녔기에 자신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으면 어떨지 걱정했다.
그녀의 그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녀는 여전히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에레사는 그렇게 만나고 싶던 리에르였지만 갑자기 모든 게 자신 없어졌다.
리에르는 분명 달라졌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쌓인 죄. 그것을 떠올릴 그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고,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자신의 가족은 모두 죽어 졸지에 혼자가 되었다.
물론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보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예전이나 앞으로나 함께하고 싶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카르샤는 조용히 에레사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엘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보고 싶어, 리엘…….’
에레사는 피로 적셔진 리에르의 모습을 보고 다가서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그리움으로 인해 눈물을 토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