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31)
레필리아 레소드-131화(131/398)
레필리아 레소드 131화
광전사의 노래(9)
이 마을은 겨우 200여 명의 인구수를 가졌으면서 무기 수요가 심했다.
게다가 호신이라는 명목으로 검술을 익히고 있는 마을 사람들, 촌장의 집에 있는 부녀자들의 허벅지에 숨겨진 단검.
이방인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보통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등 뒤로 전해지는 감시의 시선을 리에르는 느낄 수 있었다.
산골 마을은 산적과 몬스터들의 위협 때문에 성채를 쌓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오히려 이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의 단정을 내렸다.
‘마을 규모의 도적들.’
통치를 잃어버린 북 대륙에는 대대 규모를 이룬 산적들도 성행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을 조심해라, 웃는 얼굴 뒤에는 독을 품고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아르미안의 말이 귓가에 어른거리는 듯 느껴졌다.
마을 의사 리안이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평상시는 항상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호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항상 뭔가를 감시하듯이 움직였다.
사람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복합적으로 명령 내리다 보면 안구는 아주 미약하게, 평소보다 움직임이 많다.
음흉한 리안의 얼굴을 상기하며 리에르는 흙길을 넘어,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슬슬 오늘 즈음이겠지.’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속이기 위해서는 속아줘야 했다.
그렇다고 너무 길게 여유를 주면 상대는 생각이 많아지고, 포박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삼 일이라는 시간이면 상처도 아물어가고, 안심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띄우게 된다.
이 마을의 의사, 아니, 대장 격인 리안이 행동을 시작할 것이다.
리에르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자 후우, 하는 숨을 내쉬어 보였다. 포스라는 무적의 힘을 잃은 이상, 정신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먹히는 것은 자신이 될지도 몰랐다.
바로 일전에도 광전사와 전투를 벌였을 때, 상대의 검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으면서도 힘으로 막으려다가 당해 버렸다.
그건 그동안 포스를 몸에 가지고 있던 자신을 과신하고 있던 한심한 행동이었고, 그 결과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자신이었다.
만약 유트 남매와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광전사에게 잡혔을 몸이었다.
‘이제부턴 절대로.’
포스에 의지하던 자신을 버리고, 이제부턴 리에르 아르빈트로서 싸우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고 촌장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촌장의 집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언제나 한적하던 집은 오늘따라 부산스럽게 보였다. 그것을 보고 리에르는 조소해 보였다. 슬슬 자신이 걸어둔 미끼에 입질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잘 왔어, 리엘.”
유트는 리에르가 들어오는 것을 반겼다. 안에는 촌장을 위시한 리안, 그리고 마을의 간부들이 원탁 의자 아래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리에르가 왔어도 촌장과 간부들은 자신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데 열중했다.
리에르는 자연스럽게 유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산 검들을 한쪽 벽면에 세워두었다. 언제라도 검을 잡을 수 있도록.
“무슨 일이야?”
유트에게 물을 것도 없이 의사 리안에게서 화두가 터져 나왔다.
“놈의 은신처를 확인했으니 지금 당장에라도 쳐들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소. 고용할 수 있는 용병들을 더 모아야 합니다. 놈을 잘못 치면 우리가 도리어 당합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광전사를 단 세 명으로 몰아낸 이분들과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어차피 마무리된 것이나 다른 바 없었다.
오랫동안 산골 마을을 괴롭혀 왔던 광전사. 그 광전사를 몰아내는 것이 이 마을에서는 숙원이나 다른 바 없었다.
마을의 간부들은 리안의 말에 너도나도 광전사를 치러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리안은 리에르에게 눈인사를 한 번 건넨 뒤에 유트를 바라보았다.
유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답을 보냈다.
“네, 함께 가겠습니다.”
마을 간부들은 광전사를 치기 위한 일정을 잡으며 어떻게 놈을 몰아세울 것인지를 의논했다.
그들은 대화하면서도 광전사를 몰아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저들에게 속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끼리 첫 번째 대화를 마쳤을 터였다. 그리고 유트가 있는 촌장의 집으로 와서 서로 유도하는 대화대로 상대를 이끌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대화였으니 회의는 오래갈 것도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촌장들은 내일 아침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은신처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작전은 단순했다.
리에르와 유트가 투톱으로 광전사의 시선을 끌어준다. 자경단의 일부는 두 사람을 지원하고, 다른 자경단들은 광전사의 은신처를 없앤다.
그 후에 모든 사람이 총공격을 감행하여 광전사의 악몽을 끝마친다.
그렇게 작전이랄 것도 없이 결정 난 회의를 끝으로 모두는 해산했다. 아울러 리안은 촌장과 함께 유트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사례금을 내밀었다.
유트는 그들이 내밀은 보상을 거절하며 난색을 보였다.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해 달라고 계속 들이미는 그들의 요청은 끈질겼다. 결국, 그들의 사례금은 리에르가 대신 챙겨두었다.
따지고 보자면 아무 인연 없는 마을을 위해 전투하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정의라는 단어만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들은 넘치고 넘쳤다.
작전은 단순 명쾌했다. 이 작전은 어디까지나 광전사의 본체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불사신인 광전사를 상대로 아무리 싸워봤자 큰 의미가 없었다. 그의 본체를 찾아 없애야지만 이 악몽은 끝날 수 있었다.
모두가 나간 뒤 둘만 남자 리에르는 장난스럽게 아까 받은 돈 자루를 흔들어 보였다.
“산골 마을에서 두 번만 사례금 받았다간 제국 수도에서 건물주도 하겠다야.”
리에르가 사온 검들을 살펴보던 유트도 빙그레 미소 지어 보였다.
“한적한 시골 마을 치고는 돈벌이가 참 좋은 곳인가 봐.”
“그래, 확실히 수상할 수밖에 없지.”
유트 역시 마을에 대해 의심하였다. 다친 리에르를 눕혀놓고서 다른 약초들을 찾다가 타이밍 좋게 의사 리안을 만났다.
그리고 산골 마을과의 인연.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한 가식적인 마을 사람들.
“이 마을 사람들은 조직적인 훈련을 받고,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 군대는 아닐 테고 산적질을 하는 녀석들이겠지.”
“그래, 일단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겠지.”
리에르의 말을 듣고 유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유이는 어디 간 거냐?”
리에르는 안 그래도 아까부터 유이가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곳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서 혹시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유트는 리에르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에르는 유트의 저런 얼굴이 정말 유이와 똑 닮게 심술 맞다 생각되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피가 똑같은 남매였다.
“요새 유이를 자주 찾는다?”
“안 보이니까 찾는 거지, 뭘 자주야.”
“글쎄다, 요새 예전과는 달리 유이와 스킨십도 많아지고.”
“세간에선 그걸 스킨십이 아니라 폭행이라고 표현하겠지.”
리에르는 유트의 놀림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런 리에르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유트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요새 느끼는 건데 말이다, 유이랑 너랑 둘이 있는 걸 보면 내가 방해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방해꾼이지. 너만 없었으면 둘 중의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투라도 했을 텐데.”
유트의 말이 불만스러운 듯, 리에르는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유트는 흐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눈가를 가늘게 열며 미소했다.
“혹시 알아? 리에르 아르빈트가 내 매제라도 될지.”
유트의 장난기가 어린 말 한마디.
리에르는 하마터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흰 장갑을 뺨에 던지고 결투를 신청할 뻔했다.
“넌 생각이 있는 거야? 우리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이디? 그 충혈 눈알 녀석 사사건건 시비 걸고, 툴툴거리는데. 넌 나와 네 동생 둘 다 지옥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거다. 그리고 난 그 뭐랄까, 좀 다정하고, 여성스럽고, 함께 있으면 편안한 그런 현모양처를 원한다고!”
“에레사처럼?”
유트의 말은 정곡이었다.
“…….”
“정곡이었나?”
유트의 입에서 에레사의 이야기가 나오자 리에르는 경직되었다. 애써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이름.
아르미안을 통해서 그녀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자신에게 깊게 새겨진 죄의 업.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다가오는 죽음은 그녀를 볼 용기를 잃게 하였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또한 그녀를 만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에레사를 잊은 거냐?”
유트의 물음. 지금 당장 이 마을 사람들이 무슨 흉괴를 꾸미고 있을지, 그리고 광전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바쁜 판국이었다.
리에르는 지금 이 상황에 맞지 않는 그의 질문이 피하고 싶었다.
“아니.”
“그럼?”
“언제부터 연애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냐?”
리에르의 퉁명스러운 답에 유트는 눈웃음을 쳐 보였다.
“내 동생의 미래와도 관심이 있는 문제니까.”
“너 성격 굉장히 나빠졌다? 유이는 내 친구 유트 페브리안의 여동생, 유이 페브리안일 뿐이고. 남녀관계로 말하는 건 나나 그 녀석이나 농담으로도 할 이야기가 못 된다고.”
자꾸 유트가 심술 맞게 갖다 붙이자 리에르는 툭 쏘듯이 답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리에르는 자신의 죄업을 등에 짊어지고 갈 용기가 없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얼굴을 비출 자신도 없었다.
아무리 대륙에 이름이 알려진 포스 오브 석셔너이자, 적혈의 악마라지만 이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을 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단 이성 교제와 미래에 대한 꿈을 위해 달릴 시기.
유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에 양친의 끔찍한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녀의 세상 속에 오로지 오빠만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리에르를 만나고, 유트와 유이는 변했다.
아무리 밀어내고, 화를 내도 녀석은 구김살 없는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옆에 있었다. 덕분에 유트 페브리안은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버려가게 되었다.
변한 것은 유트뿐만이 아니라, 그의 동생 유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세계 안에 오로지 유트만 있었다. 하지만 그 세계 속엔 언제부턴가 리에르도 들어 있었다.
유이는 리에르가 금발의 미소녀를 항상 따라다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근데 말이야. 남자들은 머리가 긴 것이 좋은가 봐.’
유이의 둥그런 눈은 에레사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트는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리엘이 머리 긴 여자를 좋아하냐고 묻는 게 낫지 않을까?’
‘바보 오빠.’
유이는 유트의 놀림에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거의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한 유이. 그런 소녀는 리에르와 투덕거릴 땐 생기발랄한 얼굴로 변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본인뿐이었다.
유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는 이미 죽음의 날개를 펼치는 대륙의 주적이 되어 있었으니까.
유트는 문 앞에 다가왔던 기척이 방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겐 동생일 뿐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