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32)
레필리아 레소드-132화(132/398)
레필리아 레소드 132화
광전사의 노래(10)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광전사를 잡기 위해 마을의 자경단이 모였다. 그들을 지원해주기 위해 유트 남매와 리에르도 한자리에 모였다.
자경단은 약 오십 명 정도였다. 이들의 선두에 선 것은 의사 리안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무기는 리에르의 예측대로였다.
일반인은 들고 있기도 어려운 폭넓은 대형 도끼.
이런 무기는 쉽게 보기 힘든 종류의 무기였다.
의사 리안은 싸움 따윈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리에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붕대를 다시 한번 갈아주고 나서 상처 부위를 확인했었다.
이제 부상은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무리하면 상처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것은 유트와 유이 남매뿐이었다. 유트는 리에르 대신 싸워야 했기에 새 무기를 테스트하며 감을 잡았다.
아무래도 도와 검은 서로 다른 부류의 무기였기에 감각을 되찾기는 천하의 유트도 힘들었다.
“리엘, 네가 유이 곁에 계속 있어 줘.”
자경단이 출발하기 직전 유트가 부탁해왔다.
그나마 전투에 능숙한 유트와 리에르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유이는 아무리 뛰어나도 여성인 이상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유트 자신이 동생의 곁을 지키고 싶었으나, 이미 리안과 함께 자경단을 지휘하기로 하였다.
비록 부상 중이지만 리에르가 유이의 곁을 지킨다면 유트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생각 같아선 리에르가 직접 전면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은 유트였다.
리에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만 유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불만을 품었다.
“내가 왜 원숭이 따위와 있어야 해?”
“유이,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잖아.”
평소 같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유트도 진지하게 유이를 나무랐다. 상대는 광전사뿐만이 아니었다. 속이 시커먼 자경단과 함께였으니 안심할 수 없었다.
많은 돈을 줬다는 것은 마음을 놓게 하려는 미끼에 불과했다. 도적 무리인 그들이 순순히 일행을 보내준다는 장담도 없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유트가 속아주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도적 무리라면 스스로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주변을 지나는 모험가나 여행객이 광전사에게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애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광전사는 제거를 해야 하는 존재였다.
리에르와 유트는 절친한 친구답게 생각하는 답안도 똑같았다. 광전사를 제거하는데 마을 사람들을 이용하고, 일이 마치는 대로 유이와 함께 전투에서 이탈한다.
“싫어.”
하필 중요한 때에 유이는 고집을 부렸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리는 그녀의 모습이 평소보다 더 고집스러워 보였다. 다른 때 같으면 리에르 말은 무시해도 유트 말만은 듣는 그녀인데, 그마저 통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그러시오?”
리안이 반갑게 웃어 보이며 일행에게 다가왔다. 유트는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리에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전면에 서는 문제 이야기 중이었죠.”
“유트님과 리에르님이 함께해 주시는 것 아니었소?”
“아니, 이 친구 혼자만 앞으로 갈 거예요. 난 아직 어깨가 다 낫지 않았고, 유이는 전면에 서기 무리니까.”
리에르의 말에 리안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그렇군요. 하지만 유이 양은 가녀린 여성분인데 마을에 남아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리안은 걱정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리안의 말을 들은 리에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리에르는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눈치채고 있었다.
리에르와 유트를 묶어두기 위한 인질. 그 두 사람이 허튼짓하지 못하게, 일이 끝난 뒤에도 붙잡아 두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아니, 유이는 전투에 있어 누구보다 탁월하고 센스 있지. 댁네 어설픈 자경단 보다 유이의 화살은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올 테니까.”
리에르는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실 그의 말에는 거짓은 없었다. 리안은 리에르의 말에 불편함 없이 감탄하는 듯한 얼굴을 연기하고 있었다.
‘유이를 절대 마을에 남겨두면 안 돼.’
리에르는 그녀가 마을에 남게 된다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들에게 다음 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다음에 들려오는 리안의 말에 리에르는 표정관리 못 하고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
“그렇구려…… 그렇다면 그녀는 자경단 후방 부대에 배치하면 되겠소.”
후방의 궁수 쪽으로 배치한다는 말은 결국 유이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한단 의미였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는 당신들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라…….”
“네, 그래요.”
리에르는 말하는 순간 황당한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유이는 리안의 말대로 뒤쪽에 혼자 있겠노라 대답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심술을 부리는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리에르의 생각은 모르고 유이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리에르는 유이를 보며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유이는 흥,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 보였다.
유트는 못내 입안이 써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는 어제 유이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 일부러 리에르의 마음을 떠보는 질문을 했다.
유트의 눈치로 보아서는 리에르도 유이가 싫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두 사람을 연결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 밖이었다.
벌써 3년 이상 못 만난 에레사에 대한 미련과 감정. 그뿐 아니라 리에르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로서는 타인과의 관계는 어렵기만 했다.
더더군다나 리에르는 시한부 상태였다. 누군가와의 미래라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달콤한 꿈에 불과했다.
유트는 안 하던 짓을 한 덕분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노라 생각하며 씁쓸해했다.
리안의 말에 유이 본인마저 동조하니 딱히 반대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유이는 혼자 유트와 리에르들과 떨어져서 후방에서 오게 되었다.
대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유이를 리에르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유이도 상당히 기분 나쁜 얼굴로 리에르를 쏘아봤다.
어느 때는 얌전하고 어느 때는 다정하게 다가온다. 또 이럴 때는 괴팍한 십 대 소녀가 되어 시비를 걸어온다.
지지 않고 쏘아보는 유이를 보며 리에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걸어갔다.
유이는 리에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대번 손을 들어 올리고 한판 붙을 자세를 갖췄다.
“야, 충혈 눈알.”
유이는 그대로 리에르를 향해 훅을 날렸다. 리에르는 그녀의 주먹을 가볍게 막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웬 억지야? 갑자기 왜 화를 내는 건데?”
“친구 동생이 화 좀 내면 안 되나?”
리에르는 머리가 지끈지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당최 알 수 없는 유이의 성격이었다.
어제 자신이 유트와 한 이야기를 들었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리에르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의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지금처럼 화를 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고 들 시간이 없었다. 이미 자경단은 이동을 시작하고 있었고, 유트는 저만치 앞에서 선두로 걷고 있었다.
리에르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아 보였다.
마나의 시선, 마나의 재분할. 마나의 축복을 얻지 못한 자들에겐 보이지 않는 마나의 공간 속. 리에르는 주변의 공기와 마나를 천천히 끌어당겨 손안에 말아 쥐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의 손안에서 공기가 꿈틀거리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삐리릭.”
생기 있게 움직이는 공기는 이내 울음소릴 내었다. 리에르는 천천히 눈을 열었다.
유이가 아직도 독이 잔뜩 난 얼굴로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추리할 시간은 없었다.
리에르는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하나 열어 손바닥을 펼쳤다.
그 안에는 투명한 푸른 새가 머리를 흔들면서 날갯짓을 해 보였다.
리에르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본 유이는 자신도 모르게 와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리에르가 손바닥을 가볍게 허공에 털어내자 아기 새는 조그만 날개를 펼쳐 들었다. 녀석은 마치 이끌러 가듯이 유이의 은빛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았다.
유이는 자신의 머리 위에 앉은 푸른 아기 새를 보려는 듯이 고개를 올렸다. 아기 새는 유이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조그만 날개깃을 펄럭이며 버텼다.
“이게 뭐야?”
유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더니 대번 표정이 바뀌었다. 신기한 것을 발견한 덕분에 그녀는 홍조까지 보이면서 궁금해했다.
‘항상 찡그리지 말고 저렇게 웃고 있으면 참 귀여울 건데.’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움이 될 거야. 조심해.”
주변의 눈과 귀가 있었기에 리에르는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그녀라면 금방 알아들으리라 생각했다.
리에르의 마나가 투영된 인공 생명체. 흔히 패밀리어(Familiar)라고 불리는 마나의 집약체는 여러 가지 활용이 가능했다.
리에르는 비록 포스라는 최강의 힘을 잃었지만, 레필리아 레소드를 마스터한 인물이었다.
그 마검술은 마력과 공간을 활용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에겐 모친 라일라의 재능이 잠재되어 있었다.
포스가 아니어도 그는 아버지의 검술 재능, 어머니의 마법 재능을 동시에 부여받은 인재였다.
비록 능숙한 마법 주문을 외우면서 거창한 행위는 하지 못하지만, 활용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유이는 리에르의 걱정스러운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아기 새를 흘낏 훔쳐보고는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 * *
광전사를 잡기 위한 자경단이 마을 밖으로 나섰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을 살랑대는 바람. 스산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나온 바깥은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무장한 사내들의 발걸음. 그것은 나뭇가지에 올라앉던 새들을 놀라게 하고 잎사귀를 뜯어먹던 짐승들을 움츠리게 하였다.
선두 진에 포함된 유트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리에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에르는 못마땅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유이 녀석은 일단 걱정하지 마. 내 마력과 연결된 패밀리어를 붙여놨으니 도움은 될 거야.”
“그래, 고맙다. 리엘.”
아침 햇살을 투영하는 부드러운 은회색 머리카락. 유트는 친구에게만 보여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유이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은 자신과 리에르가 유일했다.
“뭐 암팡진 녀석이니 혼자서도 잘하겠다만은.”
리에르는 왠지 쑥스러움을 느껴서 눈가까지 내려온 앞 머리카락을 괴롭히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패밀리어를 보고 신기해하고, 또 좋아하는 유이의 웃는 모습.
리에르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이해 가진 않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자신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리에르는 더 이상 그 무엇과도 깊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 슬픈 괴로움. 그것들로 인해 유트의 손을 잡았지만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다.
항상 잠이 들 때마다 두려웠다.
눈을 감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걱정했다.
힘겹게 잠들은 자신에게 죽은 자가 투영되었다.
반복되는 악몽들.
그들은 자신들의 썩은 몸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 해방되지 못한다고 비명과 저주를 퍼붓는다.
깊고 깊은 심연의 죄. 그런 것을 짊어지기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다.
너무나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