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34)
레필리아 레소드-134화(134/398)
레필리아 레소드 134화
광전사 사냥(2)
퍽!
유이는 사내에게 배를 걷어차여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사내의 몽둥이가 위에서 아래로 수직 운동을 했다.
유이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옆으로 굴러 공격을 회피했다. 당장 공격받는 것을 모면했다 해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거구의 사내는 유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유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순식간에 유이는 땅바닥을 다시 나뒹구는 바람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다.
그렇다 해서 거구의 사내는 유이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배를 짓밟으며 이죽거려 보였다.
그에게 있어 유이는 사람이 아닌 상품에 불과했다.
그때 푸른 아기 새가 부리를 벌리며 사내에게 날아들었다.
사내는 귀찮은 듯이 손을 휘저었다. 아기 새는 날렵하게 사내의 주먹을 회피해서 손등을 부리로 찢어버렸다.
깜짝 놀라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손을 감싸며 경계심을 세웠다. 순간적으로 그는 아차 싶어 유이를 내려다보았다.
유이는 활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화살을 들고 사내의 발목을 찔렀다.
거구의 사내는 고통 덕분에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이는 사내의 안면을 발로 걷어찼다.
사내는 그대로 나자빠졌지만, 유이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자경단들은 유이를 붙잡기 위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유이는 다시 화살들을 연속으로 쏘아냈다. 그녀의 화살은 자경단 둘이 적중했다. 하지만 남은 인원은 아직 많았다.
퍽!
유이의 옆구리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흡!”
유이는 공격과 동시에 회피하려 하니 어려움이 있었다. 푸른 아기 새는 유이의 위험을 보고 비명을 지르듯이 자경단들을 공격했다.
아기 새의 날카로운 공격이 자경단의 목을 뜯고, 눈을 할퀸다.
“이 빌어먹을 년이!”
뻐억!
거구의 사내는 푸른 아기 새를 후려쳤다. 아기 새는 힘없이 나가떨어져 바닥을 나뒹굴며 색이 옅어졌다.
유이는 이를 사리물며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미 거구의 사내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상품이라고 봐줬더니!”
워낙 우악스러운 힘이라 유이는 사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퍽!
사내의 무릎이 유이의 배를 다시 한번 가격했다. 유이는 손가락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져오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리엘…….”
그가 타이밍 좋게 나타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그의 존재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푸른 아기 새는 다시 날개 짓을 하면서 자경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경단들은 여럿이었고, 아기 새는 혼자였다.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유이는 리에르에게도, 만들어진 패밀리어에게도 미안함이 찾아들었다.
자신의 치기 어린 생각 덕분에 위험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 일로 자신이 잘못된다면 두 사람이 얼마나 괴로워할지를 떠올렸다.
유이는 억지로 눈에 힘을 주어 정신을 붙들었다. 몸에 기운은 없어졌지만 아직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터였다.
유이는 마지막 남은 화살을 꺼내 들었다.
“진짜 독한 년일세.”
거구의 사내는 유이가 화살을 손에 쥔 것을 보고 혀끝을 차면서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쉬이이!
심상치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어지럽게 주변을 적시는 소리. 그리고 갑자기 생성되기 시작한 안개는 주변을 잠식시켰다.
‘이건…….’
유이는 이 안개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자경단원들도 안개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삽시간에 주변을 메운 안개 속에서 시커먼 형체의 그림자가 걸어왔다. 그것을 본 이들은 전부 안색이 파리해지기 시작했다.
기기긱, 기기긱!
죽음을 부리는 기괴한 소음이 주변에 울려 퍼진다.
* * *
리에르는 광전사의 은신처에 다다랐을 즈음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굉장히 불쾌하고도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과 마나가 연결된 패밀리어가 전투 중인 것이 감지되었다.
광전사를 찾아가는 동안 주변에 몬스터나 동물 하나 보기 힘들었다. 덕분에 자경단들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없이 은신처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리에르는 자신의 패밀리어 때문에 마력이 점점 소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패밀리어가 대미지를 입고 있다. 즉, 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다.
“유트 님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소!”
리안은 자경단과 함께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하고서 손을 들어 올렸다. 리에르는 걸음을 옮기려는 유트를 잠시 붙들었다.
“유이에게 가봐야겠다.”
리에르의 굳은 얼굴을 보고 유트는 불안함을 느꼈다. 리에르는 패밀리어를 통해서 유이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가 보여주는 표정은 최악을 의미했다.
“다급한 상황인 거야?”
리에르는 유트를 불안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안심시킬 시간도, 말할 시간도 부족했다.
리에르는 유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리에르는 다른 말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트는 굳이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이 같이 가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트는 리에르를 믿고 있었다.
포스의 힘을 잃고, 다친 몸으로 설원에서 몇 개 기사단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괴물.
그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났다. 아울러 특별한 마력을 사용하는 리에르는 백병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시 한번 전해지는 머릿속의 타격음. 자신이 만들어낸 패밀리어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리에르는 빠르게 전방 자경단에서 빠져나와 유이가 있는 후방으로 뛰어갔다.
분명 후방을 지원하기 위해 뒤따르고 있던 지원대는 어느새 모습들이 보이질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패밀리어의 반응이 느껴지는 위치는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순식간에 자경단에서 빠져나온 리에르는 패밀리어가 느껴지는 거리를 재었다. 그러곤 최단 거리를 횡단하기 위해 길이 없는 수풀을 훑어내며 달렸다.
수풀을 해치자 물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물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대지를 뒤흔드는 불협화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리에르의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절벽이었다. 그 안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인간이 내려가기 어려운 높이임을 경고했다.
키이잉!
리에르는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패밀리어의 대미지가 전달받았다.
녀석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곧 소멸할 분위기였다.
유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트를 볼 면목이 없었다.
리에르는 스스로 너무 안일했다고 후회했다. 패밀리어를 붙여놨으니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유이 혼자서도 웬만한 상대는 압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패밀리어에게 반응이 오면 리에르 자신이 바로 도와주러 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방에 오는 지원 자경단이 떨어진 곳에서 대놓고 일을 벌일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 이전에 유트나 자신에게 먼저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순서였다.
‘기다려.’
리에르는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서 몸을 숙였다. 지그시 감은 두 눈 안으로 마나의 공간과 영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눈을 천천히 열며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물 알갱이를 주변에 퍼뜨리는 폭포수의 소음. 뺨 위를 때리는 바람과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주변의 사물이 빠르게 리에르를 지나쳐 위로 솟구친다. 그와는 반대로 돌로 뒤덮인 대지는 리에르의 몸을 향해 다가왔다.
쿵, 리에르의 몸은 그대로 지면 위로 착지하고 무릎이 꺾일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마나로 몸을 보호한 상태였기에 멀쩡하지, 그냥 떨어졌다면 몸이 남아나지 않았으리라.
애써 고통을 밀어내며 리에르는 패밀리어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계속 몸을 움직였다.
한참을 달렸기에 숨이 가빠지고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는다.
점점 가깝게 느껴지는 패밀리어가 가진 마나가 점점 흐릿해지자 리에르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스산한 바람 덕분에 춤을 추는 나뭇가지. 그 아래 늘어져 있는 시체들. 리에르는 시체에 입혀진 옷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유이 근처에 있던 후방 지원 자경단원들의 복장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그 화살은 리에르의 눈에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가 직접 사서 전달해 준 물건이기에.
흐릿했던 패밀리어의 기운은 이미 소실되어 느껴지지 않았다.
리에르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무시하고 힘이 빠져나가는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리에르는 후방 자경단들과 유이가 전투를 벌인 흔적들을 짚으며 추적을 시작했다.
전투 흔적을 손으로 짚은 리에르는 언덕 쪽으로 뛰어갔다. 언덕에는 목에 화살이 꼽힌 사내가 더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 무언가가 굴러 떨어진 듯 나뭇잎들이 눌리고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굴러진 바닥엔 유이가 들고 있던 화살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리에르는 머릿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무언가 목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유이가 타격을 입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이후의 흔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리에르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유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패밀리어가 있으니 최소한의 대비책은 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든 그녀를 도우러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트가 괜히 놀릴 것 같아서 그녀의 곁에 있지 않았다.
쓸데없는 아집이 결국 비참한 상황을 만든 것이 되었다.
금발을 가진 에레사와는 정반대로 은발을 가진 유이.
항상 찡그린 듯한 얼굴. 하지만 웃을 때 천진난만한 소녀. 하는 행동과는 달리 연약한 마음을 가진 그녀가 걱정되었다.
‘정신 차려, 리엘.’
리에르는 머리를 흔들면서 이를 사리물었다.
유이가 죽은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유이가 있던 주변으로 화살들이 날아와 있었다.
굴러 떨어진 그녀를 향해 도망 못 가게 화살을 날렸던 것으로 보였다.
리에르는 악독한 도적들의 행태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당장에 광전사고 뭐고, 도적들을 전부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화살 대다수는 무언가에 의해 잘려 나가 있었다.
유이의 주변으로 무언가가 화살을 쳐내 준 흔적이었다.
예리하게 잘려 나간 화살들의 단면으로 보아 유이가 직접 쳐낸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낼 만큼 그녀가 완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패밀리어가 한꺼번에 화살을 쳐낼 능력도 없었다.
화살을 쳐낸 것이 무언인지는 모르겠지만 흔적이 전혀 없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흔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리에르는 이 기묘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설마…….’
리에르는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에 목격했던 광전사의 흔적이라고 느껴졌다.
흔적이 없는 흔적. 이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죽은 자의 움직임.
유이가 부상으로 인해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리에르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피가 같은 장소에 계속 머물러져 있었다.
상처를 입은 데다,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리에르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유이가 광전사를 상대로 도망친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죽은 흔적도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유이를 지켜줬다?’
광전사가 유이를 지켜줄 리 없었다. 모양새가 나오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무차별한 살인을 저지르는 존재가 그럴 리도 없었다.
리에르는 헛된 희망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