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35)
레필리아 레소드-135화(135/398)
레필리아 레소드 135화
광전사 사냥(3)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제발 그렇기를 기도했다.
항상 유이와 다퉜지만, 사이가 나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소중했다. 그녀는 리에르가 리에르로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요?”
리에르의 곁으로 자경단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리에르 때문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다친 동료를 부축하고 있는 그들을 훑어보았다.
리에르는 그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유이와 함께 갔던 후방 자경단 인원들이었다.
“광전사에게 기습당한 건가?”
“어떻게…… 아셨소?”
리에르의 물음에 그들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리에르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짓는 표정은 자신들의 행위가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상대의 조바심을 정확하게 읽었다.
“유이는?”
“그 아가씨는…… 미안하게 되었소.”
리에르는 다가오는 자경단 사람들이 무기를 꽉 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손에는 불필요한 핏줄이 손등 위로 꿈틀거렸다. 마치 당장에라도 휘두르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군.”
리에르는 제자리에서 활시위가 튕기듯이 움직였다. 그의 빠른 움직임에 놀란 자경단이 재빨리 몽둥이를 휘둘렀다.
붕!
호쾌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리에르의 검이 한 명의 배를 갈랐다.
투두둑, 붉은 선혈이 허공으로 춤추고, 메마른 바닥을 적신다.
리에르의 머리 위로 피의 비가 뜨거운 김을 뿌렸다. 너무나도 익숙한 혈화. 오랜만에 꽃피우는 그것을 느끼며 리에르는 광기를 드러냈다.
“이 자식, 이게 뭐 하는……!”
지원 자경단들은 미리 재어놓은 크로스 보우건을 들어 올렸다. 분노한 그들의 쿼렐이 한꺼번에 리에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숙이며 맹수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크로스 보우…… 확실히 파괴적인 무기지.”
보우건에서 쏘아진 쿼렐은 리에르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자경단은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리에르를 보면서 기겁했다.
“하지만 재장전엔 너무 시간이 걸리지.”
리에르에게 반격하기 위해 자경단원들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그들의 검이 리에르의 몸을 맞출 리 없었다.
“끄아악!”
맨 앞에 있던 자경단원이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옆구리는 리에르의 맹검에 종잇장처럼 베였다.
다른 자경단원들도 장전이 오래 걸리는 보우건을 던지고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애초에 크로스 보우가 살상용 무기로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갑옷마저 뚫어버리는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갑옷 하나 걸치지 않은 리에르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단검을 투척하는 것이 훨씬 나을 정도로.
“어린 여자애 하나 어떻게 해보겠다고…… 다 큰 사내들이 떼로 달려들어?”
전투의 흔적.
이런 으슥한 숲속에서, 본대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리에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도적들은 너무나 빨리 움직이는 리에르를 보고 잘못 걸렸단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부상을 당한 남자. 유트 페브리안 이외엔 전부 일반인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준수한 외모를 가진 젊은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손을 더럽혀본 적 있는 산적들에게 있어서, 리에르는 멋모르는 꼬맹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착각했다.
리에르야말로 평범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아직 젊은 청년에게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살기를 느끼고 자경단원들은 공포로 떨었다.
그들은 오로지 뒷걸음질밖에 하지 못했다.
검은 청년은 얼굴에 피칠을 한 채로 걸어왔다.
산적들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광전사가 되기 전의 젊은 남성.
그도 평범해 보였지만 순식간에 광기의 전사가 되어 학살을 시작했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검은 청년과 광전사가 겹쳐 보이는 듯 느껴졌다.
리에르는 다시 한번 맹검을 그어 내렸다. 끔찍한 비명이 숲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 * *
철컹, 철컹.
규칙적인 갑옷의 마모음. 차갑게 식어버린 철판의 노래.
유이의 긴 속눈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섭게 올라간 눈꺼풀 속으로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
유이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검은 헬름을 쓴 광전사였다.
유이는 정신이 들어오자 허리와 어깨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덕분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글썽거렸다. 유이가 통증을 애써 참아내고 있을 때 광전사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유이는 광전사가 공주님 안기기로 데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살육을 벌이는 존재치고는 이질적인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덕분에 유이는 눈만 껌벅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유이는 조금 말한 것뿐인데도 말도 못 할 정도로 옆구리가 아픈 걸 느꼈다.
광전사는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퀭한 두 눈은 붉은 광채만 번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광전사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퀭한 두 눈은 흰자만 남아 있었다. 헬름의 안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서 흰 애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덜렁거리는 그의 피부 조직들을 보며 그대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암컷 말을 합니다. Master는 긍정합니다.]유이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절할 타이밍을 잃었다.
대답치고는 굉장히 해괴했고, 목소리도 이질적이었다. 광전사는 검은 헬름을 쓰고 있어서 그가 내는 목소리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저기…… 왜 날…….”
유이는 그제야 잠시 잊었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돌변한 마을 사람들. 그리고 벌어진 전투에서 대장 격을 해치우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녀는 다시 일어서서 싸우려 했다. 하지만 적에게 얻어맞은 옆구리를 심하게 다쳐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눈앞에는 검은색 괴한. 광전사가 차가운 입김을 뿜으면서 다가서고 있었다. 자경단원들은 유이를 향해서 크로스 보우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목적은 어디까지나 특급 상품인 유이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유이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이를 무력화시키고 광전사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보우건을 쏘았다. 유이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쿼럴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유이도 자경단원들도 생각지 못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유이의 팔, 다리를 향해 날아들던 쿼렐은 모두 튕겨 나갔다.
유이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광전사는 유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쿼렐들을 전부 쳐내거나 대신 맞아주거나 하였다.
유이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지금과 같은 황당한 상황이었다.
[암컷은 위협이 안 됩니다. Master는 긍정합니다.]투구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질적인 목소리에 유이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광전사가 차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검은 웅웅, 떨리는 듯이 음성을 내뱉는다.
[암컷은 이제 떨지 않습니다. Master는 웃습니다.]유이는 눈앞의 광전사에게서 그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또한, 그가 착용한 검에서도 자신을 위협하는 그 무언가를 찾기 힘들었다.
어두컴컴한 칠흑의 숲. 그 안에 있는 조그만 집에 도착한 광전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Stasis Field 이상 없음. 생명 공급 유지 이상 없음. Stasis Field 해제합니다.]치지직.
검에서 기음이 쏟아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조그만 집 주변은 오오라가 일렁거렸다.
[Stasis Field 재설정 실시. System 다운로드 실시. 안정성 확보합니다.]광전사는 계속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광전사가 아닌 광전사가 쥐고 있는 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집의 실내는 굉장히 어두웠다. 주변의 나무들이 잔뜩 우거져서 하늘을 틀어막다시피 하였다. 덕분에 빛 한 모금 흘러들어 오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집 안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덕분에 유이는 순간적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
유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당황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문을 알 수 없을 때, 광전사는 유이를 내려놓았다.
유이는 발을 땅에 디디자 안심함과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 들어왔다. 덕분에 그녀는 휘청거렸다. 마침 달려온 꼬마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해줬다.
“고마…….”
유이는 부축해 주는 꼬마 아이를 보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햇빛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발 머리카락.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모를 예쁜 외모. 인간의 것과는 다르게 길고 삐죽한 귀. 그리고 공막이 없는 눈동자.
유이는 아이가 생김을 보고 이야기책에서만 보아오던 종족을 떠올렸다.
아이의 뒤편으로 금발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녀 역시 아이처럼 탐스러운 금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뾰족한 귀와 공막 없는 눈동자를 가졌다.
그녀는 몸이 불편했는지 목발을 짚은 채로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한쪽 다리는 정강이까지 잘려 나가 있었다.
“당신들은…….”
유이는 그들이 엘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로서도 그들은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엘프는 숲의 종족이며, 천년의 수명을 가졌기에 신의 주민들이라 불렸다.
그들은 지혜롭고 자애로웠으며 강인했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큰 이해자이자, 동반자였으나 어느 순간 인간과 등을 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엘프는 숲의 길을 찾아 걷는다. 하지만 인간은 숲에 길을 만들어 걷는다.
상반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종족은 결국 공존의 길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그들은 은둔하며 인간과의 교류를 피해왔다. 평생을 살면서 한 명의 엘프를 만나기도 힘든 일인데, 지금 눈앞에 두 명이나 있었다.
[적의를 가진 생명 신호 50기 접근 중. Master에게 위험을 알립니다.]광전사의 검에서 다급함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메시지를 들은 광전사의 목이 집 밖을 돌아본다. 창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광전사는 몸을 틀어 어두컴컴한 집 밖으로 나갔다.
“당신…….”
금발의 여성은 아무런 말없이 뒤돌아서는 광전사를 보며 안타까운 듯이 눈빛을 흐렸다.
유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지금 분위기와 상황으로 봐선 광전사도 엘프일 가능성이 컸다.
유이가 들은 광전사는 무차별한 학살자로서 마을을 짓밟은 장본인이었다.
지나가는 여행자들까지 참혹하게 살해한 당사자가 이런 으슥한 숲에서 가족과 함께 있으리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더군다나 위험에 빠진 유이 자신을 구해준 것은 광전사였다. 유이는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목발을 짚은 여성이 다가와 온화하게 말했다.
“아가씨도 다친 것 같은데 괜찮나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