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36)
레필리아 레소드-136화(136/398)
레필리아 레소드 136화
광전사 사냥(4)
유이는 말끝을 흐리면서 곁에 선 여성을 바라보았다.
같은 여성이 보아도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심으로 가득한 그녀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엘프…… 인가요?”
유이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금발의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유이의 생각처럼 그들은 엘프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광전사의 모습은 엘프라고 부르기엔 미의식이 부족해 보였다.
숲의 종족은 평화를 사랑하고, 대립을 싫어한다.
그들은 고고하게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광전사는 그와는 달랐다.
“그이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저런 모습이 되었어요.”
여성은 뿌연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는 광전사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는 슬픔으로 가득 적셔져 있었다. 그사이 꼬마 엘프는 쪼르르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약통을 들고 나왔다.
“잘했어요, 가이.”
“응!”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처연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죠.”
여성은 유이의 옆구리를 들여다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유이는 자신의 허리가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움찔하였다.
여성은 유이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서 다친 곳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유이는 그저 어색하게 꼬마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고, 광전사에게 도움을 받고, 엘프 모녀에게 치료를 받는다.
아주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유이는 여성이 발라준 연고가 따가웠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조금만 참으면 한결 좋아질 거예요.”
여성의 말마따나 유이는 타는 듯 뜨거웠던 상처가 완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씩 유이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는 꼬마가 히죽 웃어 보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유이의 말에 여성은 겸양을 표했다.
유이는 이들의 관계가, 또한 무슨 내막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그것을 물어보려고 입술을 여는 순간 익숙한 소음이 발생했다.
[Stasis Field 균열 발생. 파악되지 않는 에러 발생.]광전사의 검은 갑자기 경고음을 발생시켰다. 광전사는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던 결계의 문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아니라는 듯이 결계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광전사는 전투를 위해 칠흑의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갑옷 안에는 몸을 보존시키는 하얀 가스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공간이 찢어지면서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튀어나왔다.
[Irregular 해석 불능.]광전사는 검을 들으며 뿌연 김을 내뿜었다. 광전사의 헬름 안으로 빛나는 붉은 안광. 그것은 검은 청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와 마주하였다.
광전사의 검이 검은 머리칼의 청년, 리에르를 베기 위해 날아들었다.
채엥, 검의 굉음이 울려 퍼진다.
리에르는 광전사의 검을 원을 그리며 받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와 간격을 좁혀 어깨로 보디 체크를 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광전사는 뒤로 밀려났다. 리에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횡으로 검을 그었다.
푹!
광전사는 리에르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냈다. 붉은 핏물 대신 검은 진물이 검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광전사는 고통은 전혀 없는 듯, 리에르의 허리를 향해 검을 뻗었다.
리에르는 그대로 발을 올려 찼다. 광전사의 손목은 리에르를 베지 못하고 검격이 흐트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리에르는 붙잡혔던 검을 힘으로 뽑아냈다.
푸쉭!
리에르는 거의 동시에 세 가지 동작을 취했다.
발차기, 검의 회수, 그리고 횡 베기.
덕분에 광전사의 어깨에서 검은 진물이 토해져 나왔다.
어깨가 베였다 하여 무기를 들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언데드였고, 물리적인 피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리에르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속삭임을 시작했다.
“레소드 제5식 임페리얼 소드(Imperial Sword).”
화르륵!
리에르의 검에서 붉은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광전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그르르, 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퍽.
리에르의 발차기가 광전사의 배를 걷어찼다. 광전사가 뒤로 밀려남과 동시에 리에르는 불길이 일어나는 검을 찌르기로 바꾸었다.
검을 머리까지 올리고서 찌르고 들어오는 리에르의 검. 광전사는 검이 오오라를 뿜어내며 상대의 머리를 향했다.
붕!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광전사의 검은 허공에 잔영만 일으켰다.
리에르는 무릎을 구부려 상반신을 숙여 회피했다. 리에르의 홍채는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푹!
다시 리에르의 검은 광전사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끈적끈적한 진물이 검 끝을 타고 들어올 때 다시 한번 불꽃이 일어났다.
광전사는 뒤로 주춤하였다. 상대를 뿌리치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린다.
리에르의 검은 그대로 광전사를 찌른 채로 밀어붙였다. 광전사는 몸의 균형이 무너지자 당황하는 듯 보였다.
광전사는 리에르를 떼어놓기 위해서 다시 한번 칠흑의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박혔던 리에르의 검이 환한 불꽃을 뿜어냈다.
펑!
폭발과 함께 광전사의 어깨 갑주가 날아갔다. 검은 진물이 허공에 튀기며 광전사가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렸다.
리에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포스를 잃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다.
레필리아 레소드, 임페리얼 소드를 가득 담은 리에르의 맹격이 광전사를 향했다.
그 순간 리에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찔러 들어간 임페리얼 소드는 광전사의 검에 간단하게 막혔다. 아니, 오히려 리에르의 검은 광전사의 검을 따라 튕겨 나가 버렸다.
‘설마!’
낯익은 기술이 분명했다. 그에 멈추지 않고 광전사의 검은 여러 개로 나뉘듯이 찔러 들어왔다.
양옆, 정면, 위, 아래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날은 마치 그림자처럼 잔상을 일으켰다.
분명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은 레필리아 레소드 제로였다.
물이 흐르듯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어 무력화시키는 기술. 아울러 지금 쏟아지는 검기도 낯익었다.
허초와 실초를 섞여 적을 압도하는 위스퍼링 레인. 검기의 검격을 뿌려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섀도우 워드.
1식과 2식이 합쳐진 듯한 공격에 리에르는 당황하여 뒤로 물러났다.
리에르가 뒤로 밀려나자 광전사의 검이 분자형태로 나누어졌다. 그의 장검은 순식간에 칠흑의 양손검으로 변했다.
리에르는 광전사가 양손검을 내려치자 다시 한번 임페리얼 소드로 막아냈다.
화르륵!
불꽃의 검격이 허공을 불태운다.
하지만 그 정도 거슬리는 것으론 광전사를 해치울 수 없었다. 또한, 광전사의 무거운 공격을 막은 리에르도 손목이 저릿해졌다.
분자형태로 갈라진 광전사의 검이 기이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상대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검을 횡으로 베어 넣었다.
채엥!
쇠와 쇠가 마멸하는 소음이 허공을 흔든다.
리에르는 불꽃을 뿌리며 뒤로 물러섰고, 광전사도 밀려났다.
거대한 핼버드 형태였던 광전사의 무기는 다시 분자 형태로 나뉘면서 변형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다시 한번 광전사의 품으로 뛰어들어 갔다.
탕!
갑작스러운 소음. 리에르는 거의 반사적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이건 또 뭐야.’
장검, 도검, 핼버드, 도끼. 칠흑으로 이루어진 검은 다양하게 형태가 변경되고 있었다.
무기가 여러 개라고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검의 달인인 사람이 창을 잘 다루리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광전사는 모든 무기에 대해서 마스터리라도 가진 것처럼 능숙하게 다뤄냈다. 수수께끼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명한 가문마다 고유의 검술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 검술은 전쟁 속에서 빛을 발하고, 대대손손 전수되어 발달한다. 아르빈트 가문 역시 신검이라는 검술이 존재했다.
하지만 리에르가 배운 레필리아 레소드는 그 어느 가문에도 존재하지 않는 검술이었다. 그러니 절대 누군가 알아볼 일도, 누군가가 사용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광전사는 그마저도 우습게 사용하고 있었다.
‘혹시 내 기술을 따라 하는 건가?’
가능성은 있었지만, 불가능을 품고 있는 단서였다.
리에르 자신이 보여준 검술은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보여주지 않은 검술까지 흉내 낼 순 없었다.
탕!
다시 한번 소음이 발생했다. 리에르는 다시금 불꽃을 뿜어내는 탄환을 반사적으로 회피했다. 아슬아슬하게 귀밑을 스치는 화끈한 감각은 오싹함을 전달했다.
갑자기 형태를 바꾸기 시작하는 광전사의 무기 때문에 리에르는 잠시 밀려났다.
하지만 반격의 타이밍은 놓치지 않았다. 리에르는 옆으로 검을 비켜 잡으며 광전사에게 파고들었다.
탕!
다시 한번 탄환이 쏘아졌다.
리에르는 검의 폼멜(Pommel)을 들어 탄환을 쳐냈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하여 블레이드(Blade)를 번득였다.
푸쉭!
리에르의 검날이 광전사의 허리를 베었다. 녀석이 잠시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리에르는 재빨리 검을 고쳐 잡았다. 그는 이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광전사를 움직이는 것은 칠흑의 검이었다. 검을 쥔 손목만 잘라내면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터였다.
‘저 무기만 잡으면.’
리에르가 가진 마나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광전사의 검은 기류.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흐름은 칠흑의 검과 연결되어 있었다.
리에르는 광전사의 팔을 도려내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리엘!”
그 순간 리에르에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에르는 순간적으로 공격에 힘이 빠지자 도중에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잠시 시선을 움직였다.
리에르의 예상대로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햇볕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은발 소녀였다.
빛나는 루비처럼 매혹적인 눈동자. 그 위에 초승달처럼 그려진 눈썹. 은빛의 긴 머리카락과 묘하게 동화되어 보이는 흰 피부.
리에르는 그녀의 무사한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곧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유이는 자신을 보고 반가워하기는커녕 두려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리에르는 유이가 이름을 불러준 것에 대해서 감동할 겨를이 없었다.
“괜찮아?”
리에르는 유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경직된 그녀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리에르의 몸 곳곳에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같이 타인의 피였다. 그의 검 끝에선 검은 진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바보같이 놀림당하고, 괴롭힘 당하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광전사라는 존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유이는 피로 얼룩진 리에르를 보면서 어깨가 떨려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에 그녀는 더 이상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리에르는 유이의 반응을 보고 핏물로 적셔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유이가 피를 두려워했단 것을 인지하고는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녀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광전사에 대한 것이다.
현장에 남겨져 있던 흔적들.
그것을 조사했을 때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을 떠올렸다. 광전사가 유이를 지켜줄 일도 없으며, 그럴 만한 존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유이는 광전사의 집에 안전하게 있었다.
광전사가 유이를 구해주고 지켜줬다면 애초에 리에르도 싸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광전사를 보자마자 검을 들어 무차별하게 공격을 해왔다. 광전사의 전투 방식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있었다.
리에르는 이제 확신했다.
‘광전사는 레필리아 레소드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