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44)
레필리아 레소드-144화(144/398)
레필리아 레소드 144화
여명(3)
땀에 젖은 두 사람이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이와 가이라가 입을 열었다.
“패배 원숭이.”
“약골 원숭이.”
리에르는 좌 가이라, 우 유이의 괴롭힘을 이기다 못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나의 공간. 주변의 모든 것이 아지랑이가 일어나듯이 형형색색으로 빛나 보인다.
아르카의 시커먼 광채를 앞으로 한 채, 리에르는 유트에게 재도전을 신청하였다.
유트는 재도전한다는 리에르의 말을 듣고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제 두 분을 모셔다드려야지.”
“우씨.”
리에르는 다시 한번 유트의 치사함을 느꼈다.
어차피 엘프들의 낙원인 님 바르시아는 코앞이었다. 이미 몸이 불편한 운디라는 가이라와 유이의 부축으로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결투하자고 조를 수 없기에 리에르는 마력을 해제하였다.
그때 갑자기 유트가 하아,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뭐, 모처럼이니 별수 없으려나. 자, 와라! 리엘.”
유트가 스르릉, 쌍수를 꺼내 드는 모습을 보고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유트, 너 은근히 진짜 나쁜놈이다.”
-긍정합니다. 이런 생태계에서 살아왔기에 Master는 강해진 겁니다. 긍정.
리에르는 이제 아르카마저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마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눈치 빠른 유트는 리에르가 집중할 수 없도록 공격을 퍼부었다.
“샌드백 원숭이.”
“부하 원숭이.”
리에르는 애써 유이와 가이라의 말을 무시한 채로 마차에 탑승했다. 평소 같으면 리에르는 유트와 같이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하지만 방금 연패를 당한 뒤로 삐쳐서 마차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겁쟁이 원숭이.”
“삐쟁이 원숭이.”
리에르는 가이라와 유이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운디라는 입가를 가리며 웃어 보였다.
“넌 우리 아빠 검술도 쓴다면서 왜 이렇게 약한 거야?”
가이라는 실망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리에르는 가이라의 말에 이마 언저리를 짚으며 낮게 웃어 보였다.
“후후, 본 실력을 냈다면 난 나의 친구를 죽일 수밖에 없었겠지. 나로선 10%의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가이라는 리에르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유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여 보였다.
“애한테 거짓말도 잘 한다.”
-Master u Liar.
리에르는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아르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유이는 어차피 원래 저랬으니까 그렇다 쳐도, 주인에게 덤비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리에르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도시에 도착하는 대로 최대한 털이 많은 대장장이를 수배하겠노라고. 그리고 아르카를 연마해달라고 부탁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가이라는 처음에만 투덜거렸다. 그는 계속해서 레필리아 레소드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고 사용했던 검술. 그것이 어떤 검술이고,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아버지의 검을 익히고 싶어 하는 모습. 그런 가이라의 모습을 보면서 리에르는 괜히 자신이 기분 좋아졌다.
“언젠가 시간이 남으면 그 검술을 배워주지.”
가이라는 거만하게 코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유이는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리에르를 보는 것 같아 배를 잡고 폭소했다.
“그래? 일 년 안이라면 좋겠는데.”
“바보 아냐? 아무리 엘프라도 성장이 그렇게 빠르진 않다는 것도 모르냐?”
가이라는 리에르의 말을 듣고 자신을 놀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 그렇긴 하겠지.”
리에르는 더 말할 변명거리가 없어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음을 흉내 냈다.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생명의 끈.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간다. 저렇게 무리해서 웃고는 있지만 두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터였다.
유이는 자신도 모르게 리에르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는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고 무리하는 거로 보였다.
유이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면 차라리 낫겠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에렌 언니라면 어떨까.’
리에르의 첫사랑. 아직도 잊지 못하는 금발의 여성.
유이는 자신의 은색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만약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금발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리에르의 곁에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닌, 에레사였다면 어땠을 것인가.
한가로이 움직이던 수레바퀴는 어느덧 멈춰 섰다. 목적지에 이른 마차의 문이 열리고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좋은 숲이군요.”
유트는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저 푸르고 푸른 나무로 이루어진 융단. 인간의 탐욕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숲. 인간을 경계하지 않는 동물들이 호숫가의 물을 향해 입을 적신다.
누구나 이곳의 경치를 보면 이런 곳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단, 이곳에 살기 위한 자격은 그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네, 저도 가이와 함께 이곳에 정착할 것을 생각하니 기쁘네요.”
운디라는 남편도 함께였으면 좋을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달라져야만 했다. 아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선 떠난 남편을 보내줘야만 했다.
운디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라는 처음 보는 엘프의 숲을 보고서 멍해 있었다.
이렇게나 웅장하고 푸른 것을 보는 건 그에게 있어 처음이었다.
구구구, 울어대는 새의 울음소리는 귀를 기울이게 했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솟아오른 거목들은 울타리와도 같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드는 수풀의 손짓.
그것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부르는 듯 자상했다.
바람에 어우러져 바람과 함께 몸을 흔드는 풀잎의 노래.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하게 하였다.
신선하고 맑은 공기는 살아 있는 생명을 더욱 살아 있게 만든다.
엘프가 숲을 떠나 살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이 좋으니까. 그곳이 맑으니까.
“건강하게 멋진 엘프로 살아야 해.”
유이는 귀여운 가이라와 헤어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보였다.
가이라도 짧은 시간에 깊이 정이 들었는지 유이의 품에 안겼다. 유이도 가이라를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중에 커서 꼭 데리러 갈 테니까 기다려!”
“응, 그래.”
유이는 가이라가 너무 귀엽다는 듯 그를 꼭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가이라는 유이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리에르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넌 내가 커서 꼭 복수하러 갈 테니까 조심해!”
적어도 가이라가 크려면 십여 년 이상 흘러야 할 테고, 그때면 리에르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약속. 리에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록 하지.”
리에르의 말에 가이라는 흥,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유이를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엘프의 눈빛을 지어 올렸다.
‘남녀 차별이냐?’
리에르는 가이라가 유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솟아났다. 그래도 저 정도라면 다행인 편이었다.
가이라는 항상 리에르에게 복수하겠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심 자신의 부친이 사용하는 검술을 익히고 싶어서 했다.
현재로선 레필리아 레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대륙에서 셋이었다.
한 명은 가이라의 눈앞에 있는 리에르.
또 한 명은 포스 오브 머더러인 리즈 지센라이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단의 선지자로 있는 아르미안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아르미안은 착실하지 못했다. 리에르에게 검술을 사사해 준 것 역시 흉계가 있었다.
리즈는 성격이 나빴다. 절대로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열을 타고났을 리가 없었다.
“그대들의 가는 길, 축복이 함께하기를.”
“축복이 함께하기를.”
운디라의 인사. 그리고 맞인사하는 유트. 그것을 끝으로 엘프 모자는 빛의 숲으로 걸어 나갔다.
아직 한쪽 다리가 전부 재생하지 않아 걷는 것이 불편한 운디라.
그런 그녀의 목발이 되듯이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조그만 엘프 소년.
그들은 둘이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로 의심치 않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리에르와 유트 남매는 미소를 머금었다.
“갈까?”
유트는 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붉은 눈동자를 가진 유이는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충혈 눈알, 가자고. 너희가 사는 곳을 이 리에르 님이 같이 가주신다니까?”
리에르는 마부석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그런 리에르를 보며 유이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엘프들은 숲이 고향이라고 좋아하던데, 너도 고향 아니었어? 이 바보 원숭이야.”
“또 시작이다.”
리에르가 유이를 쏘아보자 서로 간의 눈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보고 아르카는 말문을 열어 보였다.
-이상합니다. Master와 유이라고 불리는 것은 둘만 남아 있을 땐 번식하려 합니다. 하지만 다수가 있으면 전투 Mode입니다. 주변 환경에 구애되는 무언가라도 있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아르카의 말에 리에르와 유이의 얼굴이 대번 붉어졌다.
유트는 아르카의 말을 듣고서 뭔가 큰 오해를 한 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어색한 공기 속의 세 사람과 한 검이 정적을 지키고 서 있었다.
* * *
“흥, 꼭 복수하러 가줄 테야.”
엘프의 영역, 엘프의 낙원.
님 바르시아에 들어서면서 가이라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운디라는 그런 가이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말했다.
“가이, 알고 있잖니. 리에르는…….”
“몰라 그딴 녀석. 게슴츠레한 원숭이 눈을 해서, 나중에 유이 누나 꼬드길 게 뻔해!”
가이라의 말을 듣고 운디라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에는 아빠를 죽인 원수로서 투덜거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가이라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이미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언데드가 된 남자. 오로지 가족을 지킨다는 자각 하나만으로 삶을 영위해온 남자.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나락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고통에 끝맺음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리에르였다.
운디라와 가이라는 절대 자신들의 손으로 리안덴을 쉬게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소중한 이는 영원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죽은 리안덴이 자신 때문에 가족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원할 리 없다.
리에르는 그에게 구원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이라가 리에르를 미워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의 곁에 있는 은발의 아름다운 소녀. 그녀와 함께 있는 그를 질투한다.
엘프 모자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숲의 안길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면 이제, 님 바르시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운디라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미소 지었다.
“여기부턴 우리 엘프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된 영역이란다. 엘프만이 이 문에서 축복받고 환영받을 수 있단다.”
운디라는 독특하게 아치형을 이룬 나무의 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요?”
가이라도 처음 보는 나무로 이루어진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님 바르시아를 수호하는 숲의 트린트들.
그들은 엘프와 조화를 이루었고, 그들의 지혜를 빌리는 대신 그들의 삶을 수호했다.
운디라 그녀도 아직 어린 엘프였을 당시에 퍽 신기했던 광경이었다.
엘프만이 통과할 수 있는 차원문. 이곳은 한눈에 보아도 신비로운 장소였다. 트린트의 웅장한 줄기가 모든 것을 감싼 듯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