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53)
레필리아 레소드-153화(153/398)
레필리아 레소드 153화
아키서스 공방전(8)
“자, 이제 불필요한 논쟁보단 앞으로 전쟁 개요를 설명하겠습니다.”
리즈의 매혹적인 루비색 눈동자가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런 이의가 없을 때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이 열렸다.
“적의 총지휘관 티미 아크우드. 시기심이 많으며 좁은 그릇을 가진 남자로서 자신에게 쓴 말을 해주는 충신보단,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간신을 좋아하는 인물이죠.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교단의 대군을 이끄는 장군이 되었으니 그의 허영심은 극에 달했을 겁니다. 어쩌면 역사책에 보았던 전쟁 영웅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할지도 모르죠.”
리즈의 말투는 마치 눈앞에 티미가 있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실내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올 뻔했다.
오트리아 제국의 중요 인사로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편하게 권력의 정점에 선 젊은 지휘관. 권력의 지배층이 되기 위해선 그의 과거는 거짓으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적군 200기를 막아냈다. 작은 마을을 습격한 몬스터를 학살했다.
피의 축제에서 많은 사람을 지켰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런 소문은 만드는 만큼 효과가 있었다. 순진한 국민은 교단의 교리 안에 사는 것이 편안했다. 아울러 그곳에서 맹목적 삶을 살게 되면 어떤 말도 믿고 따르게 되었다.
“티미 아크우드는 종달새 같은 인물이죠.”
흔히 전략회의를 할 때 작전에 대한 명칭을 지정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하지만 적의 총대장을 종달새와 비유하는 행동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리즈의 말투에 실내의 사람들은 웃어야 할지, 인상을 찌푸릴지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왕, 은발의 청년은 피식 웃으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적절하군요. 그는 부리를 쉬지 않고 간사한 말을 내뱉으니까.”
리즈는 여유롭게 미소하면서 대답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종달새는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교단의 뛰어난 인재 중 누군가가 대군을 이끌었다면 우리도 큰 피해를 감수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허영심으로 가득한 종달새는 작은 날갯짓을 펄럭이며 아프지도 않은 부리를 흔들겠죠. 덕분에 우리는 종달새의 허영심을, 그의 시기심을 자극하여 분열시키고, 분열시켜서 우리의 땅 바깥으로 단 한 명의 적군도 살아나가게 하지 못할 겁니다.”
리즈의 말은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더군다나 적의 대군은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그런 적을 학살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광오한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페리안에 속해 있는 영주들은 잘 알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재상은 허무맹랑한 말을 진짜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단, 적군에 주의해야 할 남자가 있습니다.”
리즈 스스로 주의를 당부하는 것은 굉장히 의외였다. 그는 세컨드 포스인 만큼 천하에 무서울 것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존재였다.
“빅스터 나이브만. 제국의 황제 실 루드비히 오트리아가 신군이라는 칭호를 선사했던 천재 전략가입니다. 이번 전쟁 최대의 아군은 티미 아크우드고, 최대의 적은 빅스터 나이브만이 될 겁니다.”
리즈의 말에 회의실은 술렁였다.
확실히 티미 아크우드의 명성에는 거품이 많단 것을 대다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끄는 대군을 이길 수 있으리라 희망하였다.
하지만 빅스터 나이브만의 명성에는 거품이 없었다.
대륙을 넘어 동방의 제후들에게까지 위협을 보여주던 황제. 실 루드비히 오트리아는 매우 뛰어난 정복 황제였다. 그런 그가 10대 소년을 옆에 두었다.
그 어린 소년은 실과 함께 동방국에 출정하여 직접 고안한 공성 병기를 내놓았다. 아울러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실의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
단 두 달 만에 이루어진 타 대륙 점령전의 결과는 10개 국가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동방의 나라에 불어 닥친 공포는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 전설 중의 하나는 소년에서 중년인이 되어 있었고 전략에도 완숙미가 더해져 있었다.
만약 그들 가문이 아크우드 종가에 묶여 있지만 않았어도 빅스터는 날개를 달았을 터였다.
“또한, 교단 최강의 기사, 레이루나도 참전한답니다.”
강한 상대와는 레퀴엠 전투(일기토)를 벌여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교단 최강의 기사. 이 두 사람의 이름에 회의실 내부는 침묵만이 가라앉았다.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이미 그 둘에 대한 대비책은 충분하니까요.”
리즈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미소로 모두를 훑어보았다.
“선발로 나가 있는 프세 경은 수성에 성공할 겁니다. 수성을 시작으로 레온 경, 테스타롯사 경 등 근위 기사를 필두로 패전해 주셔야겠습니다.”
긍지가 강한 레온의 눈썹이 처음으로 움찔하였다.
“패전해 주시고, 또 패전해 주세요. 이기시면 안 됩니다.”
당장에라도 회의실에 고함이 나올 듯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누구 하나 반론을 펼치지 않고 있었다.
리즈 지센라이드란 남자가 보여준 것들은 허무맹랑한 말만 있지 않았었다.
마치 폭풍우라도 몰아칠 것 같은 차가운 공기가 어색하게 모두에게 자리 잡았다.
레온은 아직 패전하지도 않았는데 수치심을 당한 것처럼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래야 종달새가 날갯짓하겠죠?”
유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기사와 가신들은 영문 모를 군주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을 받아 리즈는 붉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베리타스. 종달새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스스로 타들어 가기 시작할 겁니다.”
리즈는 이 전쟁의 승패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교단의 검은 음모와 맞서기 위해서는 페리안이 승리가 아닌 대승을 해야만 했다.
동부에 자리 잡은 아렌 국과 동맹을 맺어야만 코스모스 교단을 압박할 수 있었다.
최강의 기사단을 이끄는 아렌 왕국과 함께 교단에 복속 당한 영지들을 해방한다면 코스모스를 붕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것이 리즈의 목적이었다.
하루빨리 교단을 해체해서 대륙의 모든 사람이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진짜 거대한 적과 싸울 수가 없다.
교단과 암암리에 동맹을 맺고, 이 대륙을 언제든 업화의 불길로 태워 버릴 수 있는 거대하고 강력한 적, 이제 오랜 잠에서 깨어난 폭룡 네버 에이지가 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그가 부활함으로써 각지에 몬스터들의 활동을 두드러졌고, 자신의 세상을 삼켜 버린 인간들을 향하여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마왕. 리즈는 그에 관한 이야기는 유트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은 완벽했고, 그를 위한 준비는 엘의 안배와 함께 잘 버무려져 있었다.
하지만 리즈 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엘의 진의에 대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출정 준비를 시작한다.
화려한 출전 나팔 소리가 수도에 울려 퍼졌다. 웅장한 그 화음을 들은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치안이 없다시피 한 북방에 자리 잡기 시작한 질서.
그 법칙을 깨뜨리려는 적과 맞서기 위해 출정하는 은의 수호자들. 그들은 눈처럼 희디흰 백마 위에서 시민들을 굽어 살폈다.
유트의 뒤를 따르는 근위 기사인 테스타롯사, 그리고 레온. 이 두 사람과 유트 사이엔 긴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미남자가 있었다.
페리안의 정예 은기사 1백.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2천의 병사들이 창과 군기를 곧추세우고서 출전을 시작했다.
승전을 기원하는 무희들의 춤사위. 나이든 노인들은 두 손을 모아 이마에 가져다 대며 기도하였다.
2천의 장병들이 승리하고 돌아오길 원하는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고무시킨다.
푸른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 있는 페리안의 군기. 그것의 바깥에서 유트를 바라보는 리에르는 착잡한 심정으로 인해 낯빛이 좋지 못하였다.
여행을 끝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나라를 위해 출정하는 젊은 왕, 유트.
나라의 일이 이렇게도 바쁜데 보잘것없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먼 길을 찾아 나섰던 단 하나의 친우.
수도에 도착한 이래 유트와 제대로 대화할 시간도 없이 출정하는 그를 보며 리에르는 가슴속이 답답해졌다.
출정을 앞두던 유트와 겨우 독대할 시간이 생겼을 때 리에르는 자신도 함께 출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왕의 친구로서, 손님으로서 성안에 있지만, 그 어떠한 이유가 있다 해도 친구의 위기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넌 이곳에 있어.”
“뭐? 하지만 나도…….”
유트의 거절은 생각도 못 했기에 리에르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널 전장으로 내몰고 싶지 않아.”
리에르의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전쟁 속에서 검을 든다는 것은 생명을 단축하게 하는 일이었다.
리에르는 유트를 지키고 싶었고, 유트 역시 리에르를 지키고 싶어 했다. 절충안 따위는 없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의 뜻을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의 뜻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트와 리에르는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잠시 떨어지게 되었다.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는 유트의 모습을 보면서 리에르 이를 사리물었다. 함께할 수 없는 답답함을 풀 길은 없었다. 적의 총대장은 티미 아크우드였다.
비록 에레사가 생존해 있어도 그녀를 등 뒤에서 찔렀던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당연히 리에르는 그에 대한 원한이 온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같이 가지 못해서 실망스럽구나?”
리에르는 자신의 손을 잡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의 곁에는 어느새 금발 머리카락의 여성이 서 있었다.
리에르는 에레사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높이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다시 재회한 이래 두 사람은 항상 함께 있었다. 그동안 같이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리에르는 에레사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하지만 자신의 불안정한 심장에 관해 이야기하진 못했다.
아니, 그는 애초에 말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겨우 만난 그녀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리즈는 바쁜 일정 덕분에 더 이상 만나지도 못하고 출정을 떠났지만, 또 하나의 포스 사용자가 이 수도에 있었다.
엘 파실드. 최초의 포스, 그리고 죽은 에레사를 되살리기까지 한 신성 마법의 극에 달한 자.
그라면 점점 주기가 빨라지는 각혈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리에르는 에레사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 끝이 결정되어 있어도 조금이라도 더 길게, 더 많이.
수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리에르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레사를 다시 만난 이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행복감.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짧은 행복은 그의 욕심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유트가 점점 멀어지네…….”
같이 페이서스 카에르에 다니던 친구. 항상 함께 어울려 다니던 은발의 친구.
이제는 어린 모습의 그는 없었다. 지금의 유트는 많은 사람의 생각과 희망을 어깨에 짊어진 영웅이었다.
리에르는 전장을 지휘하는 유트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애초에 저렇게 잘난 녀석과 쭉 절친한 친구였단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곧 돌아오겠지.”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애초에 유트가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시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출정한 군대는 이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