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63)
레필리아 레소드-163화(163/398)
레필리아 레소드 163화
아렌 왕성 급습(1)
이검 대장 라비에타는 시야가 어두워지자 죽음을 각오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이 순간과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이 없진 않을 터였다.
라비에타는 눈가를 열어 보였다. 그 순간 아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버러지들이 꾸역꾸역, 잘도 기어 나오는구나.”
라비에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칠검의 파에트였다.
파에트는 두말하지 않고 날카로운 일격을 날렸다. 아일은 자신의 목을 향해 번뜩이는 검을 반사적으로 막았다.
채엥!
아일의 손톱에 둔탁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파에트 경!”
십일검 기사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파에트가 참전하자 반색하였다.
아일은 다 죽어가던 녀석들이 갑자기 사기가 오르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압도적인 힘을 봤을 터였다. 그런데도 벌레들이 달라붙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아르빈트 사람이냐?”
“네가 적혈의 악마냐.”
파에트는 아일의 광기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일은 매끄럽게 잘생긴 파에트의 얼굴을 보며 기분이 상했다.
그의 외모는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고 싫어하던 인물을 닮아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과 똑같이 생겼구나.”
“교단에 최소한의 미의식은 없는 건가?”
포스 오브 어비스, 스스로 최강임을 논할 자신이 있고, 그럴 힘이 있는 아일이었다.
그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나약해야 하며, 절망해야만 했다.
하지만 파에트는 오히려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아일에게는 그런 모습이 묘하게 리에르와 겹쳐 보였다.
아일은 흥분하면서 양손의 손톱을 길게 뽑아내었다.
붕, 호쾌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아일의 손톱은 허공을 갈랐다.
파에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아일은 자신의 공격을 너무나 간단하게 피해내자 동공이 확장되었다.
파에트는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의 검이 아일을 향해 번개처럼 움직였다.
푸쉭.
아일은 허공중으로 피보라가 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적에게서 나온 것인지 구별도 되지 않았다. 그저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일이 뒤로 물러서자 파에트는 거침없이 돌진하여 횡으로 베고 들어갔다.
“이 버러지가!”
아일은 분노를 터뜨렸다.
비록 상처는 얕았지만, 파에트의 빠른 검격은 눈에 비치지도 않았다. 갈색의 날개가 흉흉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주변의 많은 기사를 살상한 그 기류였다. 그것은 닿기만 해도 철이고 바위며, 두부 자른 듯이 잘려 나가는 맹공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파에트는 제자리에서 튕기듯이 뒤로 물러났다.
콰광!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파에트가 있던 자리는 돌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아일은 파에트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청색 날개를 높이 쳐들고서 기류를 뿜어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매서운 바람이 파에트를 따라 나갔다.
“바퀴벌레처럼 요리조리 도망만 다니느냐, 천하의 아르빈트께서?”
아일은 기고만장해하며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더 강력한 기류를 뿜어내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파에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어깨까지 검을 들어 올렸다.
“제2식…….”
“다 뒈져 버려!”
아일의 날개에서 생성된 갈색의 기류는 이제 회오리처럼 주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왕성의 장식품도, 쓰러진 채 생명을 유지하는 기사들마저 모두 찢어버리기 위한 맹공.
그의 잔혹함을 보며 파에트는 들어 올렸던 검을 유유히 움직였다.
로열 나이트(Royal Knight).
파에트는 그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기술을 사용했다.
아일의 눈앞에 파에트는 어느새 사라졌다. 단지 붉은색 섬광이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다는 것만 느껴졌다.
취이익!
분수처럼 쏟아지는 새빨간 피. 아일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피 묻은 검은 들고 서 있는 파에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파에트는 자신의 검을 허공에 한 번 털어내 보였다.
그때였다.
아일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점점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쿵!
아일은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시야 안으로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몸뚱이가 보였다.
아일은 지금 벌어지는 현실을 믿기 어렵다는 듯 동공을 크게 열어 보였다.
내려다보는 파에트, 올려다보는 아일. 두 사람의 시선 차는 명백했다.
아일은 지금껏 인간을 바라볼 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달랐다.
자신이 인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뺨에 닿는 바닥의 차가움은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시켰다.
근위 기사들도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파에트를 바라보았다.
적혈의 악마. 그 이름은 전 대륙을 공포로 물들였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런 존재를 단신으로 베어 넘긴 인간이 인간으로 보일 리 없었다.
꿈틀.
아일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었다.
푸쉬식!
새빨간 피가 손을 적시고, 시야를 흐리게 한다.
기사들은 다시 일어서는 아일을 보면서 기가 막힌 표정을 지어 올렸다.
지금의 아일은 파에트의 일검으로 인해 허리가 깊게 베어 거의 잘려 나가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아일은 피를 쏟아내면서도 일어서 보였다.
파에트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잡혔다. 그는 집어 넣었던 검의 그립을 다시 움켜쥐었다.
“감히…… 나를…… 이 몸을…… 버러지…… 따위가!”
아일은 성난 맹수처럼 포효하였다. 아직 지지 않은 갈색의 날개가 불꽃에 타들어 가듯 주변에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파에트는 재빨리 아일의 목을 향해 발검했다. 이번의 일격으로 상대의 목을 베어 땅에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챙!
하지만 파에트가 뻗은 검은 갈색의 기류에 막히며 둔탁한 소리를 뱉어냈다.
아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르미안이 조심하라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평생 자신이 알 필요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기사들은 생채기도 내지 못했던 아일의 몸이었다.
하지만 파에트의 검만은 예외였다.
아일은 더 이상 버러지를 얕보지 않기로 했다. 최강, 최악의 존재인 포스가 방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선언이었다.
홀에는 갈색의 기류가 다시 한번 소용돌이쳤다. 그 기류의 가운데에서 아일이 흉흉한 눈빛을 뿜어낸다.
무방비 상태로 목숨만 보전했던 기사들은 아일의 기류에 살이 찢어지고 목숨이 잘려 나갔다.
파에트를 지원하기 위해 다가오던 일검, 이검 대장들도 기류를 막아내느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파에트 역시 거의 직감에 의존해서 기류를 회피했다.
쉬익!
파에트는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일의 목을 향해 검의 궤적을 그렸다.
탱!
아일이 가까스로 공격을 막았다. 그러고는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터뜨렸다.
“비천한 것이 감히……!”
아일은 반쯤 미친 상태에서 파에트를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마나로 이루어진 형형한 빛의 손톱이 벽과 바닥을 두부처럼 잘라댔다.
매섭게 몰아치는 아일의 공격을 받아내며 파에트는 뒤로 밀려났다.
파에트의 공격에 아일의 살점이 베였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
파에트는 위기감을 느끼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과다 출혈로 즉사했다. 하지만 포스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였다.
아일의 손톱뿐만이 아니라, 그의 등 뒤에 솟아난 기류는 틈만 나면 파에트를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파에트는 번번이 그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틈틈이 반격했다.
“이놈!”
아일이 파에트에게만 집중하자 일검 대장 피터가 검을 고쳐 잡고 덤벼들었다. 아일의 기류는 점점 촉수 형태로 바뀌어갔다.
피터는 날아드는 기류를 카이트 실드로 비껴 막으며 충격을 감소시켰다. 그리곤 검을 뻗어 아일의 등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피터의 검은 아일의 등을 관통하지 못했다.
그의 검은 아일의 몸에 닿기 전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버렸다. 곧바로 촉수들이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쾅!
피터는 날아드는 기류를 방패로 막아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방패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겨우 버텼지만, 피터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으며 쓰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에트는 다시 한번 검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파에트가 보여주는 신속의 검은 눈부시게 허공을 유영했다.
타닥, 턱! 턱!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파에트의 검은 막히기만 했다. 뚫리지 않는 그의 방어막을 보면서 파에트는 혀끝을 차 보였다.
갈색의 촉수들은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파에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에트는 그것들을 옆으로 회피하면서 양손으로 힐트를 말아 쥐었다.
아일의 손톱, 그리고 촉수들이 춤을 추며 파에트를 노리고 들어왔다. 파에트는 몸을 숙여 아일의 손톱을 피하고 검을 휘둘렀다.
투다닥!
아일의 촉수들은 파에트의 검격에 잘려져 나갔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통증에 아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인간이 포스의 기운을 베어 넘긴단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해내는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파에트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었다. 허공을 가르는 맹렬한 검격은 이번에도 포스를 베어 넘기지 못했다.
몇 번을 공격해도 소용없었다. 포스가 포스인 이유는 인간과는 전투 능력치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한 번에 다수를 공격할 수 있는 공격력. 그리고 웬만한 공격들은 전부 소멸시킬 수 있는 절대 방어막.
아일은 파에트의 공격을 무시하고서 손을 내려쳤다. 그는 내리치면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리에르가 자신의 형인 파에트가 죽는단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뿐 아니라 형을 죽인 이가 철천지원수와도 같던 자신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아니, 어차피 죽은 놈이니 생각조차 할 수 없겠지.’
아일은 극도의 쾌락을 느끼며 손톱을 뻗어냈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시야 앞으로 카이트 실드가 막아섰다.
어느새 다가온 피터가 검도 버린 채, 양손으로 실드를 들어 파에트를 보호하고 있었다.
아일이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파에트는 검격을 그어 내렸다.
소용은 없었다. 하지만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왕녀를 지켜야 하는 의지가 있었다.
파에트마저 적혈의 악마를 막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챙!
다시 한번 파에트의 날카로운 검격이 아일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이번에도 공격은 갈색의 기운에 막혀 무위로 돌아간다. 하지만 파에트는 멈추지 않고서 연속으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아일이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손톱을 한 번 휘두른다. 하지만 파에트는 상대가 한 번 공격하면 최소 다섯 번 이상 검격을 가했다.
“이 바퀴벌레 같은 자식!”
아일은 갑자기 분노를 느꼈다. 그저 한 번만 밟히면 몸이 으스러질 벌레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전부 피해내고, 오히려 반격까지 해왔다.
파에트는 계속해서 한 점만 노리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아렌의 기사들은 임기응변에 강했다. 그들은 인간과의 전투뿐만이 아니라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도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잊힌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아무리 화살을 퍼부어도 두꺼운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 눈에 비치지도 않을 빠른 움직임으로 목을 베어가는 몬스터.
그런 존재들과 전투에 전투를 반복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정예 중의 정예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정예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남자. 그가 바로 파에트 아르빈트였다.
아일의 손톱과 마나 자장은 파에트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분명 그 공격들은 인간에게는 눈에 비치지도 않을 속도였다.
그때였다.
“컥!”
아일은 갑자기 가슴팍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신음을 내뱉었다.
아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파에트의 검 끝은 자신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