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71)
레필리아 레소드-171화(171/398)
레필리아 레소드 171화
엘의 음모(4)
-Thousand Arms Mode로 변환합니다.
위이잉!
검은 자장이 일어나며 아르카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검은 큐브들이 나뉘고, 또 조립되었다.
리에르는 손안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라지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 총신이 쥐어졌다.
그의 시야 안으로 에레사의 위태로운 모습이 보인다.
아일이 그녀를 향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나 충전 완료.
스테이시스 필드의 영역은 외부의 공격을 차단한다. 하지만 안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일의 거대한 입은 스테이시스 필드 공간 안에 있는 에레사를 통째로 덮쳤다.
도망가려던 그녀는 필드 안에 갇혀서 꼼짝 못 하고 아일의 입안에 삼켜진다.
리에르는 에레사가 끔찍한 소리와 함께 잡아먹히는 것을 보고 눈가를 떨었다.
에레사는 삼켜지면서 리에르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았다.
그의 괴로운 모습을 보며 슬퍼해야 할지, 고소해서 해야 할지 몰랐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황당하게 끝맺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우우웅!
아르카의 총신에서 광활한 빛을 뿜는 마나 탄환들이 쏟아져 내렸다.
콰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진득한 녹색 체액이 휘몰아쳤다.
흔들리는 건물 덕분에 돌 먼지가 일어난다. 그래도 괴물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Stasis Field 아직 건재합니다.
아르카는 연인이 삼켜지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아 있던 리에르를 일깨워주었다.
보호막이 무사하다는 것은 에레사도 무사하단 것을 의미했다. 그제야 리에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현재 상황에 집중했다.
뿌연 먼지 사이로 괴물의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계속 으드득거리며 씹어 내리고 있었다.
“이 자식!”
경악한 리에르의 눈동자 안으로 웃고 있는 듯한 괴물의 얼굴이 보이자 이를 사리물었다.
아르카는 상황에 맞게 총신에서 검신으로 변환되었다.
리에르가 칠흑의 검을 들고서 달려들었다.
아일 하사드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리에르를 알아보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리…… 에르……!
아일은 뜨거운 격정을 담아 리에르의 이름을 상기했다. 그리곤 광기 서린 눈동자를 열며 웃어 보였다.
매우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듯이 들뜬 모습이었다.
리에르는 아일의 목젖 안쪽으로 보이는 에레사를 확인하고선 이를 사리물었다.
잠시도 멈춰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리에르는 아르카를 들어 올렸다.
* * *
아르미안은 이미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은 그치지 않았다.
아일은 아직도 폭주하며 성안에 들어선 사람들을 사냥하러 나섰고,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용기사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마치 이곳에 와서 할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용기사들은 아르미안의 말을 무시하고 왕성 안을 활개 치고 다닌다.
뭔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아르미안은 이마를 짚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일의 힘이 다시 증대하는 것을 보니 한창 전투 중인 것이 분명했고, 10기나 온 용기사들은 순식간에 반수 이하로 줄어 있었다.
아무리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라고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용기사들을 여섯 마리나 죽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 용기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인물은 한정적이었다.
대륙의 신검, 로이스타 아르빈트. 그가 왕성 안에 진입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아르미안이 고운 입술을 살짝 깨물어 보였다.
안 그래도 아일로 인해 생성된 어비스 결계가 한 번 베였던 적이 있었기에 의심은 했었다.
문제는 그 이후, 아예 결계 자체를 부숴 버린 존재에 대해선 아르미안이라 해도 예상이 되질 않았다.
파에트 아르빈트에게는 결계를 부술 힘이 없었고, 마법에 능통한 인재가 아렌 왕국에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아르미안은 로이스타라는 위험요소 보다 그 이후에 결계를 부숴 버린 존재에 대해서 더욱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용기사들을 부른 이유는 혼자 진입한 로이스타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르미안의 명령을 무시하는 바람에 계획은 틀어졌다.
물러서야 할 때였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기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다!”
백색의 갑주에 피를 잔뜩 칠한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녀가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아르미안을 향해 무기를 추어올렸다.
아르미안이 데려온 암살자들을 죽이고 선 기사들이다. 절대 약할 리 없었다.
상상할 수 없을 괴물과 싸운 직후였지만 기사들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르미안은 절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왕녀를 인질 삼아 전투를 피할까?’
아르미안은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떠올렸다가 차갑게 웃어 보였다.
애초에 아르미안은 리에르나 리즈에게 검술을 사사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러니 겨우 일반 기사들 따윈 우스웠다.
“안 돼요, 오지 마세요!”
제이미는 아르미안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구하러 달려드는 기사들을 만류했다. 하지만 아르미안은 이미 투명한 검날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제이미의 외침이 그들을 만류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사들은 고양되어 아르미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르미안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기사들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검을 들지도 못할 것 같은 손목을 움직여 기사들의 몸을 베어냈다.
순식간에 기사 네 명이 피를 뱉어내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보며 제이미는 이를 사려 물며 눈물을 토해냈다.
자신을 구하러 오기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죽어 나가는 기사들을 보며 스스로의 무력감을 통탄해야만 했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끝낸 듯이 뒤돌아선 아르미안은 갑자기 뛰어든 검은 인영에 눈동자를 크게 열어 보였다.
격앙된 그녀의 눈동자 안으로 비치는 검은 인영, 피를 뒤집어쓴 채로 제이미의 앞을 가로막은 그는 아르미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르미안은 뒤로 물러서면서 고개를 젖힌 것으로 겨우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투명한 검신을 추켜올리며 빙긋 미소를 지어 올렸다.
검푸른 머리카락에 피로 적셔진 옷가지와 얼굴. 롱소드를 들어서 아르미안을 적대하는 남성은 분노로 가득한 눈빛을 들어 보였다.
“당신이 리엘의 형이군요.”
아르미안은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기사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그리고 리에르와 꼭 닮은 외모.
그의 얼굴을 보면서 아르미안은 그리움을 느꼈다.
여유 넘치는 그녀의 태도와는 달리 동료들을 잃은 파에트는 분노 어린 눈동자로 이를 갈았다.
“녹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조금 전의 그 검술. 네가 교단의 마녀냐.”
“어머, 마녀라뇨.”
아르미안은 애교 있게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로 입술연지를 발랐다.
제이미는 갑작스레 등장한 파에트 덕분에 심적으론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등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파엘 오라버니…….”
파에트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고 제이미가 울듯이 눈동자를 흐렸다.
파에트는 등 너머의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아르미안을 향해 차가운 눈길을 주었다.
아직 멎지 않은 상처, 그리고 지쳐 보이는 파에트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공주를 구하러 온 기사라…… 보기는 좋은데.”
아르미안은 투명한 검신을 추켜올리며 파에트를 겨누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파에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 기사님 꼴이 말이 아니네요.”
아르미안은 파에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파에트가 검술의 달인이라 해도 그녀 못지않은 검술 가였다. 폭주한 아일을 상대로 살아남은 것은 대단한 기적이나 다른 바 없었다.
“너 때문에 나의 동료들이 죽었다. 그리고 내 동생마저도 파멸했지.”
리에르에 대한 말을 듣고 아르미안은 처음으로 움찔하였다. 그녀로서도 원치 않았던 결과와 대가였다.
아무런 죄도 없는 소년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켜 버렸다.
순간의 흔들림을 지우고서 아르미안은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당신의 동생은 비참하게 죽었죠. 당신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아르미안이 먼저 선공을 위해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부상자인 파에트는 덤벼들지 않고 시간을 끌려 했다.
아르미안은 시간이 아까웠기에 빨리 일을 마치려 하였다.
하지만 파에트는 쉽게 당할 남자가 아니었다. 아르미안이 찌르고 들어오는 검을 옆으로 쳐냄과 동시에 몸을 빙글 돌렸다.
‘연계기!’
아르미안은 날카롭게 날아드는 파에트의 뒤돌려 차기를 피해 고개를 젖혔다.
붕!
호쾌한 파에트의 차기가 턱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을 때, 아르미안의 시선 안으로 힐트를 고쳐 잡은 상대의 무기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빠르다.’
아르미안은 급하게 검을 회수하여 파에트의 검을 막아냈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손목을 조이는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르미안은 상대가 부상이 심해서 방심했다.
물 흐르듯이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연속된 공격에 식은땀마저 흘렀다.
순간 아차 하면 목이 달아날 것 같은 감각이 예민하게 찾아든다.
‘어쩔 수 없나.’
챙!
검의 굉음이 울리며 파에트는 뒤로 물러섰다. 아르미안에게 정확하게 들어가던 검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막혀 튕겨 나갔다.
아르미안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그녀의 등 뒤로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던 그것들은 몸만 한 머리통을 흔들고, 톱니 같은 이를 드러내며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린아이?’
파에트는 아르미안의 주변에 생성된 어린아이들을 보고 잠시 머뭇머뭇하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니란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등 뒤로 펄럭이는 조그만 칠흑의 날개. 그리고 광기로 물들어진 커다란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꿈틀거리며 톱니 같은 이를 벌리며 웃고 있었다.
“엄마, 죽여도 돼? 죽여도 되는 거지?”
아르미안은 파에트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미소를 그리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잘 먹겠습니다, 해야지?”
순진무구한 흑요석 눈동자, 뒤틀린 웃음. 전라의 아기들 등 뒤로 보이는 칠흑의 날개 깃털.
녀석들은 이제 갓 생겨난 듯한 날카로운 치아를 들어 보이며 히히히, 웃어 보였다.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파에트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검은 아기들을 향하여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해맑게 웃고 있던 녀석들이 갑자기 모습이 사라졌다. 녀석들은 마치 허공에 튕기듯 깜짝 노랄 속도였다. 파에트는 톱니를 들어내는 아기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강렬한 불길함. 파에트는 전사로서의 감각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것을 느꼈다.
이 느낌과 불안함은 예전 포스로서 폭주했을 때의 친동생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이었다.
아니, 아기의 모습이긴 하지만 녀석들의 얼굴은 리에르와 닮은 머리카락,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파에트는 천천히 왼쪽 팔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어깨너비만큼 발의 간격을 넓혔다. 그의 눈동자에는 네 마리의 아기들이 에워싸는 모습이 비쳤다.
“스톰 브링거(Storm bringer).”
아버지에게 일찍이 사사 받은 신검. 여러 위기 속에서 항상 사용했던 검식이자,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방어형 검술이었다.
마치 번개처럼 잔상을 일으키는 검이 번뜩인다.
보통의 전사들에겐 검의 움직임조차 비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쾌검식이었다. 검은 아기들은 삽시간에 날카로운 것에 베였다.
“어, 어?”
가장 먼저 달려들던 아기의 흑요석같이 맑은 눈동자가 꿈틀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허공에 멈춰져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양팔을 들어서 살펴본다.
스스슥.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손목이 잘려 나가자 아기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양쪽 손목에 이어서 팔, 다리, 등 뒤의 날개도 잘려 나가자 검은 아기들은 땅으로 추락하였다.
땅바닥을 나뒹구는 검은 아기들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몸뚱이를 뒤틀었다.
“아아앙, 아파아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던 검은 아기 하나는 땅바닥에 피를 쏟아내며 팔, 다리를 잃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몸과 머리가 뒤늦게 분리되며 굴러 떨어진다. 곧 몸부림도 멎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