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72)
레필리아 레소드-172화(172/398)
레필리아 레소드 172화
아버지의 뒷모습(1)
파에트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처음 자세를 고수했다.
검은 아기들은 겁에 질려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때 아르미안이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가야, 포스를 써야지?”
아르미안의 말에 검은 아기들은 귀 끝까지 입을 벌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칠흑의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파에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에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번개 같은 잔상을 뿌리는 검을 쏟아냈다.
이번은 아까와 다르게 탱,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들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전에 리에르를 통해서 봤던 그 기운이었다.
다시 검을 번개처럼 움직이려는 파에트의 팔을 검은 아기 한 마리가 물어뜯었다.
“큭!”
파에트는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급하게 물어뜯는 녀석을 쳐내자 다른 쪽에서 날아 들은 아기가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녀석은 단풍잎처럼 조막만 한 손을 들어 파에트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푹!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검은 아기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허벅지에서 쏟아지는 검붉은 피가 무릎을 적시고 발등으로 떨어지자 파에트의 몸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파엘 오라버니!”
무기를 쥔 손을 물려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파에트를 보고 제이미가 비명을 질렀다.
세 마리의 검은 아기들은 광기 어린 포식자의 얼굴로 파에트에게 달라붙었다.
파에트의 다물어진 입가에선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놈들을 떼어내기 위해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한 번 물어뜯은 이상 녀석들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아르미안은 투명한 검신을 들고서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제이미는 파에트를 구하기 위해 검은 아기들을 뜯어냈다. 하지만 아르미안이 걸어놓은 족쇄에 걸려 있어서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었다.
검은 아기는 제이미의 양손이 자신을 움켜잡자, 인상을 찌푸리며 파에트에서 떨어졌다.
“약한 주제에 왜 까불어? 응?”
검은 아기는 그대로 제이미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도 없는 양손으로 제이미가 아기를 쳐냈다. 하지만 쇠를 친 것 같은 둔탁한 느낌만 전달되었다.
“왕녀…… 전하!”
파에트는 고통스럽게 눈을 찌푸렸다. 그가 지키는 왕녀가 검은 아기에게 어깨를 씹히고 있었다.
제이미가 입고 있던 레이스 드레스는 순식간에 피로 젖어 검붉게 변했다.
검은 아기는 비명을 토해내는 그녀의 목을 향해 작은 손을 뻗어내었다.
“아직 죽이면 안 된단다.”
검은 아기는 제이미의 목을 뜯어내려던 손을 멈칫하였다. 그러고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입으로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엄마.”
제이미는 말을 하느라 잠시 떨어진 검은 아기를 향해 양손으로 밀어붙였다.
단단한 쇳덩어리를 미는 듯한 손의 느낌과 함께 옆으로 밀려난 검은 아기는 이마를 찌푸리며 성질을 냈다.
“엄마, 얘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아기 같은 형태를 하고서 말하는 것은 하나하나 잔혹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이미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파에트는 검은 아기 두 마리가 달라붙어 공격을 해대는 통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팔다리 자르는 것도 안 된단다.”
“쳇.”
아르미안의 다정한 말에 검은 아기는 아쉽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제이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검은 날개를 움직이며 제이미 근처를 배회하면서 능청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나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고문 좀 당해볼래?”
검은 아기의 날카로운 이가 비웃는 입술 사이로 검붉게 빛나 보였다. 제이미는 이를 악물다가 주변에 보이는 기사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들의 주변에 떨어져 있는 롱소드, 자신이 쓰던 무기는 아니지만, 충분히 활용할 수가 있었다.
비록 여성이지만 로이스타에게 신검을 사사받은 몸이었다.
하지만 파에트조차 어쩌지 못한 괴물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멍청한 소리야.’
그녀는 자신의 약한 마음을 밀어냈다.
자신은 화장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예쁜 인형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역할을 대행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얌전한 척 살아왔을 뿐이다.
그녀는 손목과 발목을 조이고 있는 검은 족쇄의 불편함을 이기고 죽은 기사의 시체로 뛰어들었다.
“뭐 해?”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검은 아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붉은 피가 달라붙은 기사의 검을 제이미가 손안에 쥐었다.
무거운 것을 드니 어깨의 상처가 통증을 전한다. 하지만 애써 고통을 밀어내고 그녀는 일어섰다.
검은 아기는 제이미가 검을 쥐고서 자세를 잡는 것을 보고 입가를 막고서 풋, 하는 웃음소릴 내었다.
“누나, 지금 뭐 하는 거야? 싸워보려고? 응?”
다른 아기들도 제이미를 보고 대놓고 폭소를 터뜨렸다.
제이미는 그들의 비아냥거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검은 아기들을 해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파에트가 조금이라도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그것 이외에 지금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세 마리 아기들이 배를 잡고 폭소하는 동안 제이미는 검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서 길게 호흡을 내쉬었다.
아르미안은 그사이 양 무릎을 굽힌 채 혼절하고 있는 파에트에게 검을 겨누었다.
‘형제의 피라는 것은 이리도 진한 걸까?’
아르미안은 파에트의 모습을 보면서 리에르를 떠올렸다. 아니, 리에르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묘한 착각마저 들었다.
제이미는 인질 삼아 데리고 있어야 하니 죽이지 못한다.
하지만 파에트는 달랐다. 그가 동생 때문에 교단을 집요하게 조사해 온 것을 알고 있다.
아렌에 큰 영향력이 있는 그는 계획에 방해되는 인물이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죽여야 후환을 막을 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있던 아렌 왕국 정벌전에서 교단의 군대는 참패했다. 그때 선봉에 섰던 인물은 파에트와 엘빈이었다.
“당신 혹시 교단과 손잡을 생각 없어요?”
아르미안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고개 숙인 파에트에게 물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파에트를 보면서 아르미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리에르와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외골수 같은 성격마저 똑같은 듯 보였다.
첫사랑 소녀 에레사를 위해서 살아남기를 택한 리에르. 그리고 크게 다친 상태에서도 굳이 왕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파에트.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답게 형제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파에트의 입가에서 비릿한 말이 흘러나온다. 아르미안은 파에트가 무슨 말을 하는가 사색하던 걸 멈췄다.
이내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는 아르미안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로열 나이트(Royal Knight).”
어둠을 다스리는 제왕의 검.
한순간 번쩍이는 듯싶더니 검이 궤적을 그리며 수직으로 치솟았다.
검을 말아 쥔 파에트의 눈이 아르미안을 놓치지 않았다.
아르미안은 그로기 상태나 다름없던 파에트가 폭발하듯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검을 휘둘렀다.
아르미안의 검이 정확히 파에트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하지만 허공을 찌르는 손의 느낌에 아르미안은 순간적으로 움찔하였다.
그녀가 다음 회피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대륙 최고라고 불리는 신속의 검이 이미 훑고 지나친다.
푸쉭!
아르미안은 배에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끈적끈적한 핏방울이 손안에 만져지며 극심한 통증을 전달했다.
아르미안은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다 벽에 몸을 부딪쳤다.
“엄마!”
검은 아기들이 깜짝 놀라며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아르미안에게 달려들었다. 파에트는 숨을 헐떡이면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었다.
제이미는 피투성이가 된 파에트에게 달려가서 울음을 토해내며 그를 부축한다.
“파엘 오라버니…… 상처가…… 피가…….”
안색이 파리해진 파에트를 보면서 제이미는 울먹이면서 그의 상처들을 손으로 막았다.
그녀의 흰 손가락 사이로 간헐적으로 피가 꾸역꾸역 쏟아진다.
상처 부위를 중심으로 몸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파에트를 안은 채, 제이미는 생각도 하기 싫은 단어를 떠올렸다.
파에트의 죽음.
“안 돼…… 안 돼요, 파엘 오라버니.”
제이미의 고운 뺨 위에 하염없이 눈물이 토해졌다. 파에트의 차가워지는 몸을 끌어안아도 그는 조금도 따뜻함이 느껴지질 않는다.
마치 그녀의 부친인 아레스트 영주의 식어버린 가슴처럼.
검은 아기들은 벽에 등을 기대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르미안을 보면서 제이미 둘에게 흉포한 눈길을 돌리며 이를 갈았다.
* * *
리에르를 마주한 아일은 흉포한 눈길을 지어내면서 이로 말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폭주 상태라서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에 진짜 리에르가 있다는 사실은 형용할 수 없는 쾌락을 느끼게 한다.
잘 갈아진 톱니 같은 이를 드러내며 아일은 미소를 흉내 내어 보였다.
-리에…… 르, 리…… 에…… 르!
거대한 괴물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정예 기사단들도 새삼 두려웠는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Stasis Field 대미지가 쌓이고 있습니다.
아일의 입안에 있는 에레사는 아르카로 쳐놓은 방어막에 보호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입천장과 목구멍 쪽에도 돋아 있는 이빨이 연신 필드를 부쉈다.
그대로 둔다면 결과는 뻔했다.
필드는 소멸하고, 에레사는 잡아먹힌다.
리에르는 소리 나게 이를 으드득 깨물면서 아르카를 쥐었다.
거대한 괴물이 리에르에게 달려들자, 주변에 있던 엘빈과 십일검 기사단이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찮은 벌레들이 몇 모여 봤자 아일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리에르를 바라봤다.
그가 살아 있는 기쁨을, 그를 직접 토막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일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불운한 기운을 느끼고 멈칫하였다.
흥분 상태라서 깨닫지 못했는데 아르미안의 기운이 급격하게 소진되고 있었다. 아일은 당혹감을 느꼈다.
아르미안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아일 자신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가 괴물로서 살아오며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준 존재.
아르미안이 있기에 자신이 있는 것이며, 자신이 있기에 아르미안의 계획도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유혹이 있어도 아르미안의 안전을 방해한다면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일은 그대로 몸을 돌려 그녀에게 향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에레사를 구하기 위해서 리에르가 아일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마력을 집중한 아르카를 들고 자세를 갖췄다.
리에르의 입장에서는 에레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르미안의 위기 때문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일은 리에르의 검을 피하지 못하고 다리가 베이고 몸을 휘청거렸다.
푸쉭!
핏방울이 발목을 타고 흘러내리며 통증이 밀려든다. 아일은 다시금 이성을 잃고서 분노를 표출하듯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버러지 주제에!
아일이 몸을 뒤틀자 수십 가닥의 촉수가 리에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리에르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촉수를 피하고는 아일의 상처 난 다리를 재차 공격했다.
취이익!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 보통의 검이라면 아일의 몸에 생채기 하나 못 낼 테지만 리에르가 들고 있는 아르카는 달랐다.
아일은 다시 한번 발목이 베이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리에르는 단숨에 아일의 발을 디디고 놈의 등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그의 등에 있는 무수히 많은 촉수가 꿈틀거리며 날아들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데도 공격을 해?’
리에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서 다른 방안을 생각했다.
아일의 등 뒤에 달린 촉수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적을 향하여 인식하고 공격해 왔다.
마치 리에르가 이전에 사용했던 홀 블레이드(Whole Blade)처럼 인공적인 포스의 산물이었다.
리에르는 이를 악물면서 날아드는 촉수를 베어내면서 앞으로 나갔다. 잘려 나간 촉수들은 고통스러운 듯이 잘려 나간 단면을 흔들면서 체액을 뿌려댄다.
잘라도 잘라도 끊임없이 날아드는 촉수를 보면서 리에르는 난감함을 느꼈다.
그때 엘빈이 기합을 지르며 아일의 몸뚱이를 베는 것이 보였다.
엘빈의 양손검은 제법 파괴력이 있었다. 아일의 단단한 피부를 짓이기고, 살을 깨부쉈다.
다른 기사들도 엘빈과 리에르를 지원하기 위해서 검을 뽑아 들고서 용감하게 돌진해 왔다.
아르미안의 위기를 느끼고 마음이 급해져 있는 아일은 자꾸만 달려드는 적들 때문에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포효하며 날뛰는 아일을 상대로 십일검 기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