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83)
레필리아 레소드-183화(183/398)
레필리아 레소드 183화
내가 가야 할 길(5)
터질 것 같은 근육과 곰과 같은 체격. 평상복 차림이어도 로이스타는 감출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
“누가 네 녀석의 아버지냐.”
로이스타는 노기 띤 얼굴로 성검 발락시아를 검집에서 뽑아 들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블레이드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환한 불빛을 뿜어낸다.
-위험합니다.
아르카의 다급한 경고음이 들릴 때까지 리에르는 인지하지 못했다.
눈앞으로 날아드는 성스러운 빛줄기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젖혀 피했다. 우연에 불과한 회피였다.
리에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르카를 쥐었다.
“아르빈트 가의 치욕은 가주의 손으로 매듭짓겠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로이스타의 눈빛.
엘리는 경악한 표정으로 로이스타를 만류하려 하지만 하녀가 가주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이스타의 뒤편에서 리에르를 바라보는 에레사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전투하지 않으면 당합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한심한 아들이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 * *
딱!
리에르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갑자기 강철같이 단단한 손날이 날아와서 머리를 쳤다.
어찌나 강하게 얻어맞았는지 담금질용 쇠망치로 한 방 맞은 듯했다.
“뭘 멍해 있나.”
중후한 로이스타의 목소리를 눈앞에서 듣자 리에르는 정신이 퍼뜩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망상에 빠져 있던 리에르는 얼굴이 붉어져서 볼을 긁적였다.
로이스타의 맹수 같은 눈빛이 몸 곳곳을 훑는 것처럼 느껴졌다.
리에르는 고개를 숙이며 뒤늦은 인사를 올렸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 집인데 오지 못할 곳이 어디 있느냐.”
리에르의 말을 로이스타가 차갑게 받았다.
로이스타는 훈련장 주변을 굵은 눈빛으로 훑어갔다.
“오늘은 혼자냐.”
“네…….”
하필이면 이럴 때 파에트가 없었다.
리에르는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것이 어색했다. 남보다 못한 부자간이었다.
에레사나 엘리도 부자간의 대화에 낄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리에르는 음험한 엘빈의 외모가 얼마나 귀여운 외모인지를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흑곰 같은 아버지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듣자 하니 검의 실력이 좋다고 들었다.”
로이스타의 말에 리에르는 겸양을 섞어서 말했다.
“제대로 정련되지 않은 조잡한 나열일 뿐이죠.”
“엘빈마저 칭찬했다면 사실일 테지. 보여봐라.”
리에르는 로이스타의 말에 영문을 몰라 “네?” 하고 되묻고 말았다.
로이스타는 여전히 무표정한 눈을 들어 다시 우직하게 닫힌 입을 열었다.
“보여보라고 했다.”
리에르 자신이 가진 모든 검술을 보여 보라는 듯한 로이스타의 눈동자,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대련은커녕 기본적인 검술조차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랬던 그가, 대륙 최강이라고 불리는 아버지가 상대해 주겠다고 말했다.
리에르는 가슴속에서 세찬 고동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로이스타는 허리춤에 차여진 성검 발락시아를 들었다.
엘리가 다람쥐처럼 쪼르르 다가가서 로이스타의 검을 받았다.
그녀는 묵직한 검을 받고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하지만 입술을 끙 깨물고서 버텼다.
로이스타는 연무장 안에 비치된 가검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이내 잘 맞는 감촉을 찾았는지 가검 하나를 들었다.
“오기 어렵다면 내가 가마.”
“하지만…… 그런 검으로 제 검을 받으시면…….”
성검 발락시아도 아닌, 일반적으로 주조되어 만들어진 날 없는 검. 그런 것으로 마검이라고 불리는 아르카를 받아낼 수는 없다.
로이스타의 실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나, 검의 차이가 난다면 압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로이스타는 아무런 대꾸 없이 발끝을 움직였다.
움직였다고 생각한 것은 순간, 어느새 로이스타는 리에르의 코앞에 있었다.
리에르는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뒤늦게 아차 싶어서 헛숨을 들이켰다.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리에르는 아버지의 가검이 멋지게 잘려 나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가검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반응이 좋다.”
나지막한 아버지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다.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남기지 않는 로이스타의 가검을 보고 리에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우측입니다.
아르카의 말을 듣고 리에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 몇 올이 무언가에 스쳐 잘려 나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방어만 하면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할 것을 제의합니다.
리에르도 아르카와 생각이 똑같았다. 리에르는 칠흑의 검을 들어 로이스타에게 찌르고 들어간다.
성능 좋은 마검이 아버지를 다치게 할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최강이라고 불리는 로이스타가 자신의 검 따위에 당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로이스타의 왼손이 아르카를 향한다.
리에르는 깜짝 놀라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뻗어진 공격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놀란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로이스타의 손이 아르카에 닿는 것이 보였다.
리에르는 아버지가 크게 다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로이스타의 손은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며 검날을 내리쳤다.
마치 격투기에서 상대의 펀치를 쳐내는 셔빙(Shoving)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리에르의 검 궤도는 바뀌었다. 그는 곧 자신의 목에 차가운 감촉을 느껴야만 했다.
“겨우 이런 거로 잘도 살아남았구나.”
공격과 동시에 방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리에르는 잠시 얼이 빠졌다.
그 순간 로이스타의 차가운 냉소가 들려왔다.
“아니면 봐준 거냐, 이 로이스타를?”
검은 기계처럼, 잔혹하게 움직이는 근육들과 무섭게 내리쬐는 안광. 리에르는 스스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단 것을 깨닫는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죽어도 쓰러질 것 같지 않은 존재였다.
포스를 사용한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힘 따위는 통용되지도 않는 인물이다.
리에르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아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엘빈과 반복했던 대련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하는 것은 다르다.
이유 모를 설렘과 긴장감이 몸 곳곳을 옥죄인다.
리에르의 몸 주변으로 푸른 기류가 일었다.
리에르는 레필리아 레소드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검법을 선보였다.
2식 쉐도우 워드.
검의 잔영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상중하로 동시에 들어오는 그림자 공격에 로이스타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공격이 스친다. 하지만 리에르는 검의 궤도를 꺾으면서 로이스타를 추격했다. 양옆과 위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검의 궤도를 보면서 로이스타의 검이 천천히 움직인다.
리에르는 갑자기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로이스타의 왼손은 리에르의 손목을 붙잡았다.
상대의 검 끝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예상치 못한 변칙이 들어왔다.
리에르의 검은 로이스타에 닿기는커녕 도중에 멈췄다. 다시 한번 로이스타의 검은 리에르의 목에 겨누어졌다.
“두 번째 죽었다.”
다른 화려한 기술 없이, 아주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제압당했다. 리에르의 머릿속은 실타래가 엉킨 듯 혼란스러워졌다.
비록 아버지 로이스타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그 어떤 상대에게도 먹힌 검이었다.
견제기로 이만큼 쓸모 있는 기술은 없었다.
“끝난 게냐.”
리에르는 왠지 오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로이스타의 눈은 어렸을 적을 떠올리게 하였다. 한없이 높고 거대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존재.
“시작이죠.”
리에르는 잡힌 손목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원에서 원으로, 호에서 호로.
레필리아 레소드 특유의 흘려보내는 듯한 움직임으로 로이스타의 손목에서 벗어난 리에르는 레필리아 1식을 응용했다.
예상대로 로이스타는 다시 왼손을 들어 검날을 쳐내려 하였다.
리에르는 허리를 노리던 검을 들어 올려 로이스타의 목을 향한다.
찰나의 순간에 바뀐 검의 궤도는 많은 전사의 목숨을 앗아간 섬광의 기술이었다.
챙.
처음으로 로이스타와 대련을 하면서 검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로이스타의 가검이 올라와 리에르의 검격을 막아낸 채로 있을 때,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
“세 번째 죽을 테냐.”
리에르는 로이스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개를 갸웃하였다. 하지만 곧 알아들을 수 있었다.
놀랄 만큼 강력한 힘이 리에르의 검날을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버티려고 손목에 힘을 주었지만, 어느새 칠흑의 검날과 차가운 가검의 느낌은 어깨와 목에 닿은 상태였다.
바인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 죽었다.”
무심한 로이스타의 눈길이 리에르의 멍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힘에 밀려 아버지의 검이 목에 닿았다.
챙, 채엥!
파에트는 훈련장 문을 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엘빈이 오지 못하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리에르의 상대가 되어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파에트의 시야 안으로 리에르의 얼굴이 땀에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칠흑의 검, 아르카를 들어 올린 리에르는 파에트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 있었다.
그런 동생의 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예상치도 못했던 아버지였다. 오랜만에 검을 들은 그의 모습에 파에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지어 올렸다.
“마흔일곱 번째 죽었다.”
“이, 괴물!”
리에르는 이렇게 막막하게 느껴지는 대련은 처음 경험하였다. 어떤 공격이든 제대로 뻗기도 전에 일격을 당한다.
맨손으로 검을 잡아내지 않는가 하면 레필리아 레소드의 마검술을 이미 꿰뚫어 보는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다시 한번 검을 막아낸 로이스타가 가볍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펑!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리에르는 로이스타의 발차기를 맞고서 뒤로 쭉 밀려 나갔다.
겨우 양팔을 교차하여 복부를 방어했지만, 팔이 마비되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리에르는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거 사람 발 맞아?’
검과 검의 대결에 있어 차기나 어깨로 밀치는 등의 행위는 변칙의 의미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이스타의 발차기는 견제가 아닌, 일격필살의 느낌이었다.
리에르는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어 올렸다.
“아비에게 괴물이 뭐냐. 마흔여덟 번째 죽었다.”
“검에 닿지도 않았거든요?”
리에르는 검에 맞지도 않았는데 또 죽었다고 선언하는 로이스타를 향해 항의하였다.
하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 로이스타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제대로 맞았으면 네 몸이 온전할 것 같으냐.”
황당하다는 리에르의 표정을 보고 파에트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더니 입 주변에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리엘, 아버지 말이 맞아! 괜히 아버지가 옛날 별명이 성난 곰이었는지 모르냐?”
로이스타는 신검이라는 호칭 이전에 성난 곰이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화가 나면 검이고 뭐고, 맨손으로 갑옷 입은 기사들도 때려잡는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었다.
“곰…….”
로이스타는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안광을 뿌리면서 파에트를 노려보았다.
파에트는 그제야 아차 싶어서 하하,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 로이스타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서 곰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했다.
전장에서 로이스타를 향해 곰이라고 호칭한 적은 단 한 명도 남겨놓지 않고 때려잡은 거로도 유명했다.
“다시 가요!”
리에르는 처음엔 로이스타가 방심하다 다칠까 봐 살살했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져 있었다.
리에르는 최선을 다해도 로이스타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칠흑의 검을 어깨까지 수평으로 올린 채로 리에르는 아르카에게 속삭였다.
“가검 형태로 변환해.”
-알겠습니다.
아르카의 검날이 분자형태로 갈라지며 밋밋한 모습으로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에게 배우진 않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도 훌륭하게 검술을 갈고 닦았으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단 것을 보이고, 증명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