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87)
레필리아 레소드-187화(187/398)
레필리아 레소드 187화
아키서스 전쟁(3)
도망치는 기습 부대를 보면서 빅스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병기고를 방어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백마를 탄 남성은 적국의 왕이다! 절대 놓쳐선 아니 된다!”
도망치는 기습 부대를 향해 빅스터는 계속해서 독려했다.
“적장을 맞추는 자에게 큰 상금을 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마라! 추격할 수 있는 기병대를 당장 끌어모아라!”
빅스터의 명령에 군사들의 행동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상대의 어이없는 행동에 속으로 뇌까리며 웃어 보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영웅주의에 빠져서, 자신의 아버지 흉내라도 내고 싶었는가?’
방어 부대의 화살이 후퇴하는 기습 부대를 향해 날아든다. 아쉽게도 누구도 유트를 맞추지 못했다.
빅스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때 누군가가 한 명 앞으로 나섰다. 그의 체구는 남들보다 머리 몇 개는 올라온 거구였다.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비벼 끈 그는 거대한 장궁을 들었다.
“니들은 어디 가서 활 쏜다는 말 하지 마라.”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남자가 누군지 빅스터는 알고 있었다.
빅스터와 같은 대륙 오제, 신궁의 아로운이었다.
그의 전투력은 능히 신검의 로이스타에 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남자가 직접 대궁을 당겼다.
장정 몇이 달라붙어야 당길 수 있을 것 같은 대궁의 시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굵직한 화살을 쏘았다.
쉬이익!
아로운의 화살은 정확하게 유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뭔가를 알아차린 유트가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그는 정확하게 화살에 맞았다.
밤중에, 그것도 잘 보이지 않는 표적물을 그대로 맞춘 아로운을 보고 빅스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저씨는 상금 좋아한다. 안 주면 죽는다?”
“물론입니다.”
관심 없다는 듯이 돌아서는 아로운을 보고 빅스터는 미소를 그렸다.
전쟁은 이제 끝났다.
빅스터는 기병대에게 유트의 추적을 명했다. 아로운의 화살에 맞은 유트는 당장 즉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은 분명했다.
교단의 추격대가 유트를 뒤따랐다. 추격대는 금방 유트의 기습 부대를 따라잡았다.
추격대는 큰 보상을 떠올리며 신이 나서 쫓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적진에서 기병대가 돌격해 왔다.
유트의 첫 번째 근위 기사 레온 폴 하르츠였다.
그는 자신의 주군을 보고 노기를 감추지 않았다.
뒤쫓아 오던 추격대는 아쉽게도 유트의 목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오히려 적에게 역추격을 당해서 수십의 추격대가 하기까지 했다.
보고를 들은 빅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트의 목을 취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큰 전과였다.
화살에 맞아, 의식을 거의 잃어갈 정도로 겨우겨우 복귀했다면 더 이상 전쟁에서 깨어나긴 힘들었다.
즉, 전투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패배해 버리는 것이다.
* * *
많은 인원이 리즈의 마법에 발목이 잡혀, 짐과 함께 흙덩이 속에 파묻혔다.
그 속을 겨우 비집고 나온 사람들은 이내 번뜩이는 칼날에 목이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송 대원들이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서 당했다.
말 그대로 페리안의 기습 부대는 도망치는 적만 베면 끝났다.
리즈는 자신의 보호막을 베어내는 양손검을 보고 있었다.
은은한 푸른 광채를 띈 양손검을 들어 올리며 금발의 남성은 신이 난 듯이 깐죽거렸다.
“임페리얼 프리즘(Imperial Prism). 그 어떤 생명체조차 무릎 꿇릴 수 있다. 그것이 포스라고 해도 말이지.”
금발의 사내가 양손검을 들고서 다시 달려들었다.
땅을 긁으며 뻗어내는 양손검의 기운에 리즈는 옆으로 회피하며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붉은색의 마나가 리즈의 손끝에서 꿈틀거릴 때, 금발 사내의 호쾌한 공격이 파공을 일으키며 스쳐 지나갔다.
검풍에 의해 나무가 부서지고 잘려 나간다.
리즈는 손안에 끌어모은 핏빛의 기운을 쏟아내려 했다.
올려치기 했던 양손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공격에 리즈는 어쩔 수 없이 손안에 담긴 기운을 뻗어냈다.
키기깅, 키긱!
채 형성되지도 않은 핏빛의 창은 금발 인의 양손검과 마멸하며 불똥을 튀겨내었다.
리즈는 자신이 만들어낸 마나의 창살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쾅!
금발 인의 양손검은 리즈가 뻗어낸 기운을 부서뜨리며 땅을 내려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느껴졌다. 리즈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통증이 전해지는 손끝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에 선명하게 보이는 혈흔의 선. 그 선에서 꾸물꾸물 하염없이 핏방울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손목을 적시고 팔꿈치로 스며들었다.
다소 멍한 얼굴로 손바닥을 바라보는 리즈를 향해 금발의 남성은 도발적인 모습으로 양손검을 들어 보였다.
“제대로 하지 그래.”
검 끝을 까딱거리는 금발인을 보면서 리즈는 킥,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리즈의 등 뒤로 미친 듯이 일렁이는 붉은 깃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싸늘하게 바뀐 얼굴로 손목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자살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드리죠.”
리즈는 귀 끝까지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금발의 남성은 푸른 자장을 뿌리는 양손검을 들어 쏟아지는 핏빛 창날을 막았다.
막고 베어내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격들. 금발인은 점차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였다.
어둠 속으로 루비 빛 안광을 흩뿌리며 손을 저어대는 리즈.
그런 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금발의 남성은 오로지 방어만을 위해서 양손검을 휘둘렀다.
아무리 포스라고 해도 마나가 무한정 쏟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리즈는 아낌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수십 개의 핏빛 창날. 하나, 하나가 웬만한 전사들은 단번에 목이 달아날 정도로 강렬하고 둔탁했다.
교단 내 최강의 전사인 레이루나는 리즈가 펼쳐내는 마법 공격을 보고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가진 축복을 활용하기도 전에, 눈 한 번 깜박거릴 시간도 없이 레이루나는 뒤로, 또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레이루나의 앞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는다. 맺혀지기 시작하는 땀방울은 눈썹을 타고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레이루나는 땀방울이 들어간 눈동자 쪽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시야가 흐려지자 양쪽으로 날아드는 리즈의 창살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레이루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푹.
리즈의 손끝에서 털어져 나간 빛 덩어리가 땅바닥을 푹 패게 했다. 그러나 레이루나의 목은 어느새 감긴 붉은 천이 감겼다.
위기를 느낀 레이루나는 손을 들어 목을 보호했다. 그의 손목과 목은 붉은 천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는 양손검을 휘둘러 천을 베었다. 하지만 잘려 나가지 않았다.
“소용없습니다.”
적색의 망토와 함께 허공에 흩날리는 긴 붉은 머리카락.
만월의 아래에서 리즈는 핏빛 광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손을 휘저었다.
리즈의 손목에 감긴 붉은 천과 함께 레이루나는 목이 묶인 채로 허공에 두 발이 떨어져 나갔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그루에 나가떨어진 레이루나는 쿨럭, 기침을 토해냈다.
피어오르는 핏방울이 눈앞을 가린다. 귓가로 들려오는 바람을 찢어내는 리즈의 마나 창살. 레이루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면서 땅바닥을 굴렀다.
콰과쾅!
레이루나가 있던 자리는 핏빛의 창살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뿌려냈다.
바닥의 흙과 돌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파편을 만들었다.
레이루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즈는 레이루나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붉은 천이 감긴 검지, 중지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레이루나는 목이 조여지는 느낌과 함께 리즈에게 힘없이 끌려 들어갔다.
붉은 천이 감기지 않은 리즈의 오른손에서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붉은 핏빛이 활활 타오른다.
위기감을 느낀 레이루나는 양손검을 바닥에 박아 넣고 버텼다.
레이루나는 살아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굴욕감, 그리고 무력감을 맛보면서 방어에만 급급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엄청난 마나 창살들이 쏟아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리즈는 냉소적인 미소를 머금으며 손끝을 다시 한번 들어 올렸다.
레이루나는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박아놓은 양손검이 밭고랑을 만들기 시작한다.
목의 압박감 때문에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레이루나는 나지막하게 몸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레이루나는 땅바닥에 박아 넣었던 양손검을 뽑아 들었다.
은은하게 푸른 휘광을 발휘하던 그의 양손검은 강렬한 눈보라를 휘몰아치면서 번뜩였다.
리즈의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레이루나는 상대와 동귀어진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일찍이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선택받은 힘에 속해져 그 누구보다 우월했다. 그렇기에 항상 강자만 찾아다녔다.
자신의 고향 설한을 넘어서 대륙을 건너면서 강자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최강의 괴물을 만나 나락으로 떨어진다.
‘빅스터, 당신이 틀렸다.’
레이루나는 빅스터의 말을 떠올렸다.
포스는 인간의 범주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존재였다.
그는 리즈의 품으로 뛰어들어 크게 횡 베기를 했다.
당장에라도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거대한 붉은 날개. 리즈는 회오리같이 몰아치는 기류를 뿜어내며 적색 안광으로 미소한다.
레이루나는 자신의 모든 힘을 실어 리즈를 향해 검을 뻗어냈다.
부우웅!
거친 검의 파공음이 들리자 리즈의 긴 붉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몸을 뒤로 젖힌 리즈는 발을 들어 레이루나의 복부를 걷어찼다.
레이루나는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뒤로 밀려났다. 리즈는 손에 감겼던 붉은 천을 잡아당겼다.
목이 조여 온다.
레이루나는 그사이 리즈의 손에서 핏빛 창이 쥐어진 것을 보았다.
파앗!
이를 악물고 뻗어낸 레이루나의 양손검이 푸른 냉기를 뿜어내며 리즈의 창과 천을 전부 토막 냈다.
공기 중으로 맺혀지는 얼음의 결정을 보면서 리즈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레이루나는 양손검으로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의 등 뒤로 펄럭이는 위압적인 핏빛 날개. 그것은 레이루나에게 전율을 전달하고, 힘의 차이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강해, 강하잖아!”
레이루나가 입가에 광기 어린 조소를 머금었다.
리즈는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리 강해도 인간의 몸으로 포스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상대는 많아 봐야 20대. 그 정도 나이대로 이 정도 힘을 수련해서 얻는단 것도 불가능.
리즈는 상대의 정체가 의심되었다.
“뭔가요, 당신은?”
“북방의 전사, 레이루나 님이다!”
“아니, 정체를 물어본 겁니다.”
“최강을 꺾어 최강이 되려는 사나이지!”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군요.”
고고하게 버티는 상대가 있다.
반항하고 저항하는 상대의 목숨을 취하고 혈화를 꽃피운다.
그것만이 지독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리즈는 입가의 미소를 길게 그려 넣었다. 그의 주변으로 눈부신 핏빛 마법진이 자동으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흙더미 속에서 빠져나온 수송대들은 기습대를 맞아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인원 차이는 압도적이다.
지금은 기습대가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점점 흙더미에서 나온 적병이 정비를 마치고 반격했다.
그 순간 리즈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창 전투를 하고 있던 덕분에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수송대가 싣고 있던 식량들이 마차와 함께 뒤엎어져 있었다.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식량이 아니었다. 포대에 삐져나오는 것은 돌과 흙덩어리였다.
“식량을 운반한 게 아니었나요?”
리즈가 공격해 오지 않고 말하자 레이루나는 큭,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 무서운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레이루나는 새삼 빅스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어쩌지 못한 강자가 불쾌해하고 있었다.
“이미 식량은 도착했을걸? 다른 루트로 말이지.”
“빅스터에게 한 방 먹었군요.”
리즈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겼다.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을 배치하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카드까지 내고서 정작 진짜 물자와 가짜 물자를 나누어서 운반하고 있었다.
리즈는 스스로 인정해야만 했다.
빅스터에게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대군의 유일한 약점인 식량 보급을 막지 못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바뀌었다.
“자, 2차전이다!”
레이루나는 지금껏 만나볼 수 없었던 거대한 벽과 같은 사내와 전투를 재개하려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기술, 최고의 기량을 아직 발휘하지 않았다.
레이루나는 확실하게 예감했다. 눈앞에 있는 저 남자를 베면, 자신이 최강이 되리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