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197)
레필리아 레소드-197화(197/398)
레필리아 레소드 197화
천재 vs 천재(1)
리즈는 500명의 병사를 끌고 이렌드 강을 치러 움직였다.
적 주둔군은 2천이었고, 티미의 오른팔인 로토가 병사를 대동하고 있었다.
포스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
이렇게 뒤통수를 맞아본 것이 또 언제였던가?
그것을 생각하니 자못 유쾌함마저 느껴졌다.
리즈가 이렌드 강을 지키기 위해 군을 이끌었다. 이미 빅스터는 예상했다는 듯이 주둔군에게 방비할 것을 명령했다.
리즈는 이미 두 차례나 빅스터에게 전략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가 주둔군을 치러 간다는 사실을 빅스터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리즈는 알면서도 주둔군을 치러 나갔다. 주둔군을 가만두면 어차피 양면 협공을 받는다.
리즈는 유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굳이 리즈가 아니어도 유트는 군 통솔이 가능했다.
전쟁의 전략에서는 빅스터에게 밀릴지 모르나, 리즈는 다른 한 가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빅스터는 철저한 계산으로 움직였고, 상대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을 유도한다.
정예부대를 투입하여 수도를 점령한다는 전략부터가 대담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물론 철저한 조사와 많은 루트를 계산하고 결정했겠지만, 사람이란 동물은 계산대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리즈는 유트를 알지만, 빅스터는 유트를 모른다. 그 단 하나가 유일하게 전략적으로 앞설 수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유트에게 이 전쟁의 종막을 맡겼다. 그라면 충분히 빅스터를 넘어 대륙에 알릴 수 있다.
‘자, 깜짝 놀랄 준비를 하시지요, 빅스터.’
만약 교단군이 아키서스에서 패하게 된다 해도, 정예 기병대가 왕성을 점령하게 된다면 상징성을 잃게 된다.
전쟁에서는 이기고, 질 수 있지만, 나라의 근간이 되는 수도가 적의 손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상징성이 무너진다.
점령이 하루든, 이틀이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빅스터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리즈는 급하게 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지금쯤 엘과 리에르는 함께 수도를 지키고 있을 터다.
숫자는 겨우 둘이라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니 일반 기사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빅스터의 계략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빅스터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하나가 더 있다.
그가 전략에 대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면 유트 페브리안은 전술에 대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었다.
그동안 페리안이 행했던 점령 전쟁에선 유트의 재능이 꽃피울 필요가 없었다.
유트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신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리즈에게는 모든 군권을 맡겼고, 전쟁에 있어서 필요한 전략은 모두 리즈의 의견에 따라갔다.
기사단원을 추리고 훈련하는 것에 대해선 레온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여 자신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리즈가 유트를 택해서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그가 패왕의 피를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트 그 자체가 이미 영웅의 자질을 소유하고 있었고, 왕으로서의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어도 신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런 그들에게는 아낌없이 신뢰한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다. 왕의 힘이고, 재능이니 아낌없이 사용할수록 좋다.
‘유트 군은 이미 완성된 왕입니다.’
리즈는 빅스터의 유일한 방심을 공략하기로 했다.
이렌드 강을 중심으로 V자 형태로 포진한 적이 보인다.
리즈는 이미 만반의 태세를 갖춘 적을 보면서 입꼬리를 추어올렸다.
이렌드 강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아키서스 성문에서도 전투가 시작했다.
티미는 전투가 어떻게 될지 초조해하고 있었다. 성문이 열리고 페리안의 성문이 열린다. 수성을 포기하는 적을 보고 그는 쾌재를 불렀다.
티미는 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지 어깨를 펴고서 빅스터를 돌아보았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빅스터가 보여주는 전략은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탈출구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티미는 이전보단 부드러운 태도로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형이 좋지 않으니 밀집 대형으로 중군, 좌군, 우군으로 나누겠으니 준비하라.”
“네,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자신이 행하려는 전술을 가지고 또 시비를 걸지는 않을까, 눈치 보던 티미는 빅스터가 아무 말 없이 수긍하자 더더욱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티미 그 자체가 걸어온 엘리트로서의 길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태생과 나쁜 버릇들이 그의 장점을 덮고 있을 뿐이었다.
빅스터는 최대한 자신의 주군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군과 관계가 틀어지면 기뻐할 사람은 적밖에 없다. 그렇기에 빅스터는 적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전쟁에 있어서 전술의 기본은 적에게 뚫리지 않는 밀집 대형에 있으며, 그대로 적을 분단시킨다면 승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적은 자신들의 수도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는 정보도 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해로 인해서 혼란이 극에 달했을 것은 분명하였다.
“유트는 내가 잡는다.”
그 얄밉던 유트 페브리안을 자신이 포획할 수 있다는 사실에 티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를 드러냈다.
빅스터는 밀집 진형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강력한 진형이었다.
중장비를 착용한 보병들이 창을 앞세운다. 기병들이 언제든 망치가 되어 모루를 치기 위해 준비한다.
“자, 가라! 나의 군사들이여!”
티미는 전 군에 명령을 내렸다. 왕을 사로잡기만 한다면 전쟁은 끝이다. 대의명분이 없어진 페리안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교단의 보병은 몸을 가리는 큰 방패를 들어 옆의 동료를 보호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창을 들어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이 앞으로, 다시 앞으로 나간다.
군기가 어지럽게 하늘을 감아올린다. 그 움직임이 멈추고 바람에 펄럭거리기 시작할 때, 페리안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빅스터의 예상대로 유트 페브리안으로 예상되는 은색 머리카락의 젊은 왕이 선두에 섰다.
‘날개 형태인가. 어리석군.’
빅스터는 페리안의 진형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전술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리는 적의 공격을 최대한 버티고, 최대한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전쟁하기 전에 승기를 잡기 위하여 대장들이 펼치는 레퀴엠(일대일 결투)처럼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어느 군대가 더 흩어지지 않고 단결이 되는가가 중요했다.
교단의 군대는 종교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하지만 페리안은 오로지 전우애밖에 없다.
신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축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힘은 보통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는 광기였다.
페리안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의 진형을 넓게 펼쳤다.
밀집 대형인 교단이 중앙을 돌파하면 페리안은 양분되어 버린다.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자연스럽게 지휘는 막힌다.
즉, 각개 격파를 당할 수밖에 없다.
빅스터는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젊은 패왕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된 것임을 깨달았다.
“멍청한 녀석. 전술의 기본조차 모르는구나.”
티미 역시 밀집하지 않은 페리안 군을 보면서 조소하였다. 티미는 그야말로 사기가 충전하여 기세 좋게 부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리즈가 없는 페리안은 이 정도일 뿐인가.’
빅스터는 혼란에 빠진 페리안이 서로 분열되어 자폭하는 것을 보고 착잡함이 느껴졌다.
비록 자신이 역전하긴 했지만 리즈에게 한 방 맞아서 큰 피해를 보았던 것이 너무나 뼈아팠었다.
반면에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겨루는 것은 굉장한 스릴을 주고 있었다.
전략적으로 패배를 당해보는 것이 언제였던가.
“밀어붙여라! 적의 심장을 찢어발겨라!”
티미가 손을 들어 적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였다. 각 부대의 군기가 어지럽게 창공을 휘저었다.
대군은 대지를 두드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에 맞서 유트는 여전히 날개를 펼친 듯한 진형을 유지했다.
유트는 중앙군에 보병을 두어 밀집 방진을 형성하였다. 좌익은 프세를, 우익은 레온을 지휘관으로 배치한 뒤 중진은 신궁 아로운을 필두로 모든 은기사에게 경갑을 입혔다.
대군이 서로 부딪히게 된다면 무장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오래 생존한다.
오래도록 진형을 유지하는 부대는 결국 승리하게 된다.
그런 기본적인 전술을 알면서도 유트는 모든 중기병을 경기병으로 바꾼 채로, 말안장에는 화살집을 비치하였다.
“좌익, 우익 전체 사격.”
침착하게 전장을 굽어보는 유트는 입술을 열어 보였다.
그의 말에 따라 대장들은 군주의 지휘를 알리며 깃발을 뒤흔들었다. 신궁 아로운을 비롯한 연합 궁사들, 그리고 경기병으로 바뀐 은기사들이 쏘아낸 화살로 인해 전장의 하늘은 시커멓게 물들었다.
투두둑, 투둑.
화살 비가 날아들자 밀집 대형을 갖추고 전진하는 교단군의 앞 열은 몸을 가리는 방패를 전면에 내세웠다.
밀집 대형의 이 열은 방패를 머리 위쪽으로 들어 앞 열과 자신을 보호했다. 그 뒤의 병사 역시 방패로 화살 비를 막아내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티미는 유트의 포진을 보면서 입가에 실 같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카에르나 카이샤에서도 배웠던 전술학에서 밀집 대형의 우수성은 항상 강조되었다.
비록 화살 비로 인해 군병은 다수 잃겠지만 그만큼 적의 중앙에 전진할 수 있다.
“전진한다!”
티미의 지휘대로 교단의 3개 군단은 적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서 밀고 들어왔다.
수북이 쏟아지는 화살 비를 맞으면서도 적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트는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왕성이 함락될 위기를 듣고서 침착함을 잃기도 했다.
당장에라도 동생을 구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유트를 안심시킨 것은 리에르의 존재였다.
그가 동생을 지켜준다면, 대신 싸워준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친우. 오랜 시간을 나눈 지기.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품고서 세상을 등졌었다.
유트는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쫓기며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었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생각도, 그 어떤 사람과도 친분을 유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의 결심을 뒤흔들었던 단 하나의 친구.
가장 의지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라면 모든 걱정을 지워낼 수 있었다.
“좌익 전개.”
유트의 말과 함께 프세의 경기병들은 적의 측면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기병이 하는 일은 적의 전략적인 요지를 빠른 기동력으로 제압하는 데에 있다.
특히 중기병의 뛰어난 점은 단단한 방패와도 같은 적의 밀집 대형을 돌파하는 것이다.
“우익 전개.”
유트는 좌군에 이어서 우군도 진군시켰다. 하지만 적병들을 돌파하기 위한 움직임 대신에 레온의 경기병들은 적의 측면으로 돌아서면서 활시위를 겨누었다.
“전체 사격.”
우군과 좌군에게 신호를 보내는 커다란 대장기가 좌, 우로 크게 움직였다.
그것을 신호로 아로운을 위시한 중앙군에서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고, 다시 한번 하늘을 덮는 화살 비가 적에게 뿌려졌다.
여전히 적은 정면과 머리 위를 막으며 전진해 왔다. 그러나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프세의 경기병과 레온의 경기병은 적 군대의 측면에서 화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옆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비어버린 그들의 허리를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밀집 대형의 유일한 약점은 측면으로부터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군병들이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방패로서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는 사실이다.
보호되지 않은 다른 부분은 바로 옆의 동료들의 방패가 보호해 준다.
하지만 측면으로는 방패를 들 수 없다.
그곳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아무런 방비 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고, 사상자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티미는 예측하지 못한 적군의 움직임에 당황해서 빠른 지휘를 내리지 못했다.
“저희 쪽 기병이 있습니다.”
기병은 언제나 전투에 있어 키 포인트 역할을 한다. 간혹 기병전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빅스터에게 있어서 유트 페브리안이라는 인물은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인재였다.
하지만 아직은 젊음으로 인해 미숙함을 갖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이 빅스터의 유일한 실수였다.
‘난 나의 전장에서 이기겠다. 리엘, 넌 너의 전장에서 이겨라.’
유트는 나지막하게 뇌까리며 손을 들었다. 왕의 곁을 지키는 정예들이 눈에서 투지를 뿜어냈다.